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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윌슨,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책의 구절들]

 

  인간의 사회적 행동이 유전적으로 결정되는가 하는 문제는 이제 더 이상 질문거리도 되지 않는다. 문제는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이다. p.46


  유전적으로 결정된 형질이란 최소한 하나 이상의 유전자가 존재함으로써 다른 형질들과 구별이되는 형질을 말한다. p. 46


  이런 사실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이 유전적 토대 위에 있다는 가설,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행동이 근연 관계에 있는 종들과 공유하고 있는 일부 유전자와 인간 종 고유의 유전자로 조직된다는 가설과 일치한다. p. 63


  유전자 가설의 핵심은 신다윈 진화론에서 직접 이끌어낸 명제, 즉 인간 본성을 형성하는 형질들은 인간 종이 진화해 온 기간만큼 적응을 거쳐왔고, 그 결과 유전자들은 그 형질들의 발달 성향을 지닌 운반체 집단을 통해 퍼진다는 명제이다. 적응이란 간단히 말해, 한 개체가 형질을 드러내지 않을 때보다 드러냈을 때 다음 세대에 그의 유전자를 발현시킬 기회가 더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가장 엄격한 의미에서 본 개체들의 차등적 이점을 <유전자 적합성>이라고 한다. 유전자 적합성은 개체의 생존 능력 강화, 개체의 번식 능력 강화, 공통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동일한 유전자를 공유하는 친족들의 생존 및 번식 능력 강화라는 세 가지 기본 요소로 구성된다. pp. 63-64


  다윈이 자연선택이라고 부른 이 과정은 인과 관계의 꽉 짜인 순환을 의미한다. 만일 어떤 유전자를 소유한 개체에게 특정 형질이 발현된다고 예정되어 있다면, 즉 그 형질이 어떤 형태의 사회적 반응을 낳고 다시 우월한 적합성을 수반한다면, 그 유전자는 다음 세대에 더 많이 발현될 것이다. 자연선택이 무수한 세대 동안 계속된다면, 적합한 유전자는 집단 전체에 퍼질 것이고 그 형질은 종의 특징이 될 것이다. 수많은 사회생물학자, 인류학자, 기타 학자들은 이런 방식으로 인간 본성이 자연선택을 통해 형성되었다고 추정한다. p. 64.


  워딩턴은 발달이란 고지대에서 해안까지 뻗어 있는 경관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눈동자의 색깔, 오른손잡이 또는 왼손잡이, 분열증 같은 형질의 발달은 경사지에서 공을 굴리는 것과 비슷하다. 각 형질은 경관의 서로 다른 부분을 가로질러, 서로 다른 형상의 골짜기와 계곡을 따라 내려간다. 눈동자의 색깔에서는 청색이나 홍채 색소에 해당하는 유전자들이 출발점이 되고, 그 지형은 하나의 깊은 통로가 된다. 그 공은 하나의 운명을 향해 곧장 굴러간다. 즉 일단 난자와 정자가 수정되면 한 종류의 색깔만이 가능하다. pp. 96-97.


  인간 행동의 발달 지형은 훨씬 더 폭넓고 더 복잡하지만, 그래도 지형인 것은 틀림 없다. ... 경관은 은유일 뿐이고, 더 복잡한 현상을 다루기에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에 관한 중요한 진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가 그 행동의 결정 과정을 완전히 이해하고자 한다면, 어느 정도까지는 각 행동을 유전자로부터 최종 산물까지 진행되는 발달 과정으로 나누어 처리하고 추적해야 한다. pp. 97-98


  인간의 정신은 경험을 통해 선과 점으로 뒤엉킨 그림들이 그려지는 백지가 아니다. 그것은 여러 대안 중에 어떤 특정한 대안에 먼저 다가가서 본능적으로 특정한 하나를 선택하고, 유아에서 어른으로 자동적이고 점진적으로 변화하도록 정해진 신축적인 계획표에 따라 육체한테 어떤 행동을 하라고 촉구하는, 주변 환경을 빈틈없이 경게하는 탐색자, 즉 자치적 의사 결정 기구로 기술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오랫동안 해온 선택의 축적, 그것들의 기억, 앞으로 해야 할 선택에 대한 심사숙고, 각인된 감정들의 재경험, 이 모든 것이 정신을 구성한다. 한 개인의 의사 결정은 그를 다른 인간과 구별해 주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런 결정에 따라붙는 규칙들은 모든 개인이 내린 결정들을 폭넓게 중첩시키고, 그리하여 인간 본성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기에 충분하고 강력한 수렴을 이끌어낼 수 있을 만큼 빈틈이 없다. pp. 105-106


  하지만 개인의 세세한 행동들을 단기적으로라도 예측하려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기술이 필요할 것이고, 그런 예측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떤 지성을 지닌 존재의 능력을 넘어설 것이다. 고려할 변수들이 수백 가지 아니 수천 가지가 되면, 그 중 어느 한 변수가 지니는 미미한 부정확성이라도 정신 작용의 일부나 전체를 바꿔놓을 만큼 확대되기 쉽다.
 
게다가 아원자 입자에 적용되는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 원리는 여기에도 비유적으로 적용된다. 관찰자가 그 행동을 더 깊이 탐구할수록, 그 행동은 탐구 행위에 의해 더욱 변형되며 그 행위의 의미 자체는 선택한 측정 수단에 더욱 의존하게 된다. 관찰자의 의지와 운명은 관찰 대상자의 그것과 연계된다. 엄청난 수의 체내 신경 작용들을 동시에 그리고 원격적으로 기록할 능력이 있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정교한 관측 장치만이 그 상호작용을 허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수학적 비결정성과 불확정성 원리 때문에, 어떠한 신경계도 다른 지능 체계의 미래를 의미 있는 수준까지 상세히 예측할 수 있는 충분한 지식을 획득할 수 없다는 것이 자연 법칙일지 모른다. ...
  인간 정신 같은 복잡한 활동을 예측하고자 할 때 나타나는 또 다른 근본적인 어려움은 원래의 자료가 뇌의 심층까지 도달하는 과정에서 변형된다는 점이다. pp. 114-115


  타협안은 인지심리학자들이 스키마 또는 지식 구조라고 부르는 것을 인식하는 데 있다. 스키마는 뇌 속에 있는 타고난 또는 학습된 구조로서, 신경 세포에 입력된 자료들은 이 스키마와 비교된다. 실제 패턴과 예상 패턴이 일치하면 몇 가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스키마는 좋고싫음에 관련된 세부 사항들을 파악하고 걸러내, 정신이 환경의 특정 부분을 더 생생하게 지각하고 특정 결정을 더 선호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개인의 정신적 <성향>에 기여할 수 있다. 스키마는 감각 기관에 실제로 입력된 것 중 누락된 부분을 세세하게 채울 수 있고, 현실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패턴을 정신속에 창조할 수 있다. p. 117.


  가장 중요한 점은 뇌 속의 스키마가 의지의 물리적 토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물의 활동은 되먹임고리를 통해 유도될 수 있다. 감각 기관이 뇌의 스키마로 전달하는 신호들은 감각 기관으로 되먹임되며, 행동이 제대로 이루어졌다고 스키마가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순환은 반복된다. ... 정확히 이런 식으로 작용한다는 증거는 없다. 지금은 그런 근본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p. 118

 

[끄적임]

사회 생물학과 진화론. 혁신적이지만 확신적이진 않다. 아직은 많은 주장들이 추정적 진술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연구가 훨씬 더 진척된다면, 추정이 확신으로 변모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스키마 또는 지식 구조". 윌슨은 물리적  토대라고 말한다. 그러나 물리적 토대는 아직 아닌 것 같다. 사회 생물학의 문외한으로서 이 내용을 접했을 때에는, 선이해(pre-understanding)의 작동으로 말미암아, 칸트가 말하는 선험적 형식의 일종이 아닌가 했다. 그러나 윌슨은 물리적 토대라 말한다. 물리적 토대라 한다면, 스키마가 뇌의 물리적 구조 중 일부일 것이다. 윌슨이 정확히 그런 뜻으로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가장 신뢰하는 심리학자 중 한 명에게 스키마는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냐고 했다. 그러나 대답은 스키마가 학자마다 달리 쓰인다는 것이다. 이어진 질문은 스키마는 어떻게 획득되느냐는 것이었고, 대답은 학습에 의한 것이라 했다. 확인해야 할 것은, 윌슨이 정확히 어떤 의미로 사용하고 있느냐는 것인데, 이 책의 내용으로는 아직 불분명하다.

  경관의 비유는 유전자에 결정되는 특징을 상당히 정확히 묘사하는 것 같다. 유전자에 의해 100%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계가 존재한다. 이것이 답이다.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이지만, 유전자는 인간의 한계를 노정한다.

  자유 의지의 가능성, 즉, 의지의 비결정성을 윌슨은 두 가지 이유에서 지지한다. 수학적 비결정성(수많은 변수)과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 그러나 수학적 비결정성은 불필요한 것 같다. 신경의 작동이 전기화학 반응이라면, 이미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해 지배될 테니까. 확률적으로만 예측이 된다. 수학적 비결정성은 변수의 무한한 가능성 때문이다. 만일 수학적 비결정성이 redundant하지 않도록 해석하자면, 그러한 확률적 예측마저도 불가능하게 하는 무한한 변수 때문에 사건의 인과적 연쇄를 예측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수학적 비결정성을 redundant하게 간주한다면, - 이것은 철학의 사고 실험에 의해 가능하다 - 즉, 행위에 영향을 끼치는 무한한 요소들을 우리가 안다고 가정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행위가 물리적으로 결정되는가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자유 의지를 정당화하려 한다면, 그것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해서만 가능할 것 같다. 그러나 이 역시 일정한 확률적 예측 내에 존재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확률적 예측을 벗어나는 부분, 예를 들어 그것이 약 5%라 한다면, 자유 의지는 그 5% 내에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자유 의지는 elbow room 정도의 여지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윌슨은 물리적 토대, 물질적 토대를 중요시 한다. 이것은 마르크스 이래 중요한 변혁의 과정을 따르는 노선이다. 그럼에도 의식의 문제에서는 여전히 철학의 일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너무 단순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한 창발론이 지금은 어쩌면 환원론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제 1 장 20대 80의 사회


  폐어몬트 호텔에 모여 국제회의를 열고 있는 이 세계적인 실용주의자들은 인류의 미래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 그것은 <20 대 80의 사회>라는 말과 '티티테인먼트tittytainment'라는 말이다.

  <20대 80의 사회>라는 말은, 다가오는 21세기에는 노동 가능한 인구 중에서 20%만 있어도 세계경제를 유지하는 데 별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무역귀족 출신 워싱턴 시싶은, "더 이상의 노동력은 필요 없다."라고 잘라 말한다. 일ㅇ자리를 구하는 사람들 다섯 중 하나면 모든 상품을 생산하고 값어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이 20%의 살마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돈벌이나 소비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간혹 1~2% 정도의 다른 사람들은 운 좋게 상속을 받아 이 대열에 추가로 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가? 일을 하고 싶은 사람들 중에서 80%는 놀아야만 하는가? 『노동의 종말』을 쓴 미국의 저술가 제리미 리프킨은 “확실히 그렇다.”라고 말한다. 26쪽.



  오히려 이 새로운 사회에서는 ‘티티테인먼트’가 판을 치게 될 것인데, 이 말은 원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만든 말이다. 그는 원래 폴란드 출신으로 미국 지미 카터 행정부에서 안보담당 보좌관을 역임했다. 그 뒤로 그는 지역전략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티티테인먼트'는 즐기는 것을 뜻하는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와 엄마 젖을 뜻하는 미국 속어 ‘티쯔tits’를 합친 말이다. 다시 말해 기막힌 오락물과 적당한 먹거리의 절묘한 결합을 통해서 이 세상의 좌절한 사람들을 기분 나쁘지 않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27쪽.



  그러나 사회보장 국가를 지키려는 진영은 이미 대세가 기울어진 싸움을 하고 있다. 물론 사회보장제도를 축소하려는 자들의 논리는 엉터리이다. ‘세계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세계화'야말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낸다고 떠들어댄다. 하지만 독일 대기업들은 외국으로 나가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기보다는, 이미 있던 기업들을 인수하고 경영합리화(!)를 통해 그 나라의 시장을 점령하느라 일하는 사람의 수만 줄이고 있다. 또 저들은 사회보장비 부담이 너무나 크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1995년의 경우 사회보장비가 국민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년 전의 그것보다 줄어든 형편이다. 그들의 주장 중에 유일하게 맞는 말은 다른 선진국에서도 사회보장제도를 축소시키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다른 나라들도 정부의 재정지출을 줄이고 있고, 임금을 줄여나가며, 복지 혜택을 줄이고 있다. 스웨덴에서 오스트리아, 스페인에 이르기까지 다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모든 나라에서 저항의 물결도 거세게 일어났고, 아쉽게도 결국에는 좌절로 끝났다. 28-29쪽.



  또 다른 한편에서 범지구적 자본가들은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자꾸만 낮추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다. 결국에는 창출된 전사회적 부에서 임금 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어느 나라나 사정은 비슷하다. 사회적 부는, 따지고 보면 거의 모든 노동자들이 만들어낸 것인데도 그들이 가져가는 부분은 자꾸만 줄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향이 전지구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마당에 어느 한 나라만이 나서서 “그렇게 하지 말자.”고 이야기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미국의 경제학자 뤼디거 도른부시는 “이제 독일 모델은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서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기 어렵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32쪽.



  칼 마르크스가 죽은 지 110년이 넘는 이 시점에도 자본주의는 그 혁명적인 경제학자가 말했던 방향으로 경제를 이끌어가고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일반적 경향은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을 높여나가기보다는, 오히려 줄여나가거나 노동력의 가치를 최소한으로 낮추려고 한다.” 이 말은 그가 1864년 9월 런던에서 열렸던 제1인터내셔널 회의에서 행한 주제발표 중에 나오는 것이다. 그는 여기서 초기 자본주의가 미래의 어느 시점에 민주적으로 통제될 수 있 것이라고는 보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제 사회민주주의적인 개혁적 시절이 다 지나가고 오로지 반개혁적인 처사들만이 그 역사적인 파고를 드높이고 있다. 32-33쪽.



  “범지구적인 경제의 통합은 절대로 자연적인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자본가들에 의해서 목적의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각 나라 정부와 의회는 온갖 협정서, 온갖 법률이나 결정들을 통해서 자본과 상품이 국경선을 넘어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도록 장애물을 없애는 데 노력해 온 것이다.” 33쪽.



  “세계경제가 범지구적으로 통합되는 ‘세계화’ 과정에 반드시 따라다니는 이론 하나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신자유주의’라는 것이다. 그 기본적 주장은 모든 군소리를 다 뺀다면 다음과 같다. "시장은 좋은 것이고, 국가의 개입은 나쁘다.

   ... 국가에 의한 감독보다는 탈규제화, 무역과 자본이동의 자유화, 공공기업의 민영화 등이 바로 그 대표적인 정책 기조의 핵심이다. 이런 정책 기조들이 시장 옹호론자들 중심의 정권이나 각종 국제기구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무역기구WTO>]에 의해 차츰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이런 정책 수단들은 결국 자본의 자유로운 운동을 위한 싸움에 동원되었고, 이 싸움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이 싸움이 이루어지는 영역은 제한이 없다. 항공 수송, 정보통신, 은행, 보험, 건설, 소프트웨어 개발 부문 등에서부터 마침내는 인간 노동까지도 마찬가지이다. 한마디로, 지구 위에 존재하는 그 어느 것, 어느 누구도 시장의 수요와 공급 법칙이라는 냉혹한 현실로부터 벗어나기가 어렵게 되었다. 34쪽.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문제가 상상 이상으로 심각하다. 이른바 ‘터보-자본주의’는 역설적이게도 자기 자신의 생존 근거를 철저히 파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 '근거'란 한편으로는 역량 있는 국가-개별 국가의 정책 집행력-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주의에 뿌리를 둔 사회 안정-민주주의적 안정성-이다. 그런데 최근의 변화 속도나 권력 및 복지의 재분배 구조를 보건대, 이 ‘터보-자본주의’는 새로운 질서가 싹터 나오기도 전에 예전의 사회질서를 송두리째 허물고 있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 ... 역설적이게도 반혁명의 발상지인 미국 사회에서 그 사회적 결속력의 파괴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36쪽



  만일 모든 나라의 정부가 허구한 날 세계 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만을 강조하면서 우리의 미래 생존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보다 진지한 자세로 고민하지 않는다면, 모든 정치가들은 자신의 무능력만을 드러낼 뿐이고, 나아가 국가는 민주적인 정당성을 잃어버리게 도리 것이다. 한마디로, ‘세계화’를 민주주의 시각에서 보면, 자기가 숨겨놓은 덫에 스스로 단단히 걸려들어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망치고 있는 셈이다. 36쪽.


  기업 경영의 논리와는 달리 민주사회에서는 결코 ‘잉여 인원’이라는 말이 성립할 수가 없다. 세계화의 과정에서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은 분명코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코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 시민들은 언론에서 뉴스가 나올 적마다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우리가 아니라 외국과의 경쟁 때문에’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야 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 경제학적으로 보아도 잘못된 이런 식의 주장은 이제 우리가, 우리 아닌 모든 낯선 사람들과 ‘적대관계’에 설 것을 강요한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 살길이 막막해진 수백만의 중산층 시민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 치료약을 외국인에 대한 증오심이나 분리주의, 또는 세계시장으로부터의 완전한 단절 같은 방식들 속에서 찾는다. 한마디로, 사회에서 배척받은 자들은 역설적이게도 자기들 스스로 다른 사람들을 또 배척하고자 하는 것이다. 37쪽.



  맹목적 효율성 경쟁과 임금 인하를 기초로 진행되는 범지구적 경쟁과정은 전세계적으로 불합리성만 만들어낼 뿐이다. 이제는 저 아래쪽에서 정말로 극심하게 고통을 당하는 자들만 들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중산층으로 통해오던 사람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잃고 불쌍한 하류층으로 떨어질까봐 더 많은 두려움을 품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매우 큰 잠재적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은 가난 그 자체라기보다는 ‘가난에 대한 두려움’이다.






제 2 장 온 세상이 모두 하향평준화되고 있다



  월트 디즈니사의 회장이며 매스컴계의 황제인 마이클 아이스너는 이렇게 설명한다. “미국의 오락물은 개인의 가능성, 개인의 선택, 개인의 자유로운 표현을 아주 다양하게 펼칠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주고 있다. 바로 이것이 사람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이다.” ...

  그러나 러트거스 뉴저지 주립대학교 월트 휘트먼 센터 소장인 베자민 바버는 그를 매우 신랄하게 비판한다. 바버는 아이스너 회장이 내세우는 ‘다양성’의 강점이라는 것이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혹평한다. 그에 따르면, “이 주장은 두 가지의 결정적인 내용에 대해 ‘눈 가리고 아옹’하고 있다. 하나는 그 선택의 종류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가진 소망이 과연 아무런 사회적 연관 없이 독립적으로 나올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바버에 따르면 “디즈니가 지구촌 문화를 휩쓸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인간 문명사만큼이나 오래 된 한 현상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그것은 어려운 것과 쉬운 것, 느린 것과 빠른 것, 복잡한 것과 단순한 것 사이의 구분과 경쟁일 것이다. 그에 따르면, 어렵고 느리고 깊이 있는 것들은 인간 사회의 놀라운 문화적 업적을과 결부된 것들이고, 반면에 쉽고 빠르고 단순한 것들은 “우리가 지닌 무관심, 안이함, 나태함 등에 상응하고 있다. 디즈니나 맥도널드, 그리고 M-TV는 모두 가볍과 빠르고 단순한 것에 호소하고 있다.” 47쪽.



  지구촌이 점점 좁아지고 여러 문화 사이의 동화작용이 촉진될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화된다. 그 결과 문화계에서는 필연적으로 범지구화된 단조로운 미국식 문화가 일률적으로 전세계 문화를 휩쓸게 된다. 뉴욕의 비도오 예술가인 쿠르트 로이스톤이 이미 이런 경향을 ‘스크리치’라고 예언한 바 있다. ... 이러한 문화의 특징은 한마디로, 야단스럽게 꾸미고 나와 귀청이 떨어져 나갈 듯 요란하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모든 것이 공허하고 지루하다. 모두가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요란을 떠는 것을 좋아하는 이 ‘세계화’ 시대에 차라리 ‘조용히 생각에 잠기는 것’이 훨씬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람들은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럴 여유도 없고 그렇게 해야겠다는 의식도 없는 것 같다. 50쪽.



  상업주의적 이미지 공세가 강해진 결과, 이제는 옛날처럼 사람들이 자기 지역 고유의 문화적 소속감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

  이런 식으로 범지구화된 상품의 홍수가 수십 억의 수요를 따라 지구촌 곳곳으로, 특히 세계적 대도시의 쇼핑 골목 안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통찰력 있는 사회비평가인 이반 일리치가 일찍이 경멸조로 말한 것처럼, “갈증이라는 인간적 욕구를 코카콜라에 대한 갈망으로 전환시켜 내는 과정”이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완성중에 있는 것이다. 52쪽.



  메스컴 속에서 느끼는 가까움이나 동시성은 결코 실제의 현실 속에서 문화적인 결속감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더더군다나 현실의 지구 전역에서 경제적인 평준화는 거의 불가능하다. 59쪽.



  “우리들이 대부분 지니고 있는 무관심과 냉담한 같은 것들은 이제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변화되었다.” 이 말은 1995년 3월에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던 프랑수와 미테랑이 경고조로 한 말이다. 미테랑 대통령은 “여태껏 선진국이 후진국에 지원해 왔던 개발원조금 같은 것은 모두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이제 세계 각국은 이웃 나라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오직 자기 나라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다.”고 개탄한 바 있다. 62쪽.



  바로 유럽의 시민들조차 ‘세계화’라는 물결이 새시대의 예외없는 희생자가 되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의 선진국 시민들도 고용불안과 장래불안, 그리고 아이들의 장래에 대한 걱정으로 한숨을 푹푹 쉬면서 통치자들에 대한 불신감을 높이 쌓아가고 있다. ... 주지하다시피 이제 서구 사회도 서서히 경제적으로 양극화되어 간다. 63쪽,


  이제 소민족주의Tribalism가 세계 곳곳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러한 소민족주의는 많은 지역에서 흔히 폭력적인 민족주의나 광신적 지역 맹신주의로 변질되고 있다.

  그리하여 19세기나 20세기 초와는 달리, 오늘날에 와서는 대부분의 전쟁이 나라와 나라 사이에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 나라 안 여러 지역이나 집단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과 국제기구들은 아프리카 대륙의 이러한 참극에 대해 오로지 배제와 억압의 논리와 대처한다. 64-65쪽.



  1993년 여름, 하버드 대학 교수 새뮤얼 헌팅턴은 미국에서 이름 높은 국제정치 학술지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irs』에 기고한 글에서 <문명의 충돌?>이라는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그의 핵심적 주장은, 더 이상 냉전시대처럼 사회 이데올로기적 갈등이나 체제 갈등이 아니라, 다양한 문명들 사이에 생기는 종교적•문화적 분쟁들이 우리의 미래를 상당한 정도로 규정짓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

  사실상 이런 진단은 의심스럽기 그지 없다. 왜냐하면 소련과 동구권 체제가 무너진 최근에 들어서는 오히려 잘 산다고들 하는 서구 각국이 매우 빠른 속도로 자체의 사회보장제도를 스스로 허물어뜨리고 있어 정치적 긴장을 ‘자초하고’ 있고, 경제적으로 급부상하는 아시아 각국은 아시아라는 지역 안에서도 결코 동질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지 않다.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로 해체와 분할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66-67쪽.



  세계의 정상급 정치가들은 이와 관련하여 상당히 불길한 변동을 감지한다. 최근 부트로스 갈리 유엔 사무총장은 한 강연회에서 “우리는 범세계적 혁명의 와중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 지구는 크게 두 가지의 서로 대립적인 힘으로부터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지구화의 압력과 분열화의 압력이다.” 70쪽



  결국 지난 날 독재에 가까운 개발지상주의는 냉전시대에 자본주의 진영이 내세웠던 하나의 ‘무기’였음이 폭로되고 있다. 한마디로 구시대의 유물인 것이다. 이제 새로운 구호는 ‘할 수 있다면 스스로를 구제하라!’이다. ... 이제 인류의 절대다수한테는 지위 상승이나 복지보다는, 추락과 생태계 파괴, 문화적 퇴보가 일상의 생활과정에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현실화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세계적 엘리트들이 기존 선진국 안에서 <20 대 80의 사회>가 올 것이라던 예견은, 이제 전지구적 범위에서 <20 대 80의 지구촌>이 되어가고 있다. 그 증거 자료는 충분하다.

  세계화의 모든 나라들 중 가장 부유한 5분의 1(20%)에 해당하는 나라들이 지구 전체 부의  생산 중 84.7%를 차지하며 전체 무역량의 84.2%를 차지하고 있다. 나아가 총국내저축액의  85.5%를 이들 5분의 1의 나라들이 가지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지구촌 범위에서의 <20 대 90의 사회>를 분명히 일러주는 증거들이다. 71쪽.



  최고로 잘사는 20%의 나라가 전세계 나무 사용의 85%, 금속 가공의 75%, 에너지 사용의 705를 차지한다. 이것의 귀결은 무엇인가? 대체로 평범하게 들리긴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아주 잔인하다. 이러한 자연 파괴를 바탕으로 한 고도의 물질적 복지를 지구촌 모든 시민들이 공동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제 ‘지구촌의 한계’가 서서히 인류 앞에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72쪽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발전소들이 건설되고 자동차 문화가 지배하게 되면서 에너지 측면에서도 지구촌의 생태계 균형은 철저히 파괴되어 버렸다. ...

  이제 기후의 이상 변동은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되었고, 더구나 이를 완화시키는 것조차 힘들게 되었다. 72-73쪽.



  지구 온난화 현상 같은 이상기후 사태 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사업 영역을 개척하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득을 보게 되어 벼락부자가 되고, 바로 이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지구 온난화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모든 가능한 노력이 말짱 허사이며 이제 세계는 멸망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확실히 잘못된 입장이다. ...

  ... 세계 생태주의자 그룹인 <그린피스> 의장 틸로 보드가 강조하듯이, “인류의 생택적 운명은, 물론 아시아에서 결정”되겠지만 지구의 생태친화적 재건설에 있어 1차적 책임은 우리 ‘지구촌’ 사회에 상품 유토피아와 상품 우상을 만들어낸 자들, 이른바 선진 자본주의 나라의 자본가 및 그 동조자들한테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통찰이다. 78-79쪽.



  <로마클럽>의 버트란트 슈나이더가 말한 바대로, “오늘날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더 이상 우리 외부의 그 어떤 형체를 가진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인 것이다. 81쪽.



  브라운은 이 맥락에서, 앞으로 이러한 곡물 생산 관련 자료들이 경제계에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분쟁까지도 초래할 위험이 크다고 경고하고 있다. ... “이제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1인당 소비가능 곡물량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그것도 일시적이 아니고 항상적이며, 또 단기적이 아니라 매우 장기적이기 때문에 진지한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83-84쪽



  브라운에 따르면, “만일 인류가 더 이상 곡물 생산량을 증대시킬 수 없다면 국제적으로도 정치적인 관계들이 상당히 불안정하게 바뀌게 될 것이다.” ... “바로 이러한 사실들은, 앞으로 식량 분야에서도 미국이 세계의 권력을 장악하게 될 것임을 증명한다.”고 결론짓는다. 다시 말해서 “앞으로는 식량이 정치적인 압력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

  ... 이제 미국은 “대중 문화의 슈퍼 권력체”로서 놀이 문화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범지구적인 식량 배분도 자기 뜻대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 유럽 연합이 잉여 논산물의 수출에 대해 더 이상 보조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세금을 받아 가게 된다면, 그리하여 수출 단가를 높이게 된다면, 유럽연합 바깥의 다른 나라에서는 굶주리는 사람들이 훨씬 많이 생기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제 3 장 세계금융시장의 독재



  이번 멕시코 구제금융은 두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경제사적으로도 가장 대담한 위기돌파책이라는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부유한 소수를 위해 다수의 혈세납부자들이 치러야 했던 가장 뻔뻔스런 날강도 사건이라는 얼굴이었던 것이다. 바로 이점은 캉드쉬도 시인했다. 수백억 달러의 멕시코 구제금융은 대투기꾼들에게는 마치 기나긴 가뭄 끝의 단비와도 같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곧 솔직히 고백하고 말았다. “이 세계는 유감스럽게도 이 소수의 몇몇 부자들의 손아귀에 놓여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99-100쪽.



  세계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증권가(외환시장)나 은행, 보험업계, 그리고 투자기금이나 연금기금업계 등에 새로운 정치적 계급이 권력의 무대 위로 등장하였다. 바로 이 권력체의 영향력으로부터는 그 어느 국가, 기업, 그리고 두말 할 것도 없이 그 어느 보통 납세자들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 권력체란 다름 아닌 범지구적으로 운동하고 있는 외환 및 주식증권의 거래꾼들이다. 이들은 급증하는 거대한 자유투자자본의 흐름을 제멋대로 움직이면서 아무런 제재나 간섭도 받지 않고 식은 죽 먹듯이 한 나라나 민족의 흥망성쇠를 하루 아침에 결정지을 수 있다. 100쪽.



  사실상 금융시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대개가 납득할 만한 논리 속에서 나오고 있고, 또 대부분 선진 자본주의 국가 정부들이 자초한 것이다. 그들은 이른바 ‘자유로운 무한국경 시장’이라는 경제학의 이름으로 이미 1970년대 이래오 모든 울타리를 체계적으로 제거해 왔다. 예전에는 국경을 넘나드는 돈과 자본의 흐름이 이러한 울타리를 통해 적절히 통제되었으나 이 울타리들이 사라지면서 통제불능의 상태가 된 것이다. ...

  찬찬히 추적해 보면, 돈의 흐름이 민족 국가의 통제없이 제멋대로 흘러다닐 수 있게 된 것은 1973년 들어 선진 자본주의 나라 사이에 당시까지 통하던 상호 고정된 환율제도가 붕괴하면서부터이다. 이것이 바로 2차대전 후 당시까지 유효했던 브레턴우즈 체제의 몰락이라는 것이다. ... [브레턴우즈 협약의]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회원국의 화폐는 미구 달러에 비해 그 교환 비율이 하나로 고정되었다. 그리고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은 그 달러를 금과 맞바꿀 수 있음을 보증하였다. 동시에 모든 외환거래는 국가의 감독 아래에 놓이게 되었고 거액의 외화를 교환하거나 다른 나라로 빼돌리는 경우에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허가를 받아야만 가능했다.  102-103쪽



  이들 나라의 독점 대기업(콘체른)들은 이자율이 낮은 다른 나라 자본을 쉽사리 빌려올 수 없어서 국제경쟁력이 떨어진다며 불평불만을 털어놓았다. 마침내 영국은 1979년에 들어 최종적으로 자본 이동의 제한을 철폐했고, 일본은 그 다음 해에 자본시장 자유화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

  그리고 일본을 포함한 서방의 7대 경제 대국들이 그 경제 활동과 관련하여 결의한 것들은 대부분 세계의 다른 나라에도 점차적으로 관철되어갔다. 바로 이러한 일을 위해 IMF는 가장 이상적인 기구로 작동하였다. ... 지난 10여 년 간 IMF의 권력자들은 세계 각국에 금융대출을 해주면서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화폐를 태환화폐로 전환시켜 국제자본의 흐름에 개방 ―세계시장으로의 통합―시켜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서 돈을 주었다. 104-105쪽.



  이 전문적 금융투기꾼들은 범지구적으로 연결된 전자정보망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거의 빛과 같은 속도록 움직인다. 107쪽.



  달이면 달마다 새로운 상품들이 시장에 새로이 등장한다. 비록 이러한 상품들의 가짓수는 대단히 많지만 이들이 지닌 공통점이란, 그 상품의 가치가 현재나 미래의 실제 유가증권 내지 외환의 거래 가격에 근거해서 그로부터 도출―파생―된다는 점이다.

  ... 이러한 거래가 가지는 놀라운 효과 내지 특징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이러한 거래를 통해 미래의 시세가 떨어질 위험 또는 부주의한(재수없는) 채무자가 떠맡는 위험과 실제 유가증권이나 외환을 구매하는 행위를 분리해 낸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여기서는 미래의 위험(불확실성) 그 자체가 바로 거래대상이 되는 것이다. 111쪽.



  아주 작은 규모의 자본 거래조차도 상당히 큰 폭의 시세변동을 야기시킬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중개인이나 거래꾼들의 집단적인 기대행동이 그 자체로 엄청난 물리적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112-113쪽.



  1990년 들어 독일이 통일되면서 유럽통화제도는 그 이음새가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서독 정부는 동독과 통화동맹을 체결함으로써 사실상 파산 선고한 나라를 외상으로 사들인 셈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마르크화의 화폐량은 급속도로 치솟았고, 이것은 실물경제와는 상응하지 않는 가치변동을 초래하였다. 결국 높은 인플레율이 온 사회를 위협하게 되었다. 120쪽


  미국의 경제 주간지 『비지니스 위크』는 이 소로스라는 인물에 대해 “시장을 실제로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는데, 이러한 별명은 이제 퀀텀사의 사업을 이끌고 있는 드루켄밀러에게 잘 어울리게 되었다. 121쪽.



  요컨대 독일 연방은행의 총재나 여러 다른 시장자유주의자의 눈에는, 다소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모든 잘못은 거의 항상 정치가들에게 있는 것으로 비쳐졌다. 실례를 들자면, 디트마이어 총재는 1996년 2월에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가장 큰 문제는 대부분의 정치가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이 얼마나 금융시장의 통제와 지배를 받고 있는지조차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바로 이러한 시장자유주의의 입장은 현실 정치에 있어서도 매우 강력하게 관철되고 있는데, 사실상 이것은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의 경제이론에서 나온 것이다. ... 이 이론을 통화주의라고도 하는데, ... 그 세계관에 따르면 세계의 모든 국경을 뛰어넘어 자유로이 진행되는 자본운동이야말로 자본 증식이나 자본 배분에 있어 가장 최적 상황을 보장해 준다는 것이다. 여기서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말이 바로 ‘효율성’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계 각국의 시민들이 저축해서 모은 돈은 가장 높은 이윤이 나올 만한 곳을 찾아 온 세상을 비집고 다녀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효율성이 높은 곳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 반대의 경우에도 논리는 마찬가지이다. 누군가가 신용대부를 받고자 한다면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이자에 돈을 빌려줄 사람이나 기관을 찾아 선택하게 될 것이다. ...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모든 나라가 이득을 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식으로 최선의 투자 효율성과 함께 최고의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 논리에 따르면 모든 민족구가들이 권력을 휘두르지 않고 모든 것을 시장에 내버려두면 둘수록, 그것은 좋다는 것이다. 126-128쪽.



  유감스럽게도 이런 논리는 우리를 대단히 혼란스럽게 만들 뿐만 아니라 곰곰 생각해 보면 매우 위험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시장자유주의적인 논리는 그와 결부되어 있는 정치적인 위험성을 절묘하게 은폐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 비록 노골적으로 말은 하지 않을지라도 시장자유주의자들은 이러한 소수의 관심사를 항상 사회전체의 공익과 동일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세계화된 금융시장의 돌가는 실태를 정확히 꿰뚫어보면 이러한 견해는 순전히 이데올로기임이 드러난다. 왜냐하면 국가들 사이에 금융정책적인 연결고리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각국은 경쟁적으로 이자수익 등에 대한 세율을 낮추고자 하며, 국가 지출을 가능한 한 줄이고자 하고, 결국은 사회보장 등 사회적 형평성을 높이고자 하는 노력을 더 이상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는 한마디로, 세계적 차원에서 부의 분배를 아래로부터 위로 향하게 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28쪽.



  자본운동의 세계화와 더불어 국경 통제가 제거되면서(규제완화), 자본운동은 일종의 불운한 자기 동력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즉, 민족국가의 주권은 체계적으로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었으며, 그 결과 상당히 오래 전부터 거의 무정부주의적인 분위기가 팽배하게 되었다. 129쪽.



  먼 바다 금융기지 중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는 곳은 카리브해 연안의 케이맨 섬들이다. ...

  그러나 이러한 먼 바다 금융 시스템이 초래하는 해악은 거의 헤아리기가 불가능하다. ...

  ... 국가의 조세 통제권을 벗어나 일종의 사기를 치는 사람들은 일종의 채권자가 되고, 사기를 당한 국가는 일종의 채무자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 채권자는 채무자로부터 아무런 이자 소득세도 물지 않고 이자 소득을 고스란히 챙겨간다. 130-132쪽.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이 모든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정치적인 집단들과 연결되어 돌아가기 보다는 오히려 거의 노골적으로 또는 거의 공식적으로 정치적인 후원하에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들 정치가들은 이러한 먼 바다 금융기지를 묵인할 뿐만 아니라 적극 보호해주고 있으며 가능한한 그 국민주권의 행사를 최대한 자제하려고 애쓴다. 133쪽.



  여태껏 검은 돈을 주무르는 회사들은 그들의 ‘비밀스런’ 금융사업에 손을 대는 어떠한 정치적 행위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 방법은 매우 단순하다. 즉 자유로운 자본이동을 막는다면 사업기지를 간단히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이라는 협박이다. 134쪽.



  조직된 국제금융업계의 압력은 너무나 거세어 각국 정부는 이들 업계의 압력에 굴복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

  ... 『뉴스위크』의 표현대로 일종의 ‘파우스트 협정’에 들어간다. 우선 국제금융체계로의 편입은 각국 정부에게 범지구적 자본 덩어리에 접근할 기회를 만들어준다. 각국은 이를 통해 자국 내 저축이나 부자들의 돈에만 의존하지 않고, 경제성장에 필요한 자금을 해외로부터 엄청난 규모로 끌어올 수 있게 되었다. 달리 말하면 능력 이상의 국가 부채를 질 수도 있게 되었다. ... 그러나 국제금융계로의 편입은 상당한 고통도 수반한다. 각 나라의 이자율은 서로 달라서 일종의 위계질서가 성립되는데, 돈은 항상 이자율이 낮은 곳에서부터 높은 곳을 찾아 부단히 이동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돈은 힘센 자들에게 몰리게 되어 있다. 이들의 힘이 과연 얼마나 큰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기 상상하기조차 힘들 정도이다. 135-136쪽.



  [무디스 투자서비스 회사]의 경영철학과 관심사를 매우 잘 말해 주고 있다. “상업금융은 현대의 발명품이다. 이것은 오로지 문명화되고 최고로 잘 통치되고 있는 나라에만 가능한 것이다. 신용(대부)이란 마치 현대 무역의 자유로운 흐름을 보장하기 위한 생명의 호흡과도 같다. 신용(대부)은 각 국가의 부를 축적하는데 있어 세계적으로 모든 귀금속 광산들이 기여한 바에 비하면 수천 배 이상 기여해 왔다고 할 수 있다.” 136-137쪽.



  이러한 평가 점수가 가지는 의미는 깊고도 직접적이다. 투자기금회사나 은행의 거래꾼들은 바로 이 점수를 보고 그 나라의 국공채를 살 때 위험부담도를 계산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른바 위험할증료가 붙게 된다. 결국 무디스 투자서비스사는 이를 통하여 시장을 상지하는 은유요 동시에 시장의 기억자치가 되었다. 이 회사는 결코 잊는 법이 없다. 그리고 한번 입수한 정보는 수십 년이 지나야 폐기 처분한다. 138쪽.



  “우리는 단지 투자자들의 권익만 바라보고 일합니다. 우리가 정치하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니 어떠한 외압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 활동의 결과는 다분히 정치적이다. 이 회사의 평가 결과는 그 평가 대상 날에게는 수십억의 추가적인 이자부담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나아가 차기 선거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나라 전체의 자존심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139쪽.



  시장 노리가 완고하게 관철되는 것은 결코 악랄한 외국인 투자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자본시장이 국제화되는 곳이면 어디서나 내국인 재산가들도 곧장 이러한 각국의 투자가치나 투자 위험도를 평가하는 심판관이 되기 때문이다. ... 유럽에서 이러한 현상을 가장 확실히 볼 수 있는 곳은 스웨덴이다. 이 나라는 이미 오래 전부터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복지정책으로 유명했는데, 그리하여 보다 인간적인 자본주의의 현실적 실현에 있어 상징적인 나였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흔적은 상당 부분 사라지고 말았다. 거대 기업들과 수억대 재산가들은 이미 1980년대 말부터 점점 더 많은 일자리와 저축자금을 해외로 이전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

  ... 오늘날 스웨덴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재원이 독일에 비해 훨씬 적게 남아 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 있다. 140-141.



  마찬가지의 각본이 독일에서도 사회복지 프로그램 감축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 보수주의적 자유민주주의자들 연합은 사회복지를 위한 조세제도의 전면적 개편을 요구하는 산업자본가들과 은행자본가들의 요구에 순응하면서 기존의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한발자국씩 축소시켜 나갔다. 같은 맥락에서 법인세율은 최근 들어서도 두 번씩이나 낮추어졌다. ... 반면에 모든 독일 통일의 추가 부담은 예외 없이 대중 납세자들의 어깨 위로 지워졌다. 이는 무엇보다도 임금 소득세와 부가가치세의 인상을 통해 진행되었다. 141-142쪽



  이제는 미국 정부조차 세계의 자본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기관들의 평가나 판단에 고분고분 순응하고 있는 형편이다. 142쪽.



  바로 이런 식으로 금융시장의 지배 아래로 한 사회가 편입된다고 하는 것은 곧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을 뜻하게 된다. ... 이런 맥락에서 그들은 과거에 계급투쟁이나 개혁정책을 통하여 어렵사리 획득했던 사회복지체계 등 쟁취물들을 하루 아침에 문제삼아 허물어뜨리고자 한다. 143쪽



  여태껏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자본’을 억제하거나 순치시켜 가면서 사회복지정책을 펴왔던 것을 염두에 둔다면, 바로 오늘날 자본주의의 범지구적 자유운동을 오히려 앞장서서 추진하고 있는 세력이 바로 그러한 체제 속에서 나왔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해 지속적인 실질임금의 상승과 국가에 의한 사회복지 프로그램들은 지난 50년 동안에 두터운 중산층을 만들어냈고, 이들의 저축은 오늘날과 같은 국제금융시장을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이 기간 동안 역사상 유례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직접적인 생활비 이상의 소득을 올릴 수 있어 많은 사회적 저축이 가능했다. 그런데 바로 이 돈이 이제는 금융시장에서 커다란 사회적 권력으로 등장하여, 보험회사, 은행, 투자기금 회사 등이 노동조합 및 사회복지 국가를 공격하는 데 원동력으로 활용되고 있다. 144쪽.



  이른바 ‘시장’에 의한 국가의 맹목적인 ‘군기잡기’는 결구 통화주의자들이 믿어 의심치 않듯이 ‘건전한’ 것이 결코 되지 못한다. 민주주의 정치란 시장법칙 이외에도 필연적으로 여러 다양한 법칙에 따라야만 한다는 사실을 저들은 전혀 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시장이 행사하는 권력은 국가 사이에 존재하는 사회 문화적 다양성을 무시하고 이들을 단순 평준화시키거나, 아니면 이들 사이에 갈수록 커다란 긴장과 갈등이 일도록 위협하고 있다. 145쪽.



  국제금융시장의 사회적 권력은 여러 나라들 사이의 관계도 매우 불편하게 만들기 일쑤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각 나라의 정치적인 조세통제권으로부터 벗어나 주권을 무시하면서까지 ‘운동’하기 때문이다. 시장자유주의를 신봉하는 경제학자들은 외환시장과 증권시장을 일종의 세계금융계에서의 ‘재판정’이라고까지 칭송하고 있는데, 그러나 현실을 보면 이들을 재판정이라고 할 근거가 하나도 없다. 그들이 내리는 판단은 전혀 공정하지도 못하고, 어떤 법률적 근거에 다라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도 아니며, 경제적인 질서가 아니라 혼란만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146쪽.



  바로 이러한 ‘탈출구의 위험’ 때문에 작은 나라들은 위험할증료를 더 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경제적으로 볼 때 그러한 월니는 말도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투자 비용을 지나치게 높이게 된다. 147쪽.



  이미 10여 년 전부터 미국은 통계적으로 외환수지상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 1993년 이래로 그 적자액은 자그마치 국민총생산액의 10%나 된다. 그래서 미국은 오늘날 순부채액 측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채무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기업이나 건축업자들은 결코 아무런 고율의 벌금이자도 물지 않는다. 그 까닭은 단지 미국 시장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시장이 크면 달러화로 투입된 모든 투자가 상대적으로 안전하며 그래서 투자가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달러화는 여전히 세계적으로 보유가치가 높은 화폐이다. 예컨대 모든 중앙은행이 지니고 있는 강성화폐 보유량의 60%는 달러화일 뿐 아니라, 모든 개별 저축의 절반 가량도 달러화로 이루어지고 있다. 147쪽.



  세계경제가 달러 화폐 공간의 상황 변동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워싱턴의 재정 및 금융정책가들은 엄청난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 이로 인해 미국은 다른 나라들과 종종 분쟁에 휩싸이게 된다. 금융 경제적인 특권을 둘러싸고 진행되는 이 은밀한 전쟁에서 그 세력관계를 재는 척도는 외환시세이다. ...

  ...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달러화 시세는 어느덧 세계시장을 둘러싼 일본이나 독일 등과의 경제 전쟁에서 일종의 ‘무기’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150쪽.



  한마디로 정부와 중앙은행은 달러 시세가 떨어지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프랑크푸르트 대학 경제학 교수 빌헬름 한켈도 증언하고 있는 바, “달러화의 폭락은 교묘한 미국 통화정책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계 도처에 인플레의 위험에 시달리고 있는 약세 통화가 깔려 있는 상황에서 달러화는 오히려 과대평가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연방준비은행도 자국 통화의 가치를 어느 정도 억제해서 “문제를 다른 나라에게 전가해야만” 과대 평가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셈이다. ...

  그런데 1995년도 세계경제 통계를 보면 우리는 미국의 달러와 평가절하 전략이 성공을 거두었음을 알 수 있다. 독일에서는 원래 예상했던 경제성장이 절반 정도밖에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기초에는 달러화 하락으론 인한 독일 경제의 경쟁력 약화와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진행된 대량 해고의 물결이 놓여 있다. 이것은 일본 경제에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일본서는 그 충격이 더 심했다. 일본의 대미통상 흑자액이 단지 12개월만에 무려 4분의 3이나 줄었다. 그 결과 일본은 경기불황뿐만 아니라 디플레이션 상태가지 경험하게 되어쏙, 실업자도 두 배로 늘게 되었다. 151쪽.



  장기집권중인 [말레이시아의] 총리 마하티르의 지휘와 비호하에 이 나라는 아시아의 신흥공업국으로 급부상하였는데, 마하티르는 서구 열강들의 거만함, 퇴폐성, 제국주의적 의도 등에 대해 끊임없이 공격을 가해왔다.

  1988년에도 그는 제국주의자들 고유의 영역이라는 금융시자에서도 대반격을 가하고자 했다. 그 직전에 말에이시아 중앙은행인 네가라은행은 엄청난 손실을 기록했다 .레이건 행정부의 고금리 정책은 수년 동안 달러화 시세를 최고치로 몰아갔다. 그러다가 미국은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일본, 영국, 독일 등의 중앙은행 책임자들과 비밀회담을 개최하여, 아픙로 공동 노력을 통해 달러화 가치를 다시 낮추기로 합의하였다. 이후 달러화는 자그마치 30% 정도가 폭락하는 대혼란이 초래되었다. ... 네가라 은행의 총재(탄 스리 다토 자파르 빈 후세인)는 그 동안 말레이시아의 은행이 벌어들인 달러화 보유고가 자기 잘못도 아닌데 가치가 훨씬 떨어져 버렸노라고 분노했다. ...

  특히 1990년에 있었던 영국 파운드화에 대한 게릴라전은 매우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당시에 불과 몇 분 만에 말레이시아 중앙은행은 자그마치 10억 파운드를 시장에 팔아 넘겼다. 그리하여 마침내 1파운드당 4센트(미국)꼴로 파운드 시세를 하락시키는 데 성공했다. ...

  ... 그런데 당시에는 네가라 은행보다 훨씬 더 과감한 사립은행들이 그 게릴라전을 모방하는 바람에 마침내 네가라 은행이 망하게 되었다. ...

  이와 같은 네가라 은행의 금융투기 사태는 범지구적 네트워크로 연결된 귬융계가 스스로 초래하는 긴장관계에 얼마나 예민하게 노출되어 있는가를 보여준다. 153-155쪽.


 

  미국과 아시아 각국 사이에 자주 마찰이 생기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달러화 보유고의 수치들은 “금융 대란을 초래할 수도 있는 엄청난 폭탄”을 의미한다고 1995년에 『이코노미스트』지는 경고했다. 156쪽.



  1991년 12월 11일 ... 그날 저녁 당시 유럽공동체 회원국 12개국 대표들은 하나의 의미심장한 계약서에 서명을 하였다. ... 그 계약이란 유럽연합이라는 국가 동맹을 건설한다는 것임과 동시에 회원국을 위한 공동의 화폐를 만들어낸다는 것이었다. ...

  이러한 과정이 초래할 영향이 얼마나 막대한가 하는 것은 이루 형용하기조차 어렵다. 우선은 장래의 ‘유로’화를 쓰는 연합 내 국가들이 지금까지의 분열된 통화정책이 가졌던 엄청난 단점을 극복하는데 매우 유리할 것이다. ... 그러나 동시에 유럽연합 내 각국들은 어마어마한 정치적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왜냐하면 앞으로 이들 나라는 더 이상 독립적인 중앙은행을 가질 수 없어 예전의 국민국가적 주권을 유럽연합의 중앙은행에 죄다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통화동맹의 어떠한 나라도, 예전과 같이 수출경제의 위기가 도래했을 때 자국 통화를 평가절하함으로써 일종의 비상브레이크를 쓸 수 있던 가능성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회원국들은 금융정책, 조세정책, 사회정책을 매우 제한적으로만 시행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따라서 단일통화동맹의 구상이 실제로 시행된다면, 신속하고도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는 정치연합이 성립될 수 있는가의 여부가 곧바로 이 모든 구상의 사활이 걸린 결정적인 문제라 하겠다. 1156-158쪽.



  그[프랑스 재무장관 알퀴]에 따르면 이 모든 구상이 성공하는 경우, “유로화는 세계 각국이 앞다투어 보유하기를 희망하는 화폐로” 출세할 수도 있을 것이라 하낟. 이것은 유럽 단일시장이 대략 4억 정도의 시민을 가진 세계 최대의 시장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토대 위에 유럽은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어개를 겨룰 수 있을 것이라 한다. 그는 앞으로 ‘유로’화의 환율을 조절함으로써 유럽연합은 “무역정책을 위한 중요한 도구”를 얻게 되는 셈이라고, 그리고 이 도구는 지금까지의 수입관세 같은 그 어떠한 도구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이라고 역설했다. 159쪽.



  금융시장에 대항하는 국가의 잠재력을 다시 복원해 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통화동맹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모든 싸움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159쪽.



  이러한 권력투쟁의 과정에서 ‘유로’화 구상에 반대한 국제 환투기꾼들은 막강한 동맹세력을 조직해 내기도 했다. ... “영국의 장관들과 관료들은 유럽 단일통화 프로젝트를 방해하기 위해 무대 뒤에서 은밀히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도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통적으로 유럽 대륙과 함께 통일국가를 이루는 것을 원치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통일유럽으로부터 자신이 뒤지거나 배제되는 것을 원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62-163쪽.


  그[제임스 토빈James Tobin, 1970년대]의 주장에 따르면 탈규제된 자본 흐름은 그 방향 선회를 매우 급속히, 또 매우 자주 하게 되고, 나아가 환율 결정을 제멋대로 하기 때문에 실물경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 “모든 외환거래에 1%의 세금을 거뒁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토빈세). 이 세율은 다소 낮아보이긴 하지만 엄청난 영향을 가질 수 있다. 무엇보다도 금리차액을 노려서 세계 각국이나 각 시장을 대량으로 돌아다니는 행위는 단지 예외적인 경우에만 이득이 되는 것으로, 즉 별 소용이 없게 될 것이다. ...

  그리고 이러한 ‘토빈세’를 실시하게 되면 실물경제에도 또한 많은 효익을 안겨다 준다. 즉 중앙은행들은 서로 독립적으로 자국의 금융시장에 통용될 금리 수준을 즉시 조절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금리수준을 자국의 경제상황에 맞추어 조정할 수 있는 것이다. ...

  그리고 무엇보다도 환거래에 대해 부과되는 ‘토빈세’를 통한 국가 재정 수입의 증대는 요즘같이 재정적자가 큰 시대에 매우 큰 장점이 아닐 수 없다. 166-167쪽.



  가장 큰 단점은 환투기꾼 등 당사자들이 반대한다는 점이며, 그리고 ... 세계 각국이 자기 나라에 돈을 끌어들이기 위해 서로 경쟁적으로 세율을 낮추는 등 ‘제 살 깎아먹기’ 경쟁이 나타날 것이라는 점이다. ... 그리고 설사 선진 7개국이 ‘토빈세’를 공동으로 도입한다손 치더라고 각국의 금융기관들은 그 거래를 형식상으로나마 저 유명한 케이맨 군도로부터 싱가포르레 이르기까지의  ‘먼 바다 금융기지’로 이전시킴으로써 아무런 통제효과도 내지 못하게 만들 수 있는 우려도 있다. 168쪽.



  이러한 저항세력에 대해 지금가지는 어떤 정부도 감히 맞설 생각을 하지 못했다. 모든 개혁 정치가들도 언제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지구적인 금융 무정부주의가 끝장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곧 자본시장은 또다시 엄격한 국가감독 아래 놓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금융계의 무정부주의적인 자체 동력이 환투기꾼들한테조차 위협적으로 다가올 정도로 무진장 커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수백만 개의 컴퓨터가 긴밀히 연결되어 돌아가고 있는 가상공간에서는 마치 핵폭탄과도 맞먹을 수 있는 정도의 위험성이 나날이 축적되고 있는 것이다. 171쪽.


  [1994년] 이에 경기가 과열될 것을 우려하여, 그리고 인플레가 고조될 것이 두려워 그린스펀 의장하의 미 연방준비은행은 그해 2월 둘째 주에 금융시장에 매우 조심스런 조치를 취하게 된다. 즉 당시까지만 해도 낮게 유지되던 선도금리를 4분의 1%만큼 올렸던 것이다. ... 그러나 환투기꾼들은 이러한 조치에 대해 세계경제를 완전히 마비시키는 극악무도한 조치라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하루가 무섭게 워싱턴의 국공채 시장으로부터의 대탈주극이 줄을 이었다. 그 시세는 자그마치 석 달 연속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172쪽.



  국공채(‘본드’) 시장에서 일어난 파국 사태의 핵심 열쇠는 바로 부동산 저당권 설정이 전제된 금융거래에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부동산 저당물을 잡히고 신용대출을 해온 사람은, 만일 다른 시장에서 더 낮은 금리로 돈을 빌 수가 있다면 즉시 그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변동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저당물을 잡고 신용대부를 해준 기관(은행)은 특정의 유가 증권을 발매함으로써 그 불확실성을 감소시킨다. 이 특수 유가증권이란 미래의 특정한 시점에 가서 이자를 붙여 돈을 돌려준다는 것이다. 만일 금리가 떨어진 상태에서 건물 소유주가 해약하거나 빚을 갚게 된다면, 이 유가증권의 상승하는 시세는 해약된 저당권으로 인한 수익의 상실을 보충하게 되는 것이다. 금리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던 시기에는 이러한 빚의 차환 그 자체가 엄청난 사업으로 발전되었다. 저당 채권은 단지 단기투자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를 판 사람도 단지 단기적인 유가증권 옵션을 통해 미래의 위험에 대한 예방을 했던 것이다. 173쪽.



  이렇게 해서 1994의 국공채 위기는, 금융시장이 예기치 못한 조그마한 사고나 연쇄 반응에 얼마나 취약한가를 사상 유례 없이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이러한 현대의 첨단기술을 이용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은 결정적으로 파생상품의 거래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 1990년대의 파생상품 거래는 이러한 탈국경화를 극단으로까지 몰아가고 있다. 174쪽.



  금융거래꾼들은 자기 거래액의 가치를 더 이상 스스로도 계산해 낼 수 없다. 175쪽.



  개별시장들 사이의 관련성이 복잡해질수록, 그만큼 더 많은 요인들이 동시적으로 시세의 상승과 하락을 결정하게 된다. 그리고 시세변동이 그만큼 더 엉망진창으로 될 위험성이 높아진다. ...

  ... 파생상품의 거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이는 금융업에 엄청난 위험 및 불확실성을 증대시켰을 뿐만 아니라, 수십 년 간에 걸쳐 구축된 금융업의 안전장치들이 온통 뒤범벅이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점이다. 175-176쪽.



  만일 큰 은행이나 투자신탁회사가 이로 인해 부도가 나게 되면 이는 매우 위험한 사태를 불러일으킨다. 이렇게 되면 전체 시스템이 위험에 처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의 금융기관이 파산하게 되면 하룻밤 사이에 수많은 연결된 기관들도 넘어가게 되고 그리하여 범지구적인 도미노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176-177쪽.



  이러한 맥락에서 1992년 이래로 도쿄에서 프랑크푸르트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금융가에서는 다음의 기본 규칙이 적용되고 있다. 즉 모든 은행은 총대출금의 최소 8%를 자기 자본으로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한 대출금이 제대로 회수가 되지 않는 경우에는 이 자기자본으로 그 구멍을 메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파생상품 거래가 이러한 예방책도 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야 말았다. 177쪽.



  “만일 이런 연결고리들이 한번 터지게 되면 엄청난 폭발력으로 온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비하기 위해선 세계적으로 연결된 ‘중앙감독원’이 필요하다고 자니오는 요구한다. ... 금융계의 대부 조지 소로스조차도 비슷한 경고를 할 지경이다. ... 그러한 그가, 1995년 1월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한 각국의 정치가와 최고경영자들(3천 명의 청중들 앞에서) “세계 금융계는 대형 위기에 대해 무방비 상태”라고 털어 놓았다. 사태가 이대로 심각히 진행된다면 대파국도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178-179쪽.



  바로 이러한 경고들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국가의 통치 영역이 미치지 못하는 세계 금융계의 가상공간에서 일종의 대파국이 도래할 가능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183쪽.



  그러나 페소화 위기는 무소불위의 기세로 투기를 해대는 금융시장에 대한 국가의 연약성을 폭로시켰을 뿐만 아니라, 금융시장 자체의 취약점에 대한 투기꾼들 자신의 무기력성까지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거의 무정부주의적이고 반국가적인 지향성을 가지고 있는 자본 운동의 조타수들은, 만일 그들 자신에 의해 저질러진 대형 금융사건들이 도저히 수습할 수가 없는 지경이 되면 언제나 강력한 국가에 의존하여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 담으려고 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시장은 지배자가 되고자 하되, 단지 유한 책임만 갖는 독재자로서 군림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국제적인 국가공동체는 단지 위기가 닥쳤을 때에 뒤처리만 담당하라는 식이다. 186쪽.



  이렇게 해서 해마다 금융시장의 위험도는 고조되고 있는데, 그 위험이란 시장자유주의의 신념하에 마구잡이로 날뛰고 있는 금융기관들이 범지구적인 금융대란을 초래할 가능성이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저절로 질서 있게 제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국가를 불러들여 뒷수습을 하라고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정도로, 이제는 이미 때가 늦은 감이 있다. 왜냐하면 국제금융계의 거물급 인사나 기관들이 금융위기와 같은 유사시에 긴급사태 수습을 기대할 수도 있었던 장치들을 끊임없이 파괴시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여기서 파괴는 것이란 여러 민족국가들 및 그 국제기관들의 합리적인 행위 능력이다.

  물론 이러한 파괴의 배후에는 금융업계만 숨어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그 뒤에는 이른바 ‘세계화’ 시대의, 자칭 ‘새로운 세계 지도자’들이라고 하는 두 번째 집단이 마찬가지로 숨어 있다. 그것은 모든 유형의 다국적 독점체를 이끌고 있는 기업가들이다. 187-188쪽.


 

 

 

 

        제 4 장 늑대의 법칙


  

  공장의 이전이나 외부 하청화, 조직 축소, 인원 감축, 그리고 해고 등등의 방식을 모두 동원한 고능률, 고도기술의 경제는 서구 복지사회에서조차 노동을 ‘소멸’시키고 소비자를 경제적으로 무능하게 만든다. 경제적, 사회적 변동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광범위한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다. 생산물이나 서비스가 국경 없이 유통되는 모든 산업 분야에서 고용은 결과적으로 가치하락과 ‘합리화’의 끝없는 소용돌이에 빠진다. 198쪽.



  그러나 이러한 실업률의 등귀는 실제로는 일어날 것 같지 않은데, 왜냐하면 이 사라지는 정규 일자리는 예견하건대 시간제 노동이나, 필요할 때만 고용되는 임시노동으로 대체될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정규고용직에서 임시계약직으로 이동한 수백만 임시직 노동자의 임금수입은 지금까지의 임금수입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20 대 80의 사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 격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의 일자리가 아직 안전하게 보이는 사람들도 미래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에서 해방될 수 없고, 이는 전 사회적으로는 사회적 통합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199-200쪽.



  이 국경 없는 시장경제에서 혜택을 보는 자들은 이 위기를 즐거이 ‘자연법칙적’ 과정이라 설명한다. ... 그러나 모든 경제를 뛰어넘는 경제의 통합은 결코 ‘자연법칙’이나 대안 없이 돌출되는 ‘기술진보’에서 자동적으로 결과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십 년 간 의도적으로 관철된,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서방 선진국 정부의 경제전략적 정책의 결과이다. 200쪽.



  점증하는 무역자유화의 결과는 가히 위압적이다. 40년 전부터 상품과 서비스의 전세계적 교역은 생산력의 발전보다 훨씬 더 빨리 성장하고 있다. 205쪽.



  그때[1970년대]까지 대부분의 선진산업국들은,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가 양차대전 사이의 경제 파국―세계공황―에 대한 돌파구로써 개발한 새로운 경제 원리들을 따르고 있었다. 케인스는 국가를 국민경제의 핵심 투자자의 지위로 고양시켰으며, 시장이 과소고용과 디플레이션을 야기시킬 경우에 국가가 공공재정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개입, 이를 수정해야 한다고 보았다. 경기침체시에는 정부가 투자를 증대시킴으로써 추가수요를 창출하고, 이를 통하여 경제위기를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편, 호경기시에 정부는 늘어난 조세수입을 가지고 그 전에 생겨난 공공재정 부채를 청산함으로써  경기폭발과 인플레이션을 예방해야 했다. 여기에 덧붙여 많은 국가들은 의도적으로 신속한 경제성장과 노동수요―일자리― 창출을 기대할 수 있는 산업들을 육성하였다. 그러나 1973년과 1979년의 유류파동과 더불어 이러한 구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러 차례 선진산업국 정부들은 국가부채와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는 데 실패했다. 그리고 통화의 안정적인 환율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79년 영국의 대처 및 1980년 미국의 레이건이 각기 선거에서 승리한 뒤, 보수주의자들은 근본적으로 다른 경제정책 교리를 자신들의 정치노선으로 내세우게 되었다. 그것은 레이건 대통령의 자문이었던 밀턴 프리드먼이나 대수 수상의 고문이었던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폰 하이예크와 같은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주장한 이른바 신자유주의인데, 화폐정책에 있어서는 또한 통화주의라고도 불리고 있다. 프리드먼과 하이예크는 단지 국가의 질서유지 역할만 인정했다. 그들은, 민간기업들이 투장와 고용에 있어서 자유로울수록 경제성장도 커지고, 이에 따라 만인의 복지도 늘어난다고 약속하였다. 이러한 전제에 따라 주로 자유경제주의 색채를 띠었던 정부들은 80년대에, 말하자면, ‘자본의 자유를 위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넓은 전선에 걸쳐서 국가통제와 국가개입 권한을 철폐했으며, 이를 원하지 않고 있던 교역상대국들에 대해서는 무역봉쇄 및 다른 압력수단을 동원하여 이 노선을 따르도록 강제했다. 205-206쪽.



  많은 경우에 노동집약적인 대량생산으로부터 첨단기술생산과 서비스 사회로의 발전이 국제경쟁 및 자동화가 만들어낸 상처를 치료해줄 것이라고 이야기되었지만, 그러나 이러한 희망은 전혀 달성되지 않았다. 계속되는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제외한 모든 OECD 국가들에서는 적정소득이 보장되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207-208쪽.



  교수들과 정치가들이 들이대는 것은 언제나 19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가 고안한 ‘상대적 비용우위 이론’이다. 당시 리카도는, 어떻게 해서 국제교역이, 교역상대국에 비하여 생산성이 떨어지는 나라들한테도 이익을 가져다 주는지를 해명하고자 했다. 그는 이것을 영국과 포르투갈 사이의 면직물과 포도주 산업을 예로 들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현재 이 두 가지 상품은 두 나라 모두에서 생산되고 있다. 이때 영국사람들은 이 두 가지 상품을 생산하기 위하여 더 많은 노동력을 지출해야만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생산적이고, 따라서 그들이 생산한 상품들이 상대국에 수출되기에는 너무 비싼 것으로 간주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포도주를 영국으로 수출하고 그 판매대금으로 영국제 면직물을 구입함으로써 이익을 볼 수 있다. 거꾸로 영국도 면직물을 포르투갈로 수출하고 포르투갈 포도주를 수입함으로써 이익을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두 가지 상품이 두 나라 안에서 각각 형성하고 있는 가격비율 때문이다. 예컨대 영국에서는 1시간을 들여 면직물을 짤 경우 1.2시간을 들여 포도주를 담는 것과 동일한 가치가 생산된다. 이에 반하여 포르투갈에서는 이 비율이 1대 0.8이다. 다시 말해 포르투갈은 면직물을 짜려면 한 시간 투자해야 하지만, 포도주 만드는 데는 0.8시간만 투자하면 된다. 그러므로 이베리아 반도의 포르투갈에서는 면직물에 비교한 포도주의 가치가 영국에서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바로 이러한 사실로부터 양국 사이에는 상대적인 비용우위가 생겨난다. 포르투갈로서는 더 많은 노동력을 포도주 생산에 투입하는 대신에 면직물을 생산하지 않는 것이 이득이 된다. 영국은 자신을 거꾸로 특화시키는 것이 이득이 된다. 그리고 교역을 통하여 양국 국민들은 결과적으로 더 많이 노동하지 않고도 더 많은 포도주와 면직물을 소비할 수 있게 된다.

  리카도의 이론은 지극히 간단하면서도 가히 천재적이다. 그의 이론은 왜 예로부터, 각국이 자신한테 필요한 모든 물건들을 독자적으로 생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족국가들 사이에서 국제적인 교역이 번창해 왔는지를 해명해 준다. 단지 문제는 이 모든 것들이 현재의 세계에는 거의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리카도의 무역이론은, 이미 오래 전부터 타당하지 않게 되어버린 한 가지 전제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상대적 가격우위는, 오직 자본과 민간기업들이 이동하지 못하고 자기 나라 국경선 안에 머물 경우에만 국제무역을 추동한다. 208-209쪽



  그러나 한 세기 반이 지난 지금 리카도의 근본전제는 완전히 낡은 것이 되어버렸다. 오늘날 자본보다 더 이동력이 뛰어난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현재 국제투자가 무역의 흐름을 자기 마음대로 바꾸고 있으며, 광속도로 급속히 진행되는 수십억 달러의 자본 이전이 특정한 나라와 그 나라 화폐의 환시세 및 국제적 구매력을 결정하고 있다. 상대적 비용우위는 이제 더 이상 사업의 추진력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시장, 모든 국가들에 동시에 적용되는 절대적 우위이다. 초국적 기업들은 임금이 가장 헐하고 사회보장 지출이나 환경보호 비용을 전혀 물지 않는 곳에서 상품을 생산하도록 조직함으로써 그때마다 상품비용의 절대적인 크기를 줄이고 있다. 그리고 이와 함게 상품가격뿐만 아니라 노동력의 가격도 떨어지게 된다. 209-210쪽.



  절대적 우위의 추구는 세계경제가 발전하고 있는 메카니즘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과 자본이 더 무제한적으로 국경선을 넘어 이동가능하게 될수록 저 거대한 조직, 초국적 콘체른(거대한 기업연합체)들은 더욱 강력해졌고 통제불가능해졌다. 오늘날 초국적 콘체른들은 각국 정부들과 유권자들을 모두 다 위협하고 있으며, 그들로부터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박탈하고 있다. ... 이제 개별 국가들 및 일국기업들은, 세계무역에 있어서 상품을 공급하는 주체가 아니며, 무역 결과 획득된 이윤을 국가의 경계선 내에서 분배하는 것을 둘러싸고 협상 및 투쟁하는 주체도 아니다. 그 대신 이제 만국의 프롤레타리아들은 전세계적으로 조직된 생산과정 속에서 아직까지 남아 있는 일자리를 두고 피눈물나게 경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은 이전에 민족국가 단위로 구성되었던 국민경제의 틀을 일거에 폭파시켜버리고 있다. 첫째로, ... 생산성은 전체 경제출력보다 더 빨리 증가하고 있다. ... 둘째로, 자본과 노동 사이의 세력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 210-211쪽.



  유럽단일시장은 유럽 기업들한테 진정한 ‘경제채찍(<<디 차이트>>지)으로 되었으며, 전대륙을 가로질러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경영합리화 물결을 불러일으켰다. 실업자 수는 우기의 강물처럼 불어났으며, 국가재정적자도 늘어났다. 이에 반하여 경제성장 속도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212쪽.



  생산성ㅇ르 높이고 비용을 낮추기 위해 기업들은 단지 하나의 전략만을 알았다. 그것은 바로 ‘경영합리화’와 임금인하이다. 이것말고도, 조직축소, 외부하청, 구조조정도 모든 미국 경영자들이 금방 차용하게 될 방법들이었다. 218쪽.



  참으로 미국은 다시 일어서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시민들은 고통스럽게 이를 위해 희생당해야 한다. 왜냐하면 세계에서 가장 생산적이고 부유한 이 나라가 동시에 세계경제에서 가장 싼 임금의 나라로 변했기 때문이다. 218쪽.



  비록 1973년에서 1994년 사이에 미국민의 1인당 총국민소득은 3분의 1이 올랐지만 전 노동인구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모든 노동자의 평균총액임금은 오히려 19%나 떨어져서 단지 주당 258달러에 머물렀다. 이것 역시 단지 통계적으로 추정된 평균치이다. 소득 피라미드의 하위 3분의 1에 해당하는 노동자들에게 임금하락은 더욱 극심하게 일어났다. 수백만에 달하는 하층의 미국민은 심지어 20년 전보다 25%나 적은 임금을 받고 있다.

  그러나 미구 사회 전체는 결코 전보다 가난하지 않다. 사실상 미국민이 지금보다 더 많은 재화와 용역을 소유한 적은 결코 없었다. 하지만 이 모든 통계상의 성장은 단지 상위의 5분의 1(2천만 가구)한테만 혜택을 주고 있다. 그리고 이 집단 내에서도 이익은 다시 한번 극단적으로 불균등하게 분배된다. 최부유층은 1980년 이래 자신들의 수입을 두 배로 늘였고 그래서 오늘날 미국에선 약 1만 명의 최부유층이 미국 내 전체 사유재산의 3분의 1을 소유하고 있다. 219쪽.



  대부분의 고급경영자들은, 노동비용을 모든 수단을 동원해 떨어뜨렸기 때문에 천문학적 액수의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219쪽.



  관리와 생산, 이 두 부분을 가능한 한 분리해 내는 것이 이러한 신경영전략을 관철시키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다. ...

  또 다른 유형은 사무직 노동자를 독립자영업으로까지 전환시키는 것이다. ... 그 결과 고용통계에 따르면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큰 사립고용주는 더 이상 GM이나 미국전신전화회사AT&T, IBM이 아니라 시간제 또는 일당제 노동자의 파견 및 용역회사이다.

  ... 3분의 2의 경우에 이 새로운 일들은 보다 낮은 임금과 보다 나쁜 노종 조건하에서 제공되었다. 220-222쪽.


  과거에는 기업이 잘 되면 이는 역시 그곳의 노동자를 위해서도 좋았다. 그러나 이것은 더 이상 들어맞지 않는다. ... 그러나 탈중심화된 재무구조는 이 같은 사회적 측면에서의 강점을 경영적 측면에서의 약점으로 변화시켜 놓았다. ... 그들은 빚을 내서 주식회사를 매입하고 이어서 모든 과잉되고 비효율적인 노동력을 제거한 뒤 다시금 이익을 붙여 시장에 팔아치웠다. ...

  이러한 적대적 기업합병에 대응하기 위해 대부분의 경영자는 스스로 경영혁신, 조직혁신에 나섰고 이제 여기서는 아무도 보호되지 않는다. ... 단지 주주이익만이 회사의 성공을 위한 기준이다. 222-223쪽.



  이 세 집단이 함께 계산되면 실제로 노동가능인구의 14%가 정규직에 종사하고 있지 않다. ... 이에 따라 소득분배의 사회적 불균등 문제가 발생한다. 224쪽.



  <<뉴스위크>>는 이같은 미국의 새로운 경쟁력이 ‘킬러-자본주의’의 성격을 가졌다고 진단한다. 225쪽.



  이 극단적 부의 불균등 분배는 점점 더 정치적 안정을 위협하고, 사회 전체에 파괴적인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 마르크스주의자들이 100년 전에 주장했던 것, 그리고 이전에는 오나전히 틀렸다고 보던 것이 이제는 사실로 나타났다. 자본가는 더욱 더 부유해지고 반면에 노동자들은 더욱 더 가난해진다. 세계화된 경쟁이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사회적 협동을 파괴한다. 225-226쪽.



  그[모르간 스탠리의 수석경제학자 스테판 로취]는 이렇게 썼다. “수년간 나는 생산성 향상의 신화를 믿어 왔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것이 실제로 우리를 축복의 나라로 이끌지에 대해 완전히 다른 견해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경제의 재구조화는, 단지 단기적 이익을 위해 그가 기반한 토지를 파괴하는 원시농부의 ‘화전 원리’와 같다고, 그는 그의 아연실색한 독자들에게 진지한 어조로 설명했다. 다운사이징과 군 살배기 생산방식의 전략이 이에 해당한다. ...노동력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떨어뜨리는 대신 재평가하는 길로 나가지 않으면, 세계시장에서 버틸 수 있기 위해서라도 필수적인 소중한 자원을 잃어버릴 것이다. 로취는 말한다. “노동력은 영원히 계속해서 쥐어짜지지 않는다. 끝없는 노동과 임금의 황폐화는 결국 우리 산업의 전멸을 초래하는, 우리 스스로 파놓은 함정이다.” 226-227쪽.



  이 국제적 결속, 즉 생산의 세계화를 통한 일자리 축소는 매우 위협적이다. 그러나 더욱 어렵게 보이는 것은 국가적으로 이루어지는 사회정책과 경제정책의 전통적인 대항전략이 이미 그 효과를 상실했다는 데 있다. 230쪽.



  소유가 공동의 복지에 기여해야 하는 것을 의무화한 독일헌법 14조는 더 이상 지켜질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 이런 식으로 낡은 독일주식회사의 개념은 깨지고 새로운, 하지만 사실상 오래 된 경영문화가 등장한다. 그것은 ‘주주 중심주의’라는 것이다. ... 이는 역사적으로 믿어져온 ‘주주에 유리한 이윤 극대화의 원칙’에 다른 아니다. 233쪽.



  기업과 최고 경영자들을 압박하는 것은 세계화의 핵심적 추동력인 국제금융시장이다. 국경 없는 주식거래는 생산의 국제화보다도 더욱 근본적으로 각 나라의 경계선을 해체시키고 있다. 234쪽.



  그런데 따지고 보면 기금관리인과 기업경영자들만이 일자리와 임금의 하락을 강제하는 것은 아니다. 제3의 추진집단이 있는데 이는 국가이다. ... 정부도 우편, 전화, 전기, 상수도, 항공, 철도를 민영화하고, 이 서비스 산업을 세계시장에 개방, 자유화하고, 나아가 기술혁신에서부터 노동보호에 이르는 모든 것들에 대한 규제를 철폐함으로써 ‘고용위기’를 악화시켰다. 238-239쪽.



  이 [브뤼셀의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위원들은 각 산업의 경영자문회사들이나 대정부 로비 조직과의 긴밀한 협조하에 유럽연합 차원의 각종 입법을 상당 부분 실질적으로 만들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240쪽.



  유럽의 정치인들이 날이면 날마다 밥먹듯이 반복해서 말하듯, ‘실업이 그들의 큰 근심거리’라는 확인이 진실한 것이라면, 그들의 이같은 근심의 해결 방법은 미친 짓이라고 할 수밖에는 없다. 244쪽.



  이처럼 탈규제화 전략은 광신적으로 효율성의 망상에 사로잡혀 있어, 마침내 ‘자기파괴’의 지경에까지 나아가고 있다. 246쪽.






        제 5장 속편한 거짓말


  이 아시아의 경제기적은 가난과 저발전으로부터의 탈출이 시장경제적인 방법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로 전세계 경제학자와 기업가들에 의해 칭송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OECD 나라들의 자유경쟁 자본주의와 아시아적 급성장 사이에는 공통점이 적다. 예외 없이 새롭게 떠오르는 호랑이와 용들의 경제성장은 서구에서 금기시된 전략, 즉 경제활동의 모든 영역에 대한 대대적인 국가의 개입에 기초하고 있다. 257쪽.



  모든 아시아의 성장 국가들은 외국에 경제를 개방하는 방법에 관한 한, 일본이 개발한 ‘항공모함의 원칙’에서 상당히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경제계획자들은 자신의 기업들이 국제경쟁에서 너무 취약하다고 보고 높은 수입관세와 기술적인 규정과 같은 장치를 통해, 고용이 보호되어야 하는 산업부문에서는 수입을 막고 있다. 반대로 관청이나 정부는 수출산업에 세금혜택을 주거나 무료로 사회간접자본을 이요하게 하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수출생산을 촉진시키고 있다. 이러한 전략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율을 조작하는 것이다. ...

  또 금융시장에서는 단기성 자본의 흐름에 아시아의 경제성장 기술자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뿐만 아니라, 다국적기업의 직접투자를 명백한 행정 조치들 아래로 정속시키고 있다. ... 거기에 더하여 국가는 국민의 전반적 숙련도와 교육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재정의 엄청난 부분을 교육체계의 확대에 투자한다.

  그것이 충분하지 못한 곳에서는 기술 사용권과 특허권에 관한 추가적 계약을 통해서 선진국으로부터의 기술이전을 용이하게 만든다. 이에 덧붙여 세계시장을 위한 생산에 자국 내 생산업자들의 할당량을 규정함으로써, 수출을 통해 나온 이윤이 자국에 부분적으로나마 남게 하고 자국기업들의 확대를 위해 투자되도록 여러 가지 유리한 조건을 조성한다. 257-258쪽.



  이러한 사례를 통해 볼 때, 우리는 경제의 ‘세계화 물결’이 결코 유일한 보편적인 법칙을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59쪽.



  바로 이러한 ‘세계화’를 향한 변화가 사실상 고용위기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독일은 물론 일본과 프랑스 기업들의 대부분은 세계화나 세계경영의 과정에서 돈을 매우 잘 벌었다. 지속적으로 축소되는 부분은 단지 그들 선진국의 기업들이 노동력에 대해 지불하는 부분이었다. 전체의 부가 적어진 것이 아니라 단지 임금부분, 즉 경제적 성과물 중에서 차지하는 임금부분, 또는 노동자가 가져가는 부분이 줄거나 사라졌다. ... 동시에 전체 임금의 직업군에 따른 분배의 불균등성도 상당한 정도로 증가하고 있다. ...

  그러나 이 과정은 아주 미약한 정도만이 아시아와 중부유럽의 신흥공업국가들에 의해 촉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상 노동시장에서의 이 커다란 변화는 무엇보다도 OECD 국가들의 급격한 상호결합, 상호투자에 의해 유발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쉬운 예로, 1990년대에 들어 이들 나라 해외투자의 3분의 2 이상이 서로서로 이 국가들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비록 선진국 기업의 개발도상국으로의 투자가 늘긴 했지만 이 투자의 절반 이상이 원료의 채취나 호텔, 은행 같은 서비스 산업을 육성하는 데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는 노동의 이전, 즉 일자리 수출과는 별 관계가 없다. 269쪽.



  선진국 간의 치열한 경쟁은 수년 전부터 무엇보다도 생산성 지표가 다른 경제지표보다 빨리 성장하게 했다. 다시 말해 경쟁의 압력에 의해 기술혁신이 강제되어 점점 더 많은 노동력을 불필요하게 만들었다. 달리 말하자면, 아시아와 동유럽의 싼노동이 실업과 임금압박의 원인이 아닌 것이다. 270쪽.



  그러므로 선진국의 부를 빼앗아 가는 것은 결코 가난한 나라가 아닌 것이다.

  ... 오히려 이것은 완전히 거꾸로 보는 것이 옳다. 경제의 ‘세계화’ 과정에서 나머지 국민들의 희생하에 세계적으로 증대된 부를 획득하는 사람들은,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리지 않고, 모든 특권층 즉 자본가, 부자, 고급의 전문인력들이다. 271쪽.



  이렇게 이해한다면 세계적 차원의 경제적 통합, 즉 세계화 과정이 동반하는 이 갈등은, 더도말고 덜도말고 자본주의의 역사만큼 오래된 분배갈등에 다름 아니라 할 수 있다. 271쪽.



  다른 것은 몰라도 사회복지 국가가 더욱 비싸졌다는 주장은 결코 옳지 않다. 1995년에는 사회복지 부문에 거의 10억 마르크가 지불되었고 이는 1960년도 사회복지 예산의 11배에 해당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국민소득도 역시 똑같이 증가했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1995년에 독일은 총생산의 약 33%에 해당하는 비용을 사회복지비용으로 지출했다. 통계에 따르면 20년 전인 1975년에도 마찬가지로 국민소득의 33%가 사회복지 비용으로 지출되었다. 그나마 1990년 10월 들어 통일된 이후 동독 시민들을 위한 복지비용 지출이 없었더라면, 이 비율은 심지어 약 3% 낮아졌을 것이다. 그만큼 서독 시민들한테 주어진 사회복지비는 줄어든 셈이다. 따라서 사회복지 비용이 더욱 많이 들고 있다는 주장은 분명히 근거가 빈약한, 기각된 가설에 불과하다.

  반대로 심하게 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 비용을 위한 자금을 어떻게 조달하는가의 문제이다. ... 그래서 독일 복지제도의 위기는 거의 전적으로 ‘고용위기’의 결과이지, 복수적인 학자들이나 정치가들이 주장하듯이 노동자의 게으름이나 국민들의 주제넘은 복지제도 남용의 결과는 아니다. 만일 사회복지 국가들에서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정책을 펴기를 원한다면, 나라의 부는 생산성 향상과 함께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노동자들한테 부담을 전가하는 형태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지금까지 사회보장 기금의 마련을 위해 별로 자기 몫을 지불하지 않던 이들 즉 공무원, 자영업자, 재산가들이 떳떳하게 세금지불을 통해 이에 참가하도록 만드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 275-276쪽.



  결과적으로 독일은 거의 7만 개의 일자리를 수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실은 이와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수 년 넘게 무역흑자를 기록한 나라는 자본과잉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불가피하게도 해외 자본을 수입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자본을 수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이유로 일본의 대기업들은 이 기간에 독일보다 1천억 마르크나 더 많은 돈을 해외 자회사에 투자했다. 이 투자의 대다수는 저임금 국가들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선진 산업국가들에게로 이루어졌다. ...

  그러나 특히 앞에서 언급된 해외에서의 추가 일자리 창출은 완전히 근거없는 것이다. ... 독일 연방은행의 통계가 정확히 보여주는 것처럼 해외에서의 독일 기업 노동자 수는 확실히 1989년부터 1993년 사이에 약 19만 명이 늘었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독일 투자가들은 전체적으로 자그마치 20만 명이 넘는 사람이 고용된 외국기업을 사들였다. 다시 말해 ‘수출된 일자리들’은 해외에서 새로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하고 있던 것이다. 오히려 이 통계만 보면 4년 사이에 해외의 독일 기업은 1만 명의 일자리를 줄여놓은 셈이다. 279쪽.



  상당히 많은 회사들에 대한 해외구매가 시장독점을 위해 이루어졌고 매입 뒤 곧 그 회사들은 문을 닫았다. 결과적으로 독일 기업들은 해외에서도 국내에서와 마찬가지로 거의 일자리 창출을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280쪽.



  살아 있는 ‘인간 노동’에 대한 재평가가 그 새로운 대응전략의 중심에 놓여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자유주의적인 경제학자들 사이에서조차 ‘환경세’의 도입을 진전시킬 수 있는 굉장한 개혁에 관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282쪽.



  정치적 행동력의 재획득, 경제에 대한 정치의 우위를 재확립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가장 중심적인 과제이다. 284쪽.






        제 7 장 범죄자냐 희생자냐?


  그[부트로스 갈리 유엔 사무총장]는 말한다. “한 가지 종류의 세계화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종류의 세계화가 있습니다. 예컨대 정보의 세계화도 있고, 마약의 세계화도 있습니다. 그리고 전염병의 세계화도 있고, 환경의 세계화도 있지요. 그리고 물론 무엇보다도 금융의 세계화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세계화 분야들이 각기 다른 속도로 진행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세계화는 대단히 복잡한 모습으로 진행됩니다.” 324쪽.



  [독일 환경부 장관을 지냈고 독일 통일 당시 건설부 장관인 클라우스 퇴퍼는 말하길,] “과연 우리가 모든 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가 너무도 어렵게 다가오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마도 잠재의식적으로 이미 문제 자체를 제대로 느끼지도 않으려 한다.” 326쪽.



  [수십억짜리 투기를 하고 있는 스티브 트렌트가 말하길,] “... 미국의 금융기관이 아니라, 바로 각 나라의 개별적 행위자들이 각기 자신을 위해 가능한 한 최선의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말해야 옳지 않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우리더러, 비록 우리가 범지구적인 투기 회사를 이끌고는 있지만, 각 나라에서 발생하는 환율 위기나 대규모의 자본 유출 등에 대한 책임이 우리에게 모두 있다고 이야기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기껏해야 커다란 나라의 금융시장에서 영업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중요한 화폐만을 취급하고 있을 뿐입니다.” 333쪽.



  여러 측면에서 ‘증대하는 스트레스’를 동반하고 있는 세계화, 지구화의 물결은 각 나라의 국민주권을 심각할 정도로 훼손시키고 있다고 라치나는 솔직히 말한다. 335쪽.



  그들은 각국의 조세 체계 차이를 조직적으로 이용하여, 조세 부담을 국제적으로 적정하게 조절, 관리할 수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 회자되는 용어인 조세계획의 가장 간결한 수단은 ‘이전가격transfer pricing’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은 국경을 뛰어넘어 해외의 자회사나 지점과 교묘히 결합하는 것이다. 그들은 상호간에 원재료의 가격이나, 임금 또는 특허료까지도 자의로 조작할 수 있기 때문에, 회사는 거의 원하는 수치대로 가격을 설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국제적으로 운영되는 기업의 지출은, 과세표준액이 가장 높은 곳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항상 기록된다. 역으로 세금 천국이나 세금이 매우 낮은 곳에 있는 자회사들은 항상 높은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장부처리된다. 350쪽.



  신경을 곤두세운 채 이루어지는 세무당국의 탈세조사 같은 작은 노력으로는 조직적인 기업들의 탈세 행위를 제대로 분쇄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예컨대, ‘이전가격’을 더 이상 충분히 써먹기 어려운 곳에서는 다른 수법들이 동원되고 있는데, ‘이중 리스double-dip leasing’ 제도가 그 대표적인 방식이다. 이 ‘이중 리스’를 통해 기업들은 임대된 기계에 대한 감가상각이 국가별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십분 이용하여, 일반기계, 동력기계나 수송기계 또는 비행기의 임대 비용을 절묘하게 배합시켜, 두 나라에서 동시에 세금이 가능한 한 낮아지도록 만든다. 그 외에도 ‘네덜란드식 샌드위치’라는 방법이 널리 쓰여지고 있다. 이 방법은 원래 네덜란드에 있는 자회사와, 네덜란드령 서인도 제도나 스위스와 같이 세금 천국에 있는 사업소를 교묘히 연결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두 지역의 세법을 잘만 이용하면, 기업 수익의 10분의 9에 대하여 단지 5%의 세금만을 납부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351쪽.



  그렇지 않아도 합법적인 탈세를 일일이 막아내기도 어려운 판국에, 개별 국가들은 해외에서 들어오는 투자자본을 적극 끌어들이기 위해 국제적으로 경쟁하기 때문에, 자꾸만 낮은 수준으로 세율을 조정하게 된다. 352쪽.



  국경 없는 ‘세금 관광’의 결과가 어떠한지는 분명하지만, 각 나라별로 이것이 정치적 논의의 대상이 된 적은 별로 없다. 경제의 세계화 이후 화폐정책이나 금리 조정, 환율 조정과 같은 분야 이외에도 바로 이 세금 제도, 즉 조세권과 같은 민족국가적 주권의 여러 영역들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353쪽.



  세금 줄이기 경쟁의 과정이 범세계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기업에 대한 과세비율은 개별 국가 안에서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감소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기업의 세금 부담은 낮아지고 있다는 말이다. 354쪽.



  이런 식으로, 이제는 더 이상 그 어떤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조차도 기업에 대한 과세 액수를 단호하게 결정하지 못하며, 오히려 자본의 흐름이나 상품의 과세 액수를 단호하게 결정하지 못하며, 오히려 자본의 흐름이나 상품의 흐름을 통제하는 자들이 국가적인 사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 얼마나 낼지를 자기들 멋대로 정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올바르다. 354쪽.



  그러나 탈국경 경제 아래에서의 국가재정이 말라붙는 것은 수입의 측면에서만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다. 다국적 기업들은 감세나 탈세를 교묘하게 추진하면서도 동시에, 국가의 지출 중에서 갈수록 많은 부분을 자기들 주머니 속으로 속속 챙기고 있다. 앞서 살펴본 대로 가장 낮은 과세를 위한 국가간 경쟁은, 가장 푸짐한 국고보조금 선물 경쟁과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거기에는 사업에 필요한 토지를 아무런 비용 없이 빌려주는 것과, 사업상 필요한 모든 도로, 철도, 전기, 물 등을 세게에서 가장 낮은 가격으로 제공하는 것이 포함된다. 355쪽.



  세계적으로 보조금의 흐름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국제경쟁이라는 압력이 각 나라의 정부로 하여금 별로 공정하지도 않은 기준에 따라 거액의 보조금을 기업에게 지불하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확인하였다. ... 그러나 각 나라의 정치가들은 유권자들로부터 표를 얻기 위해, 실업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것 같이 보이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라도 기업에 거액의 보조금을 지원하며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애원할 수박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각국 정부는 자기 나라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국고와 재정을 고갈시키고 있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개별기업 차원의 경쟁력 강화 논리가 전체 국민경제의 폐허를 초래하고 있다. ...

  이런 식으로 엄청난 재산이 국가로부터 기업으로 이전되거 나가게 되면, 국가구조 자체가 변화된다. ... 이 연구소의 한 보고서에서는, 국가가 이제는 세계화된 경제계를 위하여 단지 ‘숙주’ 같은 역할만을 담당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을 뒤집어보면, 이제 무한 국경의 시대에 서로 얽히고 설켜 활동하는 기업들은 점점 더 기생충 같은 성격을 띠게 된다고 이해할 수 있다. ... 다시 말해 노동자의 피와 땀이 결국에는 국가를 매개로 하여 기업을 위해 쓰여지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국제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점차 떨어지고 있고, 또한 노동자들이 더 이상 국가가 추진하는 사회복지 감축을 좌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선진 각국은 갈수록 구조적인 재정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또 국가 재정 수입은 노동자들의 수입이 줄어들면서 그에 따라 줄어들 수밖에 없다. ... 바로 이 과정에서 국가가 이제는 사회 전체의 소득 재분배를 아래로부터 위로(위로부터 아래로가 아니라) 진행시키고 있다. 361-363쪽.



  여기서 우리는 자유시장경제를 위해 진행되는 이러한 국가의 역할 축소 및 재정 hrrkf이 과연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가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그 심각한 한 결과는 사회간접자본을 건설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금이 절대 부족하다는 점이다. 363쪽.



  경제의 세계화 과정에서 기업의 국제경쟁력 향상이라는 구호가 난무하고, 그 속에서 각종 예산 항목이 본의 아니게 줄어들고 있어, 이것이 선진 각국의 정치가들로 하여금 그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책임을 더 이상 맡지 못하도록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것은 민족주의 국가의 본질적 기초를 허무는 것이다. ... 화폐권과 조세권 이외에도 국민국가의 또 하나의 기둥인 ‘공권력’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왜냐하면 은행이나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국제 범죄조직들도 세계화되는 경제를 위해 진행되는 각종 법적 제약의 철폐로부터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364-365쪽.



  이러한 범죄자 집다니 다루는 돈의 규모가 아주 커지게 되면 필연적으로 범죄 카르텔이 형성되어 막대한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 그리하여 보통의 기업이나 국가 관청을 매수하거나 부정 거래를 하게 되며, 나아가 아예 이들이 재계나 정계를 휘어잡게 되는 경우도 있다. 국가의 공권력이 약해질수록 이러한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 367-368쪽.



  이점은 환경문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세계적 차원에서 각 기업이 치열하게 경쟁하다 보면 각국 정부는 국제경쟁력 제고를 위해 오로지 기업만을 위해서, 올바른 생태계 정책을 포기하기 일쑤이다. 369쪽.



  지금가지 열거한 여러 문제들은 세계시장이 거의 무정부적 상태로까지 활개를 치면서부터, 사실상 각 나라의 정부나 국가기관들이 마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이다. ... 한마디로 정리하면, 상품과 자본의 흐름은 범지구적으로 자유로운데 반해, 그 조절과 통제는 개별 민족국가 차원에 국한되어 있다. 요컨대 경제가 정치를 집어삼키고 있는 것이다. 370쪽.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국가 기구들 자체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요, 일본의 오마에 겐이치가 얘기하듯 ‘민족국가의 종말’이 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왜냐하면 국가나 그 정부는, 그래도 시민들이 정의와 책임, 혁신을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최고의 사회적 심급이기 대무이다. ... 관료주의적 통제 메커니즘이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강화되는 징조가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370쪽.



  이런 식으로 감시와 통제제도가 강화, 확대되면,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세계시장 속으로 모든 것이 통합되는 것, 이것이 바로 세계화 물결인데 이 물결은 각 나라, 각 민족에게 거의 무정부적인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런데 행정 당국은 그 뿌리는 제거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도리어 시민들에 대해 온갖 멍에만 덮어 씌우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치가 경제에 대해 무능하게 되면 국가는 그 대안으로 내세울 것이 없기 때문에 갈수록 권위주의적으로 흐르게 된다.

  생각건대 절실히 필요로 하는 대책은 오로지 원만한 국제적 협력밖에 없다. 371-372쪽.



  세계으 l여러 나라들이 상호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조화로운 세계 통째를 하자는 것은, 로비력이 강한 개별 이해관계자와 힘 있는 정부한테 거부권 같은 권력만 주는 꼴이 된다. 만일 이들 중 하나라도 훼방을 놓게 된다면 아무것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동시에 변화를 바라는 국민들 앞에 많은 정부들은 자신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이러한 로비세력들이나 괴상한 나라들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변명을 늘어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374-375쪽.



  세계 차원의 조약이 제대로 실천되기 위해서는 미국이 솔선수범하여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 최소한 미국이 복지부동한다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미국이 모두 다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자발적 동참 없이는 아무것도 안 된다는 것이다. 375쪽.



  세계화, 지구화라는 말은 대체로 세계시장의 거대한 힘이 범지구적으로 자유롭게 뻗어나가는 것을 뜻하며, 따라서 각 민족국가들이 자국의 경제적 주권을 더 이상 행사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376쪽.



  유엔 안저보장이사회에서 미국 대표들은 언제나 평화유지군의 파견이나 난민구제활동 등에 대한 제안은 잘 하지만, 막상 미국 정부는 일종의 시민권적 의무까지 저버리면서 유엔 회비 납부를 하지 않는다. ...

  미국이 이와 같이 우익대중주의나 대중선동주의(대중인기영합)를 바탕으로 정치를 하고 있는 한, 우리는 미국이 세계 여러 나라한테 ‘세계화의 덫’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378쪽.



  유럽 공동의 화폐는 대륙의 정치적 통합과 미국의 지배로부터의 해방을 가져오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화폐통합이 2001년에야 현실화되더라도, 통합은 유럽이 화폐, 재정, 조세정책의 영역에서 국민주권의 중요한 부분을 되찾을 가능성을 던져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유럽의 금리와 환율은 미국시장으로부터 현재보다는 훨씬 덜 종속도리 것이다. 370-380쪽.



  이 [유럽연합 집행] 위원회가 준칙이나 행정명령으로 공포한 것은 각 국가별 의회의 의사에 종속됨이 없이, 곧장 모든 15개 회원국가에서 구속력 있는 법이 된다. 각 국가별 의회는 법률의 개정에 있어서 단지 박수만 치는 기관에 지나지 않게 된다. 유럽연합의 각료들은 이러한 형태로 공개토론도 없이 법률을 제정하는데, 그 비중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

  브뤼셀에 있는 관료집단의 지배에 유리하게 만들기 위하여 유럽 차원에서 권력의 민주적 분배를 사실상 폐지한 것은 유럽 통합에 대해 시민들이 불쾌하게 느끼도록 하였고, 나아가 저항하게 만들었다. 이제 유럽의회를 위한 선거는, 적어도 유럽 시민들의 눈에는, 국민주권에 대한 거대한 멸시나 경시로 비치고 있다. ...

  테크노그라트에 의한 민주주의는 관련 정부기구들한테는 편안한 것일 수 있으며, 공개적 토론으론 인한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정부형태로서 그것은 유럽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고 있다. ... 즉 민주적 정당성의 결여로 말미암아 중요한 안건에 대해서도 다수의견을 집약해내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유럽연합 시스템은 세계정부와 동일한 약점에 부딪쳐 신음하고 있다. 그것은 회원국 정부들의 의견이 합치되지 않는 경우에는 항상 의사결정에 실패한다는 것이다. .... 따라서 범지구화된 경제적 관련성은 이제까지 통일된 유럽을 낳은 것이 아니라 ‘국경 없는 시장’만을 낳았는데, 여기에서는 정치가 스스로의 힘을 감소시켰으며, 결국 정치가 해결할 수 있는 수준보다 더 많은 갈등만을 낳고 말았다. 381-382쪽.



  대체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유럽을 그 시민들에게 투명하게 열어젖힐 수 있는 열쇠는 최소한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의회에 놓여 있다. ...

... 유럽의회 의장인 클라우스 핸쉬는 아직도 유럽의회가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고 본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종속성과 수동성을 보이는 이유에 대해, 유럽연합이 아직은 국가가 아니며 나아가 각종 정책이 편협한 민족주의적 시가에서만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384-385쪽.



  [영국은 유럽 통합의 훼방꾼. 387-389쪽.]



  영•미식의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에 맞설 수 있는 유럽식의 대안은 ‘민주화된 유럽연합의 건설’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390쪽.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는 결코 모든 사람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한 덩어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아가 이 두 축을 중심으로한 서구 산업국가의 핵심적 이상은, 차라리 서로 지속적인 모순관계에 있다. 392-393쪽.



  폴라니에 따르면 자유시장의 도입은 “결코 규제와 간섭의 철폐를 이끈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의 거대한 확산을 초래했다.” 순환적 위기에 따라 규제되지 않는 시장경제가 공황과 빈민폭동을 점점 자주 유발시키면 시킬수록, 점점 더 확실히 통치자들은 ‘힘의 자유경쟁’이 제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지 노동자들의 정항운동만 탄압했다. 뒤에 그들은 거의 모든, 특히 외국으로부터의 경쟁에 대한 시장의 보호를 실행했다. 자유무역이 아니라 보호주의, 즉 보호무역주의 정책이, 빠르면 1900년대 그리고 정확히는 1920년대 이후 거의 모든 정부들의 일상 업무였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는 결국 무역전쟁과 통화전쟁을 통해 이미 세계적으로 결합되어 있던 세계경제를 1930년대 초 대공황으로 몰아갔다.

  ... 19세기 경제자유주의자들은 그들의 사회가 스스로 조절되는 단일한 시장체계를 통해 유토피아―폴라니는 이를 ‘위험하다’고 간주했는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유토피아는 자유방임의 정책들이 사회의 안정성을 파괴했기 때문에 좌절했다.

  오늘날에도 역시 똑같이, 스스로 조절하는 시장이라는 유토피아는, 그들의 깃발에 복지국가 축소와 무조건적 탈규제화를 써넣는 모든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다. 확실히 “그들의 시장자유주의는 일종의 민주주의적 문맹이다.”라고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수요와 공급 법칙에 기반한 경제이념의 현대적 추종자들이 내세우는 역사망각적 주장들을 비판했다. ... 벡은 말한다. “집을 짓고 있고, 안정된 직업 그리고 그것으로 미래가 물질적으로 보장된 사람들만이 시민이다. 그들이 민주주의를 누리고 키워갈 수 있다. 단순한 진리는 한마디로, 물질적 보장없이는 정치적 자유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새로운 그리고 낡은 전체주의 정권과 이념의 협박 속에는 결코 민주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394-395쪽.



  적절한 시간 내에 이를 저지하는 데 실패한다면 필연적으로 폴라니가 보여준 것 같은 사회적 거부반응(저항)을 일으킬 것이다. 397쪽.



  증가하는 세계적 노동분업이 전세계에서 어떻게 경제적 효율을 높이고 있는지는 언제나 증명된다. 경제적으로 세계시장 통합은 고도로 효율적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산된 부의 분배에서는 국가의 개입이 결여된 세계적 시장제도로는 그다지 효율적인 것 같지 않다. 398쪽.



  일국의 독자노선으로는 세계시장 파산으로부터 탈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해결책을 찾고 이를 실행해야 한다. 경제적 민족주의로 파산하고 싶지 않다면, 새로운 복지국가적 체계로 국경 없는 시장을 조절해서, 이를 단지 높은 수익만 낳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에게 이익을 분배하는 방법을 통해서만 지금까지 존재하는 세계적으로 개방된 시장에 대한 합의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399쪽.



  <20 대 80의 사회>로 가는 추세를 멈추게 할 계획과 전략은 도저히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미 마련되어 있다. 첫 번째 단계는 금융시장 세력가들의 정치적 힘을 제한하는 것이 될 것이다. ...

  필연적으로 이는 자원소비의 비용을 높이고 노동력의 가치를 높이는 환경세 개혁과 결합되어야 할 것이다. 단지 이렇게 할 때만이, 모든 경제가 자연약탈적 성장을 계속함으로써 다가오는 세대한테서 모든 삶의 기회를 빼앗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더구나 교육제도의 효율과 범위를 개선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해서는 폭넓은 공감이 존재한다. 400쪽.



  그러나 이 모든 제안은 공통적으로, 현재까지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한 가지 전제에 기초하고 있다. 그것은 이러한 ‘새로운 세계화’의 장을 여는 개혁을 자본의 해외탈출을 초래하지 않고도 실행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정부의 존재이다. 401쪽.



  우리는 파괴적인 영•미식의 시장자유주의에 맞서 생명력 있고 활기찬 유럽식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 유럽은 앞으로 약 4억의 소비자로 이루어진 단일시장을 바탕으로 대내적으로는 물론이요, 대외적으로도 새로운 경제정책을 펼 수 있어야 한다. 이 새로운 경제정책이란 지나치게 시장의 힘에 기대는 밀턴 프리드먼이나 프리드리히 폰 하이예크 같은 사람들의 논리보다 존 케인스나 루드비히 에어하르트 같이 시장의 자유로운 힘에 일정한 사회적 규제를 가하는 논리에 기초하게 될 것이다. 403쪽.



  진정 생명력 있는 유럽 단일의 국가 연맹체를 이루기 위한 필수조건은 모든 의사결정 과정을 철저히 민주화하는 것이다. ...

  ... 유럽 사회에서 경제에 대한 정치의 우위를 다시 확보한다는 것은 다시는 어떠한 관료주의의 싹도 자라지 못하게 그 토양분 자체를 깡그리 없애버린다는 것을 뜻하게 될 것이다. 404쪽.



  우리의 희망은 바로 이 ‘시민 사회’에 있다. ... 냉정히 생각건대 사회정의란 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이다. 406쪽.



 

저자들에 따르면, 세계화의 덫이란 민주주의의 정당성 위기를 말한다. 민주주의의 정당성은 투명한 민주주의 절차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면서도 세계화는 이런 민주주의 과정을 와해시킨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화가 보다 밝은 미래를 보장할 것이라는 희망을 배반한 역설인 셈이다.

  세계화의 역설은 다음과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첫 단계는 자본의 세계화이다. 자본이 국가 간의 장벽을 넘어 고수익을 찾아 움직인다. 이러한 자본의 세계화는 고정환율제의 폐지를 가져온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이자율이 낮은 국가로부터 돈을 빌려 투자하는 기업이 증가하게 된다. 사실 이것이 자본의 세계화를 거대 기업들이 요구한 것이기도 하다. 2단계는, 이러한 자본의 세계화와 더불어 기업들은 경쟁력 강화를 내세우며 경영 합리화에 돌입하는 단계이다. 이것은 다운사이징, 아웃소싱, 구조조정과 함께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을 억제한다. 한편 국가(정부)로부터는 각종 유무형의 혜택을 받는다. 사회간접자본의 이용에 대한 혜택을 받고, 법인세 등의 감면을 받거나 보조금을 받기도 한다. 이것은 이중으로 국가 재정의 적자를 야기하는데, 첫째,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 하락으로 인해 세금을 예전 수준으로 걷을 수 없다. 둘째, 정부의 법인세 인하나 감면으로 인해 세수가 줄어들면서도 기업에 제공하는 사회기반시설의 비용은 여전히 정부(또는 국민)가 부담하게 된다. 따라서 3단계는 중산층의 몰락과 국가의 재정 적자 확대이다. 정부의 재정 적자 증대와 함께 세수 감소는 복지 비용을 충당할 재원의 부재를 뜻한다. 정부는 경제의 세계화로 촉발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상실함으로써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 일자리 창출을 미끼로 기업에 끌려 다니는 정부는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국민의 지지를 상실한다. 이것이 4단계로 민주주의적 정당성 위기인 것이다.

 


찰스 P. 킨들버거의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경제사가인 찰스 킨들버거의 이 저서는 금융위기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그 과정을 역사적 자료들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역사서들이 대개 그렇지만, 이 책 역시 많은 사료들로 인해, 배경지식이 없을 때는 그 사료들에 압도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끝까지 읽다 보면 그리 문제될 것은 없다. 유사한 또는 동일한 사례들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거품은 터지기 마련이다. 거품은 그 의미 자체로 지탱할 수 없는 가격변동이나 현금흐름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23쪽

(1990년대 일본의 자산가격 거품 붕괴 이후 10년이 넘는 경제성장의 정체, 1990년대 후반 태국에서 비롯된 동아시아의 주가 폭락, 2000년 미국의 주식시장 거품 붕괴) 

  "이들 개별 통화의 시장환율 변동은 국가간 물가상승률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는 변동폭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 예사였다. 각국 통화의 외환거래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통화가치 상승, 즉 '오버슈팅(overshooting)'과 과도한 통화가치 하락, 즉 '언더슈팅(undershooting)'의 출렁거림은 이전 어는 시기보다도 그 폭이 훨씬 더 커졌고, 대상 통화의 범위도 더 넓어졌다." 25쪽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은행 파산 건수도 많았으며, 앞선 어느 시기보다도 훨씬 더 빈번했다." 25쪽. 

  "이들 금융위기와 은행 파산 사태는 자산가격 거품의 붕괴 혹은 외환시장에서의 통화가치 급락에 따른 결과였다; 어떤 경우는 외환위기가 은행의 위기를 촉발했고, 다른 경우에는 은행의 위기가 외환위기를 초래했다." 26쪽.

  "최근의 은행 파산 사태는 세 차례의 다른 파동으로 일어났다: 1980년대 초에 일어난 첫 번째 파동, 1990년대 초의 두 번째 파동, 그리고 1990년대 후반에 세 번째 파동이 있었다. 은행의 파산, 큰 폭의 환율 변동, 자산가격의 거품은 서로 체계적인 연관성을 맺고 있으며, 경제 환경의 급속한 변화로 인해 발생했다." 27쪽

(1970년대는 가속적인 물가상승의 시대. 이때의 속설은 "금 1온스의 가격은 원유 20배럴의 가격과 거의 같다"는 것. 1970년대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의 대외채무 총액 증가(1250억달러->8000억 달러. 이때의 속설은 "정부는 파산하지 않는다"는 것. 27-28쪽) 

  "이 책이 다루는 주제 가운데 하나는 1980년대 후반 일본의 부동산 및 주식시장 거품과 이와 유사한 1990년대 중반 태국 방콕과 인근 아시아 국가들의 금융 중심지에서 형성된 거품, 그리고 1990년대 후반 미국 주식시장의 거품, 이들 세 가지 거품이 체계적인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거품이 붕괴하자 일본을 떠나는 자금의 이동 규모가 증가했다. 이 자금의 일부는 태국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로 유입됐으며, 일부는 미국으로 흘러 들어갔다. 자금 유입의 증가에 따라 이들 나라의 통화가치가 상승했고, 또 이들 나라의 투자 가능한 부동산과 유가증권의 가격이 상승했다.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거품이 붕괴됐을 때, 이들 국가가 상환한 해외채무 자금의 일부가 미국으로 흘러 들어가며 또 하나의 자금이동 물결을 만들어냈다. 결과적으로 미 달러화 가치는 외환시장에서 상승했고, 미국의 연간 문역수지 적자는 추가로 1500달러나 증가해 5000억 달러로 늘어났다." 33쪽 

  "해외로부터 어느 나라로 자금  유입이 증가하면 거의 예외 없이 자금이 유입되는 나라에서 거래되는 유가증권의 가격이 상승했다. 왜냐하면 외국인에게 유가증권을 매도한 내국인들은 매도한 금액 중 많은 부분을 다른 내국인이 보유한 다른 유가증권을 매수하는 데 사용했고, 또 내국인에게 유가증권을 매도한 내국인도 마찬가지로 이 매도 금액 가운데 많은 부분을 다시 다른 유가증권을 매수하는 데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유가증권 거래는 더 높은 가격을 유발하며 계속 이루어졌다." 33쪽 (뜨거운 감자 이야기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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