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망각의 강은 영혼이 육체에 깃들 때에만 건너는 것이 아니다.
지송리

태그목록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정약용의 『정선 목민심서』 ,  다산연구회


 

『정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세금 징수는 흔들리지 않아야 하니 이는 세금을 징수하면서도 어루만지고 돌보는 것이며, 형벌은 착오가 없어야 하니 이는 형벌하면서도 교화하는 것이다. 봄에 궁한 백성 구제는 마치 자식처럼 하고, 가을에 거두어들이기는 마치 원수처럼 해야 한다. 한 이익을 일으키는 것은 한 폐해를 제거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한 일을 만드는 것은 한 일을 감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위엄은 청렴함에서 생기고 정사는 부지런함에서 이루어진다.” p. 106


아전의 횡포

  “넉넉한 백성의 기름진 토지는 모두 아전의 전대 속으로 들어가고, 조운선에 세곡을 실어 보내는 것은 해마다 기한을 어겨, 체포되어 문초당하고 파면되어 갈리는 수령이 줄줄이 뒤를 잇고 있으나 아직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 애석한 일이다.” p. 107

  “마땅히 호조에 납부해야 할 것이 4천석이라면 자기 고을에서 백성으로부터 징수한 것은 1만 석도 훨씬 넘는다. 아침에 명령을 내려 저녁에 거둬들일 수 있는 넉넉한 집의 윤기 있는 입쌀은 아전이 모두 횡령한다. 토지대장에 등록하지 않은 은결로 거두고, 혹은 궁결이라 하여 수세장부에서 빼버리고, 혹은 저가로 거두고, 혹은 거짓 재결로 수세장부에서 빼버리고, 혹은 돈으로 받고, 혹은 쌀로 받는다. 이미 초가을부터 구름이 몰려가듯이 냇물이 흘러가듯이 끝내버려 속여 훔쳐 먹은 액수는 모두 아전의 전대 속으로 들어간다.” p. 107

  “늘 보면 조사관이나 검시관이 미리 몰래 조사시키지도 않고 데리고 간 아전을 시켜 은밀히 여론을 묻지만, 아전이 뇌물을 받고 청탁을 받아 중간에서 농간을 부리는 경우는 첫 번째 조사나 검시에서는 잘못 판결하지 않았는데, 두 번째 조사나 검시에서 이유 없이 판결이 뒤엎어지고 옥사의 진상이 의심스러워지며 억울하게 걸린 자가 벗어날 수 없게 된다.” p. 113.

  “섬사람들은 본래 호소할 길이 없는 사람들인데, 조사하는 일에 따라간 아전들이 조사관의 접대를 빙자해 침탈을 마음대로 해 솥과 항아리까지도 남기지 않는다. …… 그러므로 표류선을 조사하는 관리들은 마땅히 눈을 밝게 뜨고 엄하게 살펴서 아전들의 침학을 금지시켜야 한다.” p. 115.


아전 단속

-  백성은 토지를 논밭으로 삼지만, 아전들은 백성을 논밭으로 삼는다. 백성의 껍질을 벗기고 골수를 긁어내는 것을 농사짓는 일로 여기고, 머릿수를 모으고 마구 거두어들이는 것을 수확으로 삼는다. 이것이 습성이 되어 당연한 짓으로 여기게 되었으니, 아전을 단속하지 않고서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자는 없다. p. 141.

-  최숙생이 ‘다른 고을의 수령이 비록 교활하다고 하나 다만 한 사람의 도적일 뿐이라 qro성들이 오히려 견딜 수 있지만, 청양현감은 비록 청렴하도 여섯 도적(6방의 아전)이 아래에 있으니 백성들이 견딜 수 없었다’고 대답하였다.

  비록 학문이 깊고 넓다 하더라도 아전을 단속할 줄 모르는 자는 백성의 수령이 될 수 없다. p. 145.

- 이노익이 전라감사가 되었는데, 감영의 아전 최치봉이란 자가 간사하고 교활하며 악독한 아전 무리의 괴수였다. …… 그들 모두가 최치봉과 결탁하여 그를 우두머리로 삼고 지냈다. 최치봉이 해마다 수십만 냥의 돈을 각 읍의 교활한 아전들에게 나눠주어 창고의 곡식을 교묘하게 빼돌려 돈으로 바꾸어 고리대의 밑천을 삼으니, 만민에게 해가 돌아갔다. 감사가 아전과 군교들을 보내어 각 읍 수령의 잘잘못을 탐문하게 하면 반드시 먼저 최치봉의 지시를 받아 나가고, 돌아와서도 탐문해 적어온 보고서를 반드시 먼저 최치봉에게 보이니, 청렴 근실하여 법을 지키는 수령은 중상하고, 탐학 비루하며 불법한 수령과 간악한 향임과 교활한 아전으로 보고서 속에 기록된 자들은 최치봉이 모두 빼내주고, 그 기록된 글을 본인에게 보내어 자기의 위덕을 세우니 온 도가 눈을 흘겨온 지 오래되었다. p. 146.

- 무릇 한 가지 명령과 한 가지 지시서를 내릴 때라도 마땅히 수리(首吏)와 해당 아전에게 그 일의 근본을 캐어보고 지엽을 밝혀내어 밑바닥까지 궁구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난 뒤에 결재를 한다면, 수십일이 지나지 않아 사무에 밝아져 모르는 것이 없게 된다. p. 150.

- 조선왕조 초기에는 아전의 횡포가 심하지 않았는데, 임진왜란 이후부터 사대부의 녹봉이 박하여 집이 가난해지고, …… 이에 따라 탐학하는 풍조가 점차 커지고 아전들또한 날로 타락하여 오늘날에는 그 정도가 극심한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민간에 있으면서 그 폐단의 근원을 탐구해보니, 조정의 권귀들이 뇌물을 받고, 감사가 축재하며 수영이 이익을 나누기 때문이다. pp. 150-151.


관솔의 구성: 아전, 군교, 노비

        관노: 시중드는 노비, 물자 구입하는 노비, 물품 제작하는 노비, 말 키우고 일         산 드는 노비, 방을 덥히고 뒷간 치우는 노비. 보수받는 관노는 푸줏간과 주방의         노비, 그리고 창고지기

        관비: 기생과 비자(수급비) (pp. 153-154)


수령을 보좌하는 직책

향소: 좌수 - 향청의 우두머리, 이방과 병방의 사무를 관장

      별감 - 좌별감은 호방과 예방의 사무를 관장, 우별감은 형방과 공방의 사무를 관장         (pp. 156-157)


- 아전들의 간사하고 교활함이 저절로 행사되지 못하게 되고, 힘있는 백성의 횡포가 저절로 자행되지 못하게 되면, 드러나지 않ㅇ는 하찮은 잘못은 그냥 덮어두어 만물이 푸근히 안락하도록 하는 게 옳다. 그래도 여전히 아전과 향청직원, 군교들이 몰래 수령의 동정을 엿보고 이를 빙자해 멋대로 농간질하는것을 염려해야 하고, 관의 노비와 병졸들이 몰래 민간에 나가 토색질하고 행패부리는 것을 살펴야 하며, 또 불효불공하고 장터에서 횡탈을 일삼는 자를 금해야 하며, 향촌에서 무단행위를 하는 자와 강한 힘을 믿고 약한 이를 업신여기는 자를 통제해야 하니 별도로 염탐하고 조사하는 일이 없을 수 없다. pp. 163-164.

- 우두머리 아전인 이방의 시루건이 무거워 수령의 총명을 가려 실정이 위로 보고되지 않으니, 별도의 염문을 그만둘 수가 없다. p. 169.


수령의 신뢰 쌓기

  평소에는 큰 해가 없다 하더라도 만약 나라에 외환이 있을 경우에 믿음이 아랫사람들에게 서 있지 않으면 장차 어찌할 것인가? 명령의 시행을 충실히 하여 백성들의 시노리를 얻는것이 수령의 급선무이다. p. 173.


전분6등법과 연분9등법의 모순: pp. 180-181.


세금 걷기

-  세미를 거두는 마감에 아전과 군교를 풀어 민가를 수색하여 긁어내는 것을 검독이라 한다. 검독은 가난한 백성들에게는 승냥이나 범과 같은 것이다. p. 185

-  환곡은 사창(社倉)이 변한 것으로, 춘궁기에 곡식을 빌려줬다가 추수기에 거둬들이는 조적(糶糴)도 아니면서 백성의 뼈를 깎는 병폐가 되었으니 백성이 죽고 나라가 망하는 일이 바로 눈앞에 닥쳤다. p. 186.

-『주례』에 대체로 곡식을 봄에 나눠주고 가을에 거두었다고 하였으니, 일찍이 환곡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나라와 위나라의 제도에서는 창고에 비축하는 것이 대부분 조적에 속하는 것으로, 혹 풍년에 곡식을 구입하여 저장했다가 흉년에 판매함으로써 곡식 가격을 안정시키는 상평(常平: 상시평준)으 l법을 쓰고, 혹 조세 대신 특산물을 내게 하여 다른 지방에서는 균수(均輸)의 법을 썼으니 모두 환곡의 자취는 없다. 수나라의 장손평이 홍수나 가뭄에 대비하여 곡식을 저장하는 의창(義倉)의 법을 만들었고, 주자가 그것을 다듬어서 시행하며 이름을 사창(社倉)이라고 하였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환곡을 사창의 유법(遺法)이라고 하지만, 사창은 곡식을 저장하고 나눠주는 일을 모두 마을 사람들이 직접 하고 관리는 관여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백성을 위하는 참된 마음이며 오늘의 환곡의 법과는 하늘과 땅 차이가 있다.

  오늘날 환곡의 폐단을 논하는 사대부들은 기껏해야 “가을에 정미한 쌀을 말에 넘치게 받고, 봄에는 거친 쌀을 나눠주되 말에 부족하게 하니 백성에게는 몹시 억울한 일이다”라고 a할 뿐이다. pp. 186-187.

- 감사가 여러 고을에 물가를 보고하도록 명령을 내리고, 곡가의 높고 낮음을 상세히 알고서 장사치 노릇을 한다. …… 감사의 녹봉이 본래 박하지 않은데도 장사치 노릇을 하여 백성의 기름을 짜내고 나라의 명맥을 상하게 하니 딴 일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p. 187.

- 수령이 농간질하여 남긴 이익을 훔치니 아전의 농간질은 말할 것도 없다.

- 영리(營吏)의 농간은 그 구멍이 더욱 크다. 늘 보면 창고를 열어 보리 환곡을 나눠주거나 가을에 환곡을 나눠주는 날마다 여러 읍의 아전들이 돈 수백 냥을 가지고 감영에 가 아주 싼 값으로 환곡을 사들이고, 시골집에 저장해두었다가 외촌에서 바쳐야 할 대를 기다려 환곡을 팔아 먹는데, 때로는 그것이 4,500석에 이른다. 해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는데, 이는 곧 감사가 마땅히 살펴야할 일이지 수령의 죄는 아니다. 은결(隱結)이 매년 늘어나는 것은 영리가 팔아먹은 것이다.. p. 194.

- 양식이 떨어진 양반이 재해를 당했다고 거짓말하거나, 도랑을 파거나 제방을 쌓는다고 거짓말하여 사사로이 창고의 곡식을 구걸하여 별도로 수십 석을 받았다가 세월이 오래되어도 납부하지 않고 또다른 구실로 더욱 많이 받아낸다. 큰 기근이 들거나 나라에 큰 경사가 있어서 구환을 탕감해주는 경우 수령은 사사로운 정으로 이 양반이 빌린 것을 탕감해 준다. pp. 196-197.


- 수십년 이래 수령 된 자가 전혀 일을 돌보지 않아 아전의 횡포와 농간이 끝간 데를 모르게 되었는데, 호적은 그중에서도 가장 심하다. …… 호적을 다시 작성하는 해마다 적리(籍吏)가 공문을 띄워 10호를 증가시키겠다고 위협한다. …… 그 호민은 그중의 20냥은 몰래 제 주머니에 넣고, 80냥은 적리에게 뇌물로 주어 그 일을 그만두게 한다. …… 그래서 마침내 5호를 줄여서 다른 다섯 마을에 한 가구씩 할당한다. 다섯 마을은 각기 크게 놀라, “동네가 망했구나. 예로부터 우리 동네는 세 가구가 서로 의지하여 한 가구의 역을 부담해왔어도 피가 마를 지경이었는데, 여기에 1호가 더 늘어난다면 누가 감당하겠는가?”한다. 이렇게 되니 부촌에서는 돈 1,200냥을 바치고, 그 다음 촌에서는 7, 80냥을 바치며, 차례로 내려가 비록 3호가 있는 마을일지라도 7, 8냥을 바치지 않는 곳이 없다. …… 나라 안의 모든 고을이 이방을 제일 좋은 자리로 여기지만, 식년이 되면 호적을 처리하는 아전을 제일로 치니, 호적을 처리하는 아전은 큰 고을에는 넉넉히 1만 냥을 먹고, 작은 고을이라도 3천 냥을 넘게 먹는다. p. 199.

- 부역을 공평히 하는 것은 ‘수령이 해야 할 일곱 가지 일’ 가운데 긴요한 일이다. 무릇 공평하지 못한 부역은 징수해서는 안되니, 저울 한 눈금만큼이라도 공평하지 않으면 정치라 할 수 없다.

  옛날에 전세는 9분의 1을 거두었고 부(賦)는 호산에 근거하였다. 전세는 토지에서 나오고 부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으로, 두 가지가 서로 뒤섞이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본래 전세가 가벼웠는데 중세 이래 토지에서 부를 징수하여 드디어 관례가 되고 말았다. 대동, 균역, 삼수미, 수령이 사용하는 치계미 등도 토지에 부과하는 것이고, 이것들은 조정에서도 알고 있다. …… 수령이 깨끗하지 않으니 아전도 따라 움직여 각종 비용을 토지에 부과한다. …… 그래서 농사짓는 사람들이 날로 곤궁해져서 쓰러지고 진구렁을 메울 지경이 되었다. pp. 199-200.

- 농사는 식생활의 근본이고 양잠은 의생활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백성들에게 뽕나무 심기를 권장하는 것은 수령의 중요한 임무이다. p/ 205.

- 백성을 다스리는 직분은 백성을 가르치는 일일 따름이다. 전산(田産)을 고르게 하는 것도 장차 백성을 가르치기 위함이요, 부세와 요역을 고르게 하는 것도 장차 백성을 가르치기 위함이요, 고을을 설치하고 수령을 두는 것도 장차 백성을 가르치기 위함이요, 형벌을 밝히고 법귤를 갖추는 것도 장차 백성을 가르치기 위해서이다. p. 215.

- 우리나라의 군현의 향교에도 역시 훈도(訓導)가 있었는데 조선 중기 이후로 이 관직마저 없어졌다. p. 221.

- 먼 변방에는 벼슬을 한 사람이 있는 가문인 사족은 드물고 벼슬을 한 사람이 없지만 부유하거나 위세가 큰 가문인 토족이 많다. 사족은 향교에 왕래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기 때문에 토족이 향교를 독차지하여 그들의 소굴로 삼았다. 이들 토족 무리는 대부분 배운 것 없는 무식쟁이들로, …… 간사한 아전과 결탁해서 감사에게 허튼 소문을 알리며, 수령이 총애하는 기생을 통해 수령에게 뇌물을 바치며, 항상 아전과는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어 너나들이하면서 교제하며, 늘 술집에서 만나서 아침저녁으로 싸움질만 한다. p. 222.


- 족(族)에는 귀천이 있으니 마땅히 그 등급을 구별해야 하고, 세력에는 강약이 있으니 마땅히 그 형편을 살펴야 한다. p. 224.


- 과거공부는 사람의 마음씨를 흐트러뜨리는 것이지만, 관리를 선발하는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그 공부를 권하지 않을 수 없다.

  수령이 해야 할 일 일곱 가지 가운데 세 번째가 ‘학교가 일어난다’인데, 속된 관리는 ‘학교가 일어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과거공부를 권하는 것으로 학문을 진작하는 일을 대체하고 있다. p. 226.

- 총명하고 기억력이 좋은 어린이는 따로 가려 뽑아서 가르쳐야 한다.


- 병역 의무자를 군안에 올려 군포를 거두는 법은 폐단이 크고 넓어 백성들의 뼈를 갂는 병이 되었다. 이 법을 고치지 않으면 백성들이 모두 죽어갈 것이다.

  조성왕조 초기에는 호포(戶布)는 있었지만 군포라는 것은 없었다. 중종 대 대사헌 양연이 군적수포법을 제안해 시행하였지만, 군적수포법은 가구(戶) 단위로 부과하는 공포(貢布)라 부르고 군적에 오른 개인에 부과하는 번호(番布)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이율곡이 “군졸이 공포를 상납하는 부담을 줄이려면 공포를 전결에 배정하는 쪽으로 바꿔야 한다”라고 상소하여 군적의 개혁을 청하였으니, 이것으로 알만하다. p. 231.

- 정군(正軍)을 호수(戶首)라 하고 각 호수에는 두세 명의 보인(保人)이 딸려 있어 이들에게서 쌀과 베를 거두어 물자와 장비로 쓰게 했다. p. 232.

- 서울의 군영에 군포를 상납하는 날에 영문 아전들의 횡포가 극심하다. 연중 관례로 주는 뇌물 외에 더 내놓으라고 억지를 부리고, 욕심이 충족되지 않으면 군포를 퇴짜 놓기가 일쑤다. 또 시전의 면포상인들과 형제이거나 인척인 영문 아전들은 이들과 공모하여 읍포를 퇴짜 놓는다. 그러면 향리들은 시포를 구입해야 하는데 객지에서 시포를 구입하려면 반드시 두 배의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그리고 시포를 납부하였으니 읍포는 반드시 팔아야 되는데, 객지에서 포를 팔게 되면 반드시 반값밖에 받지 못한다. p. 234.


- 조선 초에는 돈을 사용하지 않아 사채의 폐단이 심하지 않았으므로 법규가 조금 너그러워서, 어긴 자에 대한 벌이 장 80대에 지나지 않았다. 숙종 이래로 돈이 크게 유통되어 사채의 폐단이 나날이 증가되어 백성들이 몰락하였다.

- 살인에 대한 법이 엄한 것과 관련된 이야기. 판결을 잘못했을 때의 태도. p. 266.


- 무단적인 행동을 하는 토호는 백성들에게 승냥이나 호랑이 같다. 승냥이와 호랑이를 제거하야 양 같은 백성을 살려야만 이를 목민관이라 할 수 있다. p. 274.

- 관리가 창녀를 끼고 노는 데 대해서는 법률이 지극히 엄하다. 그러나 기강이 해이해지고 어지러워져서 습속으로 굳어진 지 오래 되었으므로, 이제 갑자기 이를 금하는 것은 소동을 일으키는 길이다. p. 275.



 

이이의 『동호문답』과

『만언봉사, 목숨을 건 직설의 미학』 


1. 치세와 난세에 대한 이이의 구별


(1) 치세

치세

군주의 재능과 지혜가 출중하여 뛰어난 영재들을 잘 임용하는 경우

군주의 재능과 지혜가 모자라지만 현자를 임용하는 경우

왕도정치: 인의의 도, 인정을 행함으로써 천리의 바름을 지극히 하는 것

오제와 삼왕

상의 태갑(이윤)과 주의 성왕(주공)

패도정치: 이름만 인의의 도 권모술수로 공리와 사익 채움

진 문공, 진 도공, 한 고조, 한 무제, 당 태종, 송 태조

제 환공(관중), 한 소열(제갈량)



(2) 난세

난세

군주의 재능과 지혜가 출중하지만 자신의 총명만을 믿고 신하들을 불신하는 경우

군주의 재능과 지혜가 모자라 간사한 자의 말만을 편중되게 믿어 자신의 귀와 눈을 가린 경우

폭군

하의 걸, 상의 주, 주의 여왕, 수의 양제

진의 이세(간사한 조고)

한의 환제(환관의 참소)

혼군

당의 덕종

송의 신종(왕안석)

용군

무기력하고 나태하여 보잘것없는 용군: 주의 난왕, 당의 희종, 송의 영종




2. 겸선(兼善)과 자수(自守):


대학(大學): 大學之道는 在明明덕德하며 在親(新)民하며 止於至善이니라.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힘에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함에 있으며, 지극한 선에서 그침에 있다.]


- 명덕은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것을 의미한다. 인욕(人慾)에 가리우면 어두워진다. (克己復禮?)


- 친(신)민은 수기 이후 명명덕을 타인에게까지 미친다. 즉 백성을 교화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 지선은 사리의 당연한 극(極, 표준)이다. 명명덕과 친민은 지선의 경지에서 멈춘다.


  “사물의 이치가 이른 뒤에 지식이 지극해지고, 지식이 지극해진 뒤에 뜻이 성실해 지고, 뜻이 성실해진 뒤에 마음이 바루어지고, 마음이 바루어진 뒤에 몸이 닦여지고, 모이 닦아진 뒤에 집안이 가지런해지고, 집안이 가지런한 뒤에 나라가 다스려지고, 나가가 다스려진 뒤에 천하가 평해진다.”


“선비라면 겸선(兼善)이 본래의 목적이지요. 물러나 자수(自守)하는 것이 어찌 본심이겠소. 다만 때를 만나고 만나지 못해 그럴 뿐이지요.” p. 23.

겸선의 세 가지 품격: 대신(大臣), 충신(忠臣), 간신(幹臣). pp. 23-24

자수의 세 가지 품격: 천민(天民), 학자(學者), 은자(銀字)


도학(道學)이란 ‘격물치지(格物致知)로 선(善)을 밝히고 성의(誠意), 정심(正心)으로 수신하는 것’으로 도학이 자신에게 쌓이면 천덕(天德)[자연적인 본성]이 되고, 정치에 시행되면 왕도정치가 되지요. 독서는 격물치지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으니 독서만 하고 실천이 없으면 앵무새가 말 잘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소.” p. 29.


“도학하는 선비를 ‘진유(眞儒)’라 하는데, 맹자 이후 진유가 출현하지 않다가, 1,000여 년이 지나서야 주렴계[주돈이, 태극도설(太極圖說), 세계는 태극->음양->오행->남녀->만물의 순서로 구성된다고 하였다. 또, 도덕과 윤리를 강조하고 우주생성 원리와 인간의 도덕원리는 같다고 하였다.(네이버 백과사전)] 선생이 나옴으로써 미묘한 진리를 발양했고, 정자, 주자가 그것을 계승한 후에야 이 도학이라는 것이 세상에 크게 밝혀져서 중천에 솟아오른 태양과 같은 존재가 되었지요.”


“기자(箕子)께서 우리나라의 군주로 계실 적에 행한 정전(井田)제도와 팔조법금(八條之敎)은 피시 순수한 왕도정치의 산물일 것이오.” p. 38.


“이른반 진유라면 출사해서는 한 시대에 도를 행하여 온 백성으로 하여금 태평을 누리게 하고, 물러나서는 만세에 교화를 베풀어 배우는 자로 하여금 큰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자라오.” p. 38.


◎『만언봉사, 목숨을 건 직설의 미학』에서 나오는 학문하는 방법 3가지


(1) 궁리(窮理): “안으로는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이치를 속속들이 파고들어 깊이 연구해 보면,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도 각기 법칙이 있습니다. 밖으로는 사물이 존재하는 이치를 속속들이 파고들어 깊이 연구해 보면, 풀과 나무나 새와 짐승에게도 각기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 이러한 것은 반드시 책을 읽어서 밝히고, 옛 것과 견주어 깊이 생각하여 실제로 경험해 봐야 합니다. 이것이 궁리의 요점입니다.” p. 95.


(2) 거경(居敬): “거동할 때나 조용히 있을 때나 함께 통하는 것을 말합니다. 조용히 있을 때에는 잡념을 일으키지 않고 편안히 마음을 가라앉혀 정신을 맑게 하고, 거동하여 일을 할 때에는 한 가지에 온 마음을 쏟으며 한결같이 하여 조금도 착오가 없게 하는 것입니다. 몸가짐음 반드시 가지런히 엄숙하게 하고, 마음가짐은 반드시 경계하고 삼가며 두려워해야 합니다. 이것이 거경의 요점입니다.” pp. 95-96.


(3) 역행(力行): 자신의 사사로운 욕심을 극복하여 기질적으로 나타나는 병폐를 다스리는 데 있습니다. 유약함은 바로잡아 강하게 하고, 나약함은 바로잡아 스스로 서게 하며, 사나움은 온화하게 다스리고, 급함은 너그럽게 다스리는 것을 말합니다. 욕심이 많으면 맑고 깨끗하게 하여 반드시 청정해지도록 하고, 사사로움이 많으면 바로잡아 반드시 공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부단히 노력하여 아침저녁으로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역행의 요점입니다.“ p. 96.


궁리는 곧 사물의 이치를 깊이 연구하여 지식을 얻는 것(格物致知)이고, 거경과 역행은 곧 뜻을 정성스럽게 하고(誠意), 마음을 바르게 하며(正心), 몸을 닦는 것(修身)입니다.” pp. 96-97.




3. 삼대의 정치를 회복하기 위한 방법


삼대의 정치를 회복하는 방법: 입지-무실-용현-안민정책-교인지술-정명


입지(立志): “입지[뜻을 세우는 것]보다 앞서는 것은 없지요. 옛날부터 유위(有爲)하는 군주는 먼저 자신의 뜻을 정하지 않은 이가 없었소.”: ‘이치를 궁구하고 본성을 다하는 것[窮理盡性]’, ‘백성들을 새롭게 하는 것[新民]’, ‘아내에게 모범이 되는 것[刑于寡妻]’, ‘요 임금의 모자토계(茅茨土階)’, ‘박시제중(博施濟衆)’, ‘예악을 닦아 밝히는 일[修明禮樂]’에 뜻을 두기. p. 58.


무실(務實): “입지 후에는 무실만한 것이 없지요. …… 말을 헛되이 할 뿐 실제가 없다면 어찌 일을 구제할 수 있겠소. …… 한 가지 폐단도 개혁되지 않고 한 가지 정책조차 제대로 실시되는 것을 볼 수 없는 것은 오직 무실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 성의(誠意)하고자 하신다면 …… 어둠 속에 혼자 있거나 남모르게 은거해 있을 때에도 경외(敬畏)하여 게을러서는 아니 되니,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때에도 경계하고 두려워함을 잊어서는 안 되고, 반드시 모든 염려들이 지극한 정성에서 나오게 하여 성의의 실제를 다해야 하지요.

  정심(正心하고자 하신다면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않고 얽매이지도 않는 것으로 체(體)를 세워 과불급(過不及)이 없게 하고 용(用)을 적용시킬 수 있어야 한다오.”

 수신(修身), 효친(孝親), 치가(治家), 용현(用賢), 거간(去奸), 보민(保民), 교화(敎化) 등의 실천을 해야 함. pp. 58-62.


간인의 판별이 용현(用賢)의 요체다 - 선조가 신하를 대할 때의 문제점: “지금 군주께서는 오직 경연에서만 어진 선비를 응대하시는데다가 그나마 예가 엄하고 말씀을 간단하게 하셔서 신하들이 떼 지어 줄 맞춰 앞으로 나아갔다가 물러나오는 식이오. 그 결과 신하들의 뜻이 모두 주상께 전달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니 밝은 성상이실지라도 어찌 모든 상황을 살피실 수 있겠소. 이와 같이 지난날의 전철만 되풀이하여 헛되이 형식만 일삼는다면 주상께서는 여러 신하들의 어질고 어질지 못함을 끝내 살피지 못할 것입니다.” p. 66.

율곡 이이의 대책: “번거로운 절차는 생략하고 경연 자리 이외에서도 유신들과 만나 조용히 도를 의논하여 정무에 적용하는 방법만한 것이 없소. 주상께서는 침묵해서는 안 되고 신하와 더불어 수작(酬酌)하기를 메아리치듯이 하여 상하의 실정이 통하고 속내를 시원스럽게 알도록 해야 하오. 이렇게 되면 사특하고 올바른 이들이 하늘의 눈질을 피하기 어려워 용사(用捨)[등용하고 내침]가 성상의 권한 내에서 조용히 결정되어 성덕을 이루시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요.” p. 66.


율곡 이이가 제시하는 올바른 사람과 사악한 사람의 구별 방법: “소인이 저지르는 해악은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으니 어떤 이는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여 비루하고 어떤 이는 윤리에 어긋나며, 어떤 이는 사익에 얽매여 공익을 외면하고 어떤 이는 현자를 해코지하여 나라를 병들게 하여 그 과오와 죄악이 심하여 일일이 열거할 수 없으나 큰 요체는 모두 드러나기 마련이어서 지적하거나 말하기 어렵지 않소.” p. 67


입지, 무실, 용현 다음에 할 일: 안민정책(安民之術)

“먼저 폐법(弊法)부터 개혁하여 민생을 구제해야 하지요. 잘못된 법을 개혁하려면 마땅히 언로를 넓혀서 좋은 정책을 모아야 하니 위로는 공경대신에서 아래로는 가마꾼이나 말구종에 이르기까지 모두 각자 시대의 폐법을 진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오. 그리하여 그들의 말이 결과적으로 채택할 만한 것이면 그것이 누가 한 말인지를 취사선택의 기준으로 삼지도 말고 해당 부서로 하여금 고식적으로 기존의 예를 따르지도 말도록 하여 상감께서 계책을 열도록 하는 것만이 잘못된 법을 완전히 개혁하리라는 것을 기약할 수 있소.” p. 73


◎ 폐법의 예


일족절린(一族切隣): 과중한 세금, 군포, 군역 등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간 백성이 있는 경우 반드시 그 일족과 이웃에게 세금, 군포, 군역을 부담시키는데, 일족과 그 이웃들도 그것을 감당할 수가 없어 도망가면 다시 그 일족의 일족과 이웃의 이웃에게 부담시키고 있지요. pp. 73-74 [백성들이 도망간다]


진상번중(進上煩重): “진상이라는 것이 주상께 바치는 데 있어서 모두 다 적합한 것은 아니라오. 어떤 자질구레한 것도 헌상하지 않는 것이 없고 바다나 육지에서 산출되는 것을 빠짐없이 긁어 들이고 있으나 어찬에 진상할 만한 것을 고른다면 몇 가지 안 될 것이오. …… 다급하지도 않은 물품들로 백성을 해친단 말이오.

  이러한 폐법을 개혁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대신과 관할 관서로 하여금 진상하는 모든 품목을 모아서 긴급한 것과 긴급하지 않은 것을 강구하여 상납할 필요가 있는 것만을 남겨두고 나머지 긴요하지 않은 물품들은 모두 삭제해야 하오. 또 아무리 상납할 필요가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수량이 너무 많을 경우에는 그 수량을 감소시켜야 하오. pp. 77-78.


공물방납(貢物防納): “세도(世道)가 점점 가라앉고 폐습이 나날이 늘고 간악하고 교활한 관노나 엉큼한 아전들이 온갖 물품을 사사로이 비축했다가 관청을 우롱하고 백성을 가로막아 비록 아주 우수한 물품을 가지고 와도 끝내 억지시켜 곧장 공납하지 못하게 하고 대신 반드시 자기들이 사사로이 비축한 물품들을 선납했다가 나중에 백 배나 되는 값을 백성들에게 요구하게 되었소.” p. 79.


역사불균(役事不均): 정군(正軍), 보솔(保率), 나장(羅將), 조예(皂隸) 등 여러 사람들이 온갖 역에 응하는 종류는 첫째, 장기간 번을 서거나 둘째, 두 번으로 나누어 서거나 셋째, 세 번에서 예닐곱 번으로 나누어 서는 것이지요. 따라서 혹자는 포악한 해를 감당하지 못하여 도망하는데 혹자는 생업을 편안히 하여 스스로 지키기도 하니, 같은 적자(백성)로서 어찌 이와 같이 괴롭고 즐거움이 차별적으로 동일하지 못한지요? p. 81.


이서주구(吏胥誅求): “간사한 권신들이 혼탁하고 어지러우며, 상하가 오직 뇌물만 일삼아서 관작도 뇌물이 아니면 승진하지 못하고, 소송도 뇌물이 아니면 승소하지 못하고, 죄수도 뇌물이 아니면 석방되지 못하오. 이리하여 모든 관료들은 하는 일마다 범법 행위를 하고, 아전들도 농간을 부려 법조문을 악용하니 …… 일개 군노나 일개 하인, 그리고 종까지 모두 약간의 말직만 맡고 있어도 으레 토색질을 일삼게 되었소. 그뿐만 아니라 중요한 일도 교활한 아전의 손에 맡겨져 뇌물의 많고 적음으로 곡직(曲直)을 결정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참으로 정치가 어지럽고 나라가 망하는 고질병이 되었소.” p. 82.


개혁에 반대하는 무리에 대한 율곡 이이의 반론: “세속의 식견은 매양 이와 같아서 한 가지 정책도 써보지 못하고 앉아서 망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격이지요. 정자께서는 ‘생민의 이치가 막혔으면 성왕의 제도라도 고치는 것이 옳다’고 말씀하셨소. 대저 법이 오래되면 폐단이 생기기 마련이고, 폐단이 생기면 고쳐야 하는 법이오. 《주역(周易)》에서 ‘궁하면 변한다. 변하면 통한다’라고 했지요.” p. 85.


교인지술(敎人之術): 안민 다음의 제도 개혁. “양민(養民)한 다음에야 교화(敎化)를 행할 수 있는데, 교육을 베푸는 방법으로는 학교보다 급한 것이 없소.” p. 89.

훈도(訓導)의 선발과 예우가 중요하다: “현재는 훈도를 극히 천한 직업으로 여겨 반드시 빈곤하고 기댈 곳 없는 사람을 훈도직에 임명하여 굶주리거나 얼어 죽는 것만 면하게 하고 있소.” p. 89.


반궁[성균관]에서 사림의 풍습이 날로 타락하여 학문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영리만 추구하려 한다. “조정에서 지도하고 권장하는 방법이 옳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재를 구하는 방법은 글재주만을 중시하고 도덕을 귀하게 여기지 않소.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천하에서 다 통하는 학식을 가지고 있고 세상에 으뜸인 행실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과거에 합격하지 않으면 그의 도를 사용할 방법이 전혀 없소. 게다가 반궁에서는 원점(圓點)으로 선비를 모으기 때문에 선비들의 일상 행실이 모두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는 경우가 없게 되었소." p. 91.


율곡 이이의 정명(正名) 사상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사람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것이 진실로 현재의 급선무라오. 다만 아직 국시(國是: 국가 이념)가 바로잡히지 못함으로써 정명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못해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사기를 진작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소.

  우리나라는 개국 이래 정사, 소장이 사실 빈번하게 반복되었소. 그러나 그중에서도 사림이 한꺼번에 죽임을 당하고 국가의 운명을 뒤흔든 것으로 을사사화만큼 심한 것이 없었소. 정순붕, 윤원형, 이기, 임백령, 허자 등 다섯 간흉은 그 죄가 하늘까지 달하니 반드시 죽이고 결코 용서해서는 안 될 자들이오.” p. 99.


“현재의 대책으로는 먼저 다섯 간흉의 죄를 폭로하고 관작을 삭탈하여 위사공신[사직을 보위한 공신이라는 뜻]이라는 공훈을 모두 삭제하고, 죄 없는 사람들을 모두 사면하여 종묘사직에 고하고 온 나라에 널리 알려 온 나라 사람들과 함께 다시 시작해야 하오. 이렇게 하면 위로는 조종의 영혼을 위로하고, 아래로는 조야의 분통한 마음을 풀어서 유신[낡은 제도를 고쳐 새롭게 함]정치가 차츰 이루어질 것이오.” p. 101.






『만언봉사, 목숨을 건 직설의 미학』



4. 변법(變法)의 의미와 변법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


“이른바 ‘시기가 적절하다(時宜)’는 것은 시기를 따라 적절하게 일을 처리하고(變通) 법을 마련하여 백성을 구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정자가 …… 말하기를 “시기에 따라 알맞게 바꾸는 것이 정상적인 방법(常道)”이라 하였습니다. 대개 법은 시기를 따라 제정하고 시지가 바뀌면 법도 같지 않은 것입니다.“ p. 34.


“바로 신종에 이르러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여 분연히 개혁할 뜻을 갖고 있었으나, 믿고 맡긴 왕안석이 어짊과 의로움을 뒤로 하고 공명심과 이익을 앞세워 하늘의 뜻과 인사를 어긋나게 함으로써 멸망을 재촉하니, 도리어 개혁을 하지 않은 것이 좋았던 것이었습니다. 이에 점차 큰 화를 부르게 되어 중국을 오랑캐의 나라로 만들었으니 그 밖에 말할 나위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pp. 39-40.

 

한비자(韓非子), 『이야기의 숲에서 한비자를 만나다』, 이상수 역 


1. 한비자의 인성론


“이익이 있으면, 사람들은 모두 맹분이나 전저와 같은 장사가 된다.” p. 94.


“오늘날 군주가 부유한 사람으로부터 거둬들여서 가난한 집안에 베푼다는 것은, 노력하고 절약하는 사람의 것을 빼앗아 낭비하고 게으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p. 99. [근검절약의 강조 및 복지국가에 대한 반대?]


“서로 상대방을 위해 무엇을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하면 결국 기대에 어긋나 서로 책망하게 되지만, 자신을 위해서 일한다고 생각하면 일이 되레 잘 진행된다.” p. 101 [자기이익 추구]


“이익이 있는 곳으로 백성들이 모여들고, 명성이 빛나는 곳에 선비들이 목숨을 바친다.” p. 101.


“사람에게는 털이나 깃이 없기 때문에 옷을 입지 않으면 추위를 견딜 수 없다. …… 장과 위를 뿌리 삼아 영양을 섭취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이로움을 추구하는 마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로움을 추구하는 마음을 제거할 수 없다는 것이 그 몸의 근심이다.” p. 106.


“법을 제정하는 것은 증삼이나 사어 같은 인격이 뛰어난 사람을 다스리기 위한 게 아니라, 보통의 군주가 능히 도척과 같은 간악한 무리를 방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부절을 사용하는 것은 미생처럼 신의를 지키는 이를 위한 예방책이 아니라 뭇사람들이 서로 속이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p. 117.




2. 국가의 존속 또는 권자의 보존을 위한 필수 조건


(1) 권력(勢): 미자하와 용의 역린 이야기(p. 268?)

(2) 법치(法治)

(3) 통치술(術)


“대저 몸소 권력의 손잡이를 쥐고 행사하려 하지 않고 신하들이 해야 할 일을 하고자 하니 졸린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p. 139.


“신하에 대한 통제력이 군주 자신에게 있을 때 군주가 ‘무게가 있다(重)’라고 하고, 군주가 자기 지위를 떠나지 않을 때 군주가 ‘안정적이다(靜)’라고 한다. 군주가 무게가 있으면 능히 가벼운 신하들을 부릴 수 있으며, 군주가 안정적일 때 능히 떠다니는 신하들을 부릴 수 있다. 그러므로 『노자』에서 말하기를 “무거움은 가벼움의 뿌리가 되며, 안정됨은 떠다님의 군주가 된다”라고 했다.” p. 153.


“권력이란 군주의 연못이다.” p. 153.


“권력에 의지해야지 신뢰 관계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 통치술에 의지해야지 신뢰 관계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p. 154.


“대저 재능이 있더라도 권세가 없다면 비록 현명한 자라 하더라도 어리석은 자를 통제할 수 없다. …… 짧은 목재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것은 위치 때문이고, 어리석은 자가 현명한 자를 통치할 수 있는 것은 권세 때문이다.” p. 157.


“신하는 군주에 대해 골육과 같은 친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에 매여서 어쩔 수 없이 복종하는 것이다.” p. 158.


“밝은 군주가 신하를 통제하는 수단에는 두 가지 손잡이가 있을 뿐이다. 두 가지 손잡이란 형벌과 덕(德)을 말한다. 형벌과 덕이란 무엇인가. 처벌하고 잡아 죽이는 것을 형벌이라 하고, 칭찬하여 상을 내리는 것을 덕이라고 한다. …… 오늘날 군주가 상과 벌의 위엄과 이로움이 자기로부터 나오도록 하지 않고 신하의 말을 들어 상벌을 내린다면, 그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다 그 신하를 두려워하고 군주는 우습게 여길 것이며, 그 신하만 따르고 군주는 버릴 것이다. …… 군주는 형벌과 덕으로서 신하를 제압하는데, 지금 군주가 형벌과 덕을 버리고 신하에게 그것을 사용하도록 한다면, 군주는 도리어 신하에게 제압당할 것이다.” p. 162.


“포상과 처벌은 나라를 다스리는 이로운 도구다. 군주가 이것을 장악하면 신하를 통제할 수 있지만, 신하가 이것을 장악하면 군주를 이기게 된다.” p. 164.


“군주가 통치술을 쓰면 대신들이 권력을 함부로 휘두를 수 없게 되며, 총신들이 권력을 빙자해 사리사욕을 채울 수 없게 된다. 관리들이 법을 집행하면 떠돌이 백성들이 서둘러 농경지로 돌아오고, 유세하던 선비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터의 진영에 나아간다. 그러므로 법과 술이라는 것은 뭇 신하들과 선비와 백성의 재앙인 셈이다.” p. 165.


“지금 신불해는 통치술을 말하고, 공손앙은 법치주의를 말한다. 통치술이란 능력에 따라 벼슬을 주고 신하가 말하는 것에 따라 그 실천 여부를 추궁하는 것이며,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칼자루를 쥐고서, 뭇 신하들의 능력을 시험하는 것이다. 이것은 군주가 장악해야 하는 일이다. 법치주의라는 것은, 관청의 문헌 보관소에 법률과 명령을 비치해두고, 백성들의 마음에 형벌이 새겨지도록 하여, 법령을 신중히 지킨 이에게 상이 주어지고 법령을 어긴 자에게 벌이 내려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신하가 따라야 하는 규범이다.” p. 169.




3. 한비자의 법치주의와 그 실현 조건


- 신도: “현명한 사람이 못난 사람에게 굽히는 것은 권력이 약하고 지위가 낮기 때문이며, 못난 사람이 능히 현명한 사람을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은 권력이 강하고 지위가 높기 때문이다. …… 나는 이로써 권력과 지위는 기댈 만한 것이지만, 현명함이나 지혜로움은 부러워할 것이 못 됨을 알았다. …… 이로써 본다면 현명하고 지혜로움은 뭇사람들을 복종시키기에 족하지 않지만, 권력과 지위는 현명한 사람조차 굴복시키기에 족한 것이다.” p. 118.

  반론: “현명한 사람이 그것[권력]을 사용하면 세상은 다스려지고, 못난 사람이 그것을 사용하면 세상은 어지러워진다. (……) 대저 권력이라는 것은 다스리는 데에도 편리하지만 어지럽히는 데에도 편리한 것이다.” p. 119. [재능이 중요하다. 권력은 객관적 조건일 뿐이다.]

  재반론: “내가 여기서 말하려고 하는 권력이라는 것은 사람이 만들어나갈 수 있는 권력이다. …… 세상의 보통 통치자는 중간치 수준의 존재들이 끊어지지 않고 나온다. 내가 여기서 권력에 대해 말하려는 것은 바로 이 중간치 수준 통치자들을 위한 것이다. …… (군주가) 법을 지키고 권력을 놓치지 않으면 잘 다스려지며, (군주가) 법을 어기고 권력을 놓치면 어지러워진다. …… 그러니 권력의 효용이 충분하다는 게 분명한데, ‘반드시 현명한 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려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또한 잘못이다. …… [위 논객이] 정치에 대해 말할 때는 요임금이나 순임금이 권력을 잡지 않으면 반드시 걸임금이나 주임금이 권력을 잡아 세상을 어지럽힐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이런 논법은 이 세상 요리는 엿이나 꿀처럼 달지 아니하면 나머지는 모두 씀바귀나 두루미 냉이처럼 쓴맛이 날 것이라는 주장과 같다.” pp. 121-124.


“법술을 버리고 마음에 따라 다스리도록 한다면 요임금이라도 한 나라를 바르게 할 수 없을 것이다.” pp. 126-127.


“법도를 집행한다는 것은 공을 드러내면 상을 주고 능력에 따라서 관작을 수여하는 것입니다.” p. 224.


“법치가 분명하고 명확하게 확립되면 똑똑한 자가 어리석은 자의 것을 빼앗을 수 없고, 힘이 센 자가 약한 자를 짓밟을 수 없으며, 다수가 소수에 대해 횡포를 부릴 수 없게 된다.” p. 228.


“작은 신의가 이뤄져야 큰 신의도 세워진다. 그러므로 밝은 군주는 신의를 쌓는 데 힘쓴다.” p. 228.


“다스리는 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을 쓰고, 적은 사람들에게만 한정되는 수단은 버린다. 그러므로 덕을 버리고 법에 힘을 쏟는다.” p. 229.


“밝은 군주는 눈먼 상을 아무렇게나 내리지 않으며, 처벌할 것을 느슨하게 풀어주지 않는다. …… 진실로 공이 있다면 비록 관계가 멀고 신분이 천한 사람이더라도 반드시 상을 내리고, 진실로 잘못이 있다면 비록 관계가 가깝고 아끼는 사람이더라도 반드시 처벌한다.” p. 230.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하의 사조직을 분쇄해야 한다. 사조직이 분쇄되지 않으면 신하는 점점 더 많은 세력을 규합해나갈 것이다.” p. 231.


“법령은 군주의 주요한 통치 수단이다. 반드시 공사의 구분을 밝혀서 법제를 분명하게 하고 사사로운 은혜를 제거해야 한다. …… 사사로운 의지가 행해지면 어지러워지고 공변된 대의가 행해지면 다스려진다. 그러므로 공과 사는 구분이 있다. …… 군주는 계산을 가지고 신하를 기르며, 신하 또한 계산을 가지고 군주를 섬긴다. 군주와 신하의 관계 맺음은 일종의 계산이다. …… 군주와 신하란 이처럼 계산을 바탕으로 결합한 사이다. 대저 어려운 사태에 임하여 필사적인 태도로 임하고 지혜와 힘을 다 짜내는 것은 법률이 그렇게 하도록 시키는 것이다. “공과 사는 분명하게 밝히지 않으면 안 되고 법률과 금지령은 엄격하게 밝히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했다.” pp. 233-235.


“대저 거울을 흔들면 밝게 비출 수 없고, 저울을 흔들면 바르게 달 수 없는 것은, 법치의 원리와 같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지도자는 거울과 저울처럼 객관적 기준이 될 수 있는 원리와 법규를 근본으로 삼는다.” p. 236.


“논변가들이나 능히 알 수 있는 내용은 법령으로 삼을 수 없다. 백성이 모두 그렇게 논변가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자들이나 능히 실천할 수 있는 내용은 법으로 삼을 수 없다. 백성이 모두 그렇게 현자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p. 239.


“현명한 군주는 법의 기준에 따라 사람을 고르지 스스로 멋대로 사람을 들어 쓰지 않으며, 법에 따라 사업의 실적을 판단하지 스스로 멋대로 판단하지 않는다.” pp. 239-240.


“법은 신분이 귀한 사람이라고 해서 그에게 아부하지 않으며, …… 잘못에 대한 처벌은 대신이라고 해서 피해가지 않으며, 공적에 대한 상은 평민이라 해도 아낌없이 주어진다. …… 백성들의 행동 규범을 하나로 통일하는 데 법만 한 것이 없다.” pp. 240-241.


“법치의 원칙을 지키는 길은 처음에는 괴롭지만 길이 이로울 것이요, 어짊을 베푸는 길은 잠깐 즐겁지만 나중에는 궁하게 된다.” p. 261.


“옛 군주의 어짊과 의로움을 말하는 것은 오늘날 다스리는 데 아무런 보탬도 되지 않는다.” p. 264.


“앞선 군주의 어짊과 의로움을 말하지만 그걸로 나라를 바로잡을 수는 없으니, 이 또한 이를 가지고 놀 수는 있어도 다스릴 수는 없는 것이다.” p. 265.


“대저 엄한 형벌과 무거운 처벌은 백성들이 싫어하는 것이지만 나라는 이 때문에 잘 다스려진다. 백성을 가련히 여기고 형벌과 처벌을 가볍게 하는 것은 백성들이 좋아하는 것이지만 나라는 이 때문에 위태로워진다.” p. 268.


“어질다는 것은 자비롭게 은혜를 베풀어 재물을 가볍게 여기는 것을 말한다. 난폭하다는 것은 마음이 잔인해 사람을 처형하는 것을 쉽게 행하는 것을 말한다. …… “어진 군주든 난폭한 군주든 모두 나라를 망치는 자들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p. 270.




4. 한비자의 통치술(術)


순명책실(循名責實): 신하로 하여금 계획을 진술하도록 하고, 나중에 그가 그 계획을 실행에 옮겨 얻은 실적인 신하가 처음에 말했던 계획과 대조하여 상벌을 내리는 통치술. p. 272.

이를 형명(刑名 또는 形名)이라 한다. 신하로 하여금 자기가 한 말(名) 또는 그 소명은 반드시 실천적 행위, 즉 ‘형(形)’을 통하여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군주는 신하들이 한 말이나 그 말의 명분(名)을 근거로 하여 그들이 실제로 행한 행위의 실질(實)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송영배, 『제자백가의 사상』, p. 470 주석.)


황로(黃老)학은 제(齊)의 직하(稷下)학궁을 중시므올 형성되어 나온 절대군주를 위한 통치술이다. 군주는 실제로 ‘무위(無爲)’하면서, 오직 ‘형명’의 술(術)로 모든 신하들로 하여금 각자 스스로 책임을 맡아 일하게 할 분, 그들의 일에 간여함이 없이 자유방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오직 행위결과에 대한 책임만을 법도대로 물어야 한다는 통치 이론이다. (송영배, 『제자백가의 사상』, p. 470 주석.)


“밝은 군주가 신하들을 거느릴 때는 신하가 자기 직분을 넘어서 공을 세울 수 없도록 하고, 자기가 한 말이 실적과 일치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한다. 직분을 넘어서면 사형에 처하고, 말과 실적이 일치하지 않으면 처벌한다.” p. 140.


- 진나라 대부 혼헌이 말하기를, “밝은 군주는 신하가 나를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지 않고, 자신이 신하들로 하여금 배신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통치술을 믿습니다. 밝은 군주는 또한 신하가 나를 속이지 않을 것이라고 믿지 않고, 자신이 신하들로 하여금 속임수를 쓰지 못하도록 하는 통치술을 믿습니다.” p. 142


“나라란 군주의 수레이며, 권력이란 군주의 말이다. 통치술이 없이 이를 다루려고 하면 몸을 비록 수고스럽게 하더라도 어지러워지는 것을 면할 수 없다. 통치술을 가지고 다스린다면 몸은 편안한 곳에 거하면서 제왕의 업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p. 150.


“옛말에 이렇게 말했다. “군주는 자기가 바라는 바를 드러내지 말라. 군주가 만약 그 바라는 것을 드러내어 보이면, 신하들은 장차 거기에 깎아 맞추려고 들 것이다. 군주는 자기 의지를 드러내지 말라. 군주가 만약 자기 의지를 드어내어 보이면, 신하들은 장차 자신이 남다르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할 것이다.”” p. 155.


“군주의 도는 신하에게 드러내어 보여주어서는 안 되며, 군주의 통치술은 변화무쌍하여 신하가 이해할 수 없어야 한다.” p. 156.


한비자의 칠술(七術)

(1) 중단참관(衆端參觀): 여러 가지 일의 단서를 견주어 보아야 한다.

(2) 필벌명위(必罰明威): 잘못은 반드시 처벌하여 군주의 권위를 밝혀라.

(3) 신상진능(信賞盡能): 잘한 일은 반드시 미덥게 포상하여 신하들이 자기 능력을 최대한 다 발휘하도록 하라.

(4) 일청책하(一聽責下): 신하를 무리로 다루지 말고 한 사람씩 평가해서 추궁해야 한다.

(5) 의조궤사(疑詔詭使): 의심스러운 명령을 내리거나 거짓으로 일을 시켜보라.

(6) 협지이문(挾知而問): 알면서 모르는 척하고 물어보라.

(7) 도언반사(倒言反事): 말을 거꾸로 해보거나 일을 반대로 처리해보기도 하라. p. 273, pp. 292-293.


“뭇 신하들이 말로써 사업 계획을 진술하면, 군주는 그 말에 따라 사업을 맡기고, 실적을 가지고 그 사업을 평가한다.” p. 289.


“군주의 길은 신하로 하여금 반드시 말을 한 책임을 지도록 하며, 또 말을 하지 않은 책임도 지도록 해야 한다. 말에 처음과 끝이 맞지 않고, 논리에 근거가 없는 자는 말을 한 책임을 져야 한다.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책임을 회피하면서 무거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는 말을 하지 않은 책임을 져야 한다.” p. 294.




5. 한비자에 대한 노자 사상의 영향


“사람들이 주관적으로 상상해낸 것을 말할 때 ‘상(象)’이라고 하는 것이다. 지금도 도(道)라는 것은 비록 듣거나 볼 수 없는 것이지만, 성인(聖人)은 도의 작용이 드러난 것을 미루어 도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노자』에서 말하기를 “도는 드러나는 형상이 없는 형상이며, 실체가 없는 형상이다”라고 한 것이다.” p. 47.


“억지로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 없이 마음을 비우고 고요하게 있는 것이 도(道)의 본래 모습이며, 온갖 것이 드러나 서로 견주어지는 것은 사물의 실제 정황이다.” p. 48.


“(군주는) 지혜를 버림으로써 도리어 총명해질 수 있고, 현명함을 버림으로써 도리어 공효가 있으며, 용기를 버림으로써 도리어 강해질 수 있다. 뭇 신하들로 하여금 직분을 지키게 하고 백관들로 하여금 일정한 법을 따르게 하여 각기 능력에 맞추어 부리는 것을 습상(習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너무나 조용하여 그가 어느 자리에 있는지 알 수 없으며, 텅 비어 있어 그 소재를 파악할 수 없다. 현명한 군주는 윗자리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며 신하들은 아래에서 부들부들 두려움에 떨고 있다”라고 한다.” p. 49.


“『노자』에서 말하기를 “만물의 스스로 그러함에 기대고 감히 작위하려 들지 않는다”라고 한 것이다.” p. 57


“『노자』에서 말하기를 “하늘 아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데서 비롯했으며, 하늘 아래 큰일은 반드시 미세한 데서 시작했다.”라고 한 것이다. ……이는 모두 쉬울 때 큰 어려움을 피하는 것이며, 미세할 때 조심하여 멀고 큰 화근을 없애는 것을 말한다.” pp. 58-59.

“도(道)는 쌓아갈 수 있으니, 도가 쌓이면 겉으로 드러나는 효과가 있다. 덕이란 도가 쌓여 겉으로 드러나는 효과다.” p. 103.


“대저 도(道)란 넓고 커서 모습이 없다. 덕(德)이란 분명한 이치가 있어서 곳곳에 두루 미친다.” pp. 103-104.




6. 한비자의 ‘이(理, 이치)’ 개념


“이치란 사물을 이루는 무늬다.” p. 79


“사물에는 각각 이치가 있어 서로 침범할 수 없다. 사물에 이치가 있어 서로 침범할 수 없으므로 이치는 사물을 결정하는 틀이다. 만물은 각각 그 이치가 다르다.” p. 79.


“사물의 결에 따라 일을 처리하면 힘을 들이지 않고서도 일을 잘 이뤄낼 수 있다.” p. 81


“대저 얼음과 숯불은 한그릇에 오래 함께 있을 수 없고, 추위와 더위는 한때 함께 닥칠수 없으며, 잡스럽고 모순된 학설이 양립해서는 다스려질 수 없다.” (氷炭不相容) p. 85


장자(莊子)의『장자』

2010. 5. 1. 13:43 | Posted by 지송리

 장자(莊子)의『장자』

 

1. 1장 「소요유(逍遙遊)」의 의미


 북녘 바다의 물고기 곤, 이 새가 변하면 붕.

- 붕이 남쪽 바다로 날아갈 때는 파도를 일으키기를 3천리, 회오리 바람을 타고 오르기를 9만 리, 6월의 대풍을 타고 남쪽으로 날아간다. p. 28.

  붕은 매미와 비둘기의 비웃음을 사지만, 이것들은 붕의 뜻을 모른다. 생과 사의 짧은 순간만을 사는 이것들은 대도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붕은 도를 깨친 존재이다.


- 만약 천지의 본연의 모습을 모르고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여 무한의 세계에 노니는 자가 되면 대체 무엇을 의존할 게 있으랴. 그래서 「지인에게는 사심(私心)이 없고, 신인(神人)이게는 공적이 없으며, 성인(聖人)에게는 명예가 없다.」고 한다. p. 34.


- 장님에겐 빛깔의 아름다움이 안 보이고 귀머거리에겐 음악의 황홀한 가락이 안 들리지만, 장님이나 귀머거리는 비단 육체에만 한하는 게 아닐세. 지식에도 장님과 귀머거리가 있네. 그게 바로 지금의 자네를 말함일세. 신인의 덕은 만물을 혼합해서 하나로 만들려는 거지. 세상 사람들은 그가 세상을 편안하게 만들기를 바라지만, 신인이 무엇 때문에 [보잘것 없는] 천하를 위해 애써 수고하려 하겠나.


소요한다는 것은 무궁한 경지에서 노닒을 뜻한다. 세상사에 집착하거나 얽매이지 않는다. 따라서 소요유는 ‘구속이 없는 절대의 자유로운 경지에서 노니는 것’을 뜻한다.

  현실 세계에서는 구별을 한다. 선악, 시비, 미추, 삶과 죽음, 귀천 등의 구별이 있다. 이것들은 마음을 혼란되게 하는 것일 뿐이다. 도의 세계, 그 경지에서는 이런 것들의 구별이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소요유의 경지란, 현실의 구별과 분별을 ‘초월한 완전히 자유로운 세계, 즉 대자연의 커다란 품에 안길 때 사람은 비로소 참된 행복을 얻게 된다’ (안동림, 해제, p. 25.)




2. 「제물론」의 구별 거부


  제물은 ‘만물(세상의 모든 사물)을 고르게’ 함을 이른다. 유일절대의 도의입장에서 현실 세계의 갖가지 현상, 시미, 선악, 미추, 정사(옳고 그름), 화복, 길흉, 각몽(깨어 있음과 꿈꿈), 생사 등을 명확히 부분하려는 상대적 가치 판단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의미한지를 밝힌다. 대붕은 절대자(자유인)의 조건은 만물이 하나임을 깨닫고 궁극적인 ‘하나’의 세계로 돌아가는 데에 있다고 주장한다. (안동림 해제, p. 45.)

  따라서 제물은 절대적인 명지(明智)의 경지이다. 여기에서는 인간에 의한 구별과 시비가 없어진다. 즉, 인간의 지식은 상대적 지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장자가 상대주의에 머무는 것은 아닌 듯하다. 왜냐하면 명지와 같이 절대적인 도를 파악하는 지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도의 경지는 인간의 상대성을 넘어선, 초월한 상태이다.


- (남곽자기가 말하기를) 지금 나는 스스로를 잊어 버렸다. 너는 그걸 알 수 있겠느냐. 너는 사람의 퉁소 소리는 들어도 땅의 퉁소 소리를 듣지 못했고, 또 땅의 퉁소 소리를 듣는다 해도 아직 하늘의 퉁소 소리를 듣지 못했겠지. p. 47.


스스로를 잊은 상태란, 망아의 상태, 즉, 만물과 하나가 된 경지. 일체의 구별이 없어진 상태. 근심과 걱정은 구별에서 온다. 자타의 구별로부터 자기의 이익을 생각하게 되고, 이로 인해 근심과 걱정이 생겨난다. 망아에 이르러 구별이 없어지면, 자기를 위해, 또는 타자를 위해 근심과 걱정을 할 필요도 없다. 평안과 안정의 상태에 이를 수 있다.

  위의 퉁소 소리 우화에서 ‘구멍은 인간이나 사물의 덧없음을, 소리는 시비를 일삼는 사고나 언설을, 바람은 좀처럼 포착하기 힘든 도를 나타내고 있다.’ 소리는 시끄럽게 주장을 펼치는 것이다. 하늘의 소리 입장에서 보면 그런 자잘한 소리는 덧없는 것이다. 하늘의 퉁소 소리는 다른 소리들이 날 수 있게 하는 존재의 근원인 셈이다.


- 훌륭한 지혜는 한가하고 너그러우나 하잘것없는 잔꾀는 사소한 일을 따지려 든다. 훌륭한 말은 담담하나 쓸데없는 잔말은 이러쿵저러쿵 시끄럽다. …… 탐욕에 빠져 버리면 본래의 [순수한 모습]으로 되돌아 갈 수는 없다. p. 51.


- 감정이 없으면 내가 있을 수 없고, 내가 없으면 감정이 나타날 데가 없다. 이것이야말로 진실에 가깝다고 하겠으나 무엇이 갖가지 감정을 생기게 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p. 53.


- 참된 주재자가 있는 모양이지만 그 모습은 볼 수가 없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용은 뚜렷한데 그 형태는 볼 수 없다. 실체는 있으나 모습이 없다. p. 54.


- (편자가 말하기를) “그대는 [덕이] 지극한 사람의 행동을 들은 일이 없는가? 간담을 잊고 눈귀[ 따위의 감각 기관]까지도 잊어버린 채 무심하게 세속밖에서 떠다니고 인위를 일삼지 않는 자연 속에 노닌다. p. 482.


- 무지 무심하여 의식을 작용시키지 않고 모든 생각을 버려 의심을 품지 않으며 온갖 것이 생기는 대로 따라, 가는 것은 전송하고 오는 것은 맞이하며 오는 것을 막지 않고 가는 것을 멈추지 않으며 배반하는 자를 그대로 버려두고 순순히 따르는 자를 그대로 두어 각기 힘을 다하도록 놓아둡니다. p. 493.




3. 도(道) 또는 도추(道樞)와 ‘제물론(齊物論)’의 의미


- 성인은 그런 방법에 의하지 않고 그것을 [절대적인] 자연의 조명에 비추어 본다. 그리고 커다란 긍정(긍정의 세계)에 의존한다. …… 저것과 이것이 그 대립을 없애 버린(대립을 초월한 절대적인) 경지, 이를 도추(道樞: 도의 지도리)라 고 한다. 지도리이기 때문에 원의 중심에 있으면서 무한한 변전에 대처할 수 있다. 옳다도 하나의 무한한 변전이며, 옳지 않다도 하나의 무한한 변전이다. 그러므로  [시비를 내세우는 짓은] ‘명지’의 처지에 서느니만 못하다. p. 59.


- 길이란 그 곳을 다니니까 생기게 마련이고, 사물은 이름을 붙이니까 그렇게 된다. p. 61.

도추의 경지는 절대적 자연의 이치에 이른 경지. 구별이 없고 자연과 만물이 하나가 된 경지. 여기에 구별을 붙이고 이름을 붙이는 것은 인간의 상대적 지식에 의한 것. 인간은 그러한 상대적 지식에 의해 구애되고 속박된다. 유가의 정명은 이름을 바르게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관점이지 절대적인 도의 관점은 아니다. 정명에 의하면 시비의 판단에 이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시비의 판단이 인간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


- 충분히 자기의 삶을 즐길 수 있으면 도에 가깝다고 한다. 모든 것을 자연에 맡길 뿐, 그러면서도 그런 따위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것을 도라 한다. p. 63.


- 애초 사물이란 없다고 생각하는 경지이다. (무의 경지), 지극하고 완전하여 더 이상 아무것도 덧붙일 수가 없다. 그 다음 경지는 사물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거기에 구별을 두지 않는 (사물과 자아가 하나라는) 경지이다. 그 다음은 구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거기에 시비를 고려하지 않는 입장이다. 시비가 나타나면 도가 파괴되는 원인이 되고, 도가 파괴되면 또한 편애(애증)가 이루어지는 원인이 된다. pp. 65-66.


→ 유가의 정명, 예악과 같은 것은 시비의 구별로부터 나옴. 인간을 구속하는 것.


- 자기의 판단을 가하지 않고 상시의 자연스러움에 맡기는 것, 이것을 참된 명지에 의거함이라 한다. p. 67. [만물제동의 경지]


- 도란 본래 한계가 없고, 말이란 애초 일정한 의미 내용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도를 말로 표현하려 하면] 구별이 생기게 된다. p. 72.


- 대체로 참된 도는 명칭으로 나타낼 수가 없고, 참된 변론은 말로 할지 못한다. …… 알지 못한다는 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최고의 지식이다. …… 이러한 경지를 보광(葆光: 속에 간직된 도)이라고 한다. p. 73.




4. 4장「인간세(人間世)」에서 나타나는 처세술로서의 ‘무용(無用)의 용(用)’


- 학문은 실용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 입장. 지난 시간에 살펴본 이이의 학문관은 그런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등용되어 나라에 쓰임이 있는 것이 사대부가 할 일이다. 글만 읽는 것은 무용하다고 했다. 그러나 장자는 처세에서 자연의 도에 맡긴다. 특히 지식은 경쟁심에서 생기고 지식이란 다투기 위한 도구(p. 105)라고 한다. 그래서 노자의 ‘절성기지 민리백배’라는 말을 따른다.


- 격언에 “군주의 명령을 고치지 말라. 성공하려고 무리하게 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 그저 사물의 움직임에 따라 마음을 유유히 자유롭게 풀어 놓고, 어쩔 수 없는 상태에 몸을 맡긴 채 중도를 지켜가는 것이 제일입니다. p. 126.


- 내가 선생을 생각해 보니 선생은 자기 지식을 꾸며서 어리석은 사람을 놀라게 만들고 스스로의 행실을 닦아 남의 잘못도니 행동을 돋보이게 하며 눈부시게 마치 해나 달을 들고 가기라도 하듯 했을 거요. 때문에 재난을 면하지 못하오. (대공임이 공자에게 한 말) p. 495.

  장자는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 순응의 사상, 즉 부득이한 데에 몸을 맡기고 소요자적하라는 장자 본래의 사상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 쓸모없는 상수리나무 이야기는 무용의 용. 처세술. 인간 세상에 쓸모가 없어야 천수를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나는 그 쓸모 있음과 없음의 중간에 머물고 싶다. 그러나 쓸모 있음과 없음의 중간이란 도와 비슷하면서도 실은 참된 도가 아니므로 화를 아주 면하지는 못한다. 만약 [쓸모 있음과 없음 따위를 초월한] 자연의 도에 의거하여 유유히 노닌다면 그렇지 않게 된다. p. 487.


- 모순되어 보이는 장자의 말: 무한한 자연의 도의 경지에 노니라 한다. 그러나 편자와 손휴의 이야기에서 편자가 말하기를 “만약 저 새를 키우는 방법으로 새를 보양하려면 깊은 숲에 살게 하고 강이나 호수에 떠 있게 하며 제멋대로 먹게 하여 새의 본성에 따라 유유히 노닐게 하는 것뿐이다. 지금 손휴는 소견이 좁은 사람인데 내가 지인의 덕을 말해 주었으니 이건 비유컨대 생쥐를 수레나 말에 태우고 메추라기를 종소리나 북소리로 즐겁게 해주려 한 짓과 같아.” p. 484.




5. 장자의 이상적 인간상인 진인(眞人) (「대종사(大宗師)」 참고)


- 진인이 있어야만 비로소 참된 지식이 있게 마련이다. …… 옛날의 진인은 역경을 [억지로] 거역하지 않았고 성공을 자랑하지 않았으며, 아무 일도 꾀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람은 잘못을 해도 결코 후회하지 않고, 잘 되어도 자랑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은 높은 곳에 올라가도 두려워하지 않고,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으며, 불에 들어가도 뜨겁지 않다. [그] 지식이 [세속을 초월하여 자연의] 도이에 도달할 수 있으므로 그런 것이다. p. 176


- 옛날의 진인은 삶을 기뻐할 줄 모르고, 죽음을 미워할 줄도 모른다. 태어남을 기뻐하지 않고, 죽음을 거역하지도 않는다. 무심(無心)히 자연을 따라가고, 무심히 자연을 따라올 뿐이다. 그 [태어난] 시초를 모르고, 그 [죽은 뒤]의 꿑을 알려 하지 않는다. 삶을 받으면 그것을 기뻐하고, 죽으면 그것을 [제자리로] 돌려보낸다. 이런 경지를 「분별심으로 도를 버리지 않고, 인위로 자연을 돕지 않음」이라 하고, 이런 [경지에 있는] 사람을 진인이라 한다. pp. 178-179.


- [외계의] 사물을 [그 자체에 맡겨 두지 않고] 뜻대로 하기를 바라는 자는 성인이 아니다. [특정한 것에 대한] 친밀감이 있는 자는 인자(仁者)가 아니다. 자연을 [인위적인] 시간으로 구분하는 자는 현자가 아니다. 이(利)와 해를 구별하는 자는 군자가 아니다. 명예를 좇아 자기를 잃는 자는 선비가 아니다. 몸을 망치며 참된 삶을 잃고 있는 자는 [남에게 부림을 받을 뿐] 남을 부리지 못하는 자이다. pp. 180-181.


- 그 하나의 입장으로 [절대적인] 하늘(자연)의 무리가 되고, 하나가 아닌 입장으로 [차별적인] 사람의 무리가 된다. 하늘과 사람이 서로 다투지 않고 [조화되어] 있다. 이런 사람을 진인이라 한다. p. 185.


- 자연은 우리에게 모습을 주었다. 또 우리에게 삶을 주어 수고하게 하고 우리에게 늙음을 주어 편안하게 하며, 우리에게 죽음을 주어 쉬게 한다. 그러므로 스스로의 삶을 좋다고 하면 곧 스스로의 죽음도 좋다고 하는 셈이 된다. p. 188.


- 성인(聖人)은 그 무엇도 빠져 나갈 수 없는 [만물을 포함한] 경지에서 노닐며 만물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려 한다. p. 190.




6. 장자의 자유주의 철학, 긍정적 함의와 한계


  긍정적 측면은, 구별의 철폐를 통해, 만민 평등을 넘어 만물평등에까지 이르는 평등주의를 추구한다. 이것은 신분적 질서의 철폐를 위한 혁명적 사상이라 할 만하다. 유교적 명분 논리를 비판하는 것은 명분에 의한 자유 억압을 비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상대주의적 지식을 폐하고, 절대적인 지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속에서 자연과 합일되고 만물제동이 된 상태가 된다. 이것은 육체를 잊는 망아, 자신의 존재도 잊는 망아이다. 곧 정신의 절대적 자유를 추구한다. 이것은 내면적인 관념적 해방에 지나지 않는다. 정신 밖의 현실 세계는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 독단의 비판, 구속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기도취적일 뿐이다.

  또한 인간세의 처세술은 현실 순응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단지 천수를 누리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굳이 물아의 경지, 절대적인 도의 경지에 이를 필요가 있겠는가. 물아가 육체의 욕망을 잊는 상태임에도 육신의 보존을 말하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 모순되어 보이는 장자의 말: 무한한 자연의 도의 경지에 노니라 한다. 그러나 편자와 손휴의 이야기에서 편자가 말하기를 “만약 저 새를 키우는 방법으로 새를 보양하려면 깊은 숲에 살게 하고 강이나 호수에 떠 있게 하며 제멋대로 먹게 하여 새의 본성에 따라 유유히 노닐게 하는 것뿐이다. 지금 손휴는 소견이 좁은 사람인데 내가 지인의 덕을 말해 주었으니 이건 비유컨대 생쥐를 수레나 말에 태우고 메추라기를 종소리나 북소리로 즐겁게 해주려 한 짓과 같아.” p. 484.

  즉, 절대적 자유의 경지에는 범인은 이르지 못한다. 그렇다면 장자의 주장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제6장 「대종사」


대종사의 앞부분은 진인에 대한 규정이 나와 있고, 후반부에는 도에 따르는 삶이 생과 사를 초월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와 있다.


- 도란 실제로 [겉에] 나타나는 작용이 있고, [그것이] 존재한다는 증가가 있으나 행동도 없고 형체도 없다. [그것을] 전할 수는 있으나 [물건처럼] 주고받을 수는 없다. 터득할 수는 있으나 볼 수는 없다. 스스로 [모든 존재의] 근본이 되어 있고, 천지가 아직 생기기 전의 옛날부터 본래 존재하며, 귀신이나 상제를 영묘하게 하고, 하늘과 땅을 낳고 있다. p. 191.


- [자여(子輿)는] 대답하기를, …… 대체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건 그런 때를 만났음이며, 삶을 잃는다는 것은 [죽음의] 도리(道理)를 따름이다. 태어난 때에 편안히 머물고 자연의 도리에 따르면, 슬픔이나 즐거움(감정)이 끼어들 수 없다네. 이것이 옛날에 말하던 현해(懸解: 속박으로부터의 해방)라는 걸세. 그런데 스스로 [그 속박에서] 풀려나지 못하는 건 [외계의] 사물이 얽혀 매듭져 있기 때문이지. 대체 사물이 자연의 도리에 이기지 못한다는 건 옛날부터 사실일세. 내 또한 어찌 [이 병을] 싫다 하겠나. p. 199.


- 자래가 대답했다. 「…… 자연은 내게 형체를 주었지. [그리고] 삶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고, 늙음으로 나를 편안하게 하며, 죽음으로 나를 쉬게 해주네. 그러므로 [삶과 죽음이란 이렇듯 하나로 이어진 것이니], 내 삶을 좋다 함은 바로 내 죽음도 좋다고 하는 게 된다네.」 p. 201.


안동림 해석: 장자는 인간의 변생(變生)과 생사의 초월이라는 문제를 말하고 있다. 생사를 초월한다 함은 자연에 순종한다는 뜻이다. p. 202.


- [공자가 말하기를] 자기가 말하는 이 「자기」라는 것이 과연 자기인지 어찌 알겠느냐. 그런데 또 자네는 꿈에 새가 되어 하늘에 이르기도 하고, 꿈에 물고기가 되어 연못 속으로 가라앉기도 하겠지. [그러면]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과연] 깨어 있으며 그러는 건지, 꿈꾸며 그러는 건지를 알 수가 없지 않느냐. 남의 결점을 고자질함은 웃는(포섭하는) 것만 못하고, 웃음을 즐김은 사물의 추이(推移)에 [그래도] 맡기는 일만 못하다. 추이에 편히 [몸을] 맡긴 채 변화를 따르면, 곧 고요한 하늘(자연)과 하나가 되는 [절대의] 경지에 들게 된다.


- [허유(許由)가 말하기를] 내 스승, 내 스승이란 [도는] 만물을 이뤄 놓으면서도 의롭게 여기지 않고, 만세에 미치는 혜택을 베풀면서도 어질다 생각하지 않는다. 아득한 옛날보다 더 오래 살면서도 늙었다 하지 않고, 천지를 싣고 감싸서 갖가지 모양을 조각해 내면서도 재주라고 여기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마음을 노닐게 하는 경지일세. p. 214.


- [안회(顔回)가 말하기를] 「저는 좌망(坐忘)하게 됐습니다.」 중니는 놀라서 물었다. 「무엇을 좌망이라고 하느냐?」 안회가 대답했다. 「손발이나 몸을 잊고, 귀와 눈의 작용을 물리쳐서, 형체를 떠나 지식을 버리고 저 위대한 도와 하나가 되는 것, 이것을 좌망이라 합니다.」 중니는 말했다. 「[도와] 하나가 되면 좋다 싫다 [하는 차별 따위]가 없어지고, [도와 하나가 되어] 변하면 한 군데 집착하지 않게 된다. 너는 정말 훌륭하구나. 나도 네 뒤를 따라야겠다.」 p. 216.



제 8장 변무: 인의에 대한 논박


- 물오리는 비록 다리가 짧지만 그것을 [길게] 이어 주면 괴로워하고, 두루미의 다리는 길지만 그것을 [짧게] 잘라 주면 슬퍼한다. p. 246.


- 세상에서 인덕이 있다는 사람들은 태어날 때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떨쳐 버리고 부귀를 탐하고 있다. 때문에 인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참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p. 247.


- 예악에 따라 몸을 굽히고, 인의에 순순히 좇아 천하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은 본래의 일정한 모습을 잃는 짓이다. p. 248.

안동림 주: 자연 그대로의 인간의 본성을 인의 따위 자로 규정해 버리려는 유가는 바로 그 어떤 구속도 배척하는 장자에게는 그야말로 강렬한 혐오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p. 249.


- 내가 말하는 선이란 인의가 아니라, 본성의 덕에 순순히 따른다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선이란 흔히 말하는 인의가 아니라, 본래 그대로의 모습에 맡긴다는 뜻이다. p. 252.



제9장 마제


- 대체 지극한 덕이 이루어진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새나 짐승과 함께 살고, 만물과 함께 나란히 모여 있었다. [그런데] 어찌 군자와 소인[이라는 차별]을 헤아리겠는가! …… 성인이 나타나게 되자, 애써 인을 행하고 허둥지둥 의를 행해서 온 천하가 비로소 의혹을 품게 되었다. 제멋대로 음악을 연주하고 번잡하게 예의를 반들어 천하에 비로소 구별이 생기게 되었다. p. 260.


- 성인이 나타나게 되자, 예의나 음악에 따라 몸을 굽혀서 그것으로 천하[사람]의 겉모습을 바로잡으려 하고, 인의를 내걸어 천하[사람]의 마음을 달래려고 했다. 그러자 백성은 애써 지식에 몰두하고 다투어 이득을 좇게 되었는데, [이제는] 막을 수가 없다. 이 역시 성인의 잘못이다. p. 262.



제10장 거협: 인간의 지혜 비판. 성을 끊고 지혜를 버려라.


-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지자(知者)란 큰도둑을 위해 [물건을] 모아두는 자가 아니라고 하겠는가. 소위 성인이란 큰도둑 때문에 [물건을] 지키는 자가 아니라고 하겠는가. p. 268.


- 전성자는 하루 아침에 제나라 군주를 죽이고 그 나라를 훔치고 말았다. 훔친 것이 그 나라뿐이었을까? 아울러 성인과 지자가 이룩한 법까지도 훔쳐 버렸다.


- (도척이 말하기를) 어디서나 도 없는 곳이 있겠느냐? 방안에 무엇이 있는지 잘 알아맞히면 성(聖)이고, 스며들 때 선두에 서는 게 용이다. 나올 때 맨 뒤에 있으면 의이고, 될지 안 될지를 아는 게 지이며, 분배를 공평하게 함이 인이다. p. 270

- 성인이 죽지 않으면 큰도둑이 없어지지 않는다. 비록 성인을 존중하고 천하를 다스린다 해도 결국 그것은 도척 같은 인간을 존중하고 이롭게 하는 셈이 된다. pp. 270-271.


- 인의로 [백성을] 바로잡으려 하면 그 인의도 아울러 훔쳐 버린다. p. 272.a


- 성인을 근절하고 지혜를 내버리면 큰도둑은 없어진다. p. 273.

[<노자> 제 19장: 절성기지 민리백배.]


- 증삼이나 사추의 행위를 떼어 내고, 양주나 묵적의 입을 막으며 인의를 물리치면 비로소 온 천하의 덕은 현묘한 도와 하나가 된다. p. 275.


- 지혜를 좋아한다는 것이 온 천하를 이렇듯 혼란하게 하다니 참으로 심한 짓이다. p. 278.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