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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국가•정체』, 박종현 역, 서광사, 1997 

 


1. 트라시마코스의 올바름


  “저로서는 올바른 것(to dikaion)이란 ‘더 강한자의 편익(이득)’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 주장합니다.” 338b (p. 82)

  “적어도 법률(nomoi)을 제정함에 있어서 각 정권(arche)은 자기의 편익을 목적으로 하여서 합니다. 민주 정체는 민주적인 법률을, 참주 정체는 참주 체제의 법률을,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정치 체제들도 다 이런 식으로 법률을 제정합니다. 일단 법 제정을 마친 다음에는 이를, 즉 자기들에게 편익이 되는 것을 다스림을 받는 자들에게 올바른 것으로서 공표하고서는, 이를 위반하는 자를 범법자 및 올바르지 못한 짓을 저지를 자로서 처벌하죠. 그러니까 보십시오. 이게 바로 제가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나라에 있어서 동일한 것이, 즉 수립된 정권의 편익이 올바른 것이지요. 확실히 이 정권이 힘을 행사(지배)하기에, 바르게 추론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어디에서나 올바른 것은 동일한 것으로, 즉 더 강한 자의 편익으로 귀결합니다.”  338d-339a (pp. 83-84)


소크라테스의 반론: 트라시마코스는 통치자들에게 복종하는 것을 올바른 것이라 주장한다. 그런데 통치자들도 실수를 한다. 어떤 법률은 옳게 제정하지만 어떤 법률은 옳게 제정하지 못한다. 이때 옳게 제정한 것은 자신들에게 편익이 되도록 제정한 법률이고, 옳지 못하게 제정한 것은 통치자들 자신들에게 편익이 되지 못하게 제정한 법률이다. 따라서 트라시마코스의 올바름에 대한 정의에 따르면, 통치자들에게 편익이 되지 못하는 것을 따르는 것도 올바른 것이 된다. 따라서 트라시마코스의 주장은 자기논박적이다. 339b-339d (pp. 84-85)


트라시마코스의 재반론: 전문가가 실수를 하는 때에는 전문가가 아니다. 실수를 하지 않는 한에서만 전문가이다. 그래서 “그가 통치자인 한에 있어서는, 실수하지 않으며, 실수를 하지 않는 자로서 자신을 위해서 최선의 것을 정하게” 된다. 341a, (p. 88)


소크라테스: 어떤 기술은 그 기술들이 관여하는 대상의 편익을 위해 존재한다. “그 어떤 전문적지식(episteme)도 더 강한 자의 편익을 생각하거나 지시하지 않고, 오히려 더 약한 자이며 제 관리를 받는 자의 편익을 생각하며 지시”한다. 342d, (p. 92)


소크라테스: “그러니까, 트라시마코스 선생, 그 밖의 다른 어떤 통솔(다스림, arche)을 맡은 사람이든, 그가 통솔자(다스리는 자)인 한은, 자신에게 편익이 되는 걸 생각하거나 지시하지 않고, 통솔(다스림)을 받는 쪽 그리고 자신이 일해 주게 되는 쪽에 편익이 되는 걸 생각하거나 지시하오. 또한 그가 말하는 모든 것도, 그가 행하는 모든 것도 그 쪽을 염두에 두고서 그 쪽에 편익이 되고 적절한 것을 염두에 두고서 말하고 행하오.” 342e, (pp. 92-93)


이에 대해 트라시마코스는, 양이나 소를 치는 이들이 양이나 소에게 좋은 것을 생각하며 이들에게 좋은 것을 해주는 것이 사실은 양이나 소를 위한 것이 아니라 양이나 소를 치는 이들을 위한 것이라 한다. 통치술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그래서 “올바름 및 올바른 것이란실은 ‘남에게 좋은 것’, 즉 더 강한 자 및 통치자의 편익이되, 복종하며 섬기는 자의 경우에 있어서는 ‘자신에게 해가 되는 것’인 반면에, ‘올바르지 못함’은 그 반대의 것이어서, 참으로 순진하고 올바른 사람들을 조종하거니와,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은 저 강한 자에게 편익되는 것을 행하여, 그를 섬기며 그를 행복하게 만들지, 결코 자신들을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한다”고 주장한다. 343b-d (pp. 93-94)


소크라테스는 트라시마코스의 목자 논변에 반박한다. 그는 “모든 다스림(통솔)은 ,그것이 다스림인 한은, 나라의 다스림이든 또는 사사로운 다스림이든 간에, 다름 아닌 다스림을 받는 쪽 그리고 돌봄을 받는 쪽을 위한 최선의 것을 생각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345d-e (p. 98). 소크라테스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아무도 자진해서 통치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그 밖의 다른 다스림에서도 자진해서 다스리려 하지 않으며 보수를 요구한다는 경험적 사실 때문이다. 345e, p. 98.


소크라테스는 이어, “각각의 기술이 제공해 주는 이득은 그 특유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346c (p. 99) 그래서 전문가가 얻는 보수와 같은 이득은 부수적 이득이라 주장한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통치자들이 얻는 이득은 부수적 이득일 뿐이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소크라테스는, “그 어떤 기술(techne)이나 다스림(통치: arche)도 자기에게 이득이 되는 것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줄곧 말해 왔듯, 그 다스림을 받는 쪽에 이득이 되는 것을 제공하며 지시를 내린다는 것, 다시 말해서 더 약한 자의 편익을 생각하지 더 강한 자의 편익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말이오. 보시오, 트라시마코스 선생! 바론 그런 까닭으로 해서 방금도 내가 말했던 것이오. 아무도 자진해서 다스리는 일(통치)을 맡아 남의 나쁜 일들을 바로잡는 일을 하려 들지는 않고, 그것에 대한 보수를 요구하는데, 이는 자신의 기술로 훌륭하게 일을 처리하고자 하는 자는 결코 자신을 위한 최선의 것을 하지도 않으며, 또한 자신의 기술에 다라 지시를 내릴 경우에도, 그런 것을 지시하는 일도 없고, 오히려 그 다스림을 받는 쪽을 위한 최선의 것을 하고 지시하기 때문이라고 말이오. 다스리는 일(관직)을 맡으려 하는 사람들에게 보상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로 해서인 것 같소. 그럿이 돈이든 명예이든 간에, e는 그 일을 맡으려 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게 벌이 되는 간에 말이오.”라고 말한다. 346e-347a (p. 100)



소크라테스는 올바른 사람이 올바르지 못한 사람보다 더 행복함을 논증하고자 한다. 347e (p. 102)

우선, 소크라테스는 “나라나 군대, 강도단이나 도둑의 무리, 또는 어떤 집단이 올바르지 못하게 뭔가를 공동으로 도모할 경우에, 만약에 그들이 자기네기리 서로에 대해 올바르지 못한 짓을 저지른다면, 그 일을 그들이 조금인들 수행해 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351c (p. 112) 그래서 “올바르지 못함의 기능(ergon)이 이런 것이라면, 즉 그것이 깃들인 곳에는 증오를 생기게 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자유민들 사이에서건 도는 노예들 사이에서건 간에 일단 생기게 되면, 그것은 서로들 미워하고 대립하게끔 만들고, 다라서 그들로 하여금 함께 어우러져 일을 해낼 수가 없도록 만”든다고 주장한다. 351d-e (p. 112) 소크라테스는 이를 한 개인 차원에도 적용한다. 그래서 “올바르지 못함은 한 개인 안에 깃들이게 되었을 때에도, 그것이 본성상 하게 되어 있는 바로 그런 작용들을 하게 될 것으로 나는 생각하오. 첫째로, 그것은 당사자로 하여금 자기 자신에 대해서 갈등이 생기게 하고 한 마음이 되지 못하게 함으로써 아무것도 해낼 수가 없도록 만들 것이며, 다음으로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그리고 올바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적이 되게끔 만들고 말 것이오.” 352a (p. 113)

소크라테스는 이를 기능, 특히 혼의 기능으로부터 논증하고자 한다.

“어떤 기능이 부여되어 있기도 한 각각의 것에는 ‘훌륭한 상태’(훌륭함: arete) 또한 있다”고 한다. 353b (p. 116). 그래서 “‘그 특유의 훌륭한 상태’에 의해서는 그 기능이 제 할 일들을 훌륭하게 수행하게 되지만, ‘나쁜 상태’에 의해서는 나쁘게 수행하게 되는 것”이라 한다. 353c (p. 117) 이를 혼에 적용하여 “나쁜 상태의 혼으로서는 ‘잘못’ 다스리고(통솔하고) 보살피겠지만, 훌륭한(좋은) 상태의 혼으로서는 이 모든 일을 ‘훌륭하게(잘) 해내게’ 될 게 필연적”이라 주장하며 353e (p. 118), “우리는 앞서 ‘올바름’(올바른 상태, 정의)은 혼의 ‘훌륭한 상태’(훌륭함, 덕)이지만, ‘올바르지 못함’은 그것의 ‘나쁜 상태’ (나쁨, 악덕)라는 데 동의”했음을 상기시키면서 353e (p. 118), “올바른 혼과 올바른 사람은 훌륭하게(잘) 살게 되겠지만, 올바르지 못한 사람은 잘못 살게 될 것”이라 주장한다. 353e (p. 118). 결과적으로 “훌륭하게(잘) 사는 사람은 어쨌든 복받고 행복할 것이나, 그렇지 못한 이는 그 반대일 것”이며 354a (p. 118), “올바른 사람은 행복하되, 올바르지 못한 사람은 불행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354a (p. 119)






2. 플라톤의 소크라테스는 『국가』 2권에서 올바름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이론적으로(in theory; 말로) 세워 보는 국가


“어쩌면 올바름은 한결 큰 것에 있어서 더 큰 규모로 있을 것이며, 또 알아내기도 더 쉬울 걸세. 자네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먼저 나라들에 있어서 올바름이 어떤 것인지를 탐구하도록 하세나.” 368e-369a (p. 146)

“만약에 우리가 이론상으로 수립되고 있는 한 나라를 관찰하게 된다면, 우리는 이 나라의 올바름과 올바르지 못함 역시 생겨나고 있는 걸 보게 되겠지?” 369a (p. 146)

“내가 생각하기로는 나라가 생기는 것은 각자가 자족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것이 필요하게 되기 때문일세.” 369b (p. 146)

“나라를 수립시키는 것은 우리의 ‘필요’가 하는 일인 것 같으이.” 369c (p. 147)

“여러 가지 필요 중에서도 첫째이며 가장 중대한 것은 생존을 위한 음식물의 마련일세.”  369d (p. 147)

“그리고 둘째 것은 주거의 마련일 것이며, 셋째 것은 의복 및 그와 같은 유의 것들의 마련일세.” 369d (p. 147)


공동선(common good)을 지향하는 국가

소크라테스는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자신의 일(ergon)을 모두를 위한 공동의 것(koinon)으로 제공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369e(pp. 147-148). 그래서 “각 부류의 사람들이 생산하게 되는 물건들을 이 나라 자체 안에서는 서로들 어떻게 나누게 되겠는가?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협력(공동) 관계’(koinonia)를 맺고 나라를 수립했었지.”라고 말한다. 371b (p. 151. 즉, 플라톤의 소크라테스가 세운 나라는 협력 공동체이다. 노동분업에 의해 각장의 필요를 서로서로 충족시켜 주는 것이다.


“우리가 이 나라를 수립함에 있어서 유념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어느 한 집단이 특히 행복하게 되도록 하는 게 아니라, 시민 전체가 최대한으로 행복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행복한 나라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소수의 사람들을 따로 분리해 내서 이들을 이 나라에서 행복한 사람들이게끔 함으로써 하는 것이 아니라, 온 나라를 행복하게끔 함으로써 하는 것이네.” 420b-c (p. 258)


“나라 전체를 염두에 두고서, 나라에 그런 행복이 생기도록 지켜보는 한편, 이들 보조자와 수호자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일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일꾼들로 되게끔 만들고 설득해야 될 뿐만 아니라, 그 밖의 다른 모든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함으로써, 나라 전체가 강대해지고 훌륭하게 기반이 잡히게 되었을 때에야, 각각의 집단으로 하여금 제 각각의 성향이 제공하는 대로 행복에 관여하도록 허용해야만 하는 것일지를 우리는 검토해야만 하네.” 421b-c (p. 260)






3. 플라톤의 소크라테스가 세운 국가의 세 계급


“각각의 것이 더 많이, 더 훌륭하게, 그리고 더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한 사람이 한 가지 일을 ‘성향에 따라’(kata physin) 적기에 하되, 다른 이들에 대해서는 한가로이 대할 때에 있어서이네.” 370c (p. 149)


수호자

“수호자들의 일(기능: ergon)은 가장 중요한 것이기에, 그만큼 다른 일들에 대해서는 최대한의 한가로운 태도를 요구하는 반면에, 그 자체로는 최대의 기술과 관심을 도한 요하는 것일세.” 374d-e (p. 159)

“장차 우리 나라의 ‘훌륭하고도 훌륭한’ 수호자로 될 사람은 의당 천성으로 지혜를 사랑하며 격정적이고 날래며 굳셀 걸세.” 376c (pp. 163-164)

수호자들에게 시가와 체육 등을 교육한 다음에 할 일은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가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라 한다. “그 다음으로 우리가 결정해야 할 것은 무엇이겠는가? 그야 바로 이들(수호자들) 중에서 누가 ‘다스리고’, 또 누가 ‘다스림을 받을’ 것인가 하는게 아니겠는가?” 412b (p. 243) 그래서 “통치자들은 수호자들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사람이어야만 되니까, 이들은 나라를 가장 잘 지키는 사람들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412c (p. 243)

“이 모든 경우에 있어서 자신을 단정하고 조화로운 사람으로 드러내 보인다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 가장 유용한 사람일 걸세. 그리고 아이들 사이에서나 청연들 사이에서 그리고 어른들 사이에서 언제나 그런 시험을 거쳐 더럽혀지지 않은 것으로 판명된 사람을 우리는 나라의 통치자 및 수호자로 임명해야 하네.” 413e-414a (p. 246)

“그러니까 이들이야말로 외부의 적들에 대하여서도 그리고 내부의 동료들에 대하여서도 참으로 ‘완벽한 수호자들’이라 불러 지당할 것인즉, 이들은 내부의 동료들이 나라를 해칠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하는 한편으로, 외부의 l적들이 그럴 수도 없도록 하겠지? 하지만, 이제껏 우리가 수호자들이라 불러 왔던 그 젊은이들은 통치자들의 신념을 위한 보조자들 및 협력자들이라 불러 마땅할 테고?” 414b (p. 247)

이 대목에서 보듯이 수호자에서 통치자와 보조자가 나타난다.

(신이 통치자는 황금, 보조자는 은, 생산자(농부와 장인들)에게는 청동을 섞어서 태어나게 했다는 설화. 415a-c (pp. 249-250).


따라서 플라톤의 소크라테스가 세운 국가는 통치자로서의 수호자, 보조자로서의 수호자, 생산자 계급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보조자인 수호자들이 시민들을 해치지 않게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제도를 제안한다.

“첫째로, 아무도 전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닌 한, 어떤 사유 자산도 가져서는 아니 되네. 그 다음으로는, 누구든 원하는 자가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는 그런 집이나 곳간은 이들 중의 누구에게도 있어서는 아니 되네. 그리고 생활 필수품은, 절제할 줄 알고 용감한 전사들이 필요한 정도만큼의 것을 다른 시민들한테서 이들의 수호에 대한 보수로서 일정하게 정하여 받되, 이는 이들의 연간 소요량을 초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을 정도의 것이어야만 하네. 또한 이들은 공동 식사를 하면서, 마치 야영하는 군인들처럼, 공동으로 생활해야만 하네. 그런가 하면 우리는 이들에게 일러 주어야 할 것이니, 이들은 자신의 혼 안에 신들이 준 신성한 금은을 언제나 지니고 있어서, 이에 더하여 속인의 금은이 전혀 필요하지 않으며, 도한 신에게서 받은 그 소유물을 사멸하는 인간의 소유물과 섞음으로써 더럽히는 것은 경건하지 못한 짓인데, 이는 다중의 화폐와 관련해서는 하고많은 불경한 일들이 일어났지만 이들의 것은 오염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일세.”416d-417a (p. 252)






4. 플라톤의 4주덕, 특히 올바름에 대하여


“물론 이 나라가 지혜롭고 용기 있으며 절제(절도) 있고 또한 올바를 것이라는 건 아주 분명하이.” 427e (p. 274)


1. 지혜(sophia):

“우리가 자세히 말한 이 나라는 정말로 지혜로운 나라일 것으로 내게는 생각되네. 그건 이 나라가 분별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428b (p. 274)

“그렇지만 바로 이것, 즉 분별은 일종의 앎(episteme)인 것이 분명하이. 사람들이 분별 있게 되는 것은 무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앎에 의해서라는 게 확실하겠기 때문일세.” 428b (p. 274)

“이제 막 우리에 의해서 수립된 이 나라에 사는 시민들 중의 어떤 사람들에겐 이런 어떤 지식이 있는가? 즉 이 나라의 부분적인 것들 중의 어떤 것에 관련해서가 아니라, 이 나라 전체와 관련해서 어떤 방식으로 이 나라가 대내적으로 그리고 다른 나라들과 가장 잘 지낼 수 있을 것인지를 숙의 결정해 주게 될 그런 지식 말일세.” 428c-d (p. 275) (이것이 수호술이다.)

이에 따라 소크라테스는 국가가 지혜로운 것은 수호자들이 수호술이라는 지혜를 갖고 때문이라 본다.


“지혜로운 사람이라 부르게 되는 것은 그 작은 부분, 즉 각자 안에서 지배를 하며 이것들을 지시한 그런 부분에 의해서이니, 이 부분은 그 나름으로 이들 세 부분의 각각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이들 셋으로 이루어진 공동체 전체를 위해서 유익한 것에 대한 지식을 그 자신 속에 지니고 있네.” (개인의 혼의 지혜와 관련하여)


2. 용기(andreia)

“내 말은 용기란 일종의 보전이란 뜻일세.” 429c (p. 277)

“법에 의한 교육을 통해, 두려워할 것들이 무엇무엇이며 또 어떠한 것들인지, 이와 관련해서 생기게 된 소신(판단)의 보전일세.” 429c (p. 277)

“두려워할 것들과 두려워하지 않을 것들에 관한 ‘바르고 준법적인 소신(판단)’의 지속적인 보전과 그런 능력을 나로서는 용기라 부르며 도한 그렇게 간주하네.” 430b (pp. 278-279)

“나라를 위해 전쟁을 하고 군인으로 복무하는 이 부류 이외의 다른 어떤 걸 보고서 그 나라를 비겁한 나라니 또는 용기 있는 나라니 하고 말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429b (pp. 276-277)

즉, 소크라테스는 한 국가가 용기 있는 것은 수호자들이 용기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3. 절제

“절제란 어쩌면 일종의 질서요, 어떤 쾌락과 욕망의 억제일 걸세.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이긴다’(자기 자신보다 더 강하다)는 표현을 써서 ... 말하듯이 말일세. 430e. (pp. 280-281)

“혼과 관련해서 인간 자신 안에는 한결 나은 것과 한결 못한 것이 있어서, 성향상 한결 나은 부분(면)이 한결 못한 부분을 제압할 경우, 이를 가리켜 ‘자기 자신을 이긴다’고 말하는데, 이는 어쨌거나 칭찬하는 것일세.” 431a (p. 281)

“단순하며 절도 있는 욕구는, 지성(nous)과 바른 판단을 아울러 갖춘 헤아림(추론)에 의해 인도되는 것이어서, 소수의 사람에게서, 성향에 있어서도 가장 훌륭하지만 교육도 가장 훌륭하게 받은 사람들에게서 만나 보게 될 걸세.” 431c (p. 282)

“이곳에서는 다수의 미천한 사람들의 욕구가 소수의 한결 더 공정한 사람들의 욕구와 슬기에 의해 제압되고 있”다. 431c-d (p. 282) 그래서 욕구가 제압되는 것을 절제라 주장한다.

“그건 용기나 지혜는 그 각각이 그 나라의 어느 한 부분에만 있어도, 뒤엣것은 그 나라를 곧 지혜로운 나라로, 반면에 앞엣것은 그걸 용기 있는 나라고 되게 하지만, 절제는 그러질 못하기 때문일세. 절제는 정말로 나라 전역에 걸치는 것으로서, 말하자면 협화음처럼, 가장 약한 소리를 내는 사람들과 가장 강한 소리를 내는 사람들, 그리고 중간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같은 노래를 합창함으로써 전음정을 통하여 마련되는 것일 세. ... 이 ‘한마음 한뜻’이, 즉 나라에 있어서나 한 개인에 있어서 성향상 한결 나은 쪽과 한결 못한 쪽 사이에 어느 쪽이 지배를 해야만 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절제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옳을 걸세.” 431e-432b (pp. 283-284)

절제는 시민 모두에게 요구되는 것으로, 피지배자는 복종을, 지배자는 지배를 하는 것이다.


4. 올바름


“우리가 이 나라를 수립하기 시작할 당초부터 언제나 준수해야만 된다고 주장했던 바로 그게, 또는 그것의 일종이 ‘올바름’(올바른 상태, 정의)일세. ... 각자는 자기 나라와 관련된 일들 중에서 자기의 성향이 천성으로 가장 적합한 그런 한 가지에 종사해야 된다는 것이었네.” 433a (p. 285)

“또한 더 나아가서는 ‘제 일을 하고 참견하지 않는 것’이 올바름(올바른 상태)이”다. 433a (p. 285)

“이것이, 즉 ‘제 일을 하는 것’이 어떤 식으로 실현되는 게 ‘올바른 상태’(올바름)인 것 같으이.” 433b. (p. 286)

“‘제 것의 소유’와 ‘제 일을 함’이 올바름(올바른 상태)이라는 데 합의를 보았네그려.” 433e-434a (p. 288)


소크라테스는 이어서 국가에서의 올바름을 개인에게서의 올바름과 동일한 것으로 주장한다.

“‘올바름’의 개념(형상) 자체의 관점에서는 올바른 사람은 올바른 나라와 아무런 차이도 없고, 닮은 것일 걸세.”  435b (p. 290)

“실은 한 나라가 올바른 나라인 것으로 생각된 것은 이 나라 안에 있는 성향(physis)이 다른 세 부류가 저마다 제 일을 했을 때이며, 그리고 또한 이 나라가 절제 있고 용기 있으며, 또한 지혜로운 나라인 것도 바로 이들 세 부류가 처한 상이한 처지(감정 상태: pathos)와 상이한 습성(성격 상태: hexis)으로 인하여서였네.” 435b (pp. 290-291)

“개인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이와 똑같은 종류들을 자신의 혼 안에 지니고 있어서, 나라에 있어서의 그것들과 똑같은 처지로 인해서 나라의 경우와 똑같은 이름들로 불릴 자격이 당연히 있다고 우리는 판단할 걸세.” 435b-c (p. 291)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혼을 세 부분으로 나눈다.

“혼이 헤아리게(추론하게)되는 부분을 혼의 헤아리는(추론적, 이성적) 부분이라 부르는 반면, 그것으로써 혼이 사랑하고 배고파하며 목말라하거나 또는 그 밖의 다른 욕구들과 관련해서 흥분 상태에 있게 되는 부분은, 어떤 만족이나 쾌락들과 한편인 것으로서, 비이성적(헤아릴 줄 모르는)이며 욕구적인 부분이라 부른다 해도, 결코 불합리하지는 않을 걸세.” 439d (p. 300)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격정(기개: thymos)이 욕구도 아니고 이성적인 부분도 아니라는 논의를 펼친다. 439e-440c (pp. 300-303)

“나라 안에 있는 것들과 똑같은 부류의 것들이 개개인의 혼 안에도 있고, 그 수도 똑같다는 데 대해서 우리가 훌륭하게 의견의 일치를 보게 되었네.” 441c (p. 303).

즉, 나라에 통치자, 보조자, 생산자가 있듯이 이에 대응하여, 인간의 영혼에도 이성적인 부분, 격정(기개), 욕구적인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영혼의 복합성을 본 사람이다.


“사람이 올바르게 되는 것도 나라가 올바르게 된 것과 똑같은 방식에 의해서라고 우리가 말하게 될 걸로 나는 생각하네.” 441d (p. 304)

“실상 이 나라가 올발랐던 것이 그 안에 있는 세 부류가 저마다 ‘제 일을 함’에 의해서였다는 것은 우리가 결코 잊지 않고 있을 게 확실하이.” 441d (p. 304)

“우리 각자의 경우에도, 자신 안에 있는 부분들의 각각이 제 일을 하게 되면, 이 사람이 올바른 사람으로, 제 일을 하는 사람으로 도리 것이라는 점일세.” 441d-e (p. 304)

“사실 ‘올바름’이 그런 어떤 것이긴 한 것 같으이. 하지만 그것은 외적인 자기 일의 수행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내적인 자기 일과 관련된 것일세. 자기 안에 있는 각각의 것이 남의 일을 하는 일이 없도록, 또한 혼의 각 부류가 서로들 참견하는 일도 없도록 하는 반면, 참된 의미에서 자신의 것인 것들을 잘 조절하고 스스로 자신을 지배하며 통솔하고 또한 자기 자신과 화목함으로써, 이들 세 부분을 ... 전체적으로 조화시키네.” 443d (p. 308)

“이와는 달리 ‘올바르지 못함’은 이들 세 부분간의 일종의 내분이며, 참견과 간섭, 그리고 혼 전체에 대한 어떤 일부의 모반임에 틀림없지 않겠는가?” 444b (p. 309)






5. 플라톤의 이상 국가: 최선자 정체 - 철인왕(philosopher-king)이 통치하는 국가


“철학자(지혜를 사랑하는 이)들이 나라들에 있어서 군왕들로서 다스리거나, 아니면 현재 이른바 군왕 도는 ‘최고 권력자’들로 불리는 이들이 ‘진실로 그리고 충분히 철학을 하게(지혜를 사랑하게)’ 되지 않는 한, 그리하여 이게 즉 ‘정치 권력’과 철학(지혜에 대한 사랑)이 한데 합쳐지는 한편으로, 다양한 성향들이 지금처럼 그 둘 중의 어느 한쪽으로 다로따로 향해 가는 상태가 강제적으로나마 저지되지 않는 한, 여보게나 글라우콘, 나라들에 있어서, 아니 내 생각으로는, 인류에게 있어서도 ‘나쁜 것들의 종식’은 없다네. 그렇게 되기 전에는, 지금껏 우리가 논의를 통해서 자세히 말해 온 그 정체가 결코 가능한 한도까지 성장하여 햇빛을 보게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걸세.” 473c-e (p. 365)

“우리는 철학자도 지혜(sophia)를 욕구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지혜는 욕구하되 어떤 지혜는 욕구하지 않는 자가 아니라, 모든 지혜를 욕구하는 자라고 주장하지 않겠는가?” 475b (p. 369)

“[참된 철학자들이란] 진리(alegheia)를 구경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말하네.” 475e (p. 370)

“있는 것(실재: to on)에는 인식(앎: genosis)이, ‘있지 않은 것’(비실재)에는 필연적으로 무지가 상관할진대, 그것들 ‘사이의 것’에 상관하는 것으로는 무지와 인식(앎: episteme) ‘사이의 어떤 것’을 찾아야만 되지 않겠는가?” 477a-b (p. 374)

“그런데 우리가 의견(판단: doxa)이라고 말하는 게 있겠지?” 477b (p. 374)

“인식은 ‘있는 것’(실재)에 관계하며,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이겠지?” 478a(p. 376)

“반면에 ‘판단’(의견)은 ‘의견을 갖게 됨’이겠지? 478a (p. 376)

“각각의 그 자체의 것들을, 따라서 ‘언제나 똑같은 방식으로 한결같은 상태로 있는 것들’을 보는 사람들의 겨우는 어떤가? 그러니까 이들은 인식을 하지, ‘의견을 갖는 게’ 아니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479e (p. 381)

“‘각각의 실재 자체’를 반기는 사람들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철학자들)로 불러야지 의견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불러서는 아니 되겠지?” 480a (p. 382)

“‘좋음의 이데아’가 ‘가장 중요한(최고의) 배움’이라는 것을, 그리고 바로 이 이데아 덕분에 올바른 것들도 그 밖의 다른 것들도 유용하고 유익한 것들로 된다는 것을 자네는 여러 차례 들었을 테니까 말일세.” 505a (p. 428)


태양에의 비유(507e-509b)(pp. 435-439)

“그러니까 ‘보는’(‘봄’의) 감각과 ‘보이는’(‘보임’의) 힘은 결코 사소하지 않은 종류의 것에 의해, 즉 서로를 연결해 주는 다른 어떤 멍에들보다도 더 귀한 멍에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네. 빛이 정녕 귀하지 않은 게 아니라면 말일세.”

“그러니까 원래 시각은 이 신(태양)에 대하여 이런 관계에 있겠지?”

“시각 자체도, 그리고 시각이 그 속에 있게 되는 것, 즉 우리가 눈이라 일컫는 바로 그것도 태양은 아닐세.”

“그러나 눈은 감각과 관련되는 기관들 중에서는 어쨌든 태양을 가장 많이 닮은 것일세.”

“그런데 눈은 자기가 갖는 이 힘 또한 태양에서, 마치 넘쳐 흐르는 것을 받듯, 분배받아 갖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태양도 시각이 아니고, 이(시각)의 원인이 되는 것이어서, 시각 자체에 의해 보이게 되지 않는가?”

“그러니까 태양을 ‘좋음’의 소산(소생)으로, 즉 ‘좋음’이 이것을 자기와 ‘유비 관계에 있는 것’으로서 생기게 했다고 내가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게나. 다시 말해, ‘좋음’이 ‘지성에 의해서[라야] 알 수 있는(지성에나 알려질 수 있는) 영역’에 있어서 지성(정신: nous)과 지성에 알려지는 것들에 대해서 갖는 바로 그런 관계를 태양은 ‘가시적 영역’에 있어서 ‘시각’과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 갖는다고 말일세.”

“혼의 경우도 이렇게 생각해 보게. 진리(aletheia)와 실재가 비추는 곳, 이곳에 혼이 고착할 때는, 이를 지성에 의해 대뜸 알게 되고 인식하게 되어, 지성을 지니고 있는 것을 h보이네. 그러나 어둠과 섞인 것에, 즉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에 혼이 고착할 때는 ‘의견’(판단: doxa)을 갖게 되고, 이 의견들을 이리저리 바꾸어 가짐으로써 혼이 침침한 상태에 있게 되어, 이번에는 지성을 지니지 못한 이처럼 보인다네.”

“그러므로 인식되는 것들에 진리를 제공하고 인식하는 자에게 그 ‘힘’(dynamis)을 주는 것은 ‘좋음의 이데아’라고 선언하게. 이 이데아는 인식(episteme)과 진리의 원인(aitia)이지만, ‘인식되는 것’이라 생각하게나. 반면에 이 둘이, 즉 인식(앎: gnois)과 진리가 마찬가지로 훌륭한 것들이기는 하지만, 이 이데아는 이것들과도 다르며 이것들보다 한결 더 훌륭한 것이라 믿는다면, 자넨 옳게 믿게 되는 걸세. 그러나 인식과 진리를, 마치 가시적 영역에 있어서의 빛과 시각을 태양과도 같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옳지만, 태양으로 믿는 것은 옳지 않듯,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이들 둘을 ‘좋음’을 닮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옳으나, 어느 쪽 것도 [바로] ‘좋음’이라 믿는 것은 옳지 않다네. 오히려 ‘좋음’의 처지(상태: hexis)를 한층 더 귀중한 것으로 존중해야만 하네.”

“그러므로 인식되는 것들의 ‘인식됨’이 가능하게 되는 것도 ‘좋음’으로 인해서일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존재하게’ 되고 그 ‘본질’(ousia)을 갖게 되는 것도 그것에 의해서요, ‘좋음’은 [단순한] ‘존재’(ousia)가 아니라, 지위와 힘에 있어서 ‘존재’를 초월하여 있는 것이라고 말하게나.



  7권은 동굴의 비유로 시작한다. 이 동굴의 비유를 통해 소크라테스는 좋음의 이데아를 보는 것을 설명하는데, 사실 이것은 계몽(enlightenment)과 다름없다. 즉, 좋음의 이데아를 보는 것이 계몽인 것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계몽된 자로서의 철학자가 계몽의 의무를 져야 한다고 말한다. 즉, 다른 죄수들(사람들)로 하여금 좋음의 이데아를 보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칸트가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에서 한 개인으로서의 계몽이 아니라 인간 전체로서의 계몽을 말한 것과 유사하게 읽힌다. 어쨌든 소크라테스는 통치자가 되어야 할 철학자가 좋음의 이데아를 관조하면서 즐거워하는 것에 머무르지 말아야 할 것을 주장한다.

“나라의 수립자들인 우리의 할 일은 가장 훌륭한 성향(자질)을 지닌 자들로 하여금 앞서 우리가 가장 중요한(최고의) 것이라고 말한 배움에 이르도록, 그래서 ‘좋음’을 보게끔 그 오르막을 오르지 않을 수 없도록 하되, 이들이 일단 이 길을 올라, 그것을 충분히 보게 되면, 이제 이들이 허용받고 있는 걸 이들에게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 것일세.” 519c-d (p. 458)

“바로 거기에 머물러 있으려 할 분, 저들 죄수들 곁으로 다시 내려가서 저들과 함께 노고와 명예를, 이게 다소 하찮은 것이건 대단한 것이건 간에, 나누어 가지려 하지 않는 것일세.” 519d (p. 458)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이들에 대해 올바르지 못한 짓을 하게 되며, 이들로서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들로 하여금 더 못한 삶을 살도록 만들게 될 텐데요?” 그가 말했네. 519d (p. 458)

“여보게 자넨 또 잊었네. 법(nomos)은 이런 것에, 즉 나라에 있어서 어느 한 부류가 각별하게 잘 지내도록(살도록) 하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게 아니라, 온 나라 안에 이것이 실현되도록 강구하는 데 관심을 갖는다는 걸 말일세. 법은 시민들을 설득과 강제에 의해서 화합하게 하고 각자가 공동체에 이롭도록 해 줄 수 있는 이익을 서로들 나누어 줄 수 있도록 만듦으로써 그런다네. 또한 법은 나라에 그런 사람들이 생기도록 하는데, 이는 각자가 내키는 대로 향하도록 내버려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법 자체가 나라의 단합을 위해 이 사람들을 십분 이용하기 위해서일세.” 519e-520a (p. 458)

“글라우콘, 더 나아가 이 점에 유의하게나. 즉 우리의 이 나라에서 철학자들로 된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을 보살피고 지켜주도록 우리가 강요한다고 해서, 우리가 이들에게 올바르지 못한 짓을 하게 되는 건 아니고, 오히려 올바른 걸 이들한테 말해 주게 된다는 걸 말일세. 우리는 이렇게 말할 걸세. ‘...하지만 우리느니 여러분 자신들과 함께 여느 시민들을 위해, 마치 벌떼 사이에 있어서 지도자들 및 왕들처럼 여러분을 탄생시켜서는, 여느 시민들보다도 더 훌륭하고 완벽하게 교육을 받도록 했으며, 또한 양쪽 생활 다에 더 잘 관여할 수 있도록 했소.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느 시민들과의 동거를 위해 각자가 번갈아 내려가서는, 어두운 것들을 보는 데 익숙해져야만 하오. 일단 익숙해지고 나면, 그곳 사람들보다도 월등하게 잘 보게도 될 것이며, 각각의 상들이 도대체 무엇이며 또 어떤 것들의 상들인지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인데, 이는 여러분이 아름다운 것들과 올바른 것들 그리고 좋은 것들과 관련해서 진실된 것을 이미 본 탓이오. 또한 이렇게 해서 우리와 여러분의 이 나라가 깨어 있는 상태에서 경영될 것이니, 결코 꿈 속에서 경영되는 일은 없을 것이오. ...’” 520a-c (pp. 458-460)



정체(Politeia)의 종류와 변혁: 정체의 변화의 원인은 관직 장악 집단의 내분

  8권 이하에서는 정체의 유형에 대해서 논의한다. 그래서 ‘최선자 정체 > 명예 지상 정체 > 과두 정체 > 민주 정체 > 참주 정체’의 도식을 설명한다. 이 각 정체에 대응하는 혼의 상태도 함께 다루는데, 결국 어떤 상태의 혼이 지배적이냐에 따라 각 정체 유형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위의 도식은 좋음의 상태에 따른 도식이면서도 정체가 나쁜 상태로 변화해 가는 순서를 나타낸다. 이런 변화의 원인은 한 마디로 내분이라 할 수 있다.


① 최선자 정체: 철인왕이 통치하는 정체, 아내 공유, 아이들에 대한 공동 육아와 교육

② 명예지상정체: 승리를 좋아하고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들. 잘못된 동숙으로 인해 철과 동의 성분이 든 사람들 등장하여 재화의 사유화와 노예제 수립. 이 정체의 통치자는 평화보다는 전쟁 취향인 사람들이며 재물에 대해 욕심을 낸다. 기개(격정)의 덕이 우세하여 승리와 명예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정체이다.

③ 과두정체(oligarchia): 평가 재산에 근거한 정체. 부자들이 통치하고 가난한 사람은 통치에 관여하지 못한다. 명예지상정체는 재화의 사유화로 인해 부를 찬양하게 됨으로써 과두정체로 변화한다.

④ 민주정체(demokratia): 가난한 사람들이 내란을 일으켜 승리하게 되면 시민들에게 평등하게 시민권과 관직을 배정하고, 관직은 추첨에 의해 할당된다. 자유 시민인 까닭에 이들은'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갖게 된다. 자유가 개개인과 각 가정에까지 스며들어 무정부상태가 된다.

⑤ 참주정체(tyrannis): 부의 분배를 미끼로 가진 것이 별로 없는 민중을 선동하여 참주가 된 자는 적을 숙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