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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로 마키아벨리, 『로마사 논고』, 강정인, 안선재 역, 한길사, 2003.




제 1 권


제 1 장 도시 일반의 기원, 특히 로마의 기원에 관해


  로마라는 도시의 기원과 그 입법자 및 기본적인 정치제도에 관한 글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도시에서 그토록 위대한 덕이 그토록 오랜 세기 동안 유지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공화국이 나중에 제국으로 발전하여 존속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그리 놀라지 않을 것이다. (p. 69)


  나는 우선 모든 도시는 도시가 세워진 곳에 살고 있던 토착인 또는 다른 곳에서 온 이주민들에 의해 세워진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 번째 사례는 주민들이 다수의 작은 공동체로 흩어져 살기 때문에 안전을 향유할 수 없다고 느꼈을 때 발생한다. 왜냐하면 그 자체로는 어느 한 공동체도 지형이나 적은 인구로 인해 침략자의 공격에 저항할 만큼 충분히 강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적이 쳐들어왔을 때, 그들이 방어를 위해 뭉칠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p. 70)


  이와 같은 사례는 매우 많은데, 그 가운데서도 우선 베네치아를 들 수 있다. (p. 70)


  두 번째 사례는 도시가 이방의 종족들에 의해 건설되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들은 자유인이거나 아니면 타국에 예속된 인민들인데, 후자의 경우에는 공화국이나 군주국이 자국의 인구를 줄이거나 새로이 획득한 영토……를 방어하기 위해 보낸 식민이다. 로마인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제국 전역에 걸쳐 많은 도시를 건설했다. 또 어떤 도시들은 군주에 의해 건설되기도 했는데, 이 경우 군주가 그곳에 정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건설된 알렉산드리아처럼 군주의 명성을 드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p. 71)


  이러한 [자유로운] 도시들은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정복한 나라에서 기존의 도시를 발견하여 정주하게 된 경우이거나, 아니면 아이네아스처럼 아예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경우이다. (p. 72)


  인간의 안전은 권력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에, 도시는 황량한 곳을 피해 매우 비옥한 곳에 자리잡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도시는 토지의 풍요함에 근거하여 팽창하게 되었을 때, 공격으로부터 능히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고 나아가 대국으로 성장하는 데 방해가 되는 세력들을 능히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이 조장할 법한 게으름에 대해서는 그 상황이 강제하지 않는 근면의 필요성을 법률에 의해 강제하는 것으로 대비해야 할 것이다. (p. 73)


  그러므로 나는 도시를 비옥한 땅에 건설하는 것이, 법률에 의해 그 비옥함의 [부정적] 효과를 적절한 한계 내로 억제할 수 있다는 조건에서라면, 보다 현명한 처사라고 주장하겠다. (p. 74)


  아이네아스가 최최의 건국자라고 믿는 자들에게 로마는 이방인들에 의해 건설된 도시일 것이다. 그러나 로물루스를 건국자로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로마는 그곳의 토착인들에 의해 건설된 도시일 것이다. 하지만 어느 편이 사실이든, 양자 모두 로마가 어느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도시로 출발했다는 점은 인정할 것이다. (p. 75)




제 2 장 얼마나 많은 종류의 국가가 있는가, 그리고 로마는 어떤 종류의 국가에 속하는가


  어떤 종류의 대외적인 종속이든 그것과 상관없이 출발한, 곧 공화국이든 군주국이든 처음부터 자신들의 뜻에 따라 통치된 도시들을 논의하고자 한다. (p. 76)


  어떤 도시들의 경우에는 창설 당시 또는 그 직후, 어떤 한 인물에 의해 법률이 단 한 번에 제정되었는데, 예를 들어 스파르타에서는 리쿠르고스에 의해 법률이 제정되었다. 반면에 다른 도시들은 예측하지 못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우연히 그리고 여러 차례에 걸쳐 법률을 정비하게 되었다. 이는 바로 로마의 경우이다. 신중한 지도자를 배출하여 그가 제정한 법률을 개정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그 법률 아래서 백성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국가는 진정 행복할지어다. 예를 들어, 스파르타는 건국 당시의 법률을 훼손시키지 않고, 또 어떠한 위험스러운 분란도 없이 800년 이상이나 그 법률을 준수했다. (p. 77)


 [좋은 정부의] 각각은 그것과 연관된[나쁜 정부 형태]과 너무 유사해서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쉽게 변형된다. 곧 군주정은 참주정으로 쉽게 변하고, 귀족정에서 과두정으로의 이행은 손쉬우며, 민주정은 어렵지 않게 무정부상태로 변질된다. (p. 78)


  그 과정에서[우두머리를 정하고 그의 명령에 복종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정직하고 선량한 것을 유해하고 사악한 것으로부터 구분하는 법을 습득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자기에게 은혜를 베푼 자에게 해악을 가는 자를 목격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부정을 저지른 자에 대해서는] 증오와 [은혜를 베푼 자에 대해서는] 동정심을 불러일으켰으며, 그 결과 동일한 해악이 자신들에게 가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은혜를 모르는 자들을 비난하고 감사의 뜻을 표하는 자들을 존경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종류의 해악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그들은 법률을 제정하고 이를 위반하는 자에게 처벌을 부과했다. 정의의 관념은 이렇게 발생했던 것이다.


  그[타락의] 결과 군주는 미움을 사게 되었고, 그러한 미움을 두려워하고 겁에 질려 당장 폭력에 의존하게 되었으며, 그 즉각적인 결과가 참주정치였다.

  이로부터 파멸, 즉 군주에 대한 음모와 반란의 원인이 발생하게 되었다. 음모와 반란은 …… 다른 사람들보다 가문, 기백, 부 및 계급에서 우월하기 때문에 군주의 수치스러운 생활태도를 참들 수 없는 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 해방자들은 단일한 인물이 통치하는 체제를 거부했기 때문에, 스스로 정부를 구성하였고, 처음에는 이전의 폭정을 생각하고 그들이 제정한 법률에 따라 처신하고, 그들 자신의 이득을 공동선에 복종시키며, 아주 근면하게 공사(公私) 업무를 돌보고 처리했다. (pp. 79-80)


  그들[자식들]이 탐욕, 야심, 여성들의 겁탈에 탐닉함으로써 최선자들에 의한 통치는 소수에 의한 통치로 전락하게 되었다. 또 그 체제는 시민적인 권리를 무시했기 때문에, 머지않아 참주에게 일어난 일이 그들에게도 일어나게 되었다. (p. 80)


  소수 지배체제를 전복시킨 자들은 군주정을 다시 수립하기를 원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민중 정부에 주의를 돌려 유력한 소수나 1인의 군주가 통치권을 갖지 않는 방식으로 국가를 조직했다. (p. 80)


  그러나 오래지 않아, 특히 그 정치체제[민중 정부]를 수립한 세대가 사라진 후, 그 체제는 자유의 남용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한 상태에서는 공공의 권위도 타인에 대한 존중도 사라지게 되었으며, 그 결과 각 개인은 제멋대로 살게 되어 매일 온갖 악행들을 저지르게 되었다. 그러다가 필연에 강제되거나 어떤 훌륭한 사람의 제안에 다라, 또는 그러한 남용을 걷어치우기 위해 사람들은 다시  한 번 군주정으로 되돌아갔다. (p. 80)


  이것이 모든 국가가 통치하는 과정에서 거치게 되는 순환이다. (p. 81)


  그렇다면 지금까지 논의한 정부는 모두 병약한 형태라고 말하겠다. 세 형태의 좋은 정부는 단명하고, 세 형태의 나쁜 정부는 사악하기 때문이다. …… 처음의 세 가지 좋은 정체가 갖는 성격을 모두 다 포함한 하나의 정체를 택하여, 그것을 가장 견실하고 안정된 것이라 판정하였다. 그 이유는 동일한 도시 안에 군주정, 귀족정, 민중 정부의 여러 요소들이 함께 있게 된다면,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기 때문이다. (p. 81)


  [로마의] 그 왕들은 내가 논의한 원인과 경위로 인해 왕위를 잃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몰아낸 자들은 왕의 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즉시 두 명의 집정관을 두었다. 그리하여 극들은 로마로부터 왕의 칭호를 박탈했지만, 왕의 권력에 해당하는 제도는 유지했다. 그 결과 국가기구에 집정관과 원로원이 있게 되었기 때문에, 앞에서 언급한 세 요소 가운데 두 요소, 곧 군주정과 귀족정의 혼합이 형성되었다.

  이제 정부 내에 민중의 역할을 위한 자리를 만드는 일만 남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일은, 로마 귀족이 다음에 설명할 이유로 횡포를 부리게 되었을 때 민중들이 그에 저항하여 봉기를 일으키고, 급기야 귀족들이 자신들의 모든 것을 잃지 않기 위해 민중들에게 그들의 몫을 허용함으로써 달성되었다. …… 그리하여 호민관이라는 관직이 창설되었다. (p. 83)



제 3 장 로마에서 호민관을 창설하게 된 경위―국가를 더욱 완벽하게 만든 사건

  국가를 창설하고 법률을 제정하는 자는 다음과 같은 점을 상정할 필요가 있다. 즉 모든 인간은 사악하고, 따라서 자유로운 기회가 주어지면 언제나 자신들의 사악한 정신에 따라 행동하려 한다는 점이다. (p. 84)


  사람들은 필연에 의해 강요당하지 않는 한 결코 좋은 일을 하려 하지 않으며, 많은 선택이 있고 과도한 자유가 허용되면 만사가 순식간에 혼란과 무질서에 빠진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굶주림과 빈곤은 사람들을 근면하게 만들고, 법률은 사람들을 선량하게 만든다는 말이 있다. …… 평민과 귀족 간의 불화로부터 초래된 많은 혼란, 소동 및 내전의 위험을 거친 후에 사람들은 인민의 안전을 위해 호민관을 창설하게 되었다. 또한 사람들이 호민관에게 높은 권위와 명예를 부여했기 때문에, 그 후 호민관은 항상 평민과 원로원을 중재하고, 귀족들의 거만함을 억제할 수 있었다. (p. 85)




제 4 장 평민과 원로원의 대립이 로마 공화국을 자유롭고 강력하게 만들었다.


  나는 운명과 군사제도야말로 로마가 강성해진 원천이었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와 의견이 상반된 자들은 좋은 군대가 있는 곳에는 으레 좋은 정부가 있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도시가 행운을 갖지 못하는 경우란 좀처럼 없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p. 86)


  귀족과 평민 간의 내분을 비난하는 자들은 로마를 자유롭게 만든 일차적 원인을 비난하고 그러한 내분이 초래한 좋은 결과보다는 그것들로부터 유래하는 분란과 소동만을 고려하는 것처럼 내게 보인다. 그들은 모든 공화국에는 두 개의 대립된 파벌, 곧 평민의 파벌과 부자의 파벌이 있다는 점 그리고 로마가 자유를 향유할 수 있도록 제정된 모든 법률은 그들의 불화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p. 86)


  [타르퀴니우스로부터 그라쿠스 형제에 이르는 300여 년 간] 이토록 좋은 모범적 처신은 좋은 교육에, 좋은 교육은 좋은 법률에, 좋은 법률은 많은 이들이 무분별하게 규탄하던 그러한 대립과 불화에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 결과를 엄밀히 검토한 자라면 누구나 그러한 대립이 공동선에 유해한 추방이나 폭력보다는 공공의 자유에 도움이 되는 법률과 제도를 생산해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p. 87)


  모든 도시는 인민에게 그들의 야심을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야 한다. …… 자유를 희구하는 평민의 열망이 자유에 해로운 경우란 것의 없다. 왜냐하면 그 열망은 억압으로부터 도는 억압이 발생할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의 믿음이 잘못된 것일 때는 언제나 집회라는 치유책이 있다. 그 집회에서 유력한 어떤 인물이 나서서 인민들에게 그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다. (pp. 87-88)


  만약 이러한 내분이 호민관의 설립을 초래했다면, 그것은 최대한의 찬양을 받을 가치가 있다. 그 이유는 호민관이라는 관직이 통치에 인민의 몫을 부여한 것 이외에도, 다음 장에서 보듯이, 로마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창설되었기 때문이다.




제 5 장 인민과 귀족 어느 편이 더 확실하게 자유를 보호하는가, 그리고 새로이 권력을 얻고자 하는 자와 기존의 권력을 보유하고자 하는 자 가운데 어느 편이 분란의 원인인가


  공화국을 현명하게 설립한 자들이 배려한 가장 필요한 사항들 중 하나는 자유의 수호자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p. 88)


  옛날에는 라케다이몬인들이, 오늘날에는 베네치아인들이 자유를 귀족의 손에 맡겼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그것을 평민의 수중에 맡겼다. …… 그 결과를 검토한다면, 귀족의 편을 들고 싶기도 하다. 스파르타와 베네치아는 로마보다 오랫동안 자유를 누렸기 때문이다. (p. 89)


  [로마의 편을 들어 이유를 검토해본다면] 귀족과 귀족이 아닌 자들의 목적을 검토해보면, 전자에게는 지배하려고 하는 강한 갈망이 있고, 후자에게는 단지 지배당하지 않으려는 갈망, 다시 말해 귀족들보다 지배권을 장악할 전망이 적기 때문에 자유 속에서 살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런즉 평민이 자유를 보호하는 직책을 담당하게 되면 그들은 스스로 그것을 독점할 수 없기 때문에, 타인들이 그것을 독점하지 않도록 훨씬 잘 지킬 것이다. (p. 89)


  반면에 스파르타와 베네치아의 제도를 옹호하는 자들은 자유의 수호를 강력한 자들의 수중에 맡기는 것이 두 가지 점에서 좋다고 말한다. 첫재, 그 제도는 귀족들의 야망을 더욱 잘 충족시키는다는 점이다. …… 둘째, 그 제도는 인민들의 변덕스러운 심성에 권위를 내맡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사례로서 로마 자체를 제시한다. 왜냐하면 로마에서는 호민관들이 이러한 권력을 그들의 손에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평민들은 평민 출신의 집정관 1인을 가지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2인의 집정관 모두가 평민이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도 그들은 감찰관, 사법관 그리고 정부의 다른 모든 관직을 원했다는 것이다. (pp. 89-90)


  그것[자유를 어느 편에 맡겨야 하는가]은 로마와 같이 제국을 건설하기를 원하는 공화국인가 아니면 스스로를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공화국인가에 달려 있다. 다음 장들에서 그 이유와 방법을 논할 예정인데, 전자의 경우에는 로마가 한 대로 모든 일을 하는 것이 필요하고, 후자의 경우에는 다음 장에서 논의할 베네치아와 스파르타를 모방할 필요가 있다. (p. 90)


  여하튼, 분란은 대부분 이미 가진 자에 의해 초래된다. 무언가 잃을 것 같다는 그들의 두려움은 무언가 얻고자 하는 자들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도 일반적으로 사람은 새로운 것을 추가하지 않으면 그가 가진 것도 확실히 지키지 못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p. 92)




제 6 장 로마에서 인민과 원로원 간의 대립을 소멸시킬 수 있는 정부를 수립할 수 있었는가


  우리는 로마가 위에서 언급한 공화국들[베네치아와 스파르타]처럼 평온히 남아 있기를 원했다면, 그 입법자들이 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있엇다는 점을 납득하게 된다. 즉 베네치아인들처럼 전쟁에 인민들을 동원하지 않거나, 아니면 스파르타인들처럼 외래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하지 않거나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이 두 가지 일을 다 했다. 그들은 인민들에게 권력을 허용하고 인구증대를 초래하여 소동을 일으킬 수 있는 많은 소지를 야기했다. 따라서 로마가 계속 평온만을 유지했더라면, 다음과 같은 난관에 봉착했을 것이다. 즉 로마가 위대함에 이르는 길이 차단됨으로써 로마는 훨씬 약화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즉, 만약 로마가 분란의 원인을 제거하기로 계획했더라면, 그것은 동시에 성장의 원인을 제거하는 일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p. 95)


  누구든 새로이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자는 그 국가의 영토와 권력이 로마처럼 팽창하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그 국가를 협소한 영토 내에 묶어둘 것인지를 미리 결정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경우라면, 국가를 로마처럼 조직하여 가능한 한 주민들간에 분란과 불화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필요하다. …… 두 번째 경우라면, 스파르타나 베네치아처럼 건설해야 한다. (p. 96)


  오랫동안 지속될 국가를 만드는 방책은 국가를 내부적으로 스파르타나 베네치아와 같이 조직하고, 누구도 손쉽게 정복할 수 없는 천연적인 요새로 삼을 만한 곳에 터를 잡는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런 국가는 너무 커서 이웃 나라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그 국가는 오랫동안 독립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p. 97)


  나는 다른 국가가 아니라 로마의 방책을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전자와 후자 사이에서 절충책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민과 원로원 사이에 발생한 그러한 반복들을 감당해야 하며 로마와 같은 위대함을 성취하기 위한 필요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호민관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제도라는 이유 외에도, 공화국이 탄핵을 할 수 있는 권리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된다. (p. 98)




제 7 장 공화국에서 탄핵권은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국가의 자유를 수호할 임무를 부여받는 자에게 어떤 식으로든 국가의 자유를 위협한 시민을 민회나 일정한 행정관 또는 위원회에 탄핵할 수 있는 권능을 보유하도록 하는 것만큼 유용하거나 필요한 것을 달리 또 발견할 수 없다. 이러한 조치는 공화국에 매우 귀중한 두 가지 효과를 가져온다. 첫째는 시민들이 고발당할까 두려워서 국가에 반역을 꾀하지 않는 것이다. …… 다른 효과는 국가가 다양한 시민들 사이에 잡다한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는 당파적 증오를 해소할 수 있는 배출구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p. 99)


  이러한 사례[리비우스의 코리올리누스 이야기]는, 내가 위에서 발한 바, 곧 공화국은 법률을 통해 대중이 특정한 시민에게 품게 된 노여움에 대하여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배출구를 제공하는 것이 유용하고 필요하다는 점을 예시한다. 왜냐하면 아무런 합법적인 방법이 없으면 불법적인 방법에 호소하기 때문이다. (p. 100)




제 8 장 탄핵이 소중한 반면, 중상은 해롭다


  자유로운 도시와 그 밖의 다른 모든 체제에서 중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혐오스러운 결과를 낳는가를 알 수 있다. …… 이러한 중상을 뿌리 뽑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고발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열어놓는 것이다. 왜냐하면 중상이 국가를 해치는 것만큼이나 합법적인 고발은 공화국에 커다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양자 사이에는 이 같은 차이가 있다. 중상은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증인 또는 그 밖의 다른 특별한 정보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든 다른 사람을 중상할 수 있다. 그러나 고발은 그 비난의 진실성을 보여주는 진정한 정보와 정황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아무나 함부로 고발당하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 …… 이러한 식으로 이루어지는 중상은 합법적인 고발이 별로 사용되지 않거나, 고발을 처리하는 도시의 제도가 잘 정비되지 않은 경우에 빈번히 사용된다. 그런즉 공화국을 건설하는 자는 고발이 그 공화국 내의 어떤 시민을 상대로 해서든 아무런 두려움이나 망설임 없이 제기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 (pp. 104-105)


  그들[로마인들]은 법에 따라 고발을 할 의무가 있었다. 만약 고발이 사실로 판명되면 그들은 보상을 받았고, 적어도 처벌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고발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면 그들은 만리우스가 그랬듯이 처벌받았다. (p. 107)





제 9 장 새롭게 공화국을 창건하거나, 구제도를 철저히 혁파하여 공화국을 쇄신하는 일은 한 사람이 단독으로 해야 한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로물루스와 같은 건국의 시조가 먼저 자신의 동생을 죽이고, 그 다음에는 자신과 권위를 공유한 인물인 사비니 가(家)의 왕 티투스 타티우스의 살해에 가담한 것은 나쁜 선례라고 생각하지 않나 싶다. 이로부터 그들은 지배자가 되고자 하는 야심과 소망을 품은 시민들이 그들의 군주[로물루스]의 선레를 따라 그들의 지배에 반대하는 자들을 공격하게 되었다고 추론한다. 이러한 견해는 로물루스로 하여금 그러한 살인행위를 저지르게 한 목적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타당할 것이다. (p. 108)


  한 인물에 의해 조직되지 않는다면, 어떤 공화국이나 왕국도 처음부터 잘 조직되거나 예전의 제도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철저히 개혁되는 경우란 거의 없거나 결코 없다는 점이다. …… 무릇 공화국의 신중한 건설자로서 그 의도가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일반적인 선(善)을 추구하고자 하고, 자기 자손이 아니라 공동의 조국을 염두에 둔 자는 모든 권위를 자기 소중에 넣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러므로 신중한 지성인이라면 어떤 사람이 왕국을 조직하거나 공화국을 세우기 위해 사용한 부당한 행위에 대해 책망하지 않는다. 비록 그 행위가 비난받을 많나 것이라 할지라도 그 결과가 용서받을 만한 것이라면 여하튼 적절한 것이다. 그러므로 로물루스의 경우처럼 그 결과가 좋다면, 그 결과는 항상 그를 용서할 것이다. 왜냐하면 복원하기 위해서 폭력을 행사한 자가 아니라 파괴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한 자가 비난받아 마땅하기 때문이다. (p. 108)


  더욱이 건국자는 신중하고도 고결한 인물이어야 한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그가 장악한 권한을 유산으로 남겨서는 안 된다. …… 게다가 국가의 건국에는 단지 한 인물이 적합하다 해도, 일단 조직된 정부는 그것을 유지하는 부담이 단지 한 사람의 어깨에만 걸려 있다면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그러나 정부를 많은 사람들이 보살피게 될 때, 즉 그 유지가 많은 사람의 책임에 내맡겨질 때, 그것은 실로 오래 지속된다. 그 이유는 많은 수의 사람들은 다양한 의견으로 인해 정부에 무엇이 좋은 것인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서 건국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일단 좋은 정부에 익숙해지면 그것을 포기하는 데에는 쉽게 찬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pp. 108-109) [공화국 건국의 상황과 공화국 유지의 상황이 다르다.]


  그[로물루스]가 한 일이 그 자신의 야심이 아니라 공동선을 위해 행해진 일이었다는 점은, 그가 즉각적으로 원로원을 창설한 사실에 의해 입증된다. …… 그리고 로물루스가 자신을 위해 남겨 놓은 권한을 잘 관찰한 사람은, 전시에 갖는 군대통수권과 원로원을 소집할 권한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그에게 남겨져 있지 않았다는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p. 109)


  건국하기 위해서는 혼자서 모든 권한을 장악할 수 필요가 있으며, 로물루스가 레무스와 티투스 타티우스를 살해한 행위는 비난이 아니라 용서를 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p. 111)




제 10 장 공화국이나 왕국의 창설자는 명성을 누려야 하는 한편, 참주정치의 시조는 응당 비난을 받아야 한다.


  어느 누구든 카이사르가 특히 역사가들에 의해 찬양을 받는 것을 보고 카이사르의 영광에 현혹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를 칭송하는 자들은 그의 재력에 매수되었거나 로마제국이 오래 지속된 것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 악행을 저지르려고 의도한 자보다 실제 저지른 자가 더 비난을 받아야 하는 만큼, 카이사르는 훨씬 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독자는 또한 역사가들이 브루투스에 대해 얼마나 많은 칭송을 바치고 있는지를 관찰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그들은 카이사르의 위세에 눌려 그를 비난할 수 없기 때문에, 그만큼 더 그의 적을 찬양한다. (p. 113)


  제국이 다시 세습으로 돌아갔을 대, 로마는 다시 혼란에 빠져 들어갔던 것이다. (p. 114)


  훌륭한 황제에 의해 통치된 시대에 그는 안전한 시민들 사이에서, 평화와 정의로 충만된 세계에서 군주가 안전한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을 목격할 것이다. 그는 원로원이 권위를 가지고, 행정관이 명예를 누리며, 부유한 시민들이 그들의 부를 향유하고, 귀족과 덕이 찬양되는 것을 볼 것이다. 그는 최상의 평온과 최상의 선을 볼 것이다. (p. 114)


  참으로 어떤 군주가 세상에서 영관을 얻고자 한다면 그는 부패한 도시를 갖기를 소망해야 한다. 하지만 카이사르처럼 전적으로 파멸에 빠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로물루스처럼 개혁하기 위해서 말이다. (p. 116)




제 11장 로마의 종교


  누마[로물루스의 후계자]는 인민이 대단히 거칠다는 점을 발견하고 나서 평화적인 수단을 통해 그들이 법률에 복종하도록 만들고자 했다. 여기서 그는 질서정연한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전적으로 필요한 수단으로 종교에 주목하였다. 그리하여 그가 종교를 기초로 국가를 확립한 결과, 오랜 시대 동안 신에 대한 외경이 로마 공화국만큼 강한 나라가 없게 되었다. (p. 116)


  그러므로 로마의 역사를 잘 검토한 자는 종교가 군대를 통솔하고, 인민에게 영감을 주며, 사람들을 선량하게 만들고 사악한 자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데 얼마나 커다란 도움이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p. 118)


  그렇다면 모든 것을 고려해볼 대, 나는 누마가 도입한 종교야말로 로마가 누리게 된 번영의 주된 이유라고 결론짓겠다. 종교는 좋은 법을 가져왔고, 좋은 법은 행운을 가져왔으며, 행운으로부터 도시가 노력한 모든 사업이 행복한 결실을 보게 되었다. 종교적 가르침의 준수가 국가의 위대함을 초래하듯이, 종교에 대한 경멸은 국가의 파멸을 가져온다.




제 16 장 군주정에 익숙한 인민은 우연한 사태로 인해 자유를 회복하더라도 자유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마련이다


  한 군주 아래 사는 데 익숙한 인민이, 타르퀴니우스를 추방한 이후에 자유를 얻은 로마 인민처럼 우연한 사건에 의해 자유를 얻는다 하더라도, 나중에 그 자유를 보존하는 데 얼마나 커다란 어려움을 겪는가는 고대사의 숱한 실례들에 의해 충분히 입증된 바 있다. (p. 133)


  그들[인민들]은 타인의 명령하에 사는 데 익숙해서 국가로서 어떻게 방어를 하고 공격을 해야 하는지 생각할 줄 모르고 군주를 이해하지도 못하며 그들에 의해 이해되지도 못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바로 조금 전에 벗어 던진 멍에보다 통상 훨씬 더 가혹한 멍에에 순식간에 걸려들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곤경도 아직 완전히 부패하지 않은 인민에게만 일어난다. 왜냐하면 완전히 부패한 인민은, 이하에서 곧 설명하듯이, 잠시라도, 아니 실상 전혀, 자유롭게 살 수 없기 때문이다. (pp. 133-134)


  새롭게 자유를 얻은 국가는 열렬한 적(敵)은 있지만 열렬한 동맹은 없다는 점이다. 군주의 재부(財富)로부터 양분을 빨아먹음으로써 혜택을 누리던 모든 이들은 열렬한 적이 된다. …… 그런 국가는 열렬한 동맹을 얻을 수 없다. (p. 134)


  아무런 걱정 없이 자기 소유물을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는 권능, 자기 부인이나 자녀의 명예가 유린되지 않으리라는 믿음, 자신의 명예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 등에 대해서는 정부가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정부에 대해 의무감을 느끼는 일이란 없는 법이다. (p. 134)


  진정으로 다중이 그에게 적대적이기 때문에 자신의 권좌를 장악하기 위해 불법적인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는 군주는 불운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단지 소수를 적으로 둔 자는 쉽게 그리고 폭력에 자주 호소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안전을 보전할 수 있지만, 인민을 적으로 둔 자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안전을 도모할 수 없기 때문이다. (p. 135)


  만약 군주가 자기에게 적대적인 인민의 환심을 사고자 한다면(나는 자기 조국에서 참주가 된 군주를 말하고 있다), 나는 그가 우선 인민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하겠다. 그는 항상 인민이 두 가지를 원한다는 점을 발견할 것이다. 첫째, 그들은 자신들을 노예로 만든 장본인에게 복수를 하고자 한다. 둘째, 그들은 다시 자유를 찾고자 갈구한다. (p. 136)


  인민들이 자유를 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잘 살펴야 한다. 거기서 그는 그들 중 소수는 통치에 참여하고 싶어 자유를 원하지만, 그 밖의 인민 대다수는 삶의 안전을 위해 자유를 원한다는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단지 안전하게 사는 것으로 충분한 나머지 사람들은 일반적인 안전과 군주의 권한을 동시에 확보하는 명령과 법률에 쉽게 만족할 것이다. 군주가 이러한 조치를 취하고 어떠한 상황하에서 군주가 법률을 위반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민이 깨닫게 되면, 단시일 내에 그들은 안심하고 만족을 느낄 것이다. (pp. 136-137)




제 17 장 부패한 인민은 자유를 얻더라도 자유를 유지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오직 인덕과 역량을 겸비한 군주만이 그 국가를 자유롭게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자유도 단지 그의 수명이 지속되는 한 연장될 뿐이다. (p. 138)


  타르퀴니우스 가문을 몰아냈을 때 로마는 즉각적으로 자유를 회복해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카이사르가 죽고 카이우스 칼리굴라가 죽고 네로가 죽은 후 카이사르의 혈통은 끊어졌는데, 로마는 자유를 유지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소생시킬 수도 없었다. …… 타르퀴니우스 시대에 로마 인민은 아직 타락하지 않았지만, 후대에는 그들이 매우 부패했다는 점이다. (p. 139)


  나는 아무리 격렬하고 가혹한 어떠한 우발적인 사태도 밀라노나 나폴리에 자유를 회복시킬 수 없다고 말하겠다. 그 구성원들이 이미 전적으로 부패했기 때문이다. (p. 140)


  질료가 부패하지 않은 상태에서 봉기나 기타 소요는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러나 질료가 부패한 상태에서는 잘 계획된 법도, 실로 한 인물이 그 법을 제정하고 능력을 최대한 동원하여 그 준수를 강제함으로써 인민을 선량하게 만들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p. 140)


  그러한 부패나 자유로운 삶에 대한 자질의 결여는 도시에 존재하는 불평등으로부터 유래한다. 그러므로 그 나라에 평등을 되살리고자 하는 자는 누구나 전적으로 초법적인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 (p. 141)




제 18 장 부패한 도시에 자유로운 정부가 이미 존재한다면 어떻게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가; 그리고 만약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수립할 수 있는가


  좋은 도덕은 그것이 유지되려면 좋은 법률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법률은 그것이 준수되기 위해서는 좋은 도덕을 필요로 한다. (p. 142)


  부패한 상태의 로마가 자유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과거 역사의 도정에서 새로운 법률을 제정했듯이, 새로운 기본적 제도를 창조하는 작업 역시 필수적이었다. (p. 144)


  이러한 기본적 제도를 일거에 개혁하는 경우 …… 합법적인 조치의 사용은 잘 듣지 않으므로 충분하지 않고, 폭력이나 무력과 같은 비합법적인 수단에 호소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다른 무엇보다도 그 도시의 지배자가 되어 자신의 뜻대로 도시를 다스릴 수 있는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p. 145)


  좋은 정부하에서 살 수 있도록 도시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고결한 인물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폭력에 의해 국가의 지배자가 되기 위해서는 사악한 인물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고결한 인물은 비록 그의 목적이 좋다고 할지라도 좀처럼 사악한 방법을 통해 지배자가 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한편 사악한 인간은 그가 마침내 지배자가 되었을 때, 올바른 일을 하고자 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사악한 방법으로 획득한 권한을 올바르게 사용하려는 생각이 결코 그의 마음에 떠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p. 145)


  이상 논의된 모든 것으로부터 부패한 도시에 정부를 유지하거나 그곳에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는 일은 지극히 어렵거나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p. 145)




제 19 장 유약한 군주라도 강력한 군주의 뒤를 이은 경우에는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지만 유약한 군주가 연달아 즉위하게 되면 그 왕국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로마 건국 이후 연달아 즉위한 3인의 최초의 국왕, 곧 로물루스, 누마, 툴루스의 출중한 능력과 수완을 고찰하면, 로마가 커다란 행운을 만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 146)


  이로부터 선황만큼 뛰어난 능력을 가지지 않은 후계자는 선황이 이룩한 업적의 결과로 정부를 유지할 수 있으며 그러한 노고의 결실을 향유할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p. 147)




제 20 장 두 명의 유능한 군주가 연이어 즉위하면 위대한 업적을 산출한다; 잘 조직된 공화국은 필연적으로 유능한 지배자가 잇따라 출현하게 되며 그 결과 국력이 크게 신장된다


  로마는 왕을 추방하고부터 …… 유약하거나 사악한 왕이 권좌에 오를 경우 발생하게 마련인 위험을 겪지 않아도 되었다. 왜냐하면 권위의 무게가 집정관에게 실리게 되었으며, 집정관은 세습이나 기만 또는 격렬한 야심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유로운 투표에 의해 통치자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고 항상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p. 149)


  공화국의 경우에는 선거라는 방법이 단순히 연이은 두 명의 지도자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 유능한 지도자가 잇따라 집권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이는 훨씬 더 가능성이 높아진다. (pp. 149-150)





제 21 장 자신의 군대를 갖지 못한 군주나 공화국은 크게 비난받아 마땅하다


  현존하는 군주나 오늘날의 공화국이 방어와 공격을 위해 자국민으로 구성된 군대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면 이를 크게 부끄러워해야 한다. (p. 150)


  평화시에도 영국은 [헨리 8세 통치시] 전쟁에 대한 대비를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p. 151)




제 24 장 잘 조직된 공화국은 시민에 대한 상벌제도가 분명하며, 공을 세웠다 하여 잘못을 묵인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잘 정비된 공화국은 어떤 시민이 공을 세웠다고 해서 그의 잘못을 묵인하는 일이 결코 없기 때문이다. 그런 공화국에서는 훌륭한 일을 해낸 사람에게 상을 내리고 잘못된 행위에 대해서는 벌을 내리는 일이 분명히 정해져 있다. 다라서 훌륭한 일을 한 사람에 대해서는 상을 내리고, 동일한 사람이 나쁜 일을 저지르면 그의 공적과 상관없이 벌을 내린다. 그리고 이러한 관행이 잘 준수될 때, 도시는 오랫동안 자유를 누리면서 살게 된다. (p. 156)




제 25 장 자유로운 국가에서 오래 유지된 정부를 개혁하고자 하는 자는 적어도 구제도의 외양만은 남겨두어야 한다


  도시의 정부를 개혁하되 그 개혁된 정부가 잘 유지되고 모든 사람에게 만족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의도하거나 소망하는 자는 적어도 구제도의 외양을 존속시킬 필요가 있다. 이는 새로운 형태가 실제로 과거의 제도와 전적으로 다를지라도, 인민들에게는 정부가 그 형태를 바꾸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이다. (p. 158)




제 26 장 신생 군주는 그가 정복한 도시나 지역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조직해야 한다


  도시나 국가의 군주가 된 자로서 누구든, 특히 그의 기초가 취약하기 때문에 왕국이든 공화국이든 입헌적 정부를 건설할 수 없다면, 그가 군주국(만약 그가 신생 군주라면)을 유지하기 위해 취해야 할 최선의 수단은 그 국가의 모든 것을 새롭게 개편하는 것이다. (p. 159)


  합법적인 정부라는 처음의 좋은 방법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지위를 유지하고자 하는 자는 이처럼 사악한 방법을 채택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중간한 조치를 취하는데 이는 대단히 위험하다. (p. 160)




제 28 장 로마인들이 아테네인들보다 자국민에 대해 배은망덕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만약 완정 폐지 이후부터 술라나 마리우스 시대까지의 로마를 본다면, 로마의 자유는 그 어떤 시민들에 의해 단 한 번도 빼앗긴 적이 없었다. 따라서 로마는 시민들을 의심할 만한 뚜렷한 이유를 갖지 않았으며, 그 결과 시민을 경솔하게 박해하는 일도 일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아테네에서는 이와 정반대였다. 왜냐하면 번영의 절정에 있던 당시에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선의의 외양을 가장한 채 아테네의 자유를 빼앗아버렸기 때문이다. …… 도편추방(ostracism)이라는 제도가 성립된 것도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다. 나아가 아테네에서 훌륭한 귀족들에 대해 가해진 온갖 폭력적 행위들은 아테네의 매시대에 걸쳐 수행되었다.

  따라서 정치 이론에 관한 저술가들이 말하는 진리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인민은 자유를 잃지 않고 지속할 때보다도 오히려 일단 잃었던 자유를 되찾앗을 대 더 과격한 행동을 보이는 법이다. (pp. 152-163)




제 29 장 인민과 군주 어느 편이 더 배은망덕한가


  나는 배은망덕이라는 이러한 악덕이 탐욕이나 의심 섞인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말하겠다. (p. 164)


  [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 사람들은 은혜를 받은 것에 보답하기보다는 상처를 입은 것에 복수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보은은 손해로 여겨지는 반면, 복수는 이득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p. 165)


  두려움은 장군이 적을 정복함으로써 군주에게 영토를 바치고 자신에게는 영광을, 부하들에게는 많은 부를 안겼을 때 일어났다. 즉 두려움은 부하들은 물론이고 적들과 군주의 신민들 사이에서 너무나 큰 명성을 떨쳐서 장군을 파견한 군주가 승리를 함께 즐길 수 없을 때 불가피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허영심이 많아 타인의 성공을 질투하고, 자기의 이익 추구에 대해서는 끝이 없기 때문에, 군주의 마음속에 승리한 장군에 대한 시의심이 갑자기 싹트게 되며 그것은 장군의 교만하고 방자한 언행과 태도에 의해 더욱 커져갈 따름이다. 그런데 군주는 일신의 안위를 바라는 것 외에는 어느 것도 염두에 두지 않는다. (p. 165)


  의심 섞인 두려움이란 군주들에게는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군주들은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군주는 자신의 깃발 아래서 승리를 거두어 주군에게 광대한 영토를 바친 사람들의 공훈에 대해서도 은혜를 베풀지 않는 법이다. (p. 167)


  따라서 군주가 배은망덕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공화국의 인민들이 배은망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에 대해 크게 놀라거나 특별히 주목할 필요는 없다. 자유를 누리고 있는 국가는 두 가지 목적을 가지는데, 첫째는 자국을 강대하게 만드는 것이고, 둘째는 자국의 자유를 유지해나가는 것이다. (p. 167)


  로마에서 카이사르는 인민들이 배은망덕을 통해 거부하려 했던 것[곧 권력]을 혼자의 힘으로 강제로 장악하였던 것이다. (p. 168)


  스키피오에 대해 인민이 배은망덕한 소행을 저지른 것은 그들이 다른 인물들에게는 한 번도 품어본 적이 없는 두려움을 스키피오에게서 느꼈기 때문이다. (p. 168)


  스키피오가 겸비하고 있던 이 역량은, 전혀 비할 데가 없을 만큼 위대한 것이어서,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로마의 행정관들조차도 그의 권위에 겁을 먹었다. …… 게다가 그의 처신 역시 너무나 놀라운 것이었기 때문에 고결한 인격으로 찬양받던 대(大) 카토 프리스쿠스는 행정관조차 두려워하는 시민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 도시라면 자유로운 도시라고 불릴 수 없다고 하면서 스키피오를 탄핵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이 경우에 로마의 인민이 카토의 의견에 따랐다 해도 그들의 행위는 용서될 만한 점이 있다. 왜냐하면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인민이건 군주이건 두려움에 사로잡혀 배은망덕하게 되었을 때에는 어느 정도 용서될 만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p. 169)


  나는 배은망덕이라는 이러한 악덕이 탐욕이나 두려움 때문에 일어난다고 말하겠다. 하지만 명백히 인민은 결코 탐욕 때문에 배은망덕한 행위를 저지르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두려움 때문에 배은망덕한 행위를 하는데, 그것도 군주에 비하면 빈도가 적다. (p. 169)




제 30 장 군주나 공화국이 배은망덕이라는 악덕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또 시민이나 장군이 배은망덕한 행위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군주는 두려움이나 배은망덕 속에서 살아야 할 필연성을 피하기 위해 본인이 친히 원정에 나서야 한다. …… 왜냐하면 군주가 정복에 성공한다면, 영광과 이득이 다 그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p. 170)


  나는 군주의 부하 장군이 배은망덕이라는 해악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장군에게 두 가지 중 한 가지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말하겠다. 그 하나는 승리를 거두자마자 장군이 곧바로 전열에서 떠나 자기 군주 가까이 몸을 두고 교만한 태도나 공명심에 사로잡힌 언동을 삼가는 것이다. ……

  그런데 장군이 그러한 처신을 꺼린다면 그는 과감하게 정반대의 처신을 택해야 한다. 즉 정복에 의해 획득한 것 일체를 군주에게 넘겨주지 않고 자기 자신의 손에 확보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 (pp. 170-171)




제 31 장 로마 장군들은 그들의 과오에 대해 과도하게 처벌받은 적이 없었다; 그들의 무능이나 잘못된 계획이 로마에 손해를 끼쳤다


  로마인들은 패전의 오명만으로 당사자인 장군들에게는 충분한 벌이 된다고 생각했으며, 그에 덧붙여 다른 중벌을 부과하면서까지 장군들을 겁줄 피룡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p. 173)




제 32 장 공화국 또는 군주는 인민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일을 부득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때가지 지체해서는 안 된다


  누구든 이런 선례에 근거해서 위급한 상태에 이를 때까지 인민의 호감을 사는 것을 연기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 왜냐하면 일반 민중은 자신들에게 그런 은혜를 베푸는 것이 위정자의 자발적인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위정자가 적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pp. 175-176)


  로마 공화정의 조치가 좋은 결과를 낳았던 이유는 정부가 아직 새롭고 정비되지 않은 상태에 있었으며, 처음부터 로마 인민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법률이 제정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p. 176)




제 33 장 국가의 내부 또는 외부로부터 커다란 위험이 엄습했을 경우, 그것을 직접 공격하기보다는 그것을 다루면서 지연시키는 정책이 훨씬 더 안전하다


  이 제도[임시 독재 집정관 제도(기원전 501년 또는 498년 창설)]는 한 시민에게 최고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그 시민은 심의를 거치지 않고 어떤 문제에 관해서도 결정을 내릴 수 있고, 또 그가 일단 결정한 것을 실행할 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이 제도는 당시에 유용했고, 도 로마에 닥친 숱한 위기를 타개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p. 177)


  그러한 위험이 심각하여 모든 사람이 두려움에 사로잡힐 경우, 가장 안전한 계획은 그것을 기어이 제거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적당히 대처하면서 시간을 버는 것이다. …… 그러한 비상사태는 외부적인 원인보다는 오히려 내부적인 원인에 의해 야기되는 경우가 더 많다. 빈번히 한 시민에게 필요 이상의 권력이 허용되거나 자유로운 제도의 신경이자 생명인 법률이 부패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pp. 177-178)


  로마에서는 이와 똑같은 일[코시모 디 메디치의 일]이 카이사르의 경우에 일어났다. 즉 폼페이우스와 다른 시민들도 처음에는 카이사르의 역량을 찬양했지만, 얼마 안 있어 그 찬양은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이에 관해 “폼페이우스가 이제 와서 카이사르에게 두려움을 느껴봤자 이미 때는 늦었다”라는 키케로의 말은 그 사정을 잘 보여준다. 이런 공포에 사로잡혀 그들은 타개책을 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사용한 타개책은 오히려 공화국의 파멸을 촉진시키는 데 지나지 않았다. (p. 180)


  그러므로 나는 이러한 해악이 발견되더라도 그것을 덮어놓고 없애려 하지 말고 적당히 다루면서 시간을 버는 편이 현명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p. 180)


  로마 인근의 여러 부족들간의 동맹은 도리어 로마 시민들을 더 단결시키고 강력하게 만들었으며 나아가 새로운 제도를 고안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p. 181)




제 34 장 임시 독재 집정관의 권한은 로마 공화국에 유익하면 유익했지 유해하지는 않았다; 자유로운 투표에 의해 주어진 권력이 아니라 시민들 스스로 강탈한 권력이 시민정부를 파괴했다.


  로마를 노예화한 것은 임시 독재 집정관이라는 칭호나 관직이 아니라 바로 일부 시민들이 군대 통수권을 연장하여 갖게 된 권력이었다. …… 무력만 가지고 있으면 어떤 명칭이 붙은 관직이라도 간단히 손에 넣을 수 있지만, 관직의 직함을 가지고 있다 해서 꼭 권력을 잡을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p. 182)


  로마의 긴 역사적 행로를 훑어보면, 국가에 공헌하지 않은 임시 독재 집정관은 한 사람도 눈에 띄지 않는다. (p. 182)


  첫째, 어떤 시민이 해를 가하고 스스로 불법적인 권한을 탈취하기 위해서는, 부패하지 않은 국가에서는 결코 갖출 수 없는 여러 가지 조건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 ……

  게다가 임시 독재 집정관은 종신제가 아니라 임기가 한정되어 있으며, 그가 그 때문에 임명된 비상 사태에 관련된 안건을 처리하는 권한만을 보유할 뿐이다. 그의 권한은 긴급한 위기상황에 대한 타개책을 스스로 결정하는 권력, 그 결정을 집행하기 위해 아무런 협의를 거치지 않고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권력, 상소 절차를 인정함이 없이 누구든 유죄로 처벌할 수 있는 권력을 포함한다. 하지만 원로원이나 민회의 권한을 축소하거나, 구래의 제도를 폐지하고 새로운 수립하는 것과 같이 현행의 통치 형태 자체에 영향을 주는 일은 일절 용납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로마에서는 임시 독재 집정관의 임기가 매우 짧았다는 점, 그 행사하는 권력이 제한적이라는 점, 로마 민중들이 아직 타락해 있지 않았다는 점, 이 세 가지 조건이 한데 작용하고 있었다. (pp. 182-183)


  확실히 로마의 모든 법률들 가운데 이 제도[임시 독재 집정관]는 그토록 강력한 제국의 위대함을 가져온 요인들 중 가장 고려할 만한 것이다. …… 공화국에서 통상적으로 시행되는 법적 절차는 그 진행이 더디게 마련이다. 이런 이유로 인한 절차의 지연은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대처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했을 때에는 위험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p. 183)


  베네치아 공화국은 실로 근래의 공화국 중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국가이다. 그 공화국은 비상시에는 소수의 시민들에게 다른 심의를 거치지 않고 전원일치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하였다. 이는 현명한 관행이다. (pp. 183-184)


  초법적인 조치는 당시에는 좋은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지만, 그러한 선례 자체가 악ㅇ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p. 184)


  임시 독재 집관의 선출은 [현직] 집정관에게는 대단히 당혹스러운 일이었음이 분명하다 도시의 통치자였던 집정관 역시 다른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임시 독재 집정관의 권한에 복종해야 했기 때문이다. …… 로마인들은 임시 독재 집정관을 선출할 수 있는 권한을 집정관에게 맡기기로 결정했다. (p. 184)




제 35 장 로마의 10인회는 인민의 자유로운 보통선거에 의해 선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공화국의 자유에 유해한 존재가 되고 말았는가


  10인회의 권위와 임시 독재 집정관의 권위를 비교해서 고찰해보면, 10인회의 권위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 것으로 나타난다.

  결국 임시 독재 집정관이 창설되었을 대는 각각의 권한을 가진 호민관이나 집정관이나 원로원 등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임시 독재 집정관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권한을 박탈할 수는 없었다. 또한 임시 독재 집정관이 집정관이나 원로원의 한 사람을 파면시킬 권한은 가지고 있었으나, 원로원이라는 제도 자체를 말살하거나 새 법률을 선포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따라서 원로원•집정관•호민관은 각각의 권한을 보유하면서 임시 독재 집정관이 본래의 궤도로부터 이탈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10인회가 창설되었을 때는 이와 정반대의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즉 집정관과 호민관이 폐지되고 10회는 마치 그들이 로마 인민 전체인 양 법률을 제정하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받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집정관과 호민관도 없이, 심지어 인민의 심의원에도 구속되지 않은 채, 다시 말해 아무런 감시와 견제를 당하지 않으면서 그들은 홀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게 되었으며, 2년째 되는 해에는 이미 아피우스의 권력 야욕에 휘말려 온갖 횡포를 부리게 되었다.

  이는 내가 자유로운 투표에 의해 주어진 권한이 결코 어떤 공화국에도 유해하지 않다고 말했을 때, 나는 인민들이 그 권한을 위임함에 있어서 적용 범위를 제한하고 또 일정한 기간으로 한정해주어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말한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pp. 186-187)


  스파르타와 베네치아에서는 지배자들이 권한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감독관이 임명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 권한이 실재한다면 질료가 전혀 부패되어 있지 않다 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절대적인 권한은 단시일 내에 질료를 타락시키고, 자신의 지지자와 당파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p. 187)




제 36 장 고위직에 있는 시민들은 하급직에 있는 시민들을 얕보아서는 안 된다


  비록 로마인들이 영예를 추구하는 데 열중했다고는 하지만 과거에 자기 부하였던 인물에게 지금 명령을 받는 입장에 놓이게 되거나, 나아가 이전에 자기가 지휘관이었던 군대에 백의종군하여 싸우게 되더라도 이를 불명예스러운 일이라고는 여기지 않았다. (p. 188)




제 37 장 농지법이 로마에 어떠한 불화를 초래했는가; 먼 과거까지 소급하는 효과를 가진 법률을 고래의 관습에 반하여 제정하는 것은 공화국에 불화를 야기한다


  야망이란 인간의 가슴속에 있는 매우 강력한 충동이기 때문에 아무리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이라도 야망이 충족되는 경우란 결코 없는 법이다. 그 원인은 자연이 인간으로 하여금 모든 것을 갈구하도록 만들어놓고도, 모든 것을 얻지는 못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p. 189)


  이[운명의 부침]는 어떤 사람은 더 많이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은 이미 얻는 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면서, 사람들이 서로 불화나 전쟁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pp. 189-190)


  그들[평민들]은 그것[호민관 제도]을 성취하자마자 곧 명예 및 부―인간이 매우 소중히 여기는―를 귀족들과 공유하겠다는 야망과 기대감으로 인해 투쟁을 시작했다. 이로부터 무질서가 초래되었으며, 그것은 농지법에 대한 투쟁을 야기하였고 마침내 그 투쟁은 공화국을 파멸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잘 정비된 공화국은 그들의 국고를 넉넉하게 하고 시민은 가난하게 만들어야 한다. (p. 190)


  이 법에는 두 개의 조항이 있었다. 하나는 어떤 시민도 정해진 일정한 양 이상의 토지를 소유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했고, 다른 하나는 적으로부터 빼앗은 토지는 로마 인민들에게 분배된다고 규정했다. (p. 190)


  그 법에 의해 불리하게 영향을 받는 자들은 주로 유력자들이었기 때문에, 귀족들은 그 법에 반대하는 것이 공공선에 봉사한다고 믿었다. (p. 191)


  이 법은 그라쿠스 형제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잠복해 있었다. 그리하여 그라쿠스 형제에 의해 농지법 문제가 제기되자, 로마의 자유는 송두리째 끝장나고 말았다. ……

  평민들은 이 혼란의 와중에 마리우스를 지지함으로써 먼저 행동을 개시했다. …… 귀족들은 술라를 지지하여, 그를 그들 당파의 우두머리로 삼아 내전에 돌입했다. 이론 인해 많은 유혈사태와 운명의 우여곡절을 겪은 후, 귀족들이 승자가 되었다. 이러한 분쟁은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시대에 다시 발생했는데, 카이사르는 마리우스파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폼페이우스는 술라파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 후 발발한 전쟁에서 승자는 카이사르가 되었는데, 그는 로마 최초의 참주가 되었고, 그 결과 그 도시는 영영 자유를 잃게 되었던 것이다. (p. 192)


  이 농지법의 결과는 그러한 나의 믿음[원로원과 평민의 대결이 자유를 지탱하는 법을 산출하여 로마의 자유를 보존했다는 믿음]과 상치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의 의견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하겠다. 만약 도시가 다양한 수단과 방식으로 부자들의 야망을 억누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즉시 그 도시를 파멸에 빠뜨릴 정도로 위험한 것이다. …… 만약 평민들이 이 법과 그 밖의 다른 요구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귀족들의 야망을 억제하지 않았더라면, 로마는 아마도 그보다 훨씬 더 일찍 노예상태에 빠졌을 것이다.

  또한 이는 사람들이 명예로운 직위보다 재산을 얼마나 더 소중히 여기는가를 잘 보여준다. 왜냐하면 그러한 직위에 관해서는 로마의 귀족들이 커다란 소동 없이 항상 평민들에게 양보했지만, 재산문제에 관한 한 그들의 저항은 매우 완강했기 때문이다. (p. 193)


  [그라쿠스 형제가] 공화국에서 심각한 지경에 이른 부조리를 제거하고자 한 것은 좋았지만, 이를 위해 먼 과거에까지 그 효력이 소급되는 법률을 제정하고자 한 것은 신중하지 못한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p. 193)




제 39 장 같은 일이 종종 다른 인민들간에 일어난다


  현재사나 과거사를 즐겨 고찰하는 자는 모든 도시와 모든 인민들이 동일한 욕망이나 동일한 기질을 가지고 있고, 항상 간직해왔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과거의 사건들을 부지런히 검토하는 쉽게 모든 나라에서 일어나는 미래의 사건들을 예견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고대인들이 사용한 치유책을 미래의 일들에 적용할 수 있고, 만약 그런 것을 발견할 수 없으면 사건의 유사성에 착안하여 새로운 치유책을 고안해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통찰이 식자들에 의해 무시되거나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아니면 이해된 경우에도 통치자들에게는 알려지지 않기 때문에 어느 시대건 동일한 분쟁이 반복해서 일어나게 마련이다. (p. 198)




제 40 장 로마에서 10인회의 창설 그리고 그로부터 배워야 할 점;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 어떻게 그러한 사건이 공화정을 구원하거나 공화정을 참주정으로 몰아넣었는지를 고찰하고자 함


  우리는 로마에서도 이러한 참주정을 수립하려는 악폐가 다른 대부분의 도시와 동일한 원인, 곧 자유에 대한 인민의 지나친 욕망과 귀족들의 지나친 지배욕에서 비롯된 것임을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두 당파가 자유를 위한 법률을 제정할 수 없어서 그 중 어느 한 당파가 어느 한 인물을 성급하게 지지하게 되면, 참주정이 재빨리 출현하게 된다는 것도 관찰할 수 있다. (p. 204)




제 45 장 특히 법률을 제정한 자가 그 법을 준수하지 않는 것은 나쁜 선례를 남기는 것이다; 그리고 통치자가 매일 새로운 비행을 저러 인민을 괴롭히는 것은 그 자신에게 대단히 위험하다


  법률을 위반하는 것은 자유의 적절한 존중과 상치되는 것이었으며, 이제 막 만들어진 법을 위반하는 것은 특히 그러했다. 왜냐하면 내 생각에 공화국에서 법률을 제정하고 위반하는 것만큼 나쁜 선례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법률을 제정한 당사자가 무시할 때에는 특히 그러하다. (pp. 211-212)


  우리는 백성들의 마으을 지속적인 처벌과 공격으로 불확실하고 두렵게 만드는 것이 공화국이나 군주에게 얼마나 해로운가를 알 수 있다. (p. 213)





제 46 장 인간은 하나의 야심에서 다른 야심으로 뛰어오른다; 처음엔 공격을 받지 않고자 하지만, 나중엔 공격을 가하고자 한다


  로마 인민이 그들의 자유를 되찾고 본래의 위상을 회복했을 대, 그들의 권력을 확인하는 많은 법의 제정을 통해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한 영향력을 확보하게 되었을 대, 이제는 로마가 평온한 시대를 향유해도 합당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매일 새로운 분쟁과 불화가 일어남으로써, 사태는 그와 반대로 전개되었다. …… [티투스 리비우스] “자신의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일방의 소망은 상대방에 대해 억압을 가할 만큼 강력해진다. 이러한 움직임을 지배하는 법칙은 인간이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할 대, 대신 타인을 두려움에 몰아넣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치 해를 가하거나 아니면 해를 입거나 하는 양자택일의 상황이 필연적인 것처럼, 그들은 스스로 피하고자 하는 상처를 타인에게 가하고 만다.” (p. 214)


  공화국은 이러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 즉 시민들이 선의라는 허울을 쓰고 악을 행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법률, 시민들이 자유를 증진시킴에 다라 인기를 얻되 자유에 위해를 가하는 일이 없도록 감시하는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 (p. 216)




제 47 장 인간이란 일반적인 것에는 잘 속을지 모르지만, 구체적인 것에는 잘 속지 않는다


  그들[로마 인민들]은 집정관의 권력을 가진 네 명의 호민관을 두되, 귀족은 물론 평민들도 그 직위에 선출될 수 있다는 데 동의했다. ……

  그런데 이로부터 주목할 만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들 호민관을 선출함에 있어서 로마 인민들은 4명 전원을 평민 출신에서 뽑을 수 있었는데 정작 그들은 4명 다 귀족들을 선택했던 것이다. ……

  이에 대한 이유를 검토해볼 때, 나는 그 이유가 인간이란 일반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곧잘 자기 기만에 빠지지만, 개별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그리 잘 속지 않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일반적으로 로마의 인민들은 그들의 집정관직을 차지할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

  그러나 정작 그들의 그들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을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자, 그들은 자신들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그들 개개인들 중 어느 누구도 전체로서는 당연히 자격이 있는 자리의 적임자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p. 217)




제 49 장 로마와 같이 자유상태에서 출발한 도시들이 자신들을 보존할 수 있는 법률을 매우 어렵게 제정한다면, 방금 노예상태에서 벗어나 출발한 도시들이 그럴 가능성은 더욱 희박하다


  공화국을 건설함에 있어 그 도시에 자유를 보존할 수 있는 법률을 마련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로마 공화국이 겪어온 역정이 매우 잘 보여준다. …… 그리하여 감찰관 제도를 신설한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새로운 법률을 고안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 관직은 로마에서 자유가 존속하던 시대에는 로마에 자유를 유지하기 위한 예방적 조치들 중 하나였다. 로마의 풍속을 단속하던 감찰관직은 로마에서 부패의 성장을 지연시킨 강력한 원인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p. 222)


  잘 정비된 공화국에서 한 시민이 단지 자유로운 정치질서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을 공포했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당한 후 이에 대해 아무런 호소를 할 수 없다면, 이는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p. 222)


  이제 막 예속상태에서 벗어난 도시가 법률에 따라 평온하게 살기 위해 조직하는 과업은 단순히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불가능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p. 223)




제 50 장 어떤 위원회나 관직이라도 국가의 통치업무를 정지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져서는 안 된다


  여기서 우리는 먼저 호민관 제도의 가치에 주목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 제도가 평민들에 대한 귀족들의 횡포를 견제하는 데에는 물론 귀족들 사이에 일어나는 횡포를 견제하는 데에도 유용했기 때문이다. 둘째, 소수의 인물들이 공화국을 유지하기 위해 법률상 필요한 사항에 관한 결정을 합법적으로 가로막는 일이 발생해서는 결코 안 되기 때문이다. (pp. 225-226)




제 53 장 인민은 표면상의 훌륭함에 현혹되어 빈번히 자신들의 파멸을 초래하는 일을 명한다; 그리고 그들은 커다란 희망과 강한 약속에 쉽게 움직인다


  인민은 좋은 것에 대한 그릇된 이미지에 현혹되어 자주 그들 자신의 파멸을 스스로 초래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신뢰하는 누군가가 그들에게 그들의 원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며 무엇이 좋은 것인지를 납득시키지 않는다면, 무수히 많은 위험과 손실이 공화국에 닥치게 마련이다. (p. 232)


  인민 앞에 제시된 계획에 외견상 이득이 명백하면, 비록 배후에 손실이 숨어 있다 해도, 그리고 그 계획이 용기 있게 보이면, 비록 공화국의 파멸이 숨어 있더라도 다중은 항상 쉽게 설득되어 그런 계획을 승인한다. 마찬가지로 어떤 제안이 비록 그 배후에 안전과 이득을 품고 있더라도 비겁하게 보이거나 손해를 끼치는 것처럼 보이면 그러한 제안을 다중이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노릇이다. (p. 233)


  그러므로 나는 권력을 인민이 가진 공화국의 멸망을 초래함에 있어 그 나라를 거창한 작전으로 몰아넣는 것보다 쉬운 길은 없다고 말하겠다. 왜냐하면 인민이 영향력을 지닌 곳에서 그러한 작전은 항상 승인될 것이며, 그들에 대항해서 다른 의견을 가진 자들은 아무런 호소력이 없기 때문이다. (p. 236)




제 54 장 흥분한 군중을 억제하기 위해 사용되는 영향력 있는 인물의 강한 위력


  흥분한 군중을 억누르는 데 가장 적합한 것은 바로 그들의 존경을 받는, 영향력과 위상을 지닌 인물이 의연히 그들을 제지하는 것이다. (p. 236)


  흥분한 군중을 제지하는 데는 존경을 받을 만한 풍모와 지위를 지닌 인물이 군중 앞에 나타나는 것보다 더 확실하고 믿을 만한 방법이란 없다는 것이다. (p. 237)




제 55 장 인민이 타락하지 않은 도시에서 공공사는 쉽게 처리된다; 평등이 있는 곳에서는 군주국이 수립될 수 없고, 평등이 없는 곳에서는 공화국이 수립될 수 없다


  이러한 사례는 …… 인민들이 얼마나 많은 선량함과 신앙심을 갖추고 있었는가, 또 얼마나 많은 선량함을 그들로부터 기대할 수 있었는가를 보여준다. (p. 239)


  오늘날 특히 이탈리아처럼 명백히 부패한 지역에서는 어떠한 선행도 기대할 수 없다. (p. 239)

  

  독일에서는 이러한 선량함과 종교심이 인민들 사이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품성으로 인해 거기서는 많은 공화국들이 저마다 자유를 누리면서 공존하고 있으며, 또한 법률을 너무나 잘 준수한다. (p. 239)


  이런 사실은 두 가지 이유로부터 유래한다. 첫 번째 이유는, 그들이 인접국들과 많은 교류를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 교류의 이유가 없었고, 이와 함께 부패의 씨앗도 애당초 제거되었다. ……

  또 다른 이유는 이들 공화국들에서는 그 정부가 잘 정비되어 부패되지 않은 채 보존되고 있기 때문에, 시민이 신사가 되거나 신사 행세를 하며 사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또 그들 사이에서 완전한 평등이 보존되고 있다는 점이다. (p. 240)


  신사라는 이 호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기 위해 나는 토지소유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인해 일하지 않고도 사치스럽게 사는 자를 신사라고 부르겠다. 그들은 농업이나 생계를 영위하는 데 필요한 다른 직업에 대해 아무런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모든 공화국은 물론 모든 나라에 위험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더더욱 위험한 인물들은 그러한 재산 이외에도 성곽을 가지고 있고 그들에게 복종하는 신민을 보유하고 있는 자들이다.

 ……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전적으로 모든 종류의 자유로운 정부에 적대적이기 때문이다. (p. 241)


  질료가 너무 부패해서 법률로도 억제하는 데 충분하지 않을 때에는, 법률 외에 보다 강력한 권력이 반드시 확립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곧 절대적이고 강력한 권력과 함께 귀족들의 과도한 야망과 부패를 억제할 수 있는 제왕적 권력이 필요불가결하다. (p. 241)


  많은 귀족들이 있는 지역에 공화국을 건설하고자 시도하는 자는 먼저 귀족들을 모두 일소하지 않으면 안 된다. 평등에 대한 믿음이 폭넓게 퍼져 있는 곳에서 왕국이나 군주국을 수립하기를 원하는 자는, 그처럼 평등한 사회로부터 야심 많고 지칠 줄 모르는 정신을 가진 자들을 발탁하여 그들을 단순히 이름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신사로 만들지 않는 한 성공할 수 없다. ……

  다른 한편 그들은 지배자의 힘을 빌려 자기네 야망을 만족시킬 수 있다. 그 밖의 다른 자들에게는 오직 무력을 사용하여 예속상태를 부과할 수 있을 뿐이다. ……

  그러므로 왕국에 적합한 지역을 공화국으로 만들거나 공화국에 적합한 지역을 왕국으로 만드는 것은 두뇌와 권위를 겸비한 매우 드문 사람에게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p. 242)


  그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신사는 이름뿐이지 실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토지소유로부터 커다란 수입이 없다. 그들의 거대한 부는 무역과 동산에 근거하고 있다. 더욱이 어느 누구도 성곽을 가지고 있거나 시종을 가지고 있지 않다. ……

  …… 베네치아 역시 신사와 인민으로 구분된다. 거기서 원칙은 전자가 모든 관직을 차지하거나 차지할 자격이 있는 반면, 후자는 그로부터 전적으로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이미 다른 곳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 도시에 분규를 초래하지 않는다. (p. 243)


  그러므로 자칭 현명한 건국자라면 커다란 평등이 존재하거나 존속되어온 곳에는 공화국을 건설할 것이다. 다른 한편 커다란 불평등이 존재하는 곳에는 군주국을 세울 것이다. (p. 243)




제 57 장 사람들은 무리를 이루면 대담하지만 개인으로서는 소심하다


  티투스 리비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함께 있을 때는 대담했지만, 각자의 개별적인 두려움으로 인해 그들은 순순히 굴복했다.” 이 문제에 관련하여 다중의 속성이 참으로 이 구절처럼 잘 표현될 수는 없다. 다중은 종종 지배자의 결정을 비난하는 데 대담하고 노골적인 언사를 사용하지만, 정작 처벌이 닥치게 되면 서로를 믿지 못하고 복종을 서두른다. (p. 245)


  한편으로는 지도자가 없어 걷잡을 수 없는 다중보다 더 무서운 것도 없겠지만, 다른 한편 그보다 더 연약한 존재도 없는 것이다. …… 그런 식으로 자극된 다중이 이러한 위험을 피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지도자를 선출하고, 그의 지도에 따라 단결을 유지하면서 방어책을 강구해야 한다. (p. 246)




제 58 장 다중은 군주보다 더 현명하고 더 안정되어 있다


  다중만큼 경박하고 불안정한 것은 없다는 점을 다른 역사가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티투스 리비우스 역시 긍정한다. (p. 247)


  그[리비우스]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비굴하게 굴종하든가 아니면 거만하게 군림하든가 이것이 바로 다중의 속성이다.” (p. 247)


  사태가 여하튼 어떤 의견을 귄위나 무력에 의존하지 않고 논변으로 옹호하는 것이 죄라고 판단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pp. 247-248)


  이 점[다중을 비난한 점]은 특히 군주에게도 적용된다고 말하겠다. 왜냐하면 법률에 의해 규제되지 않는 자는 통제되지 않는 다중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과오를 범할 것이기 때문이다. (p. 248)


  내가 여기서 군주라고 일컫는 자들은 자신들을 구속하는 굴레로부터 벗어난 자들을 가리킨다. (p. 248)


  공화국이 아직 부패하지 않는 채 지속되는 동안 비굴하게 복종하지도 않고 거만하게 군림하지도 않은 로마 인민이 바로 그러한 [다중이 법에 의해 규제되어 선량함을 가진] 예이다. (p. 249)


  그러나 우리의 역사가들이 다중의 성격을 놓고 운운할 때, 그들은 로마 인민처럼 법률에 의해 규제되는 인민에 대해서가 아니라 시라쿠사의 인민들처럼 규제받지 않는 인민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 그러므로 다중의 성격을 군주의 성격보다 더 비난해서는 안 된다. 시비를 고려함이 없이 제멋대로 과오를 저지를 때에는 모두들 동등하게 과오를 범하기 때문이다. (pp. 249-250)


  그렇다면 나는 인민이 권력을 잡으면 동요하기 쉽고, 변덕이 심하며 배은망덕하다는 통상적인 의견과 다른 결론을 내리고 싶다. …… 잘 정비된 제도를 통해 명령을 내리는 인민은 군주만큼이나 침착하고 신중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 때문이다.

  아니 그들은 현명하다고 생각되는 군주보다 더 많이 그러한 장점을 갖고 있다. 다른 한편 법률의 구속으로부터 풀려난 군주는 인민보다 더 배은망덕하고 동요하기 쉽고 더 경솔하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상의 차이는 상이한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왜냐하면 그 본성은 인간에게 동일한 것이고 우월성이 있다면 오히려 인민에게 있을 것이기 때문에―복종해야 하는 법률을 양자가 얼마나 많이 존중하는가에서 비롯된다. (p. 250)


  신중함과 침착성에 대해 나는 인민이 군주보다 더 신중하고, 더 침착하며, 더 우월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겠다. (p. 251)


  사물을 판단함에 있어서도 예컨대 능력이 비슷한 두 인물이 정반대되는 주장을 내세울 때 인민이 보다 나은 의견을 수용하지 않는다든지, 들으면서 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든지 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

  관리를 선택함에 있어서도 인민은 군주보다 훨씬 나은 선택을 하는 편이다. …… 인민은 어떤 것을 일단 혐오하기 시작하면 오랜 세월에 걸쳐 동일한 의견을 고수하는데, 군주의 겨우 이런 일은 좀처럼 없다. (p. 251)


  로마 인민은 왕이라는 칭호를 너무나 혐오한 나머지 어떤 로마 시민의 공적이 제 아무리 클지라도 그 칭호를 얻고자 했던 시도 그 자체만으로도 그는 거기에 합당한 벌을 모면할 수 없었다. (p. 252)


  인민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도시는 단시일 내에 엄청나게 성장하며, 군주가 계속 통치하는 도시보다 훨씬 많이 성장한다. …… 이는 인민에 의한 정부가 군주에 의한 정부보다 낫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p. 252)


  만약 군주가 법률을 제정하거나, 법률에 따라 공동체를 형성하거나, 새로운 법제도를 설립하는 데 우월하다면, 인민은 이미 조직된 사물을 보존하는 데 우월하여 의심할 여지 없이 공동체를 창업한 사람들만큼이나 영광스런 업적을 성취한다. (p. 252)


  우리는 법률을 지킬 의무가 있는 군주와 법률에 구속되는 인민을 다루는 셈인데, 그 경우 우리는 군주보다는 인민에게서 보다 많은 장점을 보게 된다.

  만약 우리가 법률에 의해 규제되지 않는 인민이나 군주를 논하게 되면, 군주보다는 인민의 경우 결함이 적으며 그 결함 역시 비교적 사소하고 치유하기 쉽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 인민의 병폐를 치유하는 데에는 말로써 충분한 데 반해, 군주의 병폐에 대해서는 칼이 필요하다. (pp. 252-253)


  다중의 잔인함은 모든 다중의 재산을 탈취할 것이라고 염려되는 한 사람에게 저지르는 것이다. 그러나 군주의 잔인함은 군주가 자신의 개인 재산을 탈취할 것이라 염려하는 모든 사람에게 저지르는 것이다. (p. 253)




제 60 장 로마에서는 집정관을 비롯한 그 밖의 다른 관직을 임명함에 있어 연령에 구애받지 않았다


  역사의 도정을 살펴보면 로마 공화국은 집정관의 직위를 인민들에게 개방하자마자, 그 직위를 나이나 가문을 고려하지 않고 부여했다. 따라서 실로 로마에서 연령은 필요조건이 아니었고 젊은 사람이건 늙은 사람이건 능력을 항상 중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p. 257)


  영광스러운 업적을 위해 인민을 활용하지 않는 도시는 …… 원하는 대로 그들을 대우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만약 로마가 이룩한 것을 얻고자 한다면, 인민을 차별할 수는 없다. (p. 258)


  출신가문을 고려하지 않는 점이 허용된다면, 연령에 관한 관행도 반대할 수 없으며 오히려 필수적이라 할 것이다. (p. 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