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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로 마키아벨리, 『로마사 논고』, 강정인, 안선재 역, 한길사, 2003.




제 1 권


제 1 장 도시 일반의 기원, 특히 로마의 기원에 관해


  로마라는 도시의 기원과 그 입법자 및 기본적인 정치제도에 관한 글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도시에서 그토록 위대한 덕이 그토록 오랜 세기 동안 유지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공화국이 나중에 제국으로 발전하여 존속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그리 놀라지 않을 것이다. (p. 69)


  나는 우선 모든 도시는 도시가 세워진 곳에 살고 있던 토착인 또는 다른 곳에서 온 이주민들에 의해 세워진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 번째 사례는 주민들이 다수의 작은 공동체로 흩어져 살기 때문에 안전을 향유할 수 없다고 느꼈을 때 발생한다. 왜냐하면 그 자체로는 어느 한 공동체도 지형이나 적은 인구로 인해 침략자의 공격에 저항할 만큼 충분히 강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적이 쳐들어왔을 때, 그들이 방어를 위해 뭉칠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p. 70)


  이와 같은 사례는 매우 많은데, 그 가운데서도 우선 베네치아를 들 수 있다. (p. 70)


  두 번째 사례는 도시가 이방의 종족들에 의해 건설되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들은 자유인이거나 아니면 타국에 예속된 인민들인데, 후자의 경우에는 공화국이나 군주국이 자국의 인구를 줄이거나 새로이 획득한 영토……를 방어하기 위해 보낸 식민이다. 로마인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제국 전역에 걸쳐 많은 도시를 건설했다. 또 어떤 도시들은 군주에 의해 건설되기도 했는데, 이 경우 군주가 그곳에 정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건설된 알렉산드리아처럼 군주의 명성을 드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p. 71)


  이러한 [자유로운] 도시들은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정복한 나라에서 기존의 도시를 발견하여 정주하게 된 경우이거나, 아니면 아이네아스처럼 아예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경우이다. (p. 72)


  인간의 안전은 권력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에, 도시는 황량한 곳을 피해 매우 비옥한 곳에 자리잡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도시는 토지의 풍요함에 근거하여 팽창하게 되었을 때, 공격으로부터 능히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고 나아가 대국으로 성장하는 데 방해가 되는 세력들을 능히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이 조장할 법한 게으름에 대해서는 그 상황이 강제하지 않는 근면의 필요성을 법률에 의해 강제하는 것으로 대비해야 할 것이다. (p. 73)


  그러므로 나는 도시를 비옥한 땅에 건설하는 것이, 법률에 의해 그 비옥함의 [부정적] 효과를 적절한 한계 내로 억제할 수 있다는 조건에서라면, 보다 현명한 처사라고 주장하겠다. (p. 74)


  아이네아스가 최최의 건국자라고 믿는 자들에게 로마는 이방인들에 의해 건설된 도시일 것이다. 그러나 로물루스를 건국자로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로마는 그곳의 토착인들에 의해 건설된 도시일 것이다. 하지만 어느 편이 사실이든, 양자 모두 로마가 어느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도시로 출발했다는 점은 인정할 것이다. (p. 75)




제 2 장 얼마나 많은 종류의 국가가 있는가, 그리고 로마는 어떤 종류의 국가에 속하는가


  어떤 종류의 대외적인 종속이든 그것과 상관없이 출발한, 곧 공화국이든 군주국이든 처음부터 자신들의 뜻에 따라 통치된 도시들을 논의하고자 한다. (p. 76)


  어떤 도시들의 경우에는 창설 당시 또는 그 직후, 어떤 한 인물에 의해 법률이 단 한 번에 제정되었는데, 예를 들어 스파르타에서는 리쿠르고스에 의해 법률이 제정되었다. 반면에 다른 도시들은 예측하지 못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우연히 그리고 여러 차례에 걸쳐 법률을 정비하게 되었다. 이는 바로 로마의 경우이다. 신중한 지도자를 배출하여 그가 제정한 법률을 개정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그 법률 아래서 백성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국가는 진정 행복할지어다. 예를 들어, 스파르타는 건국 당시의 법률을 훼손시키지 않고, 또 어떠한 위험스러운 분란도 없이 800년 이상이나 그 법률을 준수했다. (p. 77)


 [좋은 정부의] 각각은 그것과 연관된[나쁜 정부 형태]과 너무 유사해서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쉽게 변형된다. 곧 군주정은 참주정으로 쉽게 변하고, 귀족정에서 과두정으로의 이행은 손쉬우며, 민주정은 어렵지 않게 무정부상태로 변질된다. (p. 78)


  그 과정에서[우두머리를 정하고 그의 명령에 복종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정직하고 선량한 것을 유해하고 사악한 것으로부터 구분하는 법을 습득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자기에게 은혜를 베푼 자에게 해악을 가는 자를 목격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부정을 저지른 자에 대해서는] 증오와 [은혜를 베푼 자에 대해서는] 동정심을 불러일으켰으며, 그 결과 동일한 해악이 자신들에게 가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은혜를 모르는 자들을 비난하고 감사의 뜻을 표하는 자들을 존경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종류의 해악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그들은 법률을 제정하고 이를 위반하는 자에게 처벌을 부과했다. 정의의 관념은 이렇게 발생했던 것이다.


  그[타락의] 결과 군주는 미움을 사게 되었고, 그러한 미움을 두려워하고 겁에 질려 당장 폭력에 의존하게 되었으며, 그 즉각적인 결과가 참주정치였다.

  이로부터 파멸, 즉 군주에 대한 음모와 반란의 원인이 발생하게 되었다. 음모와 반란은 …… 다른 사람들보다 가문, 기백, 부 및 계급에서 우월하기 때문에 군주의 수치스러운 생활태도를 참들 수 없는 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 해방자들은 단일한 인물이 통치하는 체제를 거부했기 때문에, 스스로 정부를 구성하였고, 처음에는 이전의 폭정을 생각하고 그들이 제정한 법률에 따라 처신하고, 그들 자신의 이득을 공동선에 복종시키며, 아주 근면하게 공사(公私) 업무를 돌보고 처리했다. (pp. 79-80)


  그들[자식들]이 탐욕, 야심, 여성들의 겁탈에 탐닉함으로써 최선자들에 의한 통치는 소수에 의한 통치로 전락하게 되었다. 또 그 체제는 시민적인 권리를 무시했기 때문에, 머지않아 참주에게 일어난 일이 그들에게도 일어나게 되었다. (p. 80)


  소수 지배체제를 전복시킨 자들은 군주정을 다시 수립하기를 원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민중 정부에 주의를 돌려 유력한 소수나 1인의 군주가 통치권을 갖지 않는 방식으로 국가를 조직했다. (p. 80)


  그러나 오래지 않아, 특히 그 정치체제[민중 정부]를 수립한 세대가 사라진 후, 그 체제는 자유의 남용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한 상태에서는 공공의 권위도 타인에 대한 존중도 사라지게 되었으며, 그 결과 각 개인은 제멋대로 살게 되어 매일 온갖 악행들을 저지르게 되었다. 그러다가 필연에 강제되거나 어떤 훌륭한 사람의 제안에 다라, 또는 그러한 남용을 걷어치우기 위해 사람들은 다시  한 번 군주정으로 되돌아갔다. (p. 80)


  이것이 모든 국가가 통치하는 과정에서 거치게 되는 순환이다. (p. 81)


  그렇다면 지금까지 논의한 정부는 모두 병약한 형태라고 말하겠다. 세 형태의 좋은 정부는 단명하고, 세 형태의 나쁜 정부는 사악하기 때문이다. …… 처음의 세 가지 좋은 정체가 갖는 성격을 모두 다 포함한 하나의 정체를 택하여, 그것을 가장 견실하고 안정된 것이라 판정하였다. 그 이유는 동일한 도시 안에 군주정, 귀족정, 민중 정부의 여러 요소들이 함께 있게 된다면,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기 때문이다. (p. 81)


  [로마의] 그 왕들은 내가 논의한 원인과 경위로 인해 왕위를 잃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몰아낸 자들은 왕의 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즉시 두 명의 집정관을 두었다. 그리하여 극들은 로마로부터 왕의 칭호를 박탈했지만, 왕의 권력에 해당하는 제도는 유지했다. 그 결과 국가기구에 집정관과 원로원이 있게 되었기 때문에, 앞에서 언급한 세 요소 가운데 두 요소, 곧 군주정과 귀족정의 혼합이 형성되었다.

  이제 정부 내에 민중의 역할을 위한 자리를 만드는 일만 남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일은, 로마 귀족이 다음에 설명할 이유로 횡포를 부리게 되었을 때 민중들이 그에 저항하여 봉기를 일으키고, 급기야 귀족들이 자신들의 모든 것을 잃지 않기 위해 민중들에게 그들의 몫을 허용함으로써 달성되었다. …… 그리하여 호민관이라는 관직이 창설되었다. (p. 83)



제 3 장 로마에서 호민관을 창설하게 된 경위―국가를 더욱 완벽하게 만든 사건

  국가를 창설하고 법률을 제정하는 자는 다음과 같은 점을 상정할 필요가 있다. 즉 모든 인간은 사악하고, 따라서 자유로운 기회가 주어지면 언제나 자신들의 사악한 정신에 따라 행동하려 한다는 점이다. (p. 84)


  사람들은 필연에 의해 강요당하지 않는 한 결코 좋은 일을 하려 하지 않으며, 많은 선택이 있고 과도한 자유가 허용되면 만사가 순식간에 혼란과 무질서에 빠진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굶주림과 빈곤은 사람들을 근면하게 만들고, 법률은 사람들을 선량하게 만든다는 말이 있다. …… 평민과 귀족 간의 불화로부터 초래된 많은 혼란, 소동 및 내전의 위험을 거친 후에 사람들은 인민의 안전을 위해 호민관을 창설하게 되었다. 또한 사람들이 호민관에게 높은 권위와 명예를 부여했기 때문에, 그 후 호민관은 항상 평민과 원로원을 중재하고, 귀족들의 거만함을 억제할 수 있었다. (p. 85)




제 4 장 평민과 원로원의 대립이 로마 공화국을 자유롭고 강력하게 만들었다.


  나는 운명과 군사제도야말로 로마가 강성해진 원천이었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와 의견이 상반된 자들은 좋은 군대가 있는 곳에는 으레 좋은 정부가 있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도시가 행운을 갖지 못하는 경우란 좀처럼 없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p. 86)


  귀족과 평민 간의 내분을 비난하는 자들은 로마를 자유롭게 만든 일차적 원인을 비난하고 그러한 내분이 초래한 좋은 결과보다는 그것들로부터 유래하는 분란과 소동만을 고려하는 것처럼 내게 보인다. 그들은 모든 공화국에는 두 개의 대립된 파벌, 곧 평민의 파벌과 부자의 파벌이 있다는 점 그리고 로마가 자유를 향유할 수 있도록 제정된 모든 법률은 그들의 불화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p. 86)


  [타르퀴니우스로부터 그라쿠스 형제에 이르는 300여 년 간] 이토록 좋은 모범적 처신은 좋은 교육에, 좋은 교육은 좋은 법률에, 좋은 법률은 많은 이들이 무분별하게 규탄하던 그러한 대립과 불화에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 결과를 엄밀히 검토한 자라면 누구나 그러한 대립이 공동선에 유해한 추방이나 폭력보다는 공공의 자유에 도움이 되는 법률과 제도를 생산해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p. 87)


  모든 도시는 인민에게 그들의 야심을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야 한다. …… 자유를 희구하는 평민의 열망이 자유에 해로운 경우란 것의 없다. 왜냐하면 그 열망은 억압으로부터 도는 억압이 발생할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의 믿음이 잘못된 것일 때는 언제나 집회라는 치유책이 있다. 그 집회에서 유력한 어떤 인물이 나서서 인민들에게 그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다. (pp. 87-88)


  만약 이러한 내분이 호민관의 설립을 초래했다면, 그것은 최대한의 찬양을 받을 가치가 있다. 그 이유는 호민관이라는 관직이 통치에 인민의 몫을 부여한 것 이외에도, 다음 장에서 보듯이, 로마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창설되었기 때문이다.




제 5 장 인민과 귀족 어느 편이 더 확실하게 자유를 보호하는가, 그리고 새로이 권력을 얻고자 하는 자와 기존의 권력을 보유하고자 하는 자 가운데 어느 편이 분란의 원인인가


  공화국을 현명하게 설립한 자들이 배려한 가장 필요한 사항들 중 하나는 자유의 수호자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p. 88)


  옛날에는 라케다이몬인들이, 오늘날에는 베네치아인들이 자유를 귀족의 손에 맡겼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그것을 평민의 수중에 맡겼다. …… 그 결과를 검토한다면, 귀족의 편을 들고 싶기도 하다. 스파르타와 베네치아는 로마보다 오랫동안 자유를 누렸기 때문이다. (p. 89)


  [로마의 편을 들어 이유를 검토해본다면] 귀족과 귀족이 아닌 자들의 목적을 검토해보면, 전자에게는 지배하려고 하는 강한 갈망이 있고, 후자에게는 단지 지배당하지 않으려는 갈망, 다시 말해 귀족들보다 지배권을 장악할 전망이 적기 때문에 자유 속에서 살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런즉 평민이 자유를 보호하는 직책을 담당하게 되면 그들은 스스로 그것을 독점할 수 없기 때문에, 타인들이 그것을 독점하지 않도록 훨씬 잘 지킬 것이다. (p. 89)


  반면에 스파르타와 베네치아의 제도를 옹호하는 자들은 자유의 수호를 강력한 자들의 수중에 맡기는 것이 두 가지 점에서 좋다고 말한다. 첫재, 그 제도는 귀족들의 야망을 더욱 잘 충족시키는다는 점이다. …… 둘째, 그 제도는 인민들의 변덕스러운 심성에 권위를 내맡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사례로서 로마 자체를 제시한다. 왜냐하면 로마에서는 호민관들이 이러한 권력을 그들의 손에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평민들은 평민 출신의 집정관 1인을 가지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2인의 집정관 모두가 평민이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도 그들은 감찰관, 사법관 그리고 정부의 다른 모든 관직을 원했다는 것이다. (pp. 89-90)


  그것[자유를 어느 편에 맡겨야 하는가]은 로마와 같이 제국을 건설하기를 원하는 공화국인가 아니면 스스로를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공화국인가에 달려 있다. 다음 장들에서 그 이유와 방법을 논할 예정인데, 전자의 경우에는 로마가 한 대로 모든 일을 하는 것이 필요하고, 후자의 경우에는 다음 장에서 논의할 베네치아와 스파르타를 모방할 필요가 있다. (p. 90)


  여하튼, 분란은 대부분 이미 가진 자에 의해 초래된다. 무언가 잃을 것 같다는 그들의 두려움은 무언가 얻고자 하는 자들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도 일반적으로 사람은 새로운 것을 추가하지 않으면 그가 가진 것도 확실히 지키지 못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p. 92)




제 6 장 로마에서 인민과 원로원 간의 대립을 소멸시킬 수 있는 정부를 수립할 수 있었는가


  우리는 로마가 위에서 언급한 공화국들[베네치아와 스파르타]처럼 평온히 남아 있기를 원했다면, 그 입법자들이 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있엇다는 점을 납득하게 된다. 즉 베네치아인들처럼 전쟁에 인민들을 동원하지 않거나, 아니면 스파르타인들처럼 외래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하지 않거나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이 두 가지 일을 다 했다. 그들은 인민들에게 권력을 허용하고 인구증대를 초래하여 소동을 일으킬 수 있는 많은 소지를 야기했다. 따라서 로마가 계속 평온만을 유지했더라면, 다음과 같은 난관에 봉착했을 것이다. 즉 로마가 위대함에 이르는 길이 차단됨으로써 로마는 훨씬 약화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즉, 만약 로마가 분란의 원인을 제거하기로 계획했더라면, 그것은 동시에 성장의 원인을 제거하는 일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p. 95)


  누구든 새로이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자는 그 국가의 영토와 권력이 로마처럼 팽창하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그 국가를 협소한 영토 내에 묶어둘 것인지를 미리 결정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경우라면, 국가를 로마처럼 조직하여 가능한 한 주민들간에 분란과 불화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필요하다. …… 두 번째 경우라면, 스파르타나 베네치아처럼 건설해야 한다. (p. 96)


  오랫동안 지속될 국가를 만드는 방책은 국가를 내부적으로 스파르타나 베네치아와 같이 조직하고, 누구도 손쉽게 정복할 수 없는 천연적인 요새로 삼을 만한 곳에 터를 잡는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런 국가는 너무 커서 이웃 나라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그 국가는 오랫동안 독립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p. 97)


  나는 다른 국가가 아니라 로마의 방책을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전자와 후자 사이에서 절충책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민과 원로원 사이에 발생한 그러한 반복들을 감당해야 하며 로마와 같은 위대함을 성취하기 위한 필요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호민관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제도라는 이유 외에도, 공화국이 탄핵을 할 수 있는 권리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된다. (p. 98)




제 7 장 공화국에서 탄핵권은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국가의 자유를 수호할 임무를 부여받는 자에게 어떤 식으로든 국가의 자유를 위협한 시민을 민회나 일정한 행정관 또는 위원회에 탄핵할 수 있는 권능을 보유하도록 하는 것만큼 유용하거나 필요한 것을 달리 또 발견할 수 없다. 이러한 조치는 공화국에 매우 귀중한 두 가지 효과를 가져온다. 첫째는 시민들이 고발당할까 두려워서 국가에 반역을 꾀하지 않는 것이다. …… 다른 효과는 국가가 다양한 시민들 사이에 잡다한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는 당파적 증오를 해소할 수 있는 배출구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p. 99)


  이러한 사례[리비우스의 코리올리누스 이야기]는, 내가 위에서 발한 바, 곧 공화국은 법률을 통해 대중이 특정한 시민에게 품게 된 노여움에 대하여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배출구를 제공하는 것이 유용하고 필요하다는 점을 예시한다. 왜냐하면 아무런 합법적인 방법이 없으면 불법적인 방법에 호소하기 때문이다. (p. 100)




제 8 장 탄핵이 소중한 반면, 중상은 해롭다


  자유로운 도시와 그 밖의 다른 모든 체제에서 중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혐오스러운 결과를 낳는가를 알 수 있다. …… 이러한 중상을 뿌리 뽑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고발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열어놓는 것이다. 왜냐하면 중상이 국가를 해치는 것만큼이나 합법적인 고발은 공화국에 커다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양자 사이에는 이 같은 차이가 있다. 중상은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증인 또는 그 밖의 다른 특별한 정보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든 다른 사람을 중상할 수 있다. 그러나 고발은 그 비난의 진실성을 보여주는 진정한 정보와 정황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아무나 함부로 고발당하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 …… 이러한 식으로 이루어지는 중상은 합법적인 고발이 별로 사용되지 않거나, 고발을 처리하는 도시의 제도가 잘 정비되지 않은 경우에 빈번히 사용된다. 그런즉 공화국을 건설하는 자는 고발이 그 공화국 내의 어떤 시민을 상대로 해서든 아무런 두려움이나 망설임 없이 제기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 (pp. 104-105)


  그들[로마인들]은 법에 따라 고발을 할 의무가 있었다. 만약 고발이 사실로 판명되면 그들은 보상을 받았고, 적어도 처벌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고발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면 그들은 만리우스가 그랬듯이 처벌받았다. (p. 107)





제 9 장 새롭게 공화국을 창건하거나, 구제도를 철저히 혁파하여 공화국을 쇄신하는 일은 한 사람이 단독으로 해야 한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로물루스와 같은 건국의 시조가 먼저 자신의 동생을 죽이고, 그 다음에는 자신과 권위를 공유한 인물인 사비니 가(家)의 왕 티투스 타티우스의 살해에 가담한 것은 나쁜 선례라고 생각하지 않나 싶다. 이로부터 그들은 지배자가 되고자 하는 야심과 소망을 품은 시민들이 그들의 군주[로물루스]의 선레를 따라 그들의 지배에 반대하는 자들을 공격하게 되었다고 추론한다. 이러한 견해는 로물루스로 하여금 그러한 살인행위를 저지르게 한 목적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타당할 것이다. (p. 108)


  한 인물에 의해 조직되지 않는다면, 어떤 공화국이나 왕국도 처음부터 잘 조직되거나 예전의 제도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철저히 개혁되는 경우란 거의 없거나 결코 없다는 점이다. …… 무릇 공화국의 신중한 건설자로서 그 의도가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일반적인 선(善)을 추구하고자 하고, 자기 자손이 아니라 공동의 조국을 염두에 둔 자는 모든 권위를 자기 소중에 넣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러므로 신중한 지성인이라면 어떤 사람이 왕국을 조직하거나 공화국을 세우기 위해 사용한 부당한 행위에 대해 책망하지 않는다. 비록 그 행위가 비난받을 많나 것이라 할지라도 그 결과가 용서받을 만한 것이라면 여하튼 적절한 것이다. 그러므로 로물루스의 경우처럼 그 결과가 좋다면, 그 결과는 항상 그를 용서할 것이다. 왜냐하면 복원하기 위해서 폭력을 행사한 자가 아니라 파괴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한 자가 비난받아 마땅하기 때문이다. (p. 108)


  더욱이 건국자는 신중하고도 고결한 인물이어야 한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그가 장악한 권한을 유산으로 남겨서는 안 된다. …… 게다가 국가의 건국에는 단지 한 인물이 적합하다 해도, 일단 조직된 정부는 그것을 유지하는 부담이 단지 한 사람의 어깨에만 걸려 있다면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그러나 정부를 많은 사람들이 보살피게 될 때, 즉 그 유지가 많은 사람의 책임에 내맡겨질 때, 그것은 실로 오래 지속된다. 그 이유는 많은 수의 사람들은 다양한 의견으로 인해 정부에 무엇이 좋은 것인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서 건국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일단 좋은 정부에 익숙해지면 그것을 포기하는 데에는 쉽게 찬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pp. 108-109) [공화국 건국의 상황과 공화국 유지의 상황이 다르다.]


  그[로물루스]가 한 일이 그 자신의 야심이 아니라 공동선을 위해 행해진 일이었다는 점은, 그가 즉각적으로 원로원을 창설한 사실에 의해 입증된다. …… 그리고 로물루스가 자신을 위해 남겨 놓은 권한을 잘 관찰한 사람은, 전시에 갖는 군대통수권과 원로원을 소집할 권한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그에게 남겨져 있지 않았다는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p. 109)


  건국하기 위해서는 혼자서 모든 권한을 장악할 수 필요가 있으며, 로물루스가 레무스와 티투스 타티우스를 살해한 행위는 비난이 아니라 용서를 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p. 111)




제 10 장 공화국이나 왕국의 창설자는 명성을 누려야 하는 한편, 참주정치의 시조는 응당 비난을 받아야 한다.


  어느 누구든 카이사르가 특히 역사가들에 의해 찬양을 받는 것을 보고 카이사르의 영광에 현혹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를 칭송하는 자들은 그의 재력에 매수되었거나 로마제국이 오래 지속된 것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 악행을 저지르려고 의도한 자보다 실제 저지른 자가 더 비난을 받아야 하는 만큼, 카이사르는 훨씬 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독자는 또한 역사가들이 브루투스에 대해 얼마나 많은 칭송을 바치고 있는지를 관찰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그들은 카이사르의 위세에 눌려 그를 비난할 수 없기 때문에, 그만큼 더 그의 적을 찬양한다. (p. 113)


  제국이 다시 세습으로 돌아갔을 대, 로마는 다시 혼란에 빠져 들어갔던 것이다. (p. 114)


  훌륭한 황제에 의해 통치된 시대에 그는 안전한 시민들 사이에서, 평화와 정의로 충만된 세계에서 군주가 안전한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을 목격할 것이다. 그는 원로원이 권위를 가지고, 행정관이 명예를 누리며, 부유한 시민들이 그들의 부를 향유하고, 귀족과 덕이 찬양되는 것을 볼 것이다. 그는 최상의 평온과 최상의 선을 볼 것이다. (p. 114)


  참으로 어떤 군주가 세상에서 영관을 얻고자 한다면 그는 부패한 도시를 갖기를 소망해야 한다. 하지만 카이사르처럼 전적으로 파멸에 빠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로물루스처럼 개혁하기 위해서 말이다. (p. 116)




제 11장 로마의 종교


  누마[로물루스의 후계자]는 인민이 대단히 거칠다는 점을 발견하고 나서 평화적인 수단을 통해 그들이 법률에 복종하도록 만들고자 했다. 여기서 그는 질서정연한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전적으로 필요한 수단으로 종교에 주목하였다. 그리하여 그가 종교를 기초로 국가를 확립한 결과, 오랜 시대 동안 신에 대한 외경이 로마 공화국만큼 강한 나라가 없게 되었다. (p. 116)


  그러므로 로마의 역사를 잘 검토한 자는 종교가 군대를 통솔하고, 인민에게 영감을 주며, 사람들을 선량하게 만들고 사악한 자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데 얼마나 커다란 도움이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p. 118)


  그렇다면 모든 것을 고려해볼 대, 나는 누마가 도입한 종교야말로 로마가 누리게 된 번영의 주된 이유라고 결론짓겠다. 종교는 좋은 법을 가져왔고, 좋은 법은 행운을 가져왔으며, 행운으로부터 도시가 노력한 모든 사업이 행복한 결실을 보게 되었다. 종교적 가르침의 준수가 국가의 위대함을 초래하듯이, 종교에 대한 경멸은 국가의 파멸을 가져온다.




제 16 장 군주정에 익숙한 인민은 우연한 사태로 인해 자유를 회복하더라도 자유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마련이다


  한 군주 아래 사는 데 익숙한 인민이, 타르퀴니우스를 추방한 이후에 자유를 얻은 로마 인민처럼 우연한 사건에 의해 자유를 얻는다 하더라도, 나중에 그 자유를 보존하는 데 얼마나 커다란 어려움을 겪는가는 고대사의 숱한 실례들에 의해 충분히 입증된 바 있다. (p. 133)


  그들[인민들]은 타인의 명령하에 사는 데 익숙해서 국가로서 어떻게 방어를 하고 공격을 해야 하는지 생각할 줄 모르고 군주를 이해하지도 못하며 그들에 의해 이해되지도 못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바로 조금 전에 벗어 던진 멍에보다 통상 훨씬 더 가혹한 멍에에 순식간에 걸려들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곤경도 아직 완전히 부패하지 않은 인민에게만 일어난다. 왜냐하면 완전히 부패한 인민은, 이하에서 곧 설명하듯이, 잠시라도, 아니 실상 전혀, 자유롭게 살 수 없기 때문이다. (pp. 133-134)


  새롭게 자유를 얻은 국가는 열렬한 적(敵)은 있지만 열렬한 동맹은 없다는 점이다. 군주의 재부(財富)로부터 양분을 빨아먹음으로써 혜택을 누리던 모든 이들은 열렬한 적이 된다. …… 그런 국가는 열렬한 동맹을 얻을 수 없다. (p. 134)


  아무런 걱정 없이 자기 소유물을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는 권능, 자기 부인이나 자녀의 명예가 유린되지 않으리라는 믿음, 자신의 명예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 등에 대해서는 정부가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정부에 대해 의무감을 느끼는 일이란 없는 법이다. (p. 134)


  진정으로 다중이 그에게 적대적이기 때문에 자신의 권좌를 장악하기 위해 불법적인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는 군주는 불운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단지 소수를 적으로 둔 자는 쉽게 그리고 폭력에 자주 호소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안전을 보전할 수 있지만, 인민을 적으로 둔 자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안전을 도모할 수 없기 때문이다. (p. 135)


  만약 군주가 자기에게 적대적인 인민의 환심을 사고자 한다면(나는 자기 조국에서 참주가 된 군주를 말하고 있다), 나는 그가 우선 인민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하겠다. 그는 항상 인민이 두 가지를 원한다는 점을 발견할 것이다. 첫째, 그들은 자신들을 노예로 만든 장본인에게 복수를 하고자 한다. 둘째, 그들은 다시 자유를 찾고자 갈구한다. (p. 136)


  인민들이 자유를 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잘 살펴야 한다. 거기서 그는 그들 중 소수는 통치에 참여하고 싶어 자유를 원하지만, 그 밖의 인민 대다수는 삶의 안전을 위해 자유를 원한다는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단지 안전하게 사는 것으로 충분한 나머지 사람들은 일반적인 안전과 군주의 권한을 동시에 확보하는 명령과 법률에 쉽게 만족할 것이다. 군주가 이러한 조치를 취하고 어떠한 상황하에서 군주가 법률을 위반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민이 깨닫게 되면, 단시일 내에 그들은 안심하고 만족을 느낄 것이다. (pp. 136-137)




제 17 장 부패한 인민은 자유를 얻더라도 자유를 유지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오직 인덕과 역량을 겸비한 군주만이 그 국가를 자유롭게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자유도 단지 그의 수명이 지속되는 한 연장될 뿐이다. (p. 138)


  타르퀴니우스 가문을 몰아냈을 때 로마는 즉각적으로 자유를 회복해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카이사르가 죽고 카이우스 칼리굴라가 죽고 네로가 죽은 후 카이사르의 혈통은 끊어졌는데, 로마는 자유를 유지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소생시킬 수도 없었다. …… 타르퀴니우스 시대에 로마 인민은 아직 타락하지 않았지만, 후대에는 그들이 매우 부패했다는 점이다. (p. 139)


  나는 아무리 격렬하고 가혹한 어떠한 우발적인 사태도 밀라노나 나폴리에 자유를 회복시킬 수 없다고 말하겠다. 그 구성원들이 이미 전적으로 부패했기 때문이다. (p. 140)


  질료가 부패하지 않은 상태에서 봉기나 기타 소요는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러나 질료가 부패한 상태에서는 잘 계획된 법도, 실로 한 인물이 그 법을 제정하고 능력을 최대한 동원하여 그 준수를 강제함으로써 인민을 선량하게 만들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p. 140)


  그러한 부패나 자유로운 삶에 대한 자질의 결여는 도시에 존재하는 불평등으로부터 유래한다. 그러므로 그 나라에 평등을 되살리고자 하는 자는 누구나 전적으로 초법적인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 (p. 141)




제 18 장 부패한 도시에 자유로운 정부가 이미 존재한다면 어떻게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가; 그리고 만약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수립할 수 있는가


  좋은 도덕은 그것이 유지되려면 좋은 법률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법률은 그것이 준수되기 위해서는 좋은 도덕을 필요로 한다. (p. 142)


  부패한 상태의 로마가 자유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과거 역사의 도정에서 새로운 법률을 제정했듯이, 새로운 기본적 제도를 창조하는 작업 역시 필수적이었다. (p. 144)


  이러한 기본적 제도를 일거에 개혁하는 경우 …… 합법적인 조치의 사용은 잘 듣지 않으므로 충분하지 않고, 폭력이나 무력과 같은 비합법적인 수단에 호소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다른 무엇보다도 그 도시의 지배자가 되어 자신의 뜻대로 도시를 다스릴 수 있는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p. 145)


  좋은 정부하에서 살 수 있도록 도시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고결한 인물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폭력에 의해 국가의 지배자가 되기 위해서는 사악한 인물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고결한 인물은 비록 그의 목적이 좋다고 할지라도 좀처럼 사악한 방법을 통해 지배자가 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한편 사악한 인간은 그가 마침내 지배자가 되었을 때, 올바른 일을 하고자 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사악한 방법으로 획득한 권한을 올바르게 사용하려는 생각이 결코 그의 마음에 떠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p. 145)


  이상 논의된 모든 것으로부터 부패한 도시에 정부를 유지하거나 그곳에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는 일은 지극히 어렵거나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p. 145)




제 19 장 유약한 군주라도 강력한 군주의 뒤를 이은 경우에는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지만 유약한 군주가 연달아 즉위하게 되면 그 왕국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로마 건국 이후 연달아 즉위한 3인의 최초의 국왕, 곧 로물루스, 누마, 툴루스의 출중한 능력과 수완을 고찰하면, 로마가 커다란 행운을 만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 146)


  이로부터 선황만큼 뛰어난 능력을 가지지 않은 후계자는 선황이 이룩한 업적의 결과로 정부를 유지할 수 있으며 그러한 노고의 결실을 향유할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p. 147)




제 20 장 두 명의 유능한 군주가 연이어 즉위하면 위대한 업적을 산출한다; 잘 조직된 공화국은 필연적으로 유능한 지배자가 잇따라 출현하게 되며 그 결과 국력이 크게 신장된다


  로마는 왕을 추방하고부터 …… 유약하거나 사악한 왕이 권좌에 오를 경우 발생하게 마련인 위험을 겪지 않아도 되었다. 왜냐하면 권위의 무게가 집정관에게 실리게 되었으며, 집정관은 세습이나 기만 또는 격렬한 야심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유로운 투표에 의해 통치자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고 항상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p. 149)


  공화국의 경우에는 선거라는 방법이 단순히 연이은 두 명의 지도자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 유능한 지도자가 잇따라 집권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이는 훨씬 더 가능성이 높아진다. (pp. 149-150)





제 21 장 자신의 군대를 갖지 못한 군주나 공화국은 크게 비난받아 마땅하다


  현존하는 군주나 오늘날의 공화국이 방어와 공격을 위해 자국민으로 구성된 군대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면 이를 크게 부끄러워해야 한다. (p. 150)


  평화시에도 영국은 [헨리 8세 통치시] 전쟁에 대한 대비를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p. 151)




제 24 장 잘 조직된 공화국은 시민에 대한 상벌제도가 분명하며, 공을 세웠다 하여 잘못을 묵인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잘 정비된 공화국은 어떤 시민이 공을 세웠다고 해서 그의 잘못을 묵인하는 일이 결코 없기 때문이다. 그런 공화국에서는 훌륭한 일을 해낸 사람에게 상을 내리고 잘못된 행위에 대해서는 벌을 내리는 일이 분명히 정해져 있다. 다라서 훌륭한 일을 한 사람에 대해서는 상을 내리고, 동일한 사람이 나쁜 일을 저지르면 그의 공적과 상관없이 벌을 내린다. 그리고 이러한 관행이 잘 준수될 때, 도시는 오랫동안 자유를 누리면서 살게 된다. (p. 156)




제 25 장 자유로운 국가에서 오래 유지된 정부를 개혁하고자 하는 자는 적어도 구제도의 외양만은 남겨두어야 한다


  도시의 정부를 개혁하되 그 개혁된 정부가 잘 유지되고 모든 사람에게 만족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의도하거나 소망하는 자는 적어도 구제도의 외양을 존속시킬 필요가 있다. 이는 새로운 형태가 실제로 과거의 제도와 전적으로 다를지라도, 인민들에게는 정부가 그 형태를 바꾸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이다. (p. 158)




제 26 장 신생 군주는 그가 정복한 도시나 지역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조직해야 한다


  도시나 국가의 군주가 된 자로서 누구든, 특히 그의 기초가 취약하기 때문에 왕국이든 공화국이든 입헌적 정부를 건설할 수 없다면, 그가 군주국(만약 그가 신생 군주라면)을 유지하기 위해 취해야 할 최선의 수단은 그 국가의 모든 것을 새롭게 개편하는 것이다. (p. 159)


  합법적인 정부라는 처음의 좋은 방법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지위를 유지하고자 하는 자는 이처럼 사악한 방법을 채택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중간한 조치를 취하는데 이는 대단히 위험하다. (p. 160)




제 28 장 로마인들이 아테네인들보다 자국민에 대해 배은망덕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만약 완정 폐지 이후부터 술라나 마리우스 시대까지의 로마를 본다면, 로마의 자유는 그 어떤 시민들에 의해 단 한 번도 빼앗긴 적이 없었다. 따라서 로마는 시민들을 의심할 만한 뚜렷한 이유를 갖지 않았으며, 그 결과 시민을 경솔하게 박해하는 일도 일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아테네에서는 이와 정반대였다. 왜냐하면 번영의 절정에 있던 당시에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선의의 외양을 가장한 채 아테네의 자유를 빼앗아버렸기 때문이다. …… 도편추방(ostracism)이라는 제도가 성립된 것도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다. 나아가 아테네에서 훌륭한 귀족들에 대해 가해진 온갖 폭력적 행위들은 아테네의 매시대에 걸쳐 수행되었다.

  따라서 정치 이론에 관한 저술가들이 말하는 진리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인민은 자유를 잃지 않고 지속할 때보다도 오히려 일단 잃었던 자유를 되찾앗을 대 더 과격한 행동을 보이는 법이다. (pp. 152-163)




제 29 장 인민과 군주 어느 편이 더 배은망덕한가


  나는 배은망덕이라는 이러한 악덕이 탐욕이나 의심 섞인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말하겠다. (p. 164)


  [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 사람들은 은혜를 받은 것에 보답하기보다는 상처를 입은 것에 복수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보은은 손해로 여겨지는 반면, 복수는 이득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p. 165)


  두려움은 장군이 적을 정복함으로써 군주에게 영토를 바치고 자신에게는 영광을, 부하들에게는 많은 부를 안겼을 때 일어났다. 즉 두려움은 부하들은 물론이고 적들과 군주의 신민들 사이에서 너무나 큰 명성을 떨쳐서 장군을 파견한 군주가 승리를 함께 즐길 수 없을 때 불가피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허영심이 많아 타인의 성공을 질투하고, 자기의 이익 추구에 대해서는 끝이 없기 때문에, 군주의 마음속에 승리한 장군에 대한 시의심이 갑자기 싹트게 되며 그것은 장군의 교만하고 방자한 언행과 태도에 의해 더욱 커져갈 따름이다. 그런데 군주는 일신의 안위를 바라는 것 외에는 어느 것도 염두에 두지 않는다. (p. 165)


  의심 섞인 두려움이란 군주들에게는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군주들은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군주는 자신의 깃발 아래서 승리를 거두어 주군에게 광대한 영토를 바친 사람들의 공훈에 대해서도 은혜를 베풀지 않는 법이다. (p. 167)


  따라서 군주가 배은망덕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공화국의 인민들이 배은망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에 대해 크게 놀라거나 특별히 주목할 필요는 없다. 자유를 누리고 있는 국가는 두 가지 목적을 가지는데, 첫째는 자국을 강대하게 만드는 것이고, 둘째는 자국의 자유를 유지해나가는 것이다. (p. 167)


  로마에서 카이사르는 인민들이 배은망덕을 통해 거부하려 했던 것[곧 권력]을 혼자의 힘으로 강제로 장악하였던 것이다. (p. 168)


  스키피오에 대해 인민이 배은망덕한 소행을 저지른 것은 그들이 다른 인물들에게는 한 번도 품어본 적이 없는 두려움을 스키피오에게서 느꼈기 때문이다. (p. 168)


  스키피오가 겸비하고 있던 이 역량은, 전혀 비할 데가 없을 만큼 위대한 것이어서,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로마의 행정관들조차도 그의 권위에 겁을 먹었다. …… 게다가 그의 처신 역시 너무나 놀라운 것이었기 때문에 고결한 인격으로 찬양받던 대(大) 카토 프리스쿠스는 행정관조차 두려워하는 시민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 도시라면 자유로운 도시라고 불릴 수 없다고 하면서 스키피오를 탄핵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이 경우에 로마의 인민이 카토의 의견에 따랐다 해도 그들의 행위는 용서될 만한 점이 있다. 왜냐하면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인민이건 군주이건 두려움에 사로잡혀 배은망덕하게 되었을 때에는 어느 정도 용서될 만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p. 169)


  나는 배은망덕이라는 이러한 악덕이 탐욕이나 두려움 때문에 일어난다고 말하겠다. 하지만 명백히 인민은 결코 탐욕 때문에 배은망덕한 행위를 저지르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두려움 때문에 배은망덕한 행위를 하는데, 그것도 군주에 비하면 빈도가 적다. (p. 169)




제 30 장 군주나 공화국이 배은망덕이라는 악덕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또 시민이나 장군이 배은망덕한 행위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군주는 두려움이나 배은망덕 속에서 살아야 할 필연성을 피하기 위해 본인이 친히 원정에 나서야 한다. …… 왜냐하면 군주가 정복에 성공한다면, 영광과 이득이 다 그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p. 170)


  나는 군주의 부하 장군이 배은망덕이라는 해악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장군에게 두 가지 중 한 가지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말하겠다. 그 하나는 승리를 거두자마자 장군이 곧바로 전열에서 떠나 자기 군주 가까이 몸을 두고 교만한 태도나 공명심에 사로잡힌 언동을 삼가는 것이다. ……

  그런데 장군이 그러한 처신을 꺼린다면 그는 과감하게 정반대의 처신을 택해야 한다. 즉 정복에 의해 획득한 것 일체를 군주에게 넘겨주지 않고 자기 자신의 손에 확보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 (pp. 170-171)




제 31 장 로마 장군들은 그들의 과오에 대해 과도하게 처벌받은 적이 없었다; 그들의 무능이나 잘못된 계획이 로마에 손해를 끼쳤다


  로마인들은 패전의 오명만으로 당사자인 장군들에게는 충분한 벌이 된다고 생각했으며, 그에 덧붙여 다른 중벌을 부과하면서까지 장군들을 겁줄 피룡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p. 173)




제 32 장 공화국 또는 군주는 인민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일을 부득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때가지 지체해서는 안 된다


  누구든 이런 선례에 근거해서 위급한 상태에 이를 때까지 인민의 호감을 사는 것을 연기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 왜냐하면 일반 민중은 자신들에게 그런 은혜를 베푸는 것이 위정자의 자발적인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위정자가 적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pp. 175-176)


  로마 공화정의 조치가 좋은 결과를 낳았던 이유는 정부가 아직 새롭고 정비되지 않은 상태에 있었으며, 처음부터 로마 인민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법률이 제정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p. 176)




제 33 장 국가의 내부 또는 외부로부터 커다란 위험이 엄습했을 경우, 그것을 직접 공격하기보다는 그것을 다루면서 지연시키는 정책이 훨씬 더 안전하다


  이 제도[임시 독재 집정관 제도(기원전 501년 또는 498년 창설)]는 한 시민에게 최고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그 시민은 심의를 거치지 않고 어떤 문제에 관해서도 결정을 내릴 수 있고, 또 그가 일단 결정한 것을 실행할 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이 제도는 당시에 유용했고, 도 로마에 닥친 숱한 위기를 타개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p. 177)


  그러한 위험이 심각하여 모든 사람이 두려움에 사로잡힐 경우, 가장 안전한 계획은 그것을 기어이 제거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적당히 대처하면서 시간을 버는 것이다. …… 그러한 비상사태는 외부적인 원인보다는 오히려 내부적인 원인에 의해 야기되는 경우가 더 많다. 빈번히 한 시민에게 필요 이상의 권력이 허용되거나 자유로운 제도의 신경이자 생명인 법률이 부패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pp. 177-178)


  로마에서는 이와 똑같은 일[코시모 디 메디치의 일]이 카이사르의 경우에 일어났다. 즉 폼페이우스와 다른 시민들도 처음에는 카이사르의 역량을 찬양했지만, 얼마 안 있어 그 찬양은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이에 관해 “폼페이우스가 이제 와서 카이사르에게 두려움을 느껴봤자 이미 때는 늦었다”라는 키케로의 말은 그 사정을 잘 보여준다. 이런 공포에 사로잡혀 그들은 타개책을 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사용한 타개책은 오히려 공화국의 파멸을 촉진시키는 데 지나지 않았다. (p. 180)


  그러므로 나는 이러한 해악이 발견되더라도 그것을 덮어놓고 없애려 하지 말고 적당히 다루면서 시간을 버는 편이 현명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p. 180)


  로마 인근의 여러 부족들간의 동맹은 도리어 로마 시민들을 더 단결시키고 강력하게 만들었으며 나아가 새로운 제도를 고안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p. 181)




제 34 장 임시 독재 집정관의 권한은 로마 공화국에 유익하면 유익했지 유해하지는 않았다; 자유로운 투표에 의해 주어진 권력이 아니라 시민들 스스로 강탈한 권력이 시민정부를 파괴했다.


  로마를 노예화한 것은 임시 독재 집정관이라는 칭호나 관직이 아니라 바로 일부 시민들이 군대 통수권을 연장하여 갖게 된 권력이었다. …… 무력만 가지고 있으면 어떤 명칭이 붙은 관직이라도 간단히 손에 넣을 수 있지만, 관직의 직함을 가지고 있다 해서 꼭 권력을 잡을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p. 182)


  로마의 긴 역사적 행로를 훑어보면, 국가에 공헌하지 않은 임시 독재 집정관은 한 사람도 눈에 띄지 않는다. (p. 182)


  첫째, 어떤 시민이 해를 가하고 스스로 불법적인 권한을 탈취하기 위해서는, 부패하지 않은 국가에서는 결코 갖출 수 없는 여러 가지 조건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 ……

  게다가 임시 독재 집정관은 종신제가 아니라 임기가 한정되어 있으며, 그가 그 때문에 임명된 비상 사태에 관련된 안건을 처리하는 권한만을 보유할 뿐이다. 그의 권한은 긴급한 위기상황에 대한 타개책을 스스로 결정하는 권력, 그 결정을 집행하기 위해 아무런 협의를 거치지 않고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권력, 상소 절차를 인정함이 없이 누구든 유죄로 처벌할 수 있는 권력을 포함한다. 하지만 원로원이나 민회의 권한을 축소하거나, 구래의 제도를 폐지하고 새로운 수립하는 것과 같이 현행의 통치 형태 자체에 영향을 주는 일은 일절 용납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로마에서는 임시 독재 집정관의 임기가 매우 짧았다는 점, 그 행사하는 권력이 제한적이라는 점, 로마 민중들이 아직 타락해 있지 않았다는 점, 이 세 가지 조건이 한데 작용하고 있었다. (pp. 182-183)


  확실히 로마의 모든 법률들 가운데 이 제도[임시 독재 집정관]는 그토록 강력한 제국의 위대함을 가져온 요인들 중 가장 고려할 만한 것이다. …… 공화국에서 통상적으로 시행되는 법적 절차는 그 진행이 더디게 마련이다. 이런 이유로 인한 절차의 지연은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대처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했을 때에는 위험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p. 183)


  베네치아 공화국은 실로 근래의 공화국 중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국가이다. 그 공화국은 비상시에는 소수의 시민들에게 다른 심의를 거치지 않고 전원일치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하였다. 이는 현명한 관행이다. (pp. 183-184)


  초법적인 조치는 당시에는 좋은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지만, 그러한 선례 자체가 악ㅇ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p. 184)


  임시 독재 집관의 선출은 [현직] 집정관에게는 대단히 당혹스러운 일이었음이 분명하다 도시의 통치자였던 집정관 역시 다른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임시 독재 집정관의 권한에 복종해야 했기 때문이다. …… 로마인들은 임시 독재 집정관을 선출할 수 있는 권한을 집정관에게 맡기기로 결정했다. (p. 184)




제 35 장 로마의 10인회는 인민의 자유로운 보통선거에 의해 선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공화국의 자유에 유해한 존재가 되고 말았는가


  10인회의 권위와 임시 독재 집정관의 권위를 비교해서 고찰해보면, 10인회의 권위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 것으로 나타난다.

  결국 임시 독재 집정관이 창설되었을 대는 각각의 권한을 가진 호민관이나 집정관이나 원로원 등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임시 독재 집정관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권한을 박탈할 수는 없었다. 또한 임시 독재 집정관이 집정관이나 원로원의 한 사람을 파면시킬 권한은 가지고 있었으나, 원로원이라는 제도 자체를 말살하거나 새 법률을 선포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따라서 원로원•집정관•호민관은 각각의 권한을 보유하면서 임시 독재 집정관이 본래의 궤도로부터 이탈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10인회가 창설되었을 때는 이와 정반대의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즉 집정관과 호민관이 폐지되고 10회는 마치 그들이 로마 인민 전체인 양 법률을 제정하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받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집정관과 호민관도 없이, 심지어 인민의 심의원에도 구속되지 않은 채, 다시 말해 아무런 감시와 견제를 당하지 않으면서 그들은 홀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게 되었으며, 2년째 되는 해에는 이미 아피우스의 권력 야욕에 휘말려 온갖 횡포를 부리게 되었다.

  이는 내가 자유로운 투표에 의해 주어진 권한이 결코 어떤 공화국에도 유해하지 않다고 말했을 때, 나는 인민들이 그 권한을 위임함에 있어서 적용 범위를 제한하고 또 일정한 기간으로 한정해주어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말한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pp. 186-187)


  스파르타와 베네치아에서는 지배자들이 권한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감독관이 임명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 권한이 실재한다면 질료가 전혀 부패되어 있지 않다 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절대적인 권한은 단시일 내에 질료를 타락시키고, 자신의 지지자와 당파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p. 187)




제 36 장 고위직에 있는 시민들은 하급직에 있는 시민들을 얕보아서는 안 된다


  비록 로마인들이 영예를 추구하는 데 열중했다고는 하지만 과거에 자기 부하였던 인물에게 지금 명령을 받는 입장에 놓이게 되거나, 나아가 이전에 자기가 지휘관이었던 군대에 백의종군하여 싸우게 되더라도 이를 불명예스러운 일이라고는 여기지 않았다. (p. 188)




제 37 장 농지법이 로마에 어떠한 불화를 초래했는가; 먼 과거까지 소급하는 효과를 가진 법률을 고래의 관습에 반하여 제정하는 것은 공화국에 불화를 야기한다


  야망이란 인간의 가슴속에 있는 매우 강력한 충동이기 때문에 아무리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이라도 야망이 충족되는 경우란 결코 없는 법이다. 그 원인은 자연이 인간으로 하여금 모든 것을 갈구하도록 만들어놓고도, 모든 것을 얻지는 못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p. 189)


  이[운명의 부침]는 어떤 사람은 더 많이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은 이미 얻는 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면서, 사람들이 서로 불화나 전쟁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pp. 189-190)


  그들[평민들]은 그것[호민관 제도]을 성취하자마자 곧 명예 및 부―인간이 매우 소중히 여기는―를 귀족들과 공유하겠다는 야망과 기대감으로 인해 투쟁을 시작했다. 이로부터 무질서가 초래되었으며, 그것은 농지법에 대한 투쟁을 야기하였고 마침내 그 투쟁은 공화국을 파멸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잘 정비된 공화국은 그들의 국고를 넉넉하게 하고 시민은 가난하게 만들어야 한다. (p. 190)


  이 법에는 두 개의 조항이 있었다. 하나는 어떤 시민도 정해진 일정한 양 이상의 토지를 소유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했고, 다른 하나는 적으로부터 빼앗은 토지는 로마 인민들에게 분배된다고 규정했다. (p. 190)


  그 법에 의해 불리하게 영향을 받는 자들은 주로 유력자들이었기 때문에, 귀족들은 그 법에 반대하는 것이 공공선에 봉사한다고 믿었다. (p. 191)


  이 법은 그라쿠스 형제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잠복해 있었다. 그리하여 그라쿠스 형제에 의해 농지법 문제가 제기되자, 로마의 자유는 송두리째 끝장나고 말았다. ……

  평민들은 이 혼란의 와중에 마리우스를 지지함으로써 먼저 행동을 개시했다. …… 귀족들은 술라를 지지하여, 그를 그들 당파의 우두머리로 삼아 내전에 돌입했다. 이론 인해 많은 유혈사태와 운명의 우여곡절을 겪은 후, 귀족들이 승자가 되었다. 이러한 분쟁은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시대에 다시 발생했는데, 카이사르는 마리우스파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폼페이우스는 술라파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 후 발발한 전쟁에서 승자는 카이사르가 되었는데, 그는 로마 최초의 참주가 되었고, 그 결과 그 도시는 영영 자유를 잃게 되었던 것이다. (p. 192)


  이 농지법의 결과는 그러한 나의 믿음[원로원과 평민의 대결이 자유를 지탱하는 법을 산출하여 로마의 자유를 보존했다는 믿음]과 상치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의 의견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하겠다. 만약 도시가 다양한 수단과 방식으로 부자들의 야망을 억누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즉시 그 도시를 파멸에 빠뜨릴 정도로 위험한 것이다. …… 만약 평민들이 이 법과 그 밖의 다른 요구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귀족들의 야망을 억제하지 않았더라면, 로마는 아마도 그보다 훨씬 더 일찍 노예상태에 빠졌을 것이다.

  또한 이는 사람들이 명예로운 직위보다 재산을 얼마나 더 소중히 여기는가를 잘 보여준다. 왜냐하면 그러한 직위에 관해서는 로마의 귀족들이 커다란 소동 없이 항상 평민들에게 양보했지만, 재산문제에 관한 한 그들의 저항은 매우 완강했기 때문이다. (p. 193)


  [그라쿠스 형제가] 공화국에서 심각한 지경에 이른 부조리를 제거하고자 한 것은 좋았지만, 이를 위해 먼 과거에까지 그 효력이 소급되는 법률을 제정하고자 한 것은 신중하지 못한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p. 193)




제 39 장 같은 일이 종종 다른 인민들간에 일어난다


  현재사나 과거사를 즐겨 고찰하는 자는 모든 도시와 모든 인민들이 동일한 욕망이나 동일한 기질을 가지고 있고, 항상 간직해왔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과거의 사건들을 부지런히 검토하는 쉽게 모든 나라에서 일어나는 미래의 사건들을 예견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고대인들이 사용한 치유책을 미래의 일들에 적용할 수 있고, 만약 그런 것을 발견할 수 없으면 사건의 유사성에 착안하여 새로운 치유책을 고안해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통찰이 식자들에 의해 무시되거나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아니면 이해된 경우에도 통치자들에게는 알려지지 않기 때문에 어느 시대건 동일한 분쟁이 반복해서 일어나게 마련이다. (p. 198)




제 40 장 로마에서 10인회의 창설 그리고 그로부터 배워야 할 점;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 어떻게 그러한 사건이 공화정을 구원하거나 공화정을 참주정으로 몰아넣었는지를 고찰하고자 함


  우리는 로마에서도 이러한 참주정을 수립하려는 악폐가 다른 대부분의 도시와 동일한 원인, 곧 자유에 대한 인민의 지나친 욕망과 귀족들의 지나친 지배욕에서 비롯된 것임을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두 당파가 자유를 위한 법률을 제정할 수 없어서 그 중 어느 한 당파가 어느 한 인물을 성급하게 지지하게 되면, 참주정이 재빨리 출현하게 된다는 것도 관찰할 수 있다. (p. 204)




제 45 장 특히 법률을 제정한 자가 그 법을 준수하지 않는 것은 나쁜 선례를 남기는 것이다; 그리고 통치자가 매일 새로운 비행을 저러 인민을 괴롭히는 것은 그 자신에게 대단히 위험하다


  법률을 위반하는 것은 자유의 적절한 존중과 상치되는 것이었으며, 이제 막 만들어진 법을 위반하는 것은 특히 그러했다. 왜냐하면 내 생각에 공화국에서 법률을 제정하고 위반하는 것만큼 나쁜 선례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법률을 제정한 당사자가 무시할 때에는 특히 그러하다. (pp. 211-212)


  우리는 백성들의 마으을 지속적인 처벌과 공격으로 불확실하고 두렵게 만드는 것이 공화국이나 군주에게 얼마나 해로운가를 알 수 있다. (p. 213)





제 46 장 인간은 하나의 야심에서 다른 야심으로 뛰어오른다; 처음엔 공격을 받지 않고자 하지만, 나중엔 공격을 가하고자 한다


  로마 인민이 그들의 자유를 되찾고 본래의 위상을 회복했을 대, 그들의 권력을 확인하는 많은 법의 제정을 통해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한 영향력을 확보하게 되었을 대, 이제는 로마가 평온한 시대를 향유해도 합당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매일 새로운 분쟁과 불화가 일어남으로써, 사태는 그와 반대로 전개되었다. …… [티투스 리비우스] “자신의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일방의 소망은 상대방에 대해 억압을 가할 만큼 강력해진다. 이러한 움직임을 지배하는 법칙은 인간이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할 대, 대신 타인을 두려움에 몰아넣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치 해를 가하거나 아니면 해를 입거나 하는 양자택일의 상황이 필연적인 것처럼, 그들은 스스로 피하고자 하는 상처를 타인에게 가하고 만다.” (p. 214)


  공화국은 이러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 즉 시민들이 선의라는 허울을 쓰고 악을 행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법률, 시민들이 자유를 증진시킴에 다라 인기를 얻되 자유에 위해를 가하는 일이 없도록 감시하는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 (p. 216)




제 47 장 인간이란 일반적인 것에는 잘 속을지 모르지만, 구체적인 것에는 잘 속지 않는다


  그들[로마 인민들]은 집정관의 권력을 가진 네 명의 호민관을 두되, 귀족은 물론 평민들도 그 직위에 선출될 수 있다는 데 동의했다. ……

  그런데 이로부터 주목할 만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들 호민관을 선출함에 있어서 로마 인민들은 4명 전원을 평민 출신에서 뽑을 수 있었는데 정작 그들은 4명 다 귀족들을 선택했던 것이다. ……

  이에 대한 이유를 검토해볼 때, 나는 그 이유가 인간이란 일반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곧잘 자기 기만에 빠지지만, 개별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그리 잘 속지 않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일반적으로 로마의 인민들은 그들의 집정관직을 차지할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

  그러나 정작 그들의 그들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을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자, 그들은 자신들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그들 개개인들 중 어느 누구도 전체로서는 당연히 자격이 있는 자리의 적임자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p. 217)




제 49 장 로마와 같이 자유상태에서 출발한 도시들이 자신들을 보존할 수 있는 법률을 매우 어렵게 제정한다면, 방금 노예상태에서 벗어나 출발한 도시들이 그럴 가능성은 더욱 희박하다


  공화국을 건설함에 있어 그 도시에 자유를 보존할 수 있는 법률을 마련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로마 공화국이 겪어온 역정이 매우 잘 보여준다. …… 그리하여 감찰관 제도를 신설한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새로운 법률을 고안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 관직은 로마에서 자유가 존속하던 시대에는 로마에 자유를 유지하기 위한 예방적 조치들 중 하나였다. 로마의 풍속을 단속하던 감찰관직은 로마에서 부패의 성장을 지연시킨 강력한 원인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p. 222)


  잘 정비된 공화국에서 한 시민이 단지 자유로운 정치질서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을 공포했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당한 후 이에 대해 아무런 호소를 할 수 없다면, 이는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p. 222)


  이제 막 예속상태에서 벗어난 도시가 법률에 따라 평온하게 살기 위해 조직하는 과업은 단순히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불가능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p. 223)




제 50 장 어떤 위원회나 관직이라도 국가의 통치업무를 정지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져서는 안 된다


  여기서 우리는 먼저 호민관 제도의 가치에 주목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 제도가 평민들에 대한 귀족들의 횡포를 견제하는 데에는 물론 귀족들 사이에 일어나는 횡포를 견제하는 데에도 유용했기 때문이다. 둘째, 소수의 인물들이 공화국을 유지하기 위해 법률상 필요한 사항에 관한 결정을 합법적으로 가로막는 일이 발생해서는 결코 안 되기 때문이다. (pp. 225-226)




제 53 장 인민은 표면상의 훌륭함에 현혹되어 빈번히 자신들의 파멸을 초래하는 일을 명한다; 그리고 그들은 커다란 희망과 강한 약속에 쉽게 움직인다


  인민은 좋은 것에 대한 그릇된 이미지에 현혹되어 자주 그들 자신의 파멸을 스스로 초래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신뢰하는 누군가가 그들에게 그들의 원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며 무엇이 좋은 것인지를 납득시키지 않는다면, 무수히 많은 위험과 손실이 공화국에 닥치게 마련이다. (p. 232)


  인민 앞에 제시된 계획에 외견상 이득이 명백하면, 비록 배후에 손실이 숨어 있다 해도, 그리고 그 계획이 용기 있게 보이면, 비록 공화국의 파멸이 숨어 있더라도 다중은 항상 쉽게 설득되어 그런 계획을 승인한다. 마찬가지로 어떤 제안이 비록 그 배후에 안전과 이득을 품고 있더라도 비겁하게 보이거나 손해를 끼치는 것처럼 보이면 그러한 제안을 다중이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노릇이다. (p. 233)


  그러므로 나는 권력을 인민이 가진 공화국의 멸망을 초래함에 있어 그 나라를 거창한 작전으로 몰아넣는 것보다 쉬운 길은 없다고 말하겠다. 왜냐하면 인민이 영향력을 지닌 곳에서 그러한 작전은 항상 승인될 것이며, 그들에 대항해서 다른 의견을 가진 자들은 아무런 호소력이 없기 때문이다. (p. 236)




제 54 장 흥분한 군중을 억제하기 위해 사용되는 영향력 있는 인물의 강한 위력


  흥분한 군중을 억누르는 데 가장 적합한 것은 바로 그들의 존경을 받는, 영향력과 위상을 지닌 인물이 의연히 그들을 제지하는 것이다. (p. 236)


  흥분한 군중을 제지하는 데는 존경을 받을 만한 풍모와 지위를 지닌 인물이 군중 앞에 나타나는 것보다 더 확실하고 믿을 만한 방법이란 없다는 것이다. (p. 237)




제 55 장 인민이 타락하지 않은 도시에서 공공사는 쉽게 처리된다; 평등이 있는 곳에서는 군주국이 수립될 수 없고, 평등이 없는 곳에서는 공화국이 수립될 수 없다


  이러한 사례는 …… 인민들이 얼마나 많은 선량함과 신앙심을 갖추고 있었는가, 또 얼마나 많은 선량함을 그들로부터 기대할 수 있었는가를 보여준다. (p. 239)


  오늘날 특히 이탈리아처럼 명백히 부패한 지역에서는 어떠한 선행도 기대할 수 없다. (p. 239)

  

  독일에서는 이러한 선량함과 종교심이 인민들 사이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품성으로 인해 거기서는 많은 공화국들이 저마다 자유를 누리면서 공존하고 있으며, 또한 법률을 너무나 잘 준수한다. (p. 239)


  이런 사실은 두 가지 이유로부터 유래한다. 첫 번째 이유는, 그들이 인접국들과 많은 교류를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 교류의 이유가 없었고, 이와 함께 부패의 씨앗도 애당초 제거되었다. ……

  또 다른 이유는 이들 공화국들에서는 그 정부가 잘 정비되어 부패되지 않은 채 보존되고 있기 때문에, 시민이 신사가 되거나 신사 행세를 하며 사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또 그들 사이에서 완전한 평등이 보존되고 있다는 점이다. (p. 240)


  신사라는 이 호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기 위해 나는 토지소유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인해 일하지 않고도 사치스럽게 사는 자를 신사라고 부르겠다. 그들은 농업이나 생계를 영위하는 데 필요한 다른 직업에 대해 아무런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모든 공화국은 물론 모든 나라에 위험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더더욱 위험한 인물들은 그러한 재산 이외에도 성곽을 가지고 있고 그들에게 복종하는 신민을 보유하고 있는 자들이다.

 ……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전적으로 모든 종류의 자유로운 정부에 적대적이기 때문이다. (p. 241)


  질료가 너무 부패해서 법률로도 억제하는 데 충분하지 않을 때에는, 법률 외에 보다 강력한 권력이 반드시 확립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곧 절대적이고 강력한 권력과 함께 귀족들의 과도한 야망과 부패를 억제할 수 있는 제왕적 권력이 필요불가결하다. (p. 241)


  많은 귀족들이 있는 지역에 공화국을 건설하고자 시도하는 자는 먼저 귀족들을 모두 일소하지 않으면 안 된다. 평등에 대한 믿음이 폭넓게 퍼져 있는 곳에서 왕국이나 군주국을 수립하기를 원하는 자는, 그처럼 평등한 사회로부터 야심 많고 지칠 줄 모르는 정신을 가진 자들을 발탁하여 그들을 단순히 이름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신사로 만들지 않는 한 성공할 수 없다. ……

  다른 한편 그들은 지배자의 힘을 빌려 자기네 야망을 만족시킬 수 있다. 그 밖의 다른 자들에게는 오직 무력을 사용하여 예속상태를 부과할 수 있을 뿐이다. ……

  그러므로 왕국에 적합한 지역을 공화국으로 만들거나 공화국에 적합한 지역을 왕국으로 만드는 것은 두뇌와 권위를 겸비한 매우 드문 사람에게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p. 242)


  그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신사는 이름뿐이지 실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토지소유로부터 커다란 수입이 없다. 그들의 거대한 부는 무역과 동산에 근거하고 있다. 더욱이 어느 누구도 성곽을 가지고 있거나 시종을 가지고 있지 않다. ……

  …… 베네치아 역시 신사와 인민으로 구분된다. 거기서 원칙은 전자가 모든 관직을 차지하거나 차지할 자격이 있는 반면, 후자는 그로부터 전적으로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이미 다른 곳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 도시에 분규를 초래하지 않는다. (p. 243)


  그러므로 자칭 현명한 건국자라면 커다란 평등이 존재하거나 존속되어온 곳에는 공화국을 건설할 것이다. 다른 한편 커다란 불평등이 존재하는 곳에는 군주국을 세울 것이다. (p. 243)




제 57 장 사람들은 무리를 이루면 대담하지만 개인으로서는 소심하다


  티투스 리비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함께 있을 때는 대담했지만, 각자의 개별적인 두려움으로 인해 그들은 순순히 굴복했다.” 이 문제에 관련하여 다중의 속성이 참으로 이 구절처럼 잘 표현될 수는 없다. 다중은 종종 지배자의 결정을 비난하는 데 대담하고 노골적인 언사를 사용하지만, 정작 처벌이 닥치게 되면 서로를 믿지 못하고 복종을 서두른다. (p. 245)


  한편으로는 지도자가 없어 걷잡을 수 없는 다중보다 더 무서운 것도 없겠지만, 다른 한편 그보다 더 연약한 존재도 없는 것이다. …… 그런 식으로 자극된 다중이 이러한 위험을 피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지도자를 선출하고, 그의 지도에 따라 단결을 유지하면서 방어책을 강구해야 한다. (p. 246)




제 58 장 다중은 군주보다 더 현명하고 더 안정되어 있다


  다중만큼 경박하고 불안정한 것은 없다는 점을 다른 역사가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티투스 리비우스 역시 긍정한다. (p. 247)


  그[리비우스]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비굴하게 굴종하든가 아니면 거만하게 군림하든가 이것이 바로 다중의 속성이다.” (p. 247)


  사태가 여하튼 어떤 의견을 귄위나 무력에 의존하지 않고 논변으로 옹호하는 것이 죄라고 판단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pp. 247-248)


  이 점[다중을 비난한 점]은 특히 군주에게도 적용된다고 말하겠다. 왜냐하면 법률에 의해 규제되지 않는 자는 통제되지 않는 다중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과오를 범할 것이기 때문이다. (p. 248)


  내가 여기서 군주라고 일컫는 자들은 자신들을 구속하는 굴레로부터 벗어난 자들을 가리킨다. (p. 248)


  공화국이 아직 부패하지 않는 채 지속되는 동안 비굴하게 복종하지도 않고 거만하게 군림하지도 않은 로마 인민이 바로 그러한 [다중이 법에 의해 규제되어 선량함을 가진] 예이다. (p. 249)


  그러나 우리의 역사가들이 다중의 성격을 놓고 운운할 때, 그들은 로마 인민처럼 법률에 의해 규제되는 인민에 대해서가 아니라 시라쿠사의 인민들처럼 규제받지 않는 인민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 그러므로 다중의 성격을 군주의 성격보다 더 비난해서는 안 된다. 시비를 고려함이 없이 제멋대로 과오를 저지를 때에는 모두들 동등하게 과오를 범하기 때문이다. (pp. 249-250)


  그렇다면 나는 인민이 권력을 잡으면 동요하기 쉽고, 변덕이 심하며 배은망덕하다는 통상적인 의견과 다른 결론을 내리고 싶다. …… 잘 정비된 제도를 통해 명령을 내리는 인민은 군주만큼이나 침착하고 신중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 때문이다.

  아니 그들은 현명하다고 생각되는 군주보다 더 많이 그러한 장점을 갖고 있다. 다른 한편 법률의 구속으로부터 풀려난 군주는 인민보다 더 배은망덕하고 동요하기 쉽고 더 경솔하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상의 차이는 상이한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왜냐하면 그 본성은 인간에게 동일한 것이고 우월성이 있다면 오히려 인민에게 있을 것이기 때문에―복종해야 하는 법률을 양자가 얼마나 많이 존중하는가에서 비롯된다. (p. 250)


  신중함과 침착성에 대해 나는 인민이 군주보다 더 신중하고, 더 침착하며, 더 우월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겠다. (p. 251)


  사물을 판단함에 있어서도 예컨대 능력이 비슷한 두 인물이 정반대되는 주장을 내세울 때 인민이 보다 나은 의견을 수용하지 않는다든지, 들으면서 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든지 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

  관리를 선택함에 있어서도 인민은 군주보다 훨씬 나은 선택을 하는 편이다. …… 인민은 어떤 것을 일단 혐오하기 시작하면 오랜 세월에 걸쳐 동일한 의견을 고수하는데, 군주의 겨우 이런 일은 좀처럼 없다. (p. 251)


  로마 인민은 왕이라는 칭호를 너무나 혐오한 나머지 어떤 로마 시민의 공적이 제 아무리 클지라도 그 칭호를 얻고자 했던 시도 그 자체만으로도 그는 거기에 합당한 벌을 모면할 수 없었다. (p. 252)


  인민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도시는 단시일 내에 엄청나게 성장하며, 군주가 계속 통치하는 도시보다 훨씬 많이 성장한다. …… 이는 인민에 의한 정부가 군주에 의한 정부보다 낫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p. 252)


  만약 군주가 법률을 제정하거나, 법률에 따라 공동체를 형성하거나, 새로운 법제도를 설립하는 데 우월하다면, 인민은 이미 조직된 사물을 보존하는 데 우월하여 의심할 여지 없이 공동체를 창업한 사람들만큼이나 영광스런 업적을 성취한다. (p. 252)


  우리는 법률을 지킬 의무가 있는 군주와 법률에 구속되는 인민을 다루는 셈인데, 그 경우 우리는 군주보다는 인민에게서 보다 많은 장점을 보게 된다.

  만약 우리가 법률에 의해 규제되지 않는 인민이나 군주를 논하게 되면, 군주보다는 인민의 경우 결함이 적으며 그 결함 역시 비교적 사소하고 치유하기 쉽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 인민의 병폐를 치유하는 데에는 말로써 충분한 데 반해, 군주의 병폐에 대해서는 칼이 필요하다. (pp. 252-253)


  다중의 잔인함은 모든 다중의 재산을 탈취할 것이라고 염려되는 한 사람에게 저지르는 것이다. 그러나 군주의 잔인함은 군주가 자신의 개인 재산을 탈취할 것이라 염려하는 모든 사람에게 저지르는 것이다. (p. 253)




제 60 장 로마에서는 집정관을 비롯한 그 밖의 다른 관직을 임명함에 있어 연령에 구애받지 않았다


  역사의 도정을 살펴보면 로마 공화국은 집정관의 직위를 인민들에게 개방하자마자, 그 직위를 나이나 가문을 고려하지 않고 부여했다. 따라서 실로 로마에서 연령은 필요조건이 아니었고 젊은 사람이건 늙은 사람이건 능력을 항상 중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p. 257)


  영광스러운 업적을 위해 인민을 활용하지 않는 도시는 …… 원하는 대로 그들을 대우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만약 로마가 이룩한 것을 얻고자 한다면, 인민을 차별할 수는 없다. (p. 258)


  출신가문을 고려하지 않는 점이 허용된다면, 연령에 관한 관행도 반대할 수 없으며 오히려 필수적이라 할 것이다. (p. 258)





 


















 

아리스토텔레스의『정치학』(천병희 역)




제1권 국가 공동체의 본질


        제1장 공동체로서의 국가

 

  모든 국가(polis)는 분명 일종의 공동체이며, 모든 공동체는 어떤 선을 실현하기 위해 구성된다. 무릇 인간 행위의 궁극적 목적은 선(善, agathon)이라고 생각되는 바를 실현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모든 공동체가 어떤 선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모든 공동체 중에서도 으뜸가며 다른 공동체를 모두 포괄하는 공동체야말로 분명 으뜸가는 선을 가장 훌륭하게 추구할 것인데, 이것이 이른바 국가 또는 국가 공동체다. (1252a1)


  타고난 치자와 피치자도 자기 보존을 위해 결합해야 한다. 지성에 의해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자는 타고난 치자이자 주인이지만, 남이 계획한 것을 체력으로 실현할 뿐인 자는 피치자요 타고난 노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과 노예는 상호 보완적이어서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1252a 30)



        제2장 국가는 본성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 두 가지 결합[남녀의 결합과 주인과 노예의 결합]에서 맨 먼저 생겨난 것이 가정(oikos)이다. 따라서 헤시오도스가 “먼저 집과 여자 그리고 밭갈이할 소”라고 말한 것은 당연하다. 소는 가난한 사람에게는 가사 노예이기 때문이다. 날마다 되풀이되는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자연적으로 형성된 공동체가 이렇듯 가정인데, 그 구성원을 카론다스는 ‘식탁 동료들’이라고 부르고, 크레테의 에피메니데스는 ‘식구’라고 부른다. (1252b9)


  날마다 되풀이되는 필요 이상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가정으로 구성된 최초의 공동체가 마을(kome)이다. …… 모든 가정은 최고 연장자가 왕처럼 지배했고, 분가해 나간 가정들도 한 핏줄인지라 그 점에서는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1252b15)


  여러 부락으로 구성되는 완전한 공동체가 국가인데, 국가는 이미 완전한 자급자족(autarkeia)이라는 최고 단계에 도달해 있다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해 국가는 단순한 생존을 위해 형성되지만 훌륭한 삶을 위해 존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전 공동체들이 자연스런 것이라면 모든 국가도 자연스런 것이다. 국가는 이전 공동체들의 최종 목표(telos)고, 어떤 사물의 본성(physis)은 그 사물의 최종 목표이기 때문이다. …… 사물의 최종 원인과 최종 목표는 최선의 것이며, 자급자족은 최종 목표이자 최선의 것이다. (1252b27)


  이로 미루어 국가는 자연의 산물이며, 인간은 본성적으로 국가 공동체를 구성하는 동물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어떤 사고가 아니라 본성으로 인하여 국가가 없는 자는 인간 이하거나 인 간 이상이다. 그런 자를 호메로스는 “친족도 없고 법률도 없고 가정도 없는 자”라고 비난한다. (1253a1)


  자연은 어떤 목적 없이는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다. 그런데 인간은 언어(logos) 능력을 가진 유일한 동물이다. …… 언어는 무엇이 유익하고 무엇이 유해한지, 그리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밝히는 데 쓰인다. 인간과 다른 동물들의 차이점은 인간만이 선과 악, 옳고 그름 등등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인식의 공유에서 가정과 국가가 생성되는 것이다. (1253a7)


  국가는 본성상 가정과 개인에 우선한다. 전체는 필연적으로 부분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몸 전체가 파괴되면 손이나 발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며, 석상의 손에 관하여 말할 때처럼 이름으로만 존재할 것이다. 죽은 손은 석상의 손보다 나을 게 없기 때문이다. 사물은 그 기능(ergon)과 능력(dynamis)에 의해 규정된다. (1253a18)


  국가는 분명 자연의 산물이고 개인에 우선한다. 왜냐하면 고립되어 자급자족하지 못하면 개인은 전체에 대해 다른 경우 부분이 전체에 대해 갖는 관계를 맺을 것이기 때문이다. (1253a25)


  인간은 완성되었을 때는 가장 훌륭한 동물이지만, 법(nomos)과 정의(dike)에서 이탈했을 때는 가장 사악한 동물이다. …… 탁월함(arete)이 없으면 인간은 가장 불경하고 가장 야만적이며, 색욕과 식욕을 가장 밝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의는 국가 공동체의 특징 중 하나다. 정의는 국가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해주고, 정의감은 무엇인 옳은지 판별해주기 때문이다. (1253a29)



        제3장 가정과 노예


  완전한 가정은 노예와 자유민으로 구성된다. …… 가정의 가장 주된 최소 요소는 주인과 노예,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자식이다.



        제4장 도구로서의 노예


  재산은 가정의 일부이고, 재산 획득 기술은 가사 관리의 일부다. …… 도구 가운데 어떤 것은 생명이 없고, 어떤 것은 생명이 있다. 예컨대 배의 선장에게 노는 생명 없는 도구지만, 망보는 선원은 생명 있는 도구다. 기술에 관한 한 조수(助手)는 도구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물은 살기 위한 도구이고, 재산은 도구들의 집합이다. 또한 노에는 일종의 살아 있는 재물이고, 조수는 다른 도구들에 우선하는 도구이다. (1253b23)


  통상적인 의미의 도구는 생산을 위한 도구인 반면, 재산은 활동을 위한(praktikon) 도구다. 예컨대 베틀의 북을 사용하면 다른 것이 생산되지만, 침대나 옷은 사용할 뿐이다. 그리고 생산과 활동(praxis)은 서로 종류가 다르고, 이들은 둘다 도구를 요하므로, 이들이 사용하는 도구들도 필연적으로 종류가 다르다. 그런데 삶은 활동이지 생산이 아니다. 따라서 노예는 활동을 위해 쓰이는 도구다.



        제5장 노예제도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생명 있는 것은 혼(psyche)과 몸(soma)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 전자는 본성적으로 치자이고 후자는 피치자이다. (1254a28)


  아무튼 우리는 앞서 말했듯이 우선 생명 있는 것들 속에서 주인이 노예에게 행사하는 것과 같은 지배와 정치가가 동료 시민들에게 행사하는 것과 같은 지배라는 두 가지 형태의 지배를 볼 수 있다. 몸에 대한 혼의 지배는 주인의 지배와 같고, 욕망에 대한 지성(nous)의 지배는 정치가나 왕의 지배와 같기에 하는 말이다. …… 수컷이 본성적으로 더 우월하고, 암컷은 열등하다. 그래서 수컷이 지배하고, 암컷은 지배받는다. 그리고 이런 원칙은 인간관계 전반에 적용되어야 한다. (1254b2)


  몸을 사용하는 것을 업(業)으로 삼되 그럴 경우 최상의 성과를 올릴 수 있는 인간들은 모두 본성적으로 노예이며, 이들은 모두 앞서 말한 원칙에 따라 주인의 지배를 받는 편이 더 낫다. 남에게 속할 수 있고 그래서 실제로 남에게 속하는 자는, 그리고 이성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이성을 갖지 못하는 자는 본성적으로 노예이기 때문이다. …… 노예와 길들인 동물의 용도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은 둘 다 생필품을 조달하도록 주인에게 몸으로 봉사하기 때문이다. (1254b16)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신상(神像)이 사람보다 훌륭한 만큼 어떤 사람들의 몸이 남들보다 훌륭하다면, 열등한 자들은 마땅히 그들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는 데 모두들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몸에 그런 차이가 있다는 것이 사실일진대 혼에도 그런 차이가 있다는 것은 더 당연하지 않겠는가! (1254b32)


  이렇듯 어떤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자유민이고 어떤 사람들은 노예인데, 후자에게는 노예제도가 유익하고 정당함이 분명하다. (1254b39)



        제7장 법적 노예 지배의 특성


  정치가는 타고난 자유민을, 주인은 타고난 노예들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정에서의 지배는 독재(monarchia)적이다. 각각의 집을 한 사람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반면 정치가는 자유민과 동등한 자들을 지배한다. (1255b16)


  주인이 주인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가 습득한 지식 때문이 아니라, 타고난 탁월함 때문이다. (1255b20)


  한 편 주인을 위한 지식도 있는데, 그것은 노예를 부리는 법을 가르쳐 준다. 주인은 노예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노예를 부림으로써 주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예를 부리는 것은 위대하거나 고상한 지식이 아니다. 주인은 노예가 반드시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을 시킬 줄만 알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번거로운 일에서 벗어날 수 있을 만큼 살림이 넉넉한 주인들은 노예의 관리를 집사에게 맡기고 자신들은 정치와 철학에 전념하는 것이다. (1255b30)



        제8장 재산 획득 기술에 관하여


  가사 관리는 재산 획득 기술과 같은 것이 아님이 밝혀졌다. 후자는 재료를 제공하고, 전자는 그것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1256a10)


  이런 재산 획득 기술은 본성적으로 가사 관리 기술의 일종이다. 왜냐하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고 국가 공동체와 가정 공동체에 유익한 재물들 가운데 비축될 수 있는 것들은 넉넉히 비축되어 있거나, 아니면 가사 관리 기술이 그런 것들을 조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1256b26)



        제9장 재산 획득의 자연스런 방법과 부자연스런 방법


  샌들은 신는 데도 사용되고 교환하는 데도 사용된다. 샌들은 두 가지 용도로 쓰이는 것이다. 돈이나 음식을 받고 샌들이 필요한 사람에게 샌들을 주는 사람은 샌들을 샌들로 사용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샌들의 고유한 용도는 아니다. 샌들은 교환하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점은 다른 재물도 마찬가지다. 물물교환은 이들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으며, 어떤 사람은 너무 적게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은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는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돈 버는 기술이 상업의 자연스러운 부분이 아님을 추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쌍방의 욕구가 충족될 때가지만 교환 행위가 필요할 것이다. (1256b40)


  바로 이 물물교환에서 돈 버는 기술이 생겨났다. 한 나라 주민들이 다른 나라 주민들에게 점점 더 의존하게 되어 필요한 것은 수입하고 남는 것은 수출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화폐가 사용된다. ……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 거래할 때 무쇠, 은 등등 갑이 나가고 교환하기 편리한 것을 사용하기로 합의했던 것이다. (1257a28)


  일단 화폐가 도입되자 생필품의 물물교환은 재산 획득의 또 다른 형태, 즉 상업으로 발전했다. …… 화폐가 도입되면서 재산 획득 기술은 주로 화폐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그리고 어디서 많은 돈을 벌 수 있는지 알아내는 기술로 간주된다. 그래서 재산 획득 기술과 상업이 화폐와 관계가 있는 만큼, 부는 흔히 다량의 화폐와 동일시되곤 한다. (1257a41)


  자연스런 부와 자연스런 재산 획득 기술이란 그와는 다른 것으로서 가사 관리에 속하지만, 상업은 진정한 의미에서가 아니라 교역을 통해서만 재산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업은 오직 화폐와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화폐가 상업의 필수 성분이자 목적이기 때문이다. (1257b17)


  또 이런 종류의 재산 획득 기술에서 생겨나는 부에는 한계가 없다. …… 이런 종류의 재산 획득 기술의 목표에도 한계가 없다. 그것이 추구하는 목표는 화폐 형태의 부와 오직 화폐의 획득이기 대무이다. 반면 가사 관리에 속하는 재산 획득 기술에는 한계가 있다. 부의 무한한 획득이 가사 관리의 기능은 아니기 때문이다. (1257b23)

  이러한 사고방식[증식이 가사 관리의 기능이라고 믿고는 가지고 있는 화폐를 그대로 간직하거나 무한히 증식해야 한다는 생각]은 인간이 훌륭한 삶이 아니라 단순한 생존을 추구하는 데서 기인한다. 그리고 인간은, 그들의 욕망이 무한하듯, 그 욕망을 충족시킬 수단도 무한하기를 원한다. …… 그들의 향락은 과잉에 있으므로, 그들은 향락의 과잉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술[재산 증식]을 찾게 된다. (1257b40)


  이상으로 우리는 재산 획득 기술의 불필요한 형태에 관해 그것이 무엇인지, 왜 사람들이 그것을 원하는지 논의했다. 우리는 또 필요한 형태의 재산 획득 기술에 관해 논하면서, 그것이 전자와는 다른 것이고 가사 관리 기술의 자연스런 일부로서 식량 조달과 관계가 있으며 전자처럼 무한하지 않고 한계가 있다는 점을 밝혔다. (1258a14)



        제10장 가사 관리의 적절한 한계: 대부(貸付)는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재산 획득 기술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가사 관리에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상업과 관련된 것이다. 전자는 필요하고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교역에 의존하는 후자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고, 남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고리대금이 가장 심한 증오의 대상이 되는데, 이는 지당한 일이다. 그것은 화폐의 본래 기능인 교역 과정이 아니라, 화폐 자에서 이득을 취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화폐는 교역에 쓰라고 만들어진 것이지 이자를 낳으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258a38)



        제12장 남편의 권위와 아버지의 권위에 대한 간단한 고찰


  아내에 대한 그의 지배는 동료 시민들에 대한 정치가의 지배와 같고, 자식에 대한 그의 지배는 피치자들에 대한 왕의 지배와 같기에 하는 말이다. 자연에 배치되는 예외적인 경우 말고는, 남성이 여성보다 본성적으로 지배하는 데 더 적합하며, 연장자와 성인이 연소자와 미성년보다 지배하는 데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가가 지배하는 겨우 대개 치자와 피치자는 교대를 하며 국가는 차별 없는 평등을 지향한다. (1259a37)



        제13장 가정에서의 도덕성과 효율성


  치자와 피치자는 둘 다 탁월함을 지니되 그 종류가 달라야 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것은 본성적 피치자들 사이에서도 부류에 따라 탁월함의 종류가 다른 것과 같다. 이는 혼의 상태를 보면 알 수 있다. 혼에는 본성적으로 지배적인 부분과 피지배적인 부분이 있고, 이들의 탁월함을 서로 다른데, 그중 하나는 이성을 가진 부분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비이성적인 부분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원칙은 분명 다른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어, 본성적 치자와 본성적 피치자가 존재하는 것은 보편적 법칙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배의 종류는 서로 다르다. 노예에 대한 자유민의 지배는 여자에 대한 남자의 지배나 아이에 대한 어른의 지배와는 종류가 다른 것이다. …… 노예는 기획 능력이 전혀 없고, 여자는 기획 능력이 있긴 하지만 권위가 없고, 아이는 기획 능력이 있지만 아직은 그것이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260a2)


  도덕적 탁월함의 경우도 그 점은 마찬가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모두들 도덕적 탁월함을 지니되, 똑같은 정도가 아니라 각자 제 기능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만큼만 지는 것이다. 그래서 치자는 완전한 형태의 도덕적 탁월함을 지녀야 하는데, 그것은 그의 기능이 진정한 의미에서 우두머리 장인의 기능이고, 이성이야말로 우두머리 장인이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구성원도 각자 필요한 만큼 도덕적 탁월함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앞서 말한 구성원이 모두 도덕적 탁월함을 지니는 것은 분명하지만, 남자와 여자의 절제 E는 남자와 여자의 용기와 정의는 소크라테스가 주장한 것처럼 같은 것이 아니다. 남자의 용기는 치자의 용기이고, 여자의 용기는 섬기는 자의 용기다. 이 점은 다른 탁월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260a14)






제 2 권 이상 국가


        제1장 국가 구성원의 재산 공유


  국가는 공동체인 만큼 그들은 최소한 영토는 공유해야 한다. 한 국가의 영토는 하나고, 시민들은 다름 아니라 한 국가를 공유하는 자들이다. (1260b36)



        제2장 플라톤의 『국가』에서의 극단적 통일성에 대한 비판


  분명 국가는 계속해서 점점 더 하나의 통일체가 되어가면 결국 국가이기를 그만두게 될 것이다. 국가는 본성적으로 하나의 복합체다. 따라서 국가는 복합체에서 점점 더 통일체가 되어갈수록 국가 대신 가정이 되고, 가정 대신 개인이 될 것이다. (1261a10)


  국가는 다수의 사람들뿐 아니라 여러 종류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 이 요소들이 서로 받은 만큼 준다는 원칙이 국가를 유지해준다. 자유민들과 동등한 자들 사이에서도 이 원칙은 고수되어야 한다. 그들은 한꺼번에 공직에 취임할 수 없고, 1년 임기로 또는 다른 어떤 순서나 임기에 따라 취임해야 하기 때문이다. (1261a22)


  모든 시민은 날 때부터 평등하기 때문에, 그리고 공직이라는 것이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간에 모두 공직에 참여하는 것이 옳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가 불가능하다면, 동등한 권리를 가진 자들이 교대로 공직에서 물러나고, 공직을 떠나서는 모두 같은 지위를 가짐으로써 그런 원칙이 모방될 수 있다. 그것은 그들이 마치 다른 사람들이 되기라도 한 양 교대로 일부는 지배하고 일부는 지배받는 것을 뜻한다. (1261a37)


  국가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주민들이 자족할 수 있을 만큼 많고 다양해야 비로소 국가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261b6)



        제3장 지나친 통일성은 비현실적이다


  설사 최대한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것이 공동체를 위해 최선이라 하더라도, 이 통일성은 모든 사람이 같은 것을 동시에 “내 것이오.” “내 것이 아니오.”라고 말한다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이것을 국가의 완전한 통일성의 지표로 보고 있다. …… ‘모두’가 같은 것을 “내 것이다.”라고 말하는 문구가 ‘저마다’ 그렇게 한다는 뜻이라면 바람직하긴 하지만 실현 불가능하고, ‘다 함께’ 그렇게 한다는 뜻이라면 화합을 저해한다. (1261b16)


  그러한 발상에는 불리한 점이 또 한 가지 있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속하는 것일수록 보살핌을 덜 받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공유재산보다 사유재산에 더 관심이 많으며, 공유재산은 개인적으로 관련 있는 범위에서만 보살핀다. 다른 이유는 차치하고, 누군가 다른 사람이 보살필 것이라고 생각하면 누구나 다 소홀히 하게 마련이다. (1261b32)


  같은 소년이 ‘내 아들’도 되고 ‘아무개의 아들’도 되어, 천 명 또는 실수의 시민들 각자의 아들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과연 1000분의 1만큼은 아버지인지 확신이 서지 못할 것이다. 시민들 가운데 대체 누가 아이를 낳았는지, 누구의 아이가 살아남았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1262a1)


  플라톤의 구상대로 된다 해도 사람들이 더러 자신의 형제와 아들과 아버지와 어머니를 알아보는 것을 막을 수 없다. (12262a14)



        제4장 처자 공유제에 대한 비판(속편)


  부부를 공유하는 공동체에는 그런 제도를 옹호하는 자들이 아무리 조심해도 피하기 어려운 또 다른 폐해들이 있는데, 학대, 고의적 또는 우발적 살인, 말다툼, 비방 등이 그것이다. (1262a25)


  또 놀라운 것은, 플라톤이 모든 젊은이들을 만인의 아들로 만든 다음 연인 관계인 연장자들에게 젊은이들과의 육체적 관계만 금할 뿐 연애를 하거나 애정 표시를 하는 것은 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91262a32)


  그 밖에도 처자 공유제는 치자들인 수호자들보다는 피치자들인 농민들에게 더 쓸모가 있는 것 같다. 처자를 공유하는 곳에서는 우애(philia)가 약해져 피치자들이 고분고분하고 변혁을 꾀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 처자를 공유하는 국가에서는 우애가 묽어져, 아버지는 틀림없이 아들을 ‘내 아들’이라고 부르지 않고, 아들은 ‘내 아버지’락 부르지 않게 될 것이다. …… 인간으로 하여금 배려와 애정의 감정을 품게 하는 것은 주로 ‘내 것’과 ‘소중한 것’의 두 가지인데, 플라톤식의 그런 국가에서는 그중 어는 것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91262a40)


  또 한 가지 난점은 플라톤의 구상에서 계층이동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과 관련된 것으로, 그에 따르면 농민이나 기술자 등 하위 계층의 분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라도 탁월함에서 뛰어난 것으로 인정되면 수호자들이라는 상위 계층으로 이동하고, 반대로 상위 계층의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라도 탁월함에서 열등한 것으로 인정되면 하위 계층으로 이동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런 계층이동이 어떻게 실행될 수 있을지 난감하다. (1262b24)



        제5장 플라톤의 『국가』에서의 재산 공유제에 대한 비판


  땅의 경작자가 노예처럼 땅임자와 다른 경우, 사정은 달라져 쉽게 조정할 수 있다. 그러나 땅임자들이 자기 땅을 경작할 경우, 소유권 문제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야기될 것이다. 노동과 수익이 공평하지 않을 경우, 많이 일하고 적게 받는 자들은 틀림없이 적게 일하고 많이 받는 자들을 원망하게 될 테니 말이다. (1262b37)


  두 가지 제도, 즉 재산의 공유제와 사유제의 장점을 다 취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재산은 한 가지 점[재산의 사용]에서는 공유이어야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사유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각자가 자기 재산을 돌보면 불평할 일이 없을 것이고, 각자가 자기 이익을 위해 일한다고 느낄 테니 더 잘 보살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친구들의 재산은 모두의 공유물이다.’라는 속담의 정신에 따라 개인의 재산이 모두를 위해 사용되도록 보장해주는 것은 도덕적 탁월함이지 법적 강제가 아니다. (1263a21)


  이상에서 밝혀졌듯이 재산은 개인이 소유하되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런 품성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 입법자의 본연의 임무다. (1263a30)


  그 밖에도 무엇인가를 자기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쾌감을 안겨준다. ……자기 자신, 재산, 돈 같은 것에 대한 애착은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친구나 손님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도움과 호의를 베푸는 것은 가장 큰 쾌감을 주는데 그것은 사유재산이 있어야 가능하다. (1263a40)


  그러나 지나치게 국가의 통일성을 추구할 경우 이런 쾌감들은 맛볼 수 없다. 그런 국가에서는 그 밖에도 두 가지 탁월함이 실현되는 것을 전혀 볼 수 없을 것이다. 그중 한 가지는 성관계를 절제하는 것이다. (절제를 위해 남의 아내를 가까이하지 않는 것은 가상한 일이기에 하는 말이다.) 두 번째는 재산과 관련하여 선심을 쓰는 것이다. 모든 것을 공유하면 어는 누구도 선심을 쓴다고 과시할 수도 없고, 실제로 선심을 쓸 수도 엇ㅂ다. 선심은 사유재산을 써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1263b7)


  소크라테스가 오류를 저지른 이유는 그의 논의의 출발점인 통일성에 대한 가정이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가정에도 국가에도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총체적 통일성이어서는 안 된다. 통일성에도 어떤 선이 있어 그것을 넘어서면 국가가 국가이기를 멈추거나, 아니면 국가이기를 멈추지 않더라도 열등한 국가가 된다. …… 하나의 복합체인 국가는 교육에 의해 공동체가 되고 통일체가 되어야 한다. (1263b29)


  또한 그런[플라톤이 제안한] 공동체에서 국가가 전체적으로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 소크라테스는 설명하지 않았고, 설명하기가 쉽지도 않을 것이다. 국가 구성원은 대부분 수호자들이 아닌 일반 대중인데 그들에 관해서는 명확하게 규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 (1264a11)


  끝으로 소크라테스는 수호자들에게는 행복을 거부하면서 국가 전체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입법자의 임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모두나 대부분이나 일부가 행복하지 않고서는 전체가 행복하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6장 플라톤의 『법률』에 대한 비판


  『법률』은 대부분 입법과 관련이 있고, 정체에 관한 언급은 거의 없다. 그리고 플라톤은 정체를 실재하는 국가들에 더 맞추려고 하지만 점점 이전의 정체로 되돌아가고 있다. 그는 아내와 재산의 공유를 제외하고는 두 국가가 모든 점에서 같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법률』에서는 공동 식사 제도가 여자들에게까지 확대되었고, 전사들의 수가 5,000명인데 『국가』에서는 1,000명이라는 것이다. (1265a1)


  플라톤은 사람은 절제 있게 살 수 있을 만큼의 재산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절제 있게 산다.”는 말을 그는 “훌륭하게 산다.”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것은 너무 포괄적인 표현이다. …… 선심과 절제는 재산 사용과 관련하여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탁월함이다. …… 따라서 재산의 사용에는 절제와 선심이라는 두 가지 탁월함이 요구되는 것이다. (1265a28)


  또 한 가지 이상한 점은, 플라톤이 재산은 균등하게 배분하면서도 시민들의 수에 대해서는 무슨 조치를 취하기는커녕 인구수에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1265a38)


  『법률』에서는 도 치자가 피치자와 어떻게 다른지 언급되지 않고 있다. (1265b18)


  플라톤이 『법률』에서 기술하고 있는 정체는 전체적으로 민주정체도 아니고 과두정체도 아닌 이 양자의 중간 형태로 흔히 ‘혼합정체’(politeia)라고 불리는데, 여기서는 자비로 중무장한 시민들이 권력을 장악한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가장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정체로서 이런 정체를 구성하려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정체야말로 으뜸가는 정체에 버금가는 훌륭한 정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 …… 아무튼 『법률』에서는 민주정체와 참주정체의 혼합이 최선의 정체로 언급되고 있다. (1265b26)


  그 밖에 『법률』의 정체는 분명 군주정체의 요소는 없고 과두정체와 민주정체의 요소만 있는데, 과두정체의 경향이 더 강하다. …… 부자들은 의회에 참석하고 공직자 선출 투표와 다른 국정에 참가할 의무가 있는 데 반해, 빈민은 그렇게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는 것은 과두정체의 특징이다. 또 다수의 공직자를 부자들 중에서 선출하고, 최고의 공직자를 최고의 재산등급에 속하는 자들에게서 선출하려는 노력도 역시 과두정체의 특징이다. (1266a5)





제 3 권 시민과 정체에 관한 이론


        제1장 시민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국가는 여러 부분으로 구성된 다른 전체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복합체다. 따라서 분명 우리는 먼저 시민이 무엇인지부터 고찰해야 하는데, 국가는 시민들로 구성된 복합체이기 때문이다. (1274b32)


  일정한 장소에 거주한다고 해서 시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재류외인(在留外人, metoikos)과 노예들도 시민이 아니지만 시민과 같은 장소에 거주하기 때문이다. 고소하거나 재판받을 수 있는 법적 권리가 있다고 해서 시민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이런 권리는 양국 간의 조약에 의해 보호받는 이방인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1275a5)


  완전 시민의 가장 큰 특징은 재판 업무와 공직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어떤 공직은 연임이 불가능한데, 같은 사람이 두 번 다시 취임할 수 없거나 일정 기간이 지난 뒤에야 취임할 수 있다. 다른 공직, 이를테면 배심원이나 시민 전체가 참가하는 민회 회원직은 임기 제한이 없다. ……  구별하기 위해서 그것을 [배심원과 민회 회원을] ‘임기 제한이 없는 공직’이라고 부르기로 하고, 그런 공직에 참여하는 시민을 공직자라고 부르기로 하자. (1275a22)


  필연적으로 정체가 다르면 시민도 다른데, 우리가 정의한 시민은 민주정체에 가장 잘 맞지만, 다른 정체들에도 꼭 적용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1275a33)


  의결권과 재판권에 참여할 권리가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 나라의 시민인 것이다. 그리고 국가는 간단히 말해 자족한 삶을 영위하기에 충분할 만큼 많은 수의 시민들로 구성된 단체다. (1275b13)



        제3장 국가의 연속성과 정체성


  국가는 공동체, 그것도 하나의 정체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공동체인 만큼, 정체가 바뀌어 다른 종류의 것이 되면 국가도 필연적으로 더 이상 같은 국가일 수 없다. …… 국가의 동질성을 판단할 때는 주로 정체의 동질성이 기준이 되어야 함이 분명하다. 그러니 같은 사람들이 거주하느냐 다른 사람들이 거주하느냐와 상관없이 우리는 정체의 동질성을 기준으로 한 국가를 같은 국가 또는 다른 국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1276a30)


  시민들도 서로 다르지만 그들 모두에게는 공동체의 안정이라는 공통된 과제가 있는데, 여기서 공동체란 다름 아닌 정체다. 따라서 시민의 탁월함은 반드시 정체와 관련이 있어야 한다. 또한 정체는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인 만큼, 훌륭한 시민의 탁월함도 한 가지만 완벽한 것일 수 없다. 그런데 훌륭한 사람은 한 가지 완벽한 탁월함을 지닌 사람이라고 우리는 말한다. 따라서 훌륭한 사람의 탁월함을 지니지 않아도 훌륭한 시민이 될 수 있음이 명백하다. (1276b16)


  국가가 전적으로 훌륭한 사람들로 구성될 수 없는 것이라면, 그럼에도 개개의 시민이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훌륭히 수행해야 한다면,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탁월함을 지녀야 한다면, 모든 시민이 똑같을 수 없는 만큼 시민의 탁월함과 훌륭한 사람의 탁월함은 동일할 수 없다. 훌륭한 시민의 탁월함은 모든 시민이 지녀야 하지만―그래야만 국가가 최선의 국가가 될 테니까―훌륭한 국가의 시민들이라고 해서 모두 훌륭한 사람일 수 없는 만큼 모든 시민이 훌륭한 사람의 탁월함을 지닌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276b35)


  우리는 훌륭한 치자는 훌륭하고 선견지명(phronimos)이 있어야 한지만, 시민은 굳이 선견지명이 없어도 된다고 말한다. …… 치자의 탁월함과 시민의 탁월함을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1277a5)


  반면 사람들은 지배할 줄도 알고 복종할 줄도 아는 능력을 찬양하며, 두 가지에 일에 능한 사람을 탁월한 시민으로 간주한다. (1277a25)


  주인의 지배라는 것이 있는데, 생활에 꼭 필요한 노예 노동에 관계된다. 주인은 이런 일들을 어떻게 하는지 알 필요는 없고 남들에게 시키기만 하면 된다. …… 이런 종류의 피치자들의 노동은 훌륭한 정치가나 훌륭한 시민이 개인적으로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배울 필요가 없다. 그렇지 않으면 주인과 노예의 구분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1277a33)


  그 밖에 동등한 자들과 자유민들에 대한 지배도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정치가의 지배라고 한다. 이런 지배는 치자가 지배받고 복종함으로써 배워야 한다. …… 치자와 피치자의 탁월함은 서로 다른 것이지만, 훌륭한 시민은 이 두 가지에 다 능해야 한다. 말하자면 훌륭한 시민은 자유민답게 지배할 줄도 알고 자유민답게 복종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이런 것들이 바로 시민의 탁월함이다. (1277b7)


  치자의 절제와 정의가 피치자의 그것과 다르다 해도, 훌륭한 사람의 탁월함은 이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한다. 지배받지만 자유민인 훌륭한 사람의 탁월함, 예컨대 그의 정의는 언제나 같은 것이 아니라, 그가 지배하느냐, 지배받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1277b18)


  치자 고유의 탁월함은 선견지명(phronesis)뿐이다. 다른 탁월함은 치자와 피치자 모두에게 필요한 것 같다. 대신 피치자의 탁월함은 선견지명이 아니라 올바른 의견일 것이다. (1277b25)



        제5장 직공도 시민이 되어야 하는가?


  국가 존립에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 시민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확실하다. 예컨대 미성년자는 성인과 같은 의미에서 시민이 아니다. 성인은 절대적인 의미에서 시민이지만, 미성년자는 조건부 시민이다. (1277b39)

 

  최선의 국가라면 직공을 시민으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 직공을 시민으로 받아들인 국가라면 우리가 앞서 말한 시민의 탁월함은 모든 시민이 다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민이면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노동에서 해방된 자들만이 가질 수 있을 것이다. (1278a6)


  이상에서 두 가지가 밝혀졌는데, 그중 하나는 시민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의 공직에 참여하는 자들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시민이라는 것이다. (1278a34)



        제6장 바른 정체와 그른 정체


  정체란 여러 공직, 특히 모든 일에 최고 결정권을 가진 기구에 관한 국가의 편제(編制, taxis)다. 어느 국가에서나 정부가 최고 권력을 가지는 만큼, 정부가 실제로는 정체인 것이다. 예컨대 민주정체에서는 민중(demos)이 최고 권력을 가지며, 과두정체에서는 소수자(oligoi)가 최고 권력을 가진다. (1278b6)


  정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평등과 동등의 원칙에 입각한 국가에서는 시민들은 자신들이 교대로 관직을 맡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당연한 일이지만 전에는 교대로 국가를 위해 봉사하다가 퇴직한 사람은 자신이 공직에 있을 대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보살폈듯이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보살펴주리라 기대하곤 했다. (1279a8)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체는 절대 정의의 기준으로 판단하건대 올바른 정체고, 치자들의 개인적인 이익만 추구하는 정체는 모두 잘못된 것이고 올바른 정체가 왜곡된 것이다. (1279a16)



제7장 올바른 정체와 왜곡된 정체의 구분


  정체와 정부는 사실상 같은 뜻이다. 정부는 국가의 최고 권력기구인데, 최고 권력기구는 필연적으로 한 사람, 소수자 또는 다수자에 의해 대표된다. ……  국가가 제공하는 이익에 참여하지 못하는 자는 시민이라고 불리지 말든지, 시민이라고 불리면 당연히 이익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1279a25) [공정성 논변과 유사. 혜택 받았으면 정치적 복종의 의무를 져야 한다.]


  한 사람이 통치하는 정부들 가운데 공동의 이익을 고려하는 정부를 우리는 보통 왕정이라고 칭하며, 한 사람 이상의 소수자가 통치하는 정부를 귀족정체라고 칭한다. …… 다수자가 공동의 이익을 위하여 통치할 경우, 정부는 모든 정체에 공통된 명칭인 ‘정체’ 또는 ‘혼합 정체’라고 불린다. (1279a32)


  앞서 말한 정체들 중 왕정이 왜곡된 것이 참주정체, 귀족정체가 왜곡된 것이 과두정체, ‘혼합 정체’가 왜곡된 것이 민주정체다. (1279b4)


<최고 권력기구의 대표자 수에 따른 정체의 분류>

 

올바른 정체

(공공의 이익 추구)

왜곡된 정체

(치자들의 개인적 이익 추구)

1인

왕정

참주정체

소수

귀족정체

과두정체

다수

혼합정체(정체)

민주정체



        제8장 경제를 기준으로 한 정체의 구분


  참주정체는 국가 공동체를 마치 주인이 노예를 지배하듯 통치하는 1인 지배 정체다. 재산을 가진 자들이 정권을 잡으면 과두정체이고, 반면 재산을 갖지 못한 무산대중이 정권을 잡으면 민주정체다 첫 번째 문제점은 바로 이런 정의와 관련되어 있다. 말하자면 부유한 다수자가 정권을 잡더라도 다수자가 지배하는 만큼 민주정체라 해야 하고, 반대로 부자들보다 수는 적어도 힘이 더 센 민중이 정권을 잡는다면 소수자가 지배하는 만큼 과두정체라 해야 할 것이다. 이 경우 우리가 정체를 구분하는 방법은 더 이상 옳아 보이지 않는다. (1279b16)


  이렇게 볼 때 최고 권력을 가진 자들이 소수냐 다수냐 하는 것은, 다시 말해 과두정체에서는 소수이고, 민주정체에서는 다수라는 것은 순전히 우발적인 현상임이 분명하다. 어디서나 부자는 소수이고, 빈민은 다수이니 말이다. 따라서 소수냐 다수냐 하는 앞서 말한 이유들로 과두정체와 민주정체가 구분되지 않는다. 민주정체와 과두정체의 진정한 차이점은 가난과 부(富)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그들이 수가 많건 적건 재산이 많기 때문에 지배하면 과두정체이고, 빈민이 지배하면 민주정체다. (1279b34)



        제9장 정치권력의 올바른 배분


  민주정체의 지지자들에게 정의는 평등을 뜻한다. 정의가 평등을 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만인이 아닌 평등한 자들만을 위한 평등이다. 한편 과두정체의 지지자들은 공직 배분에서 불평등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옳은 것은 사실이지만, 만인이 아닌 불평등한 자들에게만 옳은 것이다. 이렇듯 ‘누구에게’를 빼버린 채 정의를 판단하면 잘못 판단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에 관해 판단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해가 걸려 있을 d때는 잘못 판단하기 때문이다. 정의는 사람에 따라 상대적이다. 그리고 올바른 배분이란 주어진 사물들이 상대적 가치가 받는 사람들의 상대적 가치에 상응하는 배분이다. …… 과두정체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한 가지 점에서, 예컨대 부에서 불평등하면 모든 점에서 불평등하다고 믿는다. 민주정체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한 가지 점에서, 예컨대 자유민의 신분에서 평등하면 모든 점에서 평등하다고 믿는다. (1280a7)


  좋은 질서를 가진 국가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시민의 좋은 탁월함과 나쁜 탁월함에 관심이 있다. 따라서 이름만 국가가 아니라 명실상부한 국가라면 시민들의 탁월함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추론할 수 있다. (1280b6)


  국가는 같은 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단순한 공동체가 아니며, 상호 간에 부당 행위를 방지하고 교역을 촉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국가가 존재하기 위한 필수 조건들이다. 그러나 그런 조건들이 다 충족된다 해도 국가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란 그 구성원의 가족들과 씨족들이 훌륭하게 살 수 있게 해주기 위한 공동체이며, 그 목적은 완전하고 자족적인 삶이다. 그런 공동체는 같은 곳에 살며 서로 혼인하는 자들 사이에서만 형성될 수 있다. 그래서 국가에는 친인척 관계와 씨족 연맹과 축제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오락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우애(philia)의 산물이다. 함께 살겠다는 의지야말로 다름 아닌 우애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목적은 훌륭한 삶이며, 앞서 말한 것들은 이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국가는 완전하고 자족적인 삶을 위한 씨족들과 마을들의 공동체다. 그리고 완전하고 자족적인 삶이란 행복하고 훌륭하게 사는 것을 뜻한다. (1280b23)



        제10장 국가의 최고 권력


  유능한 자들이 통치도 하고 모든 일에 최고 권력을 가져야 하는가? 이 경우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공직에서 배제되어 시민으로서의 명예를 박탈당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공직(arche)을 명예(time)라고 부르는데, 만약 같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통치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시민으로서의 명예를 박탈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281a28)



        제11장 집단의 판단은 현명하다


  소수자인 가장 훌륭한 자들보다 대중이 최고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견해는 받아들일 만하고, 다소 문제점이 있기는 해도 나름대로 일리는 있는 것 같다. 다수자는 비록 그중 한 명 한 명은 훌륭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함께 모였을 때는 개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전체로서 소수자인 가장 훌륭한 사람들보다 더 훌륭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들은 다수고, 각자는 나름대로 탁월함과 지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이 사람은 이 부분을, 저 사람은 저 부분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1281a39) [꽁도르세의 배심원 정리와 유사]


  ‘자유민 또는 시민 대중은 어떤 업무에서 최고 권력을 가져야 하느냐’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들은 부자도 아니고 탁월함에 근거해 무엇을 요구할 처지도 못 되는 자들이다. 이들이 최고 공직에 참여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들의 불의한 기준은 필연적으로 불의를 저지르게 하고, 이들의 어리석음은 실수를 저지르게 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들이 참여하지 못하고 배제되는 것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많은 빈민이 공직에서 배제되는 국가는 필연적으로 적들로 가득찰 것이기 때문이다. 유일한 해결책은 이들이 심의와 재판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 이들이 한데 모이면 충분한 지각을 갖게 되고, 더 나은 자들과 섞이면 국가에 유익하기 때문이다. (1281b21)


  첫째, 우리의 조금 전 주장에 따르면, 대중이 지나치게 저질스럽지 않은 한 그들 개개인은 전문가들보다 못한 판단을 내릴지 몰라도 집단으로서는 더 나은 또는 못지않은 판단을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몇몇 분야에서는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제품에 대해 정확한 지식을 가질 수 있는데, 이 경우 제작자가 유일하게 도는 가장 훌륭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282a14)


  권력을 갖는 것은 배심법정이나 평의회나 민회의 개별 구성원이 아니라 법정과 평의회와 민회 전체이며, 앞서 말한 개별 구성원, 즉 평의회 회원과 민회 회원과 배심원은 이것들의 부분 또는 구성원에 지나지 않는다. 다라서 대중이 더 중요한 업무들에서 최고 권력을 갖는 것은 정당하다. (1282a32)


  첫 번째 문제에 관한 논의에서 분명히 밝혀진 것은, 올바르게 제정된 법(nomos)이 최고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과, 통치자는 한 명이든 여러 명이든 모든 경우에 보편타당한 규정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법이 정확한 지침을 제공할 수 없는 업무들만 조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1282b1)



        제12장 정의와 평등


  모든 학문과 기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선(善, agathon)이다. 이 점은 모든 학문과 기술의 으뜸인 정치에 특히 가장 많이 적용되는데, 정치의 선은 정의이며, 그것은 곧 공동의 이익이다. 다들 정의는 일종의 평등이라고 생각한다. …… 말하자면 그들은 정의는 특정한 사물들을 특정한 사람들에게 배분하는 것을 조정하며, 평등한 사람들에게는 평등해야 한다고 말한다. (1282b14)


  공직을 요구하는 자들은 국가 존립에 필요한 부문들에서 서로 경쟁해야 한다. 따라서 명문자제들이나 자유민이나 부자들이 공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이리다. 공직자들은 자유민이어야 하고 납세자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 국가는 부와 자유민의 신분 없이는 존립할 수 없고, 정의감과 전사로서의 탁월함 없이는 잘 다스려질 수 없기 때문이다. (1283a9)



        제13장 공직에 대한 요구


  훌륭한 삶을 고려한다면, 앞서 말했듯이 교육과 탁월함이 공직을 요구하는 것이 가장 정당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점에서 평등한 자들이 모든 점에서 평등해서도 안 되고, 한 가지 점에서 불평등한 자들이 모든 점에서 불평등해서도 안 되므로, 이런 주장들을 인정하는 정체는 필연적으로 왜곡된 정체다. (1283a23)


  우리는 ‘올바른’이라는 말은 ‘평등하게 올바른’의 듯이며, ‘평등하게 올바른’ 것이란 국가 전체의 이익과 시민들의 공동 이익에 연관되는 것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민이란 일반적으로 번갈아가며 지배하고 지배받는 사람이다. 시민은 정체의 형태에 다라 달라지지만, 최선의 국가에서는 탁월함을 추구하는 삶을 위해 자진하여 지배하고 지배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1283b27)



        제15장 왕정과 법의 관계 1


  법조문에 얽매인 정체는 최선의 정체가 아님이 분명하다. 하지만 치자들은 분명 보편적인 원칙도 갖고 있어야 한다. 게다가 감정에서 자유로운 것이 감정을 타고난 것보다 나은데, 법은 감정이 없는 반면 인간의 마음은 언제나 감정에 휘둘리기 마련이다.  …… 따라서 최선의 한 사람은 분명 입법을 하고 법을 제정해두어야 한다. 그러나 그 법들은 다른 경우에는 최고 권력을 유지하되 적절치 못할 때는 최고 권력을 가져서는 안 된다. ((1286a7)


  모두가 훌륭한 다수자의 통치를 귀족정체라 하고, 한 사람의 통치를 왕정이라 한다면, 왕이 친위대를 거느리든 말든 왕정보다는 귀족정체가 국가를 위해서는 더 바람직하다. 똑같이 훌륭한 다수를 구할 수만 있다면. (1286b1)



        제16장 왕정과 법의 관계 2


  우리가 논의하는 절대왕정은 왕이 모든 일을 자의적으로 처리하는 왕정을 뜻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동등한 자들로 구성된 국가에서 한 사람이 모든 시민을 통제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주장인즉 자연적으로 동등한 자들에게는 동등한 권리와 동등한 가치가 부여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에 맞는 만큼, …… 그래서 동등한 자들 사이에서는 각자가 지배받기도 하고 지배하기도 하는 것이, 그리하여 모두가 공직을 번갈아 맡는 것이 옳은 것이다. (1287a1)


  여기서 우리는 법과 마주치게 된다. 공직을 번갈아 맡는 것과 같은 제도는 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민들 가운데 한 명이 지배하는 것보다는 법이 지배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그리고 같은 논리에 따르면, 여러 명이 통치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해도 그 여러 명은 법의 수호자 겸 하인으로 임명되어야 한다. …… 법의 지배를 요구하는 자는 다름 아닌 신과 이성이 지배하기를 요구하는 것이고, 인간의 지배를 요구하는 자는 거기에 야수적인 요소를 덧붙이는 것이다. 욕망은 야수와 같은 것이고, 분노는 통치자들과 가장 훌륭한 인간마저도 오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은 욕구에서 해방된 이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287a18)


  정의(dikaion)를 구하려면 중용(meson)을 구해야 함이 분명한데, 법이 바로 중용이다. (1287a33)


  법의 지배를 옹호하는 자들도 그런 업무[법이 포함할 수 없는 없는 업무]는 인간이 결정해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며, 다만 한 사람보다는 여러 사람이 결정하기를 요구할 뿐이다. (1287b15)



        제17장 왕권의 최선의 형태


  정치적 탁월함에서 걸출한 가문이 국가를 통치하는 것을 본성적으로 잘 참고 견디는 주민들은 왕정에 맞고, 정치적 탁월함에서 걸출하여 통치할 능력이 있는 자들에 의해 자유민으로서 지배받는 것을 본성적으로 잘 참고 견디는 주민들은 귀족정체에 맞고, 재산 있는 자들에게 가치에 따라 공직을 배분하는 법에 의해 지배받기도 하고 지배할 수 도 있는 주민들은 ‘혼합 정체’에 맞다. (1288a6)






제 4 권 실제 정체와 그 변형들


        제1장 정치학의 과제와 대상


  정체에 법을 맞춰야지 법에 정체를 맞춰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정체는 공직들이 어떻게 배분되며 국가의 최고 권력은 누가 가지며 각각의 공동체가 추구하는 목표가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국가의 제도인 반면, 법은 정체의 이런 규정과는 달리 치자들이 거기에 따라 통치하고 위반자를 감시하고 제지하는 규칙들이기 때문이다. (1289a11)



        제2장 정체들의 질적 순위


  이 중 귀족정체와 왕정에 관해서는 이미 논했다. 최선의 정체를 고찰하는 것은 이들 두 정체를 고찰하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1289a26)

[아리스토텔레스는 왕정과 귀족정체를 최선의 정체라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왕정보다는 훌륭한 여러 사람이 다스리는 귀족정체를 더 나은 것이라 보는 것 같다.]


  참주정체가 최악이고, 올바른 정체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과두정체는 귀족정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만큼 그다음으로 나쁘고, 민주정체가 가장 견딜 만하다. (1289a38)



        제3장 정체는 왜 여러 가지인가?


  정체를 구성하는 부분이 여러 종류인 만큼, 정체도 분명 여러 종류일 수밖에 없다. …… 따라서 부분들의 우월성과 차이에 따른 조합만큼이나 많은 정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1290a3)



        제4장 국가의 여러 부분과 민주정체의 여러 종류


  자유민이 최고 권력을 가지면 민주정체고, 부자들이 최고 권력을 가지면 과두정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쪽이 많고 한쪽이 적은 것은 우연이지만, 실제로는 자유민은 많고 부자들은 적기에 하는 말이다. (1290a30)


  하지만 민주정체와 과두정체는 가난과 부라는 판단 기준만으로는 충분히 구별되지 않는다. …… 따라서 우리는 이 두 정체를 적절히 구별하기 위해서는 다른 판단 기준을 사용해야 한다. …… 다수자인 가난한 자유민이 최고 권력을 잡을 때는 민주정체고, 소수자인 부유한 귀족들이 최고 권력을 잡을 때는 과두정체다. (1290b7)


  법이 지배하는 민주정체에서는 민중선동가가 나타나지 않고, 가장 훌륭한 시민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이 최고 권력을 갖지 못하는 국가에서는 민중선동가들이 나타난다. 이것은 민중이 다수로 구성된 독재자가 되기 때문이다. (1292a7)


  법이 최고 권력을 갖지 않는 곳에는 정체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이 모든 보편적인 것에 대해 최고 권력을 가져야 하고, 공직자들은 개별적인 경우들을 조정하면 된다. …… 따라서 민주정체가 정체 가운데 하나라면, 모든 것이 민중의 결의에 따라 결정되는 이런 체계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정체가 아님이 명백하다. 민중의 결의에는 보편타당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1292a31)



        제7장 귀족정체의 여러 변형


  네 가지 주요 정체란 독재정체, 과두정체, 민주정체 그리고 이른바 귀족정체다. 그 밖에도 다섯 번째 종류의 정체가 있는데, 정체(politeia)라는 포괄적인 이름으로 불린다. (1293a35)


  우리가 앞서 논의한 정체만이 귀족정체라고 불리어 마땅하다. 왜냐하면 어떤 특정한 기준에 의해 훌륭한 것이 아니라 무조건 가장 훌륭한 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정체만이 진정한 의미의 귀족정체라고 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귀족정체에서만 훌륭한 사람과 훌륭한 시민은 무조건 일치하고, 다른 정체에서 훌륭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체의 기준에 따라서만 훌륭하다. (1293b1)



        제8장 '혼합 정체'와 귀족정체의 차이


  ‘혼합 정체’는 간단히 말해 과두정체와 민주정체의 혼합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민주정체 쪽으로 기우는 혼합만 ‘혼합 정체’라 부르곤 한다. 과두정체 쪽으로 더 기우는 혼합은 귀족정체라 부르곤 하는데, 교양과 좋은 가문은 일반적으로 부유층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1293b22)


  법의 지배는 첫째, 사람들이 기존의 법을 지킬 때 가능하고, 둘째, 사람들이 지키는 법이 좋을 때 가능하다. (1293b42)


  탁월함에 따라 공직을 배분하는 것이 귀족정체의 주된 특징이다. 귀족정체의 원칙은 탁월함이고, 과두정체의 원칙은 부이며, 민주정체의 원칙은 자유민 신분이니 말이다. 물론 다수결의 원칙은 이 모두에서 발견된다. …… ‘혼합 정체’에서 동등한 몫을 요구할 수 있는 요소는 사실은 세 가지, 즉 자유민 신분, 부, 탁월함이다. (1294a9)



        제9장 과두정체와 민주정체의 혼합으로서의 ‘혼합 정체’



  제대로 혼합된 ‘혼합 정체’는 민주정체의 요소와 과두정체의 요소를 모두 포함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동시에 그중 어느 쪽 요소도 포함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1294b34)



        제11장 대부분의 국가를 위한 가능한 최선의 정체


  행복한 삶이란 방해받지 않고 탁월함에 따라 사는 삶이며, 탁월함은 중용에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중도적인 삶이,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중용의 삶이 최선의 삶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좋고 나쁨을 결정하는 이런 판단 기준은 국가에도 정체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정체는 말하자면 국가의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1295a34)


  중도와 중용이 최선이라는 것이 인정된 만큼, 행운의 선물을 소유하는 데서도 중간 상태가 최선임이 명백하다.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이성(logos)에 가장 잘 복종하기 때문이다. (1295b1)

 

  공동체는 우애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애 대신 적대감을 품게 되면 사람들은 적과는 같은 길을 가려고도 하지 않는다. 국가는 가능한 한 동등하고 대등한 자들로 구성되려고 하는데, 이런 조건은 주로 그 구성원이 중산계급일 때 충족된다. 따라서 우리가 말한 국가의 자연스런 구성 성분들로 구성된 국가가 필연적으로 가장 훌륭한 정체를 갖는다. (1295b13)


  그리고 한 국가에서 가장 안전한 것이 중산계급이다. 그들은 빈민들처럼 남의 재물을 탐하지도 않거니와, 빈들이 부자의 재물을 탐하듯, 아무도 그들의 재물을 탐하지 않기 때문이다. 91295b28)


  따라서 중산계급으로 구성된 정체가 최선의 국가 공동체고, 중산계급이 많아 가능하다면 다른 두 계층을 합한 것보다, 아니면 적어도 어느 한쪽보다 더 강한 국가는 훌륭한 겆엧를 가질 것이 분명하다. (1295b34)


  따라서 중간 형태의 정체가 최선임이 분명하다. 거기에는 파쟁이 없기 때문이다. (1296a7)


  민주정체가 과두정체보다 더 안정되고 더 오래 존속하는 것은 중산계급 덕분이다. 중산계급은 수가 많은 데다 과두정체에서보다는 공직에 더 많이 참여하기 때문이다. (1296a13)



        제12장 정체에서 질과 양의 균형


   우선 모든 정체에 적용될 만한 보편적인 원칙 하나를 가정하겠는데, 정체가 존속되기를 원하는 국가의 부분이 그렇지 않은 부분보다 더 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1296b13)


  모든 국가는 질과 양으로 구성된다. 여기서 질이란 자유, 부, 교육, 좋은 가문을, 양이란 대중의 수적 우위를 뜻한다. …… 질과 양은 서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1296b17)


  입법자는 언제난 정치적 결정권을 가진 계층에 중산계급을 포함시켜야 한다. (1296b34)


  중산계급이 다른 두 계층을 합한 것보다, 또는 둘 중 어느 한쪽보다 수가 많은 곳에서는 ‘혼합 정체’가 지속될 수 있다. (1296b38)


  정체는 더 잘 혼합될수록 그만큼 오래 존속된다. (1297a6)



        제13장 다수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올바른 전략과 그릇된 전략


  양쪽을 제대로 혼합하려면 양쪽의 술수를 한데 섞어 빈민이 참석하면 수당을 지급하고, 부자가 참석하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해야 한다. (1297a35)


  '혼합 정체‘는 중무기를 가진 자들로만 구성되어야 한다. (1297b1)


  국가 규모가 커지기 시작하고 중무장보병들이 더 득세하면서 국정에 참여하는 시민의 수도 늘어났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혼합 정체’라고 부르는 정체는 전에는 민주정체라고 불렀던 것이다. (1297b12)



        제14장 정체와 심의권


  이 세 부분 중 첫 번째는 공부에 관해 심의하는 부분이고, 두 번째는 공직에 관한 부분이다. …… 세 번째는 재판에 관한 부분이다. (1297b35)


  심의하는 부분은 전쟁과 평화, 조약의 체결과 폐기, 입법, 사형, 추방형, 재산 몰수형, 공직자 임명, 임기 만료 시 공직자들에 대한 감사에 관해 최고 권력을 갖는다. (1298a3)


  시민 전체가 모든 공무를 결정하는 것은 민주정체의 특징이다. 민중이 추구하는 평등은 그런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1298a9)


  한편 시민 몇 명이 모든 안건을 심의하는 것은 과두정체의 특징이다. (1298a34)



        제15장 정체와 집행권

  일반적으로 말해 특정 안건에 대한 심의권과 결정권과 명령권, 그중에서도 특히 명령권을 위임받은 공직을 공직이라고 불러야 하 frjt이다. 명령하는 것이야말로 공직자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1299a14)






제 5 권 혁명과 정체 변혁의 원인들


        제1장 정체 변혁의 일반적 원인 1


  우리가 asjwj 논의의 출발점으로 전제해야 하는 것은, 여러 정체가 생겨난 것은 정의가 비례적 평등에 있다는 데에는 다들 동의하면서도, 앞서 말했듯이 그것을 성취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민주정체는 어떤 한 가지 점에서 평등한 자들은 절대적으로 평등하다는 생각에서 생겨났다. (그들은 모두가 자유민인 만큼 모두가 절대적으로 평등하다고 주장하니 말이다.) 한편 과두정체는, 어떤 특정한 점에서 불평등한 자들은 모든 점에서 불평등하다는 생각에서 생겨났다. 말하자면 그들은 자신들이 재산에서 불평등한 만큼 모든 점에서 불평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민주정체의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평등하다는 이유로 모든 것에 동등한 몫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과두정체의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불평등하다는 이유로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는데, ‘더 많은 것’은 불평등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민주정체와 과두정체는 둘 다 일종의 정의에 근거하고 있긴 하지만 절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실패작이다. 그래서 둘 중 어느 쪽이든 자신들이 주장하는 것만큼 국정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면 파쟁을 일으킨다. (1301a25)

  

  대체로 이런 것들이 파쟁의 근원이자 원천이며, 이로 인해 파쟁이 발생한다. 그렇게 보면 정체의 변혁이 왜 두 가지 방법으로 일어나는지 설명이 된다. 한 가지 방법은 변혁이 기존의 정체를 반대하여 정체의 성격을 바꾸는 것이다. …… 그런가 하면 변혁이 기존 정체를 반대하지 않고, 과두정체나 독재정체 같은 기존의 정체가 그대로 존속되기를 원하면서 정권을 장악하려고 하는 때도 있다. (1301b4)


  어디서나 불평등이 파쟁의 원인이다. 그러나 불평등한 자들이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에 비례하는 대우를 받으면 불평등이 아니다. (1301b26)


  평등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한 가지는 수에 따른 평등이고, 다른 하나는 가치(axia)에 따른 평등이다. ‘수에 따른 평등’이란 양이나 크기에서 동일하고 평등한 것을 의미하고, ‘가치에 따른 평등’이란 비례에서 동등한 것을 의미한다. (1301b29)


  그러나 사람들은 절대적 정의는 가치에 따른 정의라는 데 동의하면서도, 앞서 말했듯이, 실제로는 의견을 달리한다. 어떤 자들은 자신들이 어떤 한 가지 점에서 평등하면 모든 점에서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자들은 자신들이 어떤 한 가지 점에서 불평등하면 모든 점에서 불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로 민주정체와 과두정체라는 두 가지 정체가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다. (1031b35)


  어떤 경우에는 수적 평등을, 다른 경우에는 비례적 평등을 적용해야 하는 것이다. (1302a2)


  하지만 민주정체는 과두정체보다 더 안정되어 있고 파쟁에 덜 노출되어 있다. 과두정체에는 과두정파끼리의 파쟁과 민중과의 파쟁이라는 두 가지 파쟁이 일어나지만, 민주정체는 과두정파와의 파쟁에만 노출되어 있고, 민중 사이에서는 이렇다 할  파쟁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밖에 중산계급으로 구성된 정체는 과두정체보다는 민주정체에 더 가깝고, 이상적인 정체에 미치지 못하는 모든 정체 중에서 가장 안정성이 있다. (1302a8)



        제2장 정체 변혁의 일반적 원인 2


  이렇듯 덜 가진 자들은 똑같이 갖기 위해, 똑같이 가진 자들은 더 갖기 위해 들고일어난다. 이것이 파쟁을 일으키는 자들의 심적 상태다. (1302a22)


  파쟁을 일으키는 동기는 이익과 명예에 대한 욕구거나, 불명예와 손실에 대한 두려움이다. (1302a31)



        제3장 정체 변혁의 개별적 원인


  이 가운데 교만과 이익 추구가 어떤 영향력이 있으며, 어떻게 해서 파쟁의 원인이 되는지는 명백하다. (1302b5) [공직자들의 교만과 탐욕]


  명예가 어떤 영향력이 있으며, 어떻게 해서 파쟁의 원인이 되는지도 분명하다. (1302b10)


  한 사람 또는 몇 사람이 국가나 국가의 지배계층이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권력을 행사할 경우 우월성도 파쟁의 원인이 된다. (1302b15)


  사람들은 두려움 때문에도 파쟁을 일으키는데, 범죄를 저지르고 나서 처벌받을까 두려워하는 자들과 부당한 일을 당할까 두려워 미리 선수를 쓰는 자들의 경우가 그렇다. (1302b21)


  경멸도 파쟁과 봉기의 원인이 될 수 있다. (1302b25)


  국가의 한 부분의 불균형한 성장도 정체 변혁의 원인이 될 수 있다. (1302b33)



        제5장 민주정체가 전복되는 이유


  민주정체에서 변혁이 일어나는 것은 주로 민중선동가들의 무절제 때문이다. 민중선동가들은 때로는 부자들을 개별적으로 무고함으로써 부자들이 단결하지 않을 수 없게 하고(가장 사이 나쁜 적들도 공동의 위험 앞에서는 결속하기 마련이니까.), 때로는 부자들을 공격하도록 대중을 공공연하게 부추긴다. (1304b19)



        제6장 과두정체가 전복되는 이유


  과두정체에서 변혁이 일어나는 이유 중에는 두 가지가 특히 두드러진다. 한 가지는 정부가 대중을 부당하게 억압할 때다. 그 경우 누구라도 대중의 선봉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305a36)


  그러나 지배계급 바깥에서 시작되는 파쟁은 여러 이유로 세분화될 수 있다. (1305b1)



        제7장 귀족정체가 전복되는 이유


  귀족정체에서 파쟁이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소수만이 공직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것은 과두정체에서 분란이 일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도 글러 것이 귀족정체도 어떤 의미에서는 과두정체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두 정체에서는 비록 그 이유는 달라도 소수자가 지배계층이다. 그래서 귀족정체는 과두정체의 일종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파쟁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특히 대중의 일부가 자신들도 지배계층 못지 않은 탁월함을 지니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 때다. (1306b22)


  ‘혼합 정체’와 귀족정체가 해체되는 것은 대개는 정체 자체가 정의에서 이탈하기 때문이다. ‘혼합 정체’가 해체되는 것은 민주정체의 요소와 과두정체의 요소를 적절히 혼합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며, 귀족정체가 해체되는 것은 이 두 가지 요소와 탁월함을, 특히 이 두가지 요소, 즉 민주정체와 과두정체를 적절히 혼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혼합 정체’와 대부분의 이른바 귀족정체가 혼합하려고 하는 것은 이 두 가지 요소이니 말이다. 귀족정체와 이른바 ‘혼합 정체’의 유일한 차이는 이 두 가지 요소를 혼합하는 방법에 있으며, 이것은 또 전자가 덜 안정되어 있고, 후자가 더 안정되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두정체 쪽으로 기우는 정체는 귀족정체라 불리고, 대중 쪽으로 기우는 정체는 ‘혼합 정체’라고 불린다. 그래서 ‘혼합 정체’가 귀족정체보다 더 안정되어 있는 것이다. 수가 많을수록 힘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1307A5)






제 6 권 민주정체와 과두정체는

어떻게 구성해야 가장 안정성이 있는가


        제2장 민주정체의 구성 방법 2


  민주정체의 토대는 자유다. 일반적인 견해에 따르면 자유는 민주정체에서만 누릴 수 있으며, 모든 민주정체가 추구하는 목표는 자유를 누리는 것이라고 한다. 자유의 한 가지 원칙은 모두가 번갈아가며 지배하고 지배받는다는 것이다. 민주정체의 정의는 가치에 따른 비례적 평등이 아니라 수에 따른 산술적 평등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정의라면, 필연적으로 다수가 최고 권력을 갖고, 다수가 결의한 것이 최종적인 것이며 정의로운 것이다. (1317a40)


  전형적인 민주정체와 민중은 모두가 수적으로 평등하다는, 민주정체의 특징으로 인정된 정의관에서 생겨난다. 평등이란, 이를테면 빈민이 부자보다 국정에 더 많이 참여하지 않는다거나, 빈민이 정권을 독점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그 수에 따라 평등하게 국정에 참여하는 것을 뜻하니 말이다. 그래야만 국가에 평등과 자유가 보장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1318a3)



        제3장 평등을 확보하는 방법들


  양측이 모두 동의하는 평등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양측이 제시하는 정의의 개념부터 검토해봐야 한다. 그런데 양측 모두 다수 시민의 결정이 최종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무조건 그래서는 안 된다. 국가는 부자와 빈민이라는 두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는 만큼, 양 집단 모두나 각 집단의 다수가 결정한 것은 최종 결정권을 가지게 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두 집단이 상반된 결정을 내릴 때는 다수자의 결정이, 다시 말해 평가 재산의 총액이 더 많은 집단의 결정이 최종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 (1318a27)



        제4장 최선의 민주정체


  이런 이유에서 앞서 말한 민주정체에서는 전 시민이 공직자를 선출하고 감사하고 법정의 배심원이 도지만 고위 공직자들은 재산 자격 요건에 근거하여 선출하거나―고위 공직일수록 더 높은 재산 자격 요건을 요구해야 한다―아니면 공직 취임에 재산 자격 요건이 필요하지 않을 경우 능력 있는 자들에게 공직을 배분하는 것이 유익하기도 하거니와 관행이기도 하다. (1318b27)



        제5장 민주정체는 어떻게 유지되는가


  입법자와 그런 정체를 수립하려고 하는 자들에게는 그런 정체를 수립하는 것보다는 그런 정체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또는 유일한 과제가 되어야 한다. (1319a33)


  극단적 민주정체에는 대개 인구가 많은데, 시민들은 수당을 지급받지 않으면 민회에 참석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은 세수가 넉넉하지 못할 경우 귀족에게 불리할 수 있다. 필요한 기금을 재산세와 재산 몰수와 불공정한 재판으로 충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관행으로 인해 지난날 수많은 민주정체가 전복되었다. (1320a17)


  진정한 민주정체 옹호자라면 대중이 너무 가난해지지 않도록 보살펴야 한다. 지나친 가난이 민주정체의 질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1320a29)



        제6장 과두정체의 구성


  가장 잘 혼합된 첫 번째 과두정체는 이른바 ‘혼합 정체’에 가깝다. 이 과두정체에서는 높고 낮은 두 가지 재산 자격 요건을 도입해야 하는데, 낮은 재산 자격 요건은 꼭 필요한 공직자를, 높은 재산 자격 요건은 고위 공직자를 충원하는 데 써야 한다. 재산 자격 요건을 취득한 자는 누구든지 국정 운영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1320b21)






제7권 이상국가와 교육의 원리


        제1장 국가와 개인의 행복


  우리는 먼저 어떤 삶이 말하자면 만인에게 가장 바람직한지 확인하고, 이어서 공동체와 개인에게 같은 삶이 가장 바람직한지 아닌지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1323a14)


  선은 외적인 선, 몸의 선, 혼의 선으로 삼분되며, 행복한 삶은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추어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1323a21)


  보다시피 탁월함은 외적인 선에 의해 획득되고 보존되지 않지만, 외적인 선은 탁월함에 의해 획득되고 보존되며 인간에게 행복한 삶이 쾌락에 있든 탁월함에 있든 이 양자 모두에 있든, 외적인 선은 필요 이상으로 갖고 있지만 성격과 이서에서는 부족한 데가 많은 사람들보다는 성격과 이성은 아주 잘 계발되어 있지만 외적인 선은 적당한 한도 내에서 가진 사람들이 더 행복하기 때문이다. (1323a34)


  외적인 선은 다른 도구가 다 그러하듯 한도가 있고, 유용한 것은 모두 어떤 목적에 유용하다. 그리고 외적인 선이 너무 많으면 그것을 가진 자에게 해롭거나, 적어도 전혀 이롭지 못하다. 그와는 달리 혼의 선은 무엇이나 많을수록 더 유용하다. 여기에도 ‘훌륭하다’는 표현뿐만 아니라 ‘유용하다’는 표현을 덧붙여야 한다면 말이다. (1323b6)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지는 행복의 양은 각자가 가진 탁월함과 지혜와 그에 다른 행위의 양에 비례한다는 데 동의해도 좋을 것이다. …… 행운은 필연적으로 행복과 다른 것이다. (1323b21)


  최선의 국가는 행복하고 잘나가는 국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훌륭한 행위를 하지 않고서는 잘나갈 수 없다. 그리고 개인이건 국가건 탁월함과 지혜 없이는 훌륭한 행위를 하 ft ndjqt다. 국가의 용기, 정의, 지혜, 절제는 개인이 용감하고, 정의롭고, 지혜롭고, 절제 있다고 불릴 때 분유하는 탁월함과 같은 효력, 같은 성격을 갖는다. (1323b21)


  지금으로서는 개인을 위해서나 국가를 위해서나 최선의 삶은 탁월함이 요구하는 행위에 참여할 수 있을 만큼 외적인 선을 충분히 갖춘 탁월함의 삶이라고 가정해두자. (1323b36)



        제2장 정치적 삶과 철학적 삶 1


  국가의 행복과 개인의 행복이 같은 것이냐 아니냐는 문제를 논의하는 일이 남았다. 대답은 명백하다. 두 가지가 같은 것이라는 데 다들 동의할 테니 말이다. (1324a5)


  여기서 검토해야 할 문제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다른 시민들과 연대하여 정치 활동에 참여하는 삶과 정치 공동체를 초탈하여 이방인처럼 사는 삶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가 하는 것이고, 둘째는 전 시민이 국정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든 아니면 다수자만이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든, 어떤 정체가 국가의 어떤 상태가 최선인가 하는 것이다. (1324a13)


  최선의 정체는 분명 누구나 가장 훌륭하게 행동할 수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제도여야 한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삶은 탁월함의 삶이라는 데 동의하는 자들도 정치적•실천적 삶이 바람직한가, 아니면 모든 외적인 사물을 초탈한 삶, 이를테면 철학자에게 어울리는 유일한 삶이라고들 하는 관조적인 삶이 더 바람직한가에 관해서는 의견을 달리한다. (1324a23)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인처럼 지배하는 것을 정치로 혼동하고 있는 듯하며, 자신에게는 옳지도 유익하지도 않다고 여기는 것을 남들에는 거리낌 없이 행한다. (1324b22)


  어떤 국가가 잘 다스려질 경우 혼자서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1324b41)


  훌륭한 입법자가 할 일은 국가나 민족이나 공동체가 어떻게 훌륭한 삶과 그들에게 가능한 행복에 참여할 수 있는지 고찰하는 것이다. (1325a7)



        제3장 정치적 삶과 철학적 삶 2


  활동보다 활동하지 않는 것을 더 높이 평가하는 것은 잘못이다. 행복은 활동이고, 게다가 정의롭고 절제 있는 사람들의 활동은 훌륭한 일을 많이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1325a31)


  서로 대등한 자들끼리는 공직을 번갈아 맡는 것이 바람직하고 옳다. 그것이 동등이고 평등이기 때문이다. 동등한 자들에게 동등하지 않은 것이 주어지고, 평등한 자들에게 평등하지 않는 것이 주어지는 것은 자연에 배치되며, 자연에 배치되는 것은 무엇이든 아름답지 못하다. 따라서 누군가 탁월함과, 최선의 행위를 실현할 능력에서 걸출하다면, 그를 따르는 것은 바람직하고 그에게 복종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그는 탁월함뿐만 아니라 행동할 능력도 있어야 한다. (1325b7)


  우리의 이런 주장이 옳다면, 그리고 행복이란 잘나가는 것이라고 규정해야 한다면, 국가 전체를 위해서난 개인을 위해서나 활동적인 삶이 최선의 삶일 것이다. 그러나 활동적인 삶이라고 해서 몇몇 사람들이 생각하듯 곡 타인과의 관계를 포함하는 삶일 필요는 없다. 또한 행위에서 결과를 얻기 위한 우리의 생각만이 활동적인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전하고 그 자체가 목적인 관조와 사색이 더 활동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 사색의 목적은 훌륭한 행위이며,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활동(praxis)이기 때문이다. (1325b7)



        제4장 이상 국가의 규모


  최선의 정체는 적절한 물질적 토대 없이는 생겨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원하는 대로 상정하되, 불가능한 것을 상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전제에는 시민의 수와 영토가 포함된다. (1325b23)


  국가를 만드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의 수와 질이고, 그 다음이 영토의 크기와 생김새다. (1326a5)


  경험이 말해주는 또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인구가 너무 많은 국가는 잘 다스려지기가 불가능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어렵다는 것이다. …… 법(nomos)은 질서(taxis)이며, 좋은 법은 따라서 좋은 질서여야 하는데, 너무나 많은 다수는 질서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1326a25)


  법정에서 재판하고 공적에 따라 공직을 배분하려면 시민드른 서로의 탁월함을 잘 알아야 한다. (1326b11)


  한 국ㄱ가의 최적 인구수는 자급자족적인 삶을 가능하게 해주되 전체를 쉽게 개관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 다수임이 분명하다. (1326b22)



        제5장 이상 국가의 영토

  

  영토의 질에 관해 말하자면, 누구나 다 최대한 자급자족을 가능하게 해주는 영토를 선호할 것이다. 모든 것을 다 갖고 있고 아무것도 부족한 점이 없는 것이 자급자족이기 때문에 그런 영토는 반드시 온갖 곡물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1326b26)


  범위와 크기에 관해 말하자면, 영토는 주민들이 절제를 지키며 자유롭게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을 만큼 커야 한다. (1326b30)




  




 

Richard J. Arneson, “The Principle of Fairness and Free-Rider Problem,” Ethics, Vol. 92, No. 4 (July, 1982).



H. L. A. Hart: 상호 규제의 원칙(a principle of mutual restriction) - 수많은 사람들이 규칙에 따라 공동의 기획을 수행할 때, 따라서 자신들의 자유를 규제할 때, 필요한 경우 이 규제에 submit 해온 사람들은 자신들의 submission으로 이익(benefits)을 얻은 사람들로부터 유사한 submission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Are There Any Natural Rights?” (1955), p. 185). (p. 616)

John Rawls: 공정성 원칙(the principle of fairness) - 수많은 사람들이 규칙에 따라 정의롭고 상호 이익이 되는 협력적 기획에 참여할 때 따라서 모두를 위한 이익을 산출하는 데 필요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자유를 규제할 때, 이런 규제에 submitted 해온 사람들은 자신들의 submission으로 이익을 얻은 사람들 편에 유사한 묵종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A Theory of Justice, pp. 108-114). (p. 616)

⇔ Robert Nozick의 비판: “공정성 원칙은 반대할 만하고 받아들일 수 없다”(Anarchy, State, and Utopia, p. 93). (p. 616)

⇒ Arneson의 주장: Nozick의 비판은 공정성 원칙의 포기라기보다는 수정하게 만든다.




I

공정성 원칙에 대한 주요 반론: 공정성 원칙은

i) 협력의 이익보다 비용이 클 때에도 협력을 해야 하게 만든다.

ii) 이익이 불평등하게 분배된 개인에게 동등한 기여를 하도록 만든다.

iii) 특정 scheme에 반대하는 이유가 있는 사람에게도 협력의 의무를 지운다.

iv) 어떤 사람에게 이익을 주었다는 사실 만으로 강제할 권리를 허용하게 된다. (p. 617)

i)~iii)은 공정성 원칙의 핵심을 공격하는 것 같지 않다. 반면 iv)는 공정성 원칙의 조건 만족이 어떤 사람에게 의무를 지울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iv)를 중심으로 논의한다. (p. 618)


공공선 (공공재?) (public goods)의 특징 세 가지: 상호 규제 개념이 적용되는 benefits

i) jointness: 한 사람이 the good을 소비해도 다른 사람에게 여전히 available하다.

ii) 배제 불가능성(nonexcludability): 어느 누가 the good을 소비해도 다른 사람이 the good을 소비하지 못하게 하지 못한다.

iii) 동등한 양 소비: 그 집단의 모든 구성원들이 동일한 양을 소비해야 한다.

집합적 선 (집합재?) (a collective good): 배제 불가능성

순수 공공 선 (공공재?) (pure public good): 동등한 양 소비 (pp. 618-619)

⇒ 순순 공공재: 순수 공공재가 일단 한 집단에 공급되면 개인이 자발적으로 받아들이거나 향유할 수 없다. 개인은 자발적으로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없다. (국방의 경우 개인이 피할 수 없다.) (p. 619)

공정성 원칙에 대한 Hart와 Rawls의 형식화는 한 사람이 자발적으로 benefits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면서 협력적 기획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를 결정하지 못한다. 롤즈는 이익을 얻는 것을 자발적으로 이익을 얻는 것이라 말하지만, 그는 “의무(obligation)”이라는 용어를 도덕적 요구사항만을 가리키는 데 제한하고 있다. (p. 619) political obligation에 적용되는지 고찰해야 한다.


자발적 이익 수용과 의무 발생 사이의 연관을 보여주는 예들

i) 배제가 가능한 예: 선물 주는 연합체(association) - 배제가능성(excludability)가 문제된다. 즉, 이런 상황에서 구성원들은 비기여자(noncontributor)를 이익으로부터 배제할 자유가 있다.

ii) 배제 불가능하지만 자발적 수용이 의무를 발생시키지 못하는 예: collective good - 비행기로 하늘에 글씨를 써서 주민을 즐겁게 하는 예. (맨큐의 불꽃놀이 예와 유사) 잘못된 정보를 받았거나 불공정하게 공급되는 경우 (p. 620)

⇒ 배제 불가능한 경우, scheme이 비용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경우, 부담의 분배가 공정한 경우, good이 pure public good이 아닌 경우, 이익의 자발적 수용은 의무 발생에 충분하다. (p. 620)


⇒⇒⇒ Arneson의 결론:

i) 순수 공공재(pure public goods)의 경우: 이익의 자발적 수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공정성 원칙에 따른 이익 발생이 불필요하다. “Mere receipt of benefits may suffice to obligate.”

ii) 집합재(collective goods)의 경우: scheme이 공정하고 지각없는(ill-advised) 것이 아니라는 조건 하에, 이익의 자발적 수용은 의무 발생에 충분하다.(pp. 620-621)

∴ 이로부터 Nozick의 반대, 즉, 누군가에게 이익을 주었다는 것이 그에게 의무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는 반대에 대답된다.


Arneson은 순수한 공공재(pure public good)의 경우 자발적 수용 및 거부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으로부터 의무가 발생한다는 주장을 끌어내는 것 같다. 집합재(collective good)의 경우, 배제 불가능성, 비용보다 이익이 큼, 부담의 공정성이 충족될 때 자발적 수용이 의무를 발생시킨다고 주장한다.


무임승차자(free-rider)의 추론: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협력하거나 협력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경우든 나는 기여하지 않을 때 더 나은 상황에 있게 된다. 이에 따라 협력하지 않게 되면 무임승차자로 간주된다. (p. 622)

무임승차자와 구별되는 두 유형의 협력자

i) 불안한 협력자(nervous cooperator) -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협력한다면 자신도 협력하길 원하는 사람. 자신의 협력과 상관없이 타인들이 협력하지 않아 scheme이 붕괴되지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협력을 거부한다.

ii) 꺼리는 협력자(reluctant cooperator) - 거의 모든 다른 사람들이 협력한다면 자신도 협력하길 원하는 사람.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정하게 협력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함. 자신이 타인에게 이용당할까봐 걱정해서 협력을 거부함.

⇒ 이 두 협력자가 무임승차자와 구별되는 점은, 무임승차자는 협력하지 않고 이익만 챙기려 하지만, 이 두 협력자는 협력할 의도는 있음. (pp. 622-623)


Arneson의 수정된 공정성 원칙:

i) 이익 > 비용: 각 수혜자가 비용을 지불할 만한 집합적 이익을 제공하는 협력 체계가 확립되는 곳에서

ii) 공정한 부담: 협력의 부담이 공정하게 분배되는 곳에서

iii) 사적 이익 배제: 추가적인 사적 이익을 통한 자발적 복종 유인이 불가능한 곳에서

iv) public goods: 집합적 이익이 자발적으로 수용되거나 또는 자발적 수용이 불가능한 곳에서

⇒ 자신에게 공정하게 할당된 비용을 치루는 사람들은 나머지 수혜자들에 대해 그들의 공정한 몫을 지불하도록 요구할 권리를 갖는다. (p. 623)




II


사적 소유권(private ownership)을 강제할 권리와 협력을 강제할 권리의 비교 예

- Smith: 울타리를 치고 자신의 땅이라 주장. 땅에 대한 배타적 권리 주장하며 땅을 침범하지 타인들에게 강요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함.

- 집단: 이웃들이 집단을 만들어 경찰 순찰을 하겠다 함. 이러한 scheme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고 주장하며, 이 scheme을 보장하기 위해 강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함. 동의하지 않았는데 비용을 공유하도록 강제되었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은 Smith가 땅을 사적 소유하는 것에 실제로 동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런 땅의 전유에 필요한 강제에도 동의하지 않았음을 지적함. (p. 624)

⇒ 사적 소유권을 지지하는 강제는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만하지만, 상호 이익의 권리를 지지하는 강제는 받아들일 만하지 않음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 (pp. 624-625)

⇒ 소유권 보호를 위한 강제는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사적 소유권이 상호 이익보다 더 우선적이라고 주장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사실상 소유권의 정당화 자체도 문제가 되는데, 소유권 보호는 일정한 제도 내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 제 3의 인물 Jones의 의무:

ⓐ Smith의 사적 소유화된 땅을 침범하지 않을 의무

ⓑ 협력 체계의 비용에 기여할 의무

⇒ ⓐ와 ⓑ의 차이는? ⓐ는 소극적(부정적), ⓑ는 적극적? 의심스러운 설명. ⓐ 의무를 수행하는 불편(inconvenience)이 ⓑ 의무를 수행하는 불편과 동일하다면? 따라서 받아들일 수 있는 강제와 받아들일 수 없는 강제 사이에 Nozick이 요구하는 기준선을 그을 수 없다. (p. 625)

→ Smith가 한 뙈기의 땅을 자신의 소유로 주장할 때 Smith는 암묵적으로 Jones에게 비슷한 뙈기의 땅을 주장할 권리를 인정한다. 마찬가지로 상호 이이 체계의 집단이 협력 체계를 만들어 수혜자들에게 기여할 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할 때에는 Jones에게 다른 사람들과 집단을 결성할 권리를 부여한다. 이 두 경우 중 어떤 경우에도, 타인들에게 인정하길 꺼리는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두 경우 모두 권리의 첫 번째 주장자의 행위는 나중의 유사한 행위의 가능성을 선취하는 것이다. (p. 625)


자기 이익 원칙(self-benefit principle)

i) Lockean style의 소유권 선택을 정당화 (자유 사용 체계, 반소유권 등에 대해), 즉, Locke의 소유권 규칙 뒤에 숨은 규칙

ii) 의미: 도덕 규칙들이 준수된다면, 자신의 행위의 이익을 부여하거나 교환하길 스스로가 선택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각자의 행위들은 오직 자신에게만 이익을 주거나 해를 준다.

iii) 제한: 엄격한 요구사항이라기보다는 완전성에 대한 권고. 왜냐하면, 한 사람이 땅을 사적 소유로 전유하는 행위는, ⓐ 그 땅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던 사람들에게, 그리고 ⓑ 그 땅을 전유할 수 있었던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치기 때문에. 다라서 Lockean 사적 소유는 대략 자기 이익 원칙을 만족시키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자기 이익 원칙이 Lockean 사적 소유 원칙을 정당화하는 한, 그것은 동일하게 수정된 공정성 원칙을 정당화한다. how?

i) 협력 체계는 비협력자에게 싫든 좋든 이익을 부여하게 되는 경우, 이익을 얻는 비협력자의 수가 많아질수록 이익의 비자발적 부여는 더 커진다. 이것은 자기 이익 원칙 위반한다.

ii) 이익의 비자발적 양도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에 대한 반론

아무도 협력자들이 scheme을 만들어 집합적 이익을 모두에게 부여하도록 강요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자유 사용 체계에서 Smith에게도 동일하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아무도 Smith가 다른 사람들이 자유롭게 수확을 거두고 마음대로 짓밟을 작물을 재배하도록 강요하지 않았다. 자유 사용 하에서 Smith는 작물 재배를 하거나 하지 않을 수 있지만 작물을 재배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그의 노동 이익으로부터 재배할 선택권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협력 체계를 만들 수도 있고, 만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집합재의 본성으로 인해 협력자들에게만 이익을 주겠다고 마음대로 제한할 수 없다.

iii) 수정된 공정성 원칙을 채택하면 이런 상황을 어느 정도 교정할 수 있다. 이 원칙이 채택되어 강제된다면, 타인에게 그들의 의지에 반해 이익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원칙은 무임 승차자에 대한 강제를 정당화한다. 무임승차자는 사실 Smith의 작물을 마음대로 짓밟는 사람이나 같다. (pp. 626-627)

위에서 Smith가 타인이 마음대로 할 권리가 없다고 하는 것과 협력 체계가 비자발적 이익 수혜자에게 이익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 수정된 공정성 원칙에 의해 교정되는가? 그런 것 같지 않다. 위의 두 가지 사례 비교는 맞는 것 같지만, 수정된 공정성 원칙을 채택한다 해도 여전히 타인의 의지에 반하여 이익을 제공하는 것은 여전히 사실이기 때문이다. 협력 체계로에 들어가고자 하지 않는 사람은? 즉, Arneson의 논변은 Nozick의 반론을 효과적으로 반박하기는 하나, 그렇다고, 정치적 의무의 발생을 설명하는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의지에 반해 이익을 주는 것은 공정성 원칙 자체에 반대되기 때문이다. forced to voluntarily accept?의 전략을 취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iv) Lockean 소유권 규칙은 타인의 수고로 인한 결실을 공짜로 얻으려는 욕구를 좌절시키고 자신의 노동의 결실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수정된 공정성 원칙은 타인의 수고에 의한 이익을 얻고자 하는 욕구를 좌절시키는 것이 정당하다는 도덕적 확신을 담고 있다. (p. 628)

개인들이 good을 소비하는 것이 타인들에게 해를 주지 않는다면 왜 그런 소비를 규제해야 하는가?

대답: 타인의 수고에 의한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p. 628)


요약적 결론: Nozick이 공정성 원칙의 강제 집행에 반대한 것은 그대로 사적 소유권의 강제 집행에 대한 반대에 적용된다. 당신이 나의 자유를 제한하여 내가 한 뙈기의 땅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신의 전유가 나에게 간접적으로 이익을 준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운다면, 나는 나의 자유의 규제를 수반하는 그런 이익을 요구하지도 그에 동의하지도 않았다고 대답할 수 있다. (p. 629)




III

착한 사마리아인 의무와 보다 형편 좋은 사람의 의무는 자기이익 원칙에 불일치한다는 반론

(착한 사라리아인(Good Samaritan) obligation): 약간의 노력과 위험으로 타인을 위협하는 커다란 악을 피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무(p. 629))


대답: 수정된 자기이익의 원칙 - 도덕 규칙들에 복종한다면, 각자의 행위는 ⓐ 그 행위의 이익을 부여하거나 교환할 것을 선택한 경우, 또는 ⓑ그가 엄격한 자선의 의무 수행에서 행위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신에게만 이익을 주거나 해를 끼친다.

⇒ 능력 없는 사람들의 권리가 능력 있는 사람들의 의무에 대응한다. 따라서 타인의 수고로 인한 이익을 탐하는 사람들을 비난할 수 없게 된다.

자선의 의무가 제한된다면(극도로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면) 자유주의적 자기 이익의 원칙은 Lockean 규칙이 완화되지만 녹아 사라지지 않는 타협점을 찾게 된다. 그리고 자선의 요구에 약간의 수정을 가하면 이 타협점은 공정성 원칙을 지지하게 된다.

i) 방법 첫 번째: 자선의 요구가 문제되지 않는 상황에 공정성 원칙 적용하는 방법

ii) 부담과 이익의 공정한 분배가 자선의 요구를 포함하게 하는 방법 (pp. 630-631)


Hart와 Rawls: 상호 규제의 상황에서 규칙에 복종할 도덕적 의무는 협력 구성원들에게 지고 있는 것이고, 그들은 상관적인 복종시킬 도덕적 권리를 갖는다.

⇒ 공정성 원칙은 우리가 협력을 식별할 수 있는 상황에서만, 그리고 의무를 지고 있는 수혜자들이 mere receipt가 아니라 이익을 수용해야(accept) 하는 경우에만 적용됨을 의미한다.

⇔ Miller and Sartorius: 공정성 원칙 적용을 위해서는 자발적 수용이 요구된다. 자유롭게 선택되지 않은 이익을 강제로 부여하거나 강제로 참여시켜 의무를 떠맡긴다면, 그 원칙은 수용될 수 없다.

Simmons의 이익 수용(acceptance of benefits)의 의미: ⑴얻으려고 애쓰거나, ⑵이익을 willingly and knowingly 취하거나 하는 것.

대답: 순수한 공공재의 경우 모두가 얻으려 애쓰므로 문제될 게 없고, 결국 ⑵를 다루어야 한다.

Simmons가 말하는, 이익을 willingly and knowingly 취하는 것이란?

⑴ 우리의 의지에 반해서 우리에게 강요된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⑵ 이익이 대가보다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수 없다.

⑶ 이익을 knowingly 취하는 것은 이익을 제공하는 당사자에 상대적인 이익의 지위를 이해하는 것을 포함한다.

따라서, 이런 엄격한 주관적 요구사하을 이용해 공정성 원칙 하에 의무가 발생하는 일이 대단히 드묾을 보이는 것은 대단히 쉽다. (pp. 631-632)


Arneson의 반론: 위의 조건 세 가지는 너무 엄격하다. 개인들은 이익을 얻는 자신의 상황에 도덕적으로 적합한 사실을 알 의무가 있다. 누군가의 무지가 변명 거리가 된다면, 협력의 이익에 대한 bill이 제시되는 시점에 사실에 대한 기술을 들을 권한이 있다. 그가 사실과 대단히 불일치하는 믿음을 갖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태만과 비난할 만한 무지라면, 그의 의무는 성립한다. (p. 632)

Simmons는 공정성 원칙이 의무를 발생시키기 전에 협력 정신이 상호 이익 체계에 퍼져야 한다고 잘못 가정하고 있다. 자신들의 참여가 요구되는 기획의 협력적 본성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협력 정신은 채울 수 없다. Hart가 의무는 협력하는 구성원들에게 의무가 있다고 말할 때의 요점은 체계의 지속적 성격을 지적하는 것이다. 즉, 체계의 지속적 성격에 의해 규칙 준수 및 이익 제공 행동은 지속적으로 타인에게 상호 의무를 발생시킨다. 협력 하에서 개인은 스스로를 배제시킬 방법이 없는 집합적 이익을 공유한다. 이 이익이 논쟁의 여지없이 모두를 위한 이익이라면, 그 비용 분배가 공정하다면, 지속적인 체계의 개별 수혜자는 자신의 몫을 지불할 것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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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정선 목민심서』 ,  다산연구회


 

『정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세금 징수는 흔들리지 않아야 하니 이는 세금을 징수하면서도 어루만지고 돌보는 것이며, 형벌은 착오가 없어야 하니 이는 형벌하면서도 교화하는 것이다. 봄에 궁한 백성 구제는 마치 자식처럼 하고, 가을에 거두어들이기는 마치 원수처럼 해야 한다. 한 이익을 일으키는 것은 한 폐해를 제거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한 일을 만드는 것은 한 일을 감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위엄은 청렴함에서 생기고 정사는 부지런함에서 이루어진다.” p. 106


아전의 횡포

  “넉넉한 백성의 기름진 토지는 모두 아전의 전대 속으로 들어가고, 조운선에 세곡을 실어 보내는 것은 해마다 기한을 어겨, 체포되어 문초당하고 파면되어 갈리는 수령이 줄줄이 뒤를 잇고 있으나 아직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 애석한 일이다.” p. 107

  “마땅히 호조에 납부해야 할 것이 4천석이라면 자기 고을에서 백성으로부터 징수한 것은 1만 석도 훨씬 넘는다. 아침에 명령을 내려 저녁에 거둬들일 수 있는 넉넉한 집의 윤기 있는 입쌀은 아전이 모두 횡령한다. 토지대장에 등록하지 않은 은결로 거두고, 혹은 궁결이라 하여 수세장부에서 빼버리고, 혹은 저가로 거두고, 혹은 거짓 재결로 수세장부에서 빼버리고, 혹은 돈으로 받고, 혹은 쌀로 받는다. 이미 초가을부터 구름이 몰려가듯이 냇물이 흘러가듯이 끝내버려 속여 훔쳐 먹은 액수는 모두 아전의 전대 속으로 들어간다.” p. 107

  “늘 보면 조사관이나 검시관이 미리 몰래 조사시키지도 않고 데리고 간 아전을 시켜 은밀히 여론을 묻지만, 아전이 뇌물을 받고 청탁을 받아 중간에서 농간을 부리는 경우는 첫 번째 조사나 검시에서는 잘못 판결하지 않았는데, 두 번째 조사나 검시에서 이유 없이 판결이 뒤엎어지고 옥사의 진상이 의심스러워지며 억울하게 걸린 자가 벗어날 수 없게 된다.” p. 113.

  “섬사람들은 본래 호소할 길이 없는 사람들인데, 조사하는 일에 따라간 아전들이 조사관의 접대를 빙자해 침탈을 마음대로 해 솥과 항아리까지도 남기지 않는다. …… 그러므로 표류선을 조사하는 관리들은 마땅히 눈을 밝게 뜨고 엄하게 살펴서 아전들의 침학을 금지시켜야 한다.” p. 115.


아전 단속

-  백성은 토지를 논밭으로 삼지만, 아전들은 백성을 논밭으로 삼는다. 백성의 껍질을 벗기고 골수를 긁어내는 것을 농사짓는 일로 여기고, 머릿수를 모으고 마구 거두어들이는 것을 수확으로 삼는다. 이것이 습성이 되어 당연한 짓으로 여기게 되었으니, 아전을 단속하지 않고서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자는 없다. p. 141.

-  최숙생이 ‘다른 고을의 수령이 비록 교활하다고 하나 다만 한 사람의 도적일 뿐이라 qro성들이 오히려 견딜 수 있지만, 청양현감은 비록 청렴하도 여섯 도적(6방의 아전)이 아래에 있으니 백성들이 견딜 수 없었다’고 대답하였다.

  비록 학문이 깊고 넓다 하더라도 아전을 단속할 줄 모르는 자는 백성의 수령이 될 수 없다. p. 145.

- 이노익이 전라감사가 되었는데, 감영의 아전 최치봉이란 자가 간사하고 교활하며 악독한 아전 무리의 괴수였다. …… 그들 모두가 최치봉과 결탁하여 그를 우두머리로 삼고 지냈다. 최치봉이 해마다 수십만 냥의 돈을 각 읍의 교활한 아전들에게 나눠주어 창고의 곡식을 교묘하게 빼돌려 돈으로 바꾸어 고리대의 밑천을 삼으니, 만민에게 해가 돌아갔다. 감사가 아전과 군교들을 보내어 각 읍 수령의 잘잘못을 탐문하게 하면 반드시 먼저 최치봉의 지시를 받아 나가고, 돌아와서도 탐문해 적어온 보고서를 반드시 먼저 최치봉에게 보이니, 청렴 근실하여 법을 지키는 수령은 중상하고, 탐학 비루하며 불법한 수령과 간악한 향임과 교활한 아전으로 보고서 속에 기록된 자들은 최치봉이 모두 빼내주고, 그 기록된 글을 본인에게 보내어 자기의 위덕을 세우니 온 도가 눈을 흘겨온 지 오래되었다. p. 146.

- 무릇 한 가지 명령과 한 가지 지시서를 내릴 때라도 마땅히 수리(首吏)와 해당 아전에게 그 일의 근본을 캐어보고 지엽을 밝혀내어 밑바닥까지 궁구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난 뒤에 결재를 한다면, 수십일이 지나지 않아 사무에 밝아져 모르는 것이 없게 된다. p. 150.

- 조선왕조 초기에는 아전의 횡포가 심하지 않았는데, 임진왜란 이후부터 사대부의 녹봉이 박하여 집이 가난해지고, …… 이에 따라 탐학하는 풍조가 점차 커지고 아전들또한 날로 타락하여 오늘날에는 그 정도가 극심한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민간에 있으면서 그 폐단의 근원을 탐구해보니, 조정의 권귀들이 뇌물을 받고, 감사가 축재하며 수영이 이익을 나누기 때문이다. pp. 150-151.


관솔의 구성: 아전, 군교, 노비

        관노: 시중드는 노비, 물자 구입하는 노비, 물품 제작하는 노비, 말 키우고 일         산 드는 노비, 방을 덥히고 뒷간 치우는 노비. 보수받는 관노는 푸줏간과 주방의         노비, 그리고 창고지기

        관비: 기생과 비자(수급비) (pp. 153-154)


수령을 보좌하는 직책

향소: 좌수 - 향청의 우두머리, 이방과 병방의 사무를 관장

      별감 - 좌별감은 호방과 예방의 사무를 관장, 우별감은 형방과 공방의 사무를 관장         (pp. 156-157)


- 아전들의 간사하고 교활함이 저절로 행사되지 못하게 되고, 힘있는 백성의 횡포가 저절로 자행되지 못하게 되면, 드러나지 않ㅇ는 하찮은 잘못은 그냥 덮어두어 만물이 푸근히 안락하도록 하는 게 옳다. 그래도 여전히 아전과 향청직원, 군교들이 몰래 수령의 동정을 엿보고 이를 빙자해 멋대로 농간질하는것을 염려해야 하고, 관의 노비와 병졸들이 몰래 민간에 나가 토색질하고 행패부리는 것을 살펴야 하며, 또 불효불공하고 장터에서 횡탈을 일삼는 자를 금해야 하며, 향촌에서 무단행위를 하는 자와 강한 힘을 믿고 약한 이를 업신여기는 자를 통제해야 하니 별도로 염탐하고 조사하는 일이 없을 수 없다. pp. 163-164.

- 우두머리 아전인 이방의 시루건이 무거워 수령의 총명을 가려 실정이 위로 보고되지 않으니, 별도의 염문을 그만둘 수가 없다. p. 169.


수령의 신뢰 쌓기

  평소에는 큰 해가 없다 하더라도 만약 나라에 외환이 있을 경우에 믿음이 아랫사람들에게 서 있지 않으면 장차 어찌할 것인가? 명령의 시행을 충실히 하여 백성들의 시노리를 얻는것이 수령의 급선무이다. p. 173.


전분6등법과 연분9등법의 모순: pp. 180-181.


세금 걷기

-  세미를 거두는 마감에 아전과 군교를 풀어 민가를 수색하여 긁어내는 것을 검독이라 한다. 검독은 가난한 백성들에게는 승냥이나 범과 같은 것이다. p. 185

-  환곡은 사창(社倉)이 변한 것으로, 춘궁기에 곡식을 빌려줬다가 추수기에 거둬들이는 조적(糶糴)도 아니면서 백성의 뼈를 깎는 병폐가 되었으니 백성이 죽고 나라가 망하는 일이 바로 눈앞에 닥쳤다. p. 186.

-『주례』에 대체로 곡식을 봄에 나눠주고 가을에 거두었다고 하였으니, 일찍이 환곡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나라와 위나라의 제도에서는 창고에 비축하는 것이 대부분 조적에 속하는 것으로, 혹 풍년에 곡식을 구입하여 저장했다가 흉년에 판매함으로써 곡식 가격을 안정시키는 상평(常平: 상시평준)으 l법을 쓰고, 혹 조세 대신 특산물을 내게 하여 다른 지방에서는 균수(均輸)의 법을 썼으니 모두 환곡의 자취는 없다. 수나라의 장손평이 홍수나 가뭄에 대비하여 곡식을 저장하는 의창(義倉)의 법을 만들었고, 주자가 그것을 다듬어서 시행하며 이름을 사창(社倉)이라고 하였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환곡을 사창의 유법(遺法)이라고 하지만, 사창은 곡식을 저장하고 나눠주는 일을 모두 마을 사람들이 직접 하고 관리는 관여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백성을 위하는 참된 마음이며 오늘의 환곡의 법과는 하늘과 땅 차이가 있다.

  오늘날 환곡의 폐단을 논하는 사대부들은 기껏해야 “가을에 정미한 쌀을 말에 넘치게 받고, 봄에는 거친 쌀을 나눠주되 말에 부족하게 하니 백성에게는 몹시 억울한 일이다”라고 a할 뿐이다. pp. 186-187.

- 감사가 여러 고을에 물가를 보고하도록 명령을 내리고, 곡가의 높고 낮음을 상세히 알고서 장사치 노릇을 한다. …… 감사의 녹봉이 본래 박하지 않은데도 장사치 노릇을 하여 백성의 기름을 짜내고 나라의 명맥을 상하게 하니 딴 일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p. 187.

- 수령이 농간질하여 남긴 이익을 훔치니 아전의 농간질은 말할 것도 없다.

- 영리(營吏)의 농간은 그 구멍이 더욱 크다. 늘 보면 창고를 열어 보리 환곡을 나눠주거나 가을에 환곡을 나눠주는 날마다 여러 읍의 아전들이 돈 수백 냥을 가지고 감영에 가 아주 싼 값으로 환곡을 사들이고, 시골집에 저장해두었다가 외촌에서 바쳐야 할 대를 기다려 환곡을 팔아 먹는데, 때로는 그것이 4,500석에 이른다. 해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는데, 이는 곧 감사가 마땅히 살펴야할 일이지 수령의 죄는 아니다. 은결(隱結)이 매년 늘어나는 것은 영리가 팔아먹은 것이다.. p. 194.

- 양식이 떨어진 양반이 재해를 당했다고 거짓말하거나, 도랑을 파거나 제방을 쌓는다고 거짓말하여 사사로이 창고의 곡식을 구걸하여 별도로 수십 석을 받았다가 세월이 오래되어도 납부하지 않고 또다른 구실로 더욱 많이 받아낸다. 큰 기근이 들거나 나라에 큰 경사가 있어서 구환을 탕감해주는 경우 수령은 사사로운 정으로 이 양반이 빌린 것을 탕감해 준다. pp. 196-197.


- 수십년 이래 수령 된 자가 전혀 일을 돌보지 않아 아전의 횡포와 농간이 끝간 데를 모르게 되었는데, 호적은 그중에서도 가장 심하다. …… 호적을 다시 작성하는 해마다 적리(籍吏)가 공문을 띄워 10호를 증가시키겠다고 위협한다. …… 그 호민은 그중의 20냥은 몰래 제 주머니에 넣고, 80냥은 적리에게 뇌물로 주어 그 일을 그만두게 한다. …… 그래서 마침내 5호를 줄여서 다른 다섯 마을에 한 가구씩 할당한다. 다섯 마을은 각기 크게 놀라, “동네가 망했구나. 예로부터 우리 동네는 세 가구가 서로 의지하여 한 가구의 역을 부담해왔어도 피가 마를 지경이었는데, 여기에 1호가 더 늘어난다면 누가 감당하겠는가?”한다. 이렇게 되니 부촌에서는 돈 1,200냥을 바치고, 그 다음 촌에서는 7, 80냥을 바치며, 차례로 내려가 비록 3호가 있는 마을일지라도 7, 8냥을 바치지 않는 곳이 없다. …… 나라 안의 모든 고을이 이방을 제일 좋은 자리로 여기지만, 식년이 되면 호적을 처리하는 아전을 제일로 치니, 호적을 처리하는 아전은 큰 고을에는 넉넉히 1만 냥을 먹고, 작은 고을이라도 3천 냥을 넘게 먹는다. p. 199.

- 부역을 공평히 하는 것은 ‘수령이 해야 할 일곱 가지 일’ 가운데 긴요한 일이다. 무릇 공평하지 못한 부역은 징수해서는 안되니, 저울 한 눈금만큼이라도 공평하지 않으면 정치라 할 수 없다.

  옛날에 전세는 9분의 1을 거두었고 부(賦)는 호산에 근거하였다. 전세는 토지에서 나오고 부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으로, 두 가지가 서로 뒤섞이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본래 전세가 가벼웠는데 중세 이래 토지에서 부를 징수하여 드디어 관례가 되고 말았다. 대동, 균역, 삼수미, 수령이 사용하는 치계미 등도 토지에 부과하는 것이고, 이것들은 조정에서도 알고 있다. …… 수령이 깨끗하지 않으니 아전도 따라 움직여 각종 비용을 토지에 부과한다. …… 그래서 농사짓는 사람들이 날로 곤궁해져서 쓰러지고 진구렁을 메울 지경이 되었다. pp. 199-200.

- 농사는 식생활의 근본이고 양잠은 의생활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백성들에게 뽕나무 심기를 권장하는 것은 수령의 중요한 임무이다. p/ 205.

- 백성을 다스리는 직분은 백성을 가르치는 일일 따름이다. 전산(田産)을 고르게 하는 것도 장차 백성을 가르치기 위함이요, 부세와 요역을 고르게 하는 것도 장차 백성을 가르치기 위함이요, 고을을 설치하고 수령을 두는 것도 장차 백성을 가르치기 위함이요, 형벌을 밝히고 법귤를 갖추는 것도 장차 백성을 가르치기 위해서이다. p. 215.

- 우리나라의 군현의 향교에도 역시 훈도(訓導)가 있었는데 조선 중기 이후로 이 관직마저 없어졌다. p. 221.

- 먼 변방에는 벼슬을 한 사람이 있는 가문인 사족은 드물고 벼슬을 한 사람이 없지만 부유하거나 위세가 큰 가문인 토족이 많다. 사족은 향교에 왕래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기 때문에 토족이 향교를 독차지하여 그들의 소굴로 삼았다. 이들 토족 무리는 대부분 배운 것 없는 무식쟁이들로, …… 간사한 아전과 결탁해서 감사에게 허튼 소문을 알리며, 수령이 총애하는 기생을 통해 수령에게 뇌물을 바치며, 항상 아전과는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어 너나들이하면서 교제하며, 늘 술집에서 만나서 아침저녁으로 싸움질만 한다. p. 222.


- 족(族)에는 귀천이 있으니 마땅히 그 등급을 구별해야 하고, 세력에는 강약이 있으니 마땅히 그 형편을 살펴야 한다. p. 224.


- 과거공부는 사람의 마음씨를 흐트러뜨리는 것이지만, 관리를 선발하는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그 공부를 권하지 않을 수 없다.

  수령이 해야 할 일 일곱 가지 가운데 세 번째가 ‘학교가 일어난다’인데, 속된 관리는 ‘학교가 일어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과거공부를 권하는 것으로 학문을 진작하는 일을 대체하고 있다. p. 226.

- 총명하고 기억력이 좋은 어린이는 따로 가려 뽑아서 가르쳐야 한다.


- 병역 의무자를 군안에 올려 군포를 거두는 법은 폐단이 크고 넓어 백성들의 뼈를 갂는 병이 되었다. 이 법을 고치지 않으면 백성들이 모두 죽어갈 것이다.

  조성왕조 초기에는 호포(戶布)는 있었지만 군포라는 것은 없었다. 중종 대 대사헌 양연이 군적수포법을 제안해 시행하였지만, 군적수포법은 가구(戶) 단위로 부과하는 공포(貢布)라 부르고 군적에 오른 개인에 부과하는 번호(番布)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이율곡이 “군졸이 공포를 상납하는 부담을 줄이려면 공포를 전결에 배정하는 쪽으로 바꿔야 한다”라고 상소하여 군적의 개혁을 청하였으니, 이것으로 알만하다. p. 231.

- 정군(正軍)을 호수(戶首)라 하고 각 호수에는 두세 명의 보인(保人)이 딸려 있어 이들에게서 쌀과 베를 거두어 물자와 장비로 쓰게 했다. p. 232.

- 서울의 군영에 군포를 상납하는 날에 영문 아전들의 횡포가 극심하다. 연중 관례로 주는 뇌물 외에 더 내놓으라고 억지를 부리고, 욕심이 충족되지 않으면 군포를 퇴짜 놓기가 일쑤다. 또 시전의 면포상인들과 형제이거나 인척인 영문 아전들은 이들과 공모하여 읍포를 퇴짜 놓는다. 그러면 향리들은 시포를 구입해야 하는데 객지에서 시포를 구입하려면 반드시 두 배의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그리고 시포를 납부하였으니 읍포는 반드시 팔아야 되는데, 객지에서 포를 팔게 되면 반드시 반값밖에 받지 못한다. p. 234.


- 조선 초에는 돈을 사용하지 않아 사채의 폐단이 심하지 않았으므로 법규가 조금 너그러워서, 어긴 자에 대한 벌이 장 80대에 지나지 않았다. 숙종 이래로 돈이 크게 유통되어 사채의 폐단이 나날이 증가되어 백성들이 몰락하였다.

- 살인에 대한 법이 엄한 것과 관련된 이야기. 판결을 잘못했을 때의 태도. p. 266.


- 무단적인 행동을 하는 토호는 백성들에게 승냥이나 호랑이 같다. 승냥이와 호랑이를 제거하야 양 같은 백성을 살려야만 이를 목민관이라 할 수 있다. p. 274.

- 관리가 창녀를 끼고 노는 데 대해서는 법률이 지극히 엄하다. 그러나 기강이 해이해지고 어지러워져서 습속으로 굳어진 지 오래 되었으므로, 이제 갑자기 이를 금하는 것은 소동을 일으키는 길이다. p. 275.



 

이이의 『동호문답』과

『만언봉사, 목숨을 건 직설의 미학』 


1. 치세와 난세에 대한 이이의 구별


(1) 치세

치세

군주의 재능과 지혜가 출중하여 뛰어난 영재들을 잘 임용하는 경우

군주의 재능과 지혜가 모자라지만 현자를 임용하는 경우

왕도정치: 인의의 도, 인정을 행함으로써 천리의 바름을 지극히 하는 것

오제와 삼왕

상의 태갑(이윤)과 주의 성왕(주공)

패도정치: 이름만 인의의 도 권모술수로 공리와 사익 채움

진 문공, 진 도공, 한 고조, 한 무제, 당 태종, 송 태조

제 환공(관중), 한 소열(제갈량)



(2) 난세

난세

군주의 재능과 지혜가 출중하지만 자신의 총명만을 믿고 신하들을 불신하는 경우

군주의 재능과 지혜가 모자라 간사한 자의 말만을 편중되게 믿어 자신의 귀와 눈을 가린 경우

폭군

하의 걸, 상의 주, 주의 여왕, 수의 양제

진의 이세(간사한 조고)

한의 환제(환관의 참소)

혼군

당의 덕종

송의 신종(왕안석)

용군

무기력하고 나태하여 보잘것없는 용군: 주의 난왕, 당의 희종, 송의 영종




2. 겸선(兼善)과 자수(自守):


대학(大學): 大學之道는 在明明덕德하며 在親(新)民하며 止於至善이니라.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힘에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함에 있으며, 지극한 선에서 그침에 있다.]


- 명덕은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것을 의미한다. 인욕(人慾)에 가리우면 어두워진다. (克己復禮?)


- 친(신)민은 수기 이후 명명덕을 타인에게까지 미친다. 즉 백성을 교화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 지선은 사리의 당연한 극(極, 표준)이다. 명명덕과 친민은 지선의 경지에서 멈춘다.


  “사물의 이치가 이른 뒤에 지식이 지극해지고, 지식이 지극해진 뒤에 뜻이 성실해 지고, 뜻이 성실해진 뒤에 마음이 바루어지고, 마음이 바루어진 뒤에 몸이 닦여지고, 모이 닦아진 뒤에 집안이 가지런해지고, 집안이 가지런한 뒤에 나라가 다스려지고, 나가가 다스려진 뒤에 천하가 평해진다.”


“선비라면 겸선(兼善)이 본래의 목적이지요. 물러나 자수(自守)하는 것이 어찌 본심이겠소. 다만 때를 만나고 만나지 못해 그럴 뿐이지요.” p. 23.

겸선의 세 가지 품격: 대신(大臣), 충신(忠臣), 간신(幹臣). pp. 23-24

자수의 세 가지 품격: 천민(天民), 학자(學者), 은자(銀字)


도학(道學)이란 ‘격물치지(格物致知)로 선(善)을 밝히고 성의(誠意), 정심(正心)으로 수신하는 것’으로 도학이 자신에게 쌓이면 천덕(天德)[자연적인 본성]이 되고, 정치에 시행되면 왕도정치가 되지요. 독서는 격물치지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으니 독서만 하고 실천이 없으면 앵무새가 말 잘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소.” p. 29.


“도학하는 선비를 ‘진유(眞儒)’라 하는데, 맹자 이후 진유가 출현하지 않다가, 1,000여 년이 지나서야 주렴계[주돈이, 태극도설(太極圖說), 세계는 태극->음양->오행->남녀->만물의 순서로 구성된다고 하였다. 또, 도덕과 윤리를 강조하고 우주생성 원리와 인간의 도덕원리는 같다고 하였다.(네이버 백과사전)] 선생이 나옴으로써 미묘한 진리를 발양했고, 정자, 주자가 그것을 계승한 후에야 이 도학이라는 것이 세상에 크게 밝혀져서 중천에 솟아오른 태양과 같은 존재가 되었지요.”


“기자(箕子)께서 우리나라의 군주로 계실 적에 행한 정전(井田)제도와 팔조법금(八條之敎)은 피시 순수한 왕도정치의 산물일 것이오.” p. 38.


“이른반 진유라면 출사해서는 한 시대에 도를 행하여 온 백성으로 하여금 태평을 누리게 하고, 물러나서는 만세에 교화를 베풀어 배우는 자로 하여금 큰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자라오.” p. 38.


◎『만언봉사, 목숨을 건 직설의 미학』에서 나오는 학문하는 방법 3가지


(1) 궁리(窮理): “안으로는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이치를 속속들이 파고들어 깊이 연구해 보면,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도 각기 법칙이 있습니다. 밖으로는 사물이 존재하는 이치를 속속들이 파고들어 깊이 연구해 보면, 풀과 나무나 새와 짐승에게도 각기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 이러한 것은 반드시 책을 읽어서 밝히고, 옛 것과 견주어 깊이 생각하여 실제로 경험해 봐야 합니다. 이것이 궁리의 요점입니다.” p. 95.


(2) 거경(居敬): “거동할 때나 조용히 있을 때나 함께 통하는 것을 말합니다. 조용히 있을 때에는 잡념을 일으키지 않고 편안히 마음을 가라앉혀 정신을 맑게 하고, 거동하여 일을 할 때에는 한 가지에 온 마음을 쏟으며 한결같이 하여 조금도 착오가 없게 하는 것입니다. 몸가짐음 반드시 가지런히 엄숙하게 하고, 마음가짐은 반드시 경계하고 삼가며 두려워해야 합니다. 이것이 거경의 요점입니다.” pp. 95-96.


(3) 역행(力行): 자신의 사사로운 욕심을 극복하여 기질적으로 나타나는 병폐를 다스리는 데 있습니다. 유약함은 바로잡아 강하게 하고, 나약함은 바로잡아 스스로 서게 하며, 사나움은 온화하게 다스리고, 급함은 너그럽게 다스리는 것을 말합니다. 욕심이 많으면 맑고 깨끗하게 하여 반드시 청정해지도록 하고, 사사로움이 많으면 바로잡아 반드시 공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부단히 노력하여 아침저녁으로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역행의 요점입니다.“ p. 96.


궁리는 곧 사물의 이치를 깊이 연구하여 지식을 얻는 것(格物致知)이고, 거경과 역행은 곧 뜻을 정성스럽게 하고(誠意), 마음을 바르게 하며(正心), 몸을 닦는 것(修身)입니다.” pp. 96-97.




3. 삼대의 정치를 회복하기 위한 방법


삼대의 정치를 회복하는 방법: 입지-무실-용현-안민정책-교인지술-정명


입지(立志): “입지[뜻을 세우는 것]보다 앞서는 것은 없지요. 옛날부터 유위(有爲)하는 군주는 먼저 자신의 뜻을 정하지 않은 이가 없었소.”: ‘이치를 궁구하고 본성을 다하는 것[窮理盡性]’, ‘백성들을 새롭게 하는 것[新民]’, ‘아내에게 모범이 되는 것[刑于寡妻]’, ‘요 임금의 모자토계(茅茨土階)’, ‘박시제중(博施濟衆)’, ‘예악을 닦아 밝히는 일[修明禮樂]’에 뜻을 두기. p. 58.


무실(務實): “입지 후에는 무실만한 것이 없지요. …… 말을 헛되이 할 뿐 실제가 없다면 어찌 일을 구제할 수 있겠소. …… 한 가지 폐단도 개혁되지 않고 한 가지 정책조차 제대로 실시되는 것을 볼 수 없는 것은 오직 무실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 성의(誠意)하고자 하신다면 …… 어둠 속에 혼자 있거나 남모르게 은거해 있을 때에도 경외(敬畏)하여 게을러서는 아니 되니,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때에도 경계하고 두려워함을 잊어서는 안 되고, 반드시 모든 염려들이 지극한 정성에서 나오게 하여 성의의 실제를 다해야 하지요.

  정심(正心하고자 하신다면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않고 얽매이지도 않는 것으로 체(體)를 세워 과불급(過不及)이 없게 하고 용(用)을 적용시킬 수 있어야 한다오.”

 수신(修身), 효친(孝親), 치가(治家), 용현(用賢), 거간(去奸), 보민(保民), 교화(敎化) 등의 실천을 해야 함. pp. 58-62.


간인의 판별이 용현(用賢)의 요체다 - 선조가 신하를 대할 때의 문제점: “지금 군주께서는 오직 경연에서만 어진 선비를 응대하시는데다가 그나마 예가 엄하고 말씀을 간단하게 하셔서 신하들이 떼 지어 줄 맞춰 앞으로 나아갔다가 물러나오는 식이오. 그 결과 신하들의 뜻이 모두 주상께 전달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니 밝은 성상이실지라도 어찌 모든 상황을 살피실 수 있겠소. 이와 같이 지난날의 전철만 되풀이하여 헛되이 형식만 일삼는다면 주상께서는 여러 신하들의 어질고 어질지 못함을 끝내 살피지 못할 것입니다.” p. 66.

율곡 이이의 대책: “번거로운 절차는 생략하고 경연 자리 이외에서도 유신들과 만나 조용히 도를 의논하여 정무에 적용하는 방법만한 것이 없소. 주상께서는 침묵해서는 안 되고 신하와 더불어 수작(酬酌)하기를 메아리치듯이 하여 상하의 실정이 통하고 속내를 시원스럽게 알도록 해야 하오. 이렇게 되면 사특하고 올바른 이들이 하늘의 눈질을 피하기 어려워 용사(用捨)[등용하고 내침]가 성상의 권한 내에서 조용히 결정되어 성덕을 이루시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요.” p. 66.


율곡 이이가 제시하는 올바른 사람과 사악한 사람의 구별 방법: “소인이 저지르는 해악은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으니 어떤 이는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여 비루하고 어떤 이는 윤리에 어긋나며, 어떤 이는 사익에 얽매여 공익을 외면하고 어떤 이는 현자를 해코지하여 나라를 병들게 하여 그 과오와 죄악이 심하여 일일이 열거할 수 없으나 큰 요체는 모두 드러나기 마련이어서 지적하거나 말하기 어렵지 않소.” p. 67


입지, 무실, 용현 다음에 할 일: 안민정책(安民之術)

“먼저 폐법(弊法)부터 개혁하여 민생을 구제해야 하지요. 잘못된 법을 개혁하려면 마땅히 언로를 넓혀서 좋은 정책을 모아야 하니 위로는 공경대신에서 아래로는 가마꾼이나 말구종에 이르기까지 모두 각자 시대의 폐법을 진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오. 그리하여 그들의 말이 결과적으로 채택할 만한 것이면 그것이 누가 한 말인지를 취사선택의 기준으로 삼지도 말고 해당 부서로 하여금 고식적으로 기존의 예를 따르지도 말도록 하여 상감께서 계책을 열도록 하는 것만이 잘못된 법을 완전히 개혁하리라는 것을 기약할 수 있소.” p. 73


◎ 폐법의 예


일족절린(一族切隣): 과중한 세금, 군포, 군역 등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간 백성이 있는 경우 반드시 그 일족과 이웃에게 세금, 군포, 군역을 부담시키는데, 일족과 그 이웃들도 그것을 감당할 수가 없어 도망가면 다시 그 일족의 일족과 이웃의 이웃에게 부담시키고 있지요. pp. 73-74 [백성들이 도망간다]


진상번중(進上煩重): “진상이라는 것이 주상께 바치는 데 있어서 모두 다 적합한 것은 아니라오. 어떤 자질구레한 것도 헌상하지 않는 것이 없고 바다나 육지에서 산출되는 것을 빠짐없이 긁어 들이고 있으나 어찬에 진상할 만한 것을 고른다면 몇 가지 안 될 것이오. …… 다급하지도 않은 물품들로 백성을 해친단 말이오.

  이러한 폐법을 개혁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대신과 관할 관서로 하여금 진상하는 모든 품목을 모아서 긴급한 것과 긴급하지 않은 것을 강구하여 상납할 필요가 있는 것만을 남겨두고 나머지 긴요하지 않은 물품들은 모두 삭제해야 하오. 또 아무리 상납할 필요가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수량이 너무 많을 경우에는 그 수량을 감소시켜야 하오. pp. 77-78.


공물방납(貢物防納): “세도(世道)가 점점 가라앉고 폐습이 나날이 늘고 간악하고 교활한 관노나 엉큼한 아전들이 온갖 물품을 사사로이 비축했다가 관청을 우롱하고 백성을 가로막아 비록 아주 우수한 물품을 가지고 와도 끝내 억지시켜 곧장 공납하지 못하게 하고 대신 반드시 자기들이 사사로이 비축한 물품들을 선납했다가 나중에 백 배나 되는 값을 백성들에게 요구하게 되었소.” p. 79.


역사불균(役事不均): 정군(正軍), 보솔(保率), 나장(羅將), 조예(皂隸) 등 여러 사람들이 온갖 역에 응하는 종류는 첫째, 장기간 번을 서거나 둘째, 두 번으로 나누어 서거나 셋째, 세 번에서 예닐곱 번으로 나누어 서는 것이지요. 따라서 혹자는 포악한 해를 감당하지 못하여 도망하는데 혹자는 생업을 편안히 하여 스스로 지키기도 하니, 같은 적자(백성)로서 어찌 이와 같이 괴롭고 즐거움이 차별적으로 동일하지 못한지요? p. 81.


이서주구(吏胥誅求): “간사한 권신들이 혼탁하고 어지러우며, 상하가 오직 뇌물만 일삼아서 관작도 뇌물이 아니면 승진하지 못하고, 소송도 뇌물이 아니면 승소하지 못하고, 죄수도 뇌물이 아니면 석방되지 못하오. 이리하여 모든 관료들은 하는 일마다 범법 행위를 하고, 아전들도 농간을 부려 법조문을 악용하니 …… 일개 군노나 일개 하인, 그리고 종까지 모두 약간의 말직만 맡고 있어도 으레 토색질을 일삼게 되었소. 그뿐만 아니라 중요한 일도 교활한 아전의 손에 맡겨져 뇌물의 많고 적음으로 곡직(曲直)을 결정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참으로 정치가 어지럽고 나라가 망하는 고질병이 되었소.” p. 82.


개혁에 반대하는 무리에 대한 율곡 이이의 반론: “세속의 식견은 매양 이와 같아서 한 가지 정책도 써보지 못하고 앉아서 망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격이지요. 정자께서는 ‘생민의 이치가 막혔으면 성왕의 제도라도 고치는 것이 옳다’고 말씀하셨소. 대저 법이 오래되면 폐단이 생기기 마련이고, 폐단이 생기면 고쳐야 하는 법이오. 《주역(周易)》에서 ‘궁하면 변한다. 변하면 통한다’라고 했지요.” p. 85.


교인지술(敎人之術): 안민 다음의 제도 개혁. “양민(養民)한 다음에야 교화(敎化)를 행할 수 있는데, 교육을 베푸는 방법으로는 학교보다 급한 것이 없소.” p. 89.

훈도(訓導)의 선발과 예우가 중요하다: “현재는 훈도를 극히 천한 직업으로 여겨 반드시 빈곤하고 기댈 곳 없는 사람을 훈도직에 임명하여 굶주리거나 얼어 죽는 것만 면하게 하고 있소.” p. 89.


반궁[성균관]에서 사림의 풍습이 날로 타락하여 학문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영리만 추구하려 한다. “조정에서 지도하고 권장하는 방법이 옳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재를 구하는 방법은 글재주만을 중시하고 도덕을 귀하게 여기지 않소.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천하에서 다 통하는 학식을 가지고 있고 세상에 으뜸인 행실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과거에 합격하지 않으면 그의 도를 사용할 방법이 전혀 없소. 게다가 반궁에서는 원점(圓點)으로 선비를 모으기 때문에 선비들의 일상 행실이 모두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는 경우가 없게 되었소." p. 91.


율곡 이이의 정명(正名) 사상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사람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것이 진실로 현재의 급선무라오. 다만 아직 국시(國是: 국가 이념)가 바로잡히지 못함으로써 정명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못해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사기를 진작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소.

  우리나라는 개국 이래 정사, 소장이 사실 빈번하게 반복되었소. 그러나 그중에서도 사림이 한꺼번에 죽임을 당하고 국가의 운명을 뒤흔든 것으로 을사사화만큼 심한 것이 없었소. 정순붕, 윤원형, 이기, 임백령, 허자 등 다섯 간흉은 그 죄가 하늘까지 달하니 반드시 죽이고 결코 용서해서는 안 될 자들이오.” p. 99.


“현재의 대책으로는 먼저 다섯 간흉의 죄를 폭로하고 관작을 삭탈하여 위사공신[사직을 보위한 공신이라는 뜻]이라는 공훈을 모두 삭제하고, 죄 없는 사람들을 모두 사면하여 종묘사직에 고하고 온 나라에 널리 알려 온 나라 사람들과 함께 다시 시작해야 하오. 이렇게 하면 위로는 조종의 영혼을 위로하고, 아래로는 조야의 분통한 마음을 풀어서 유신[낡은 제도를 고쳐 새롭게 함]정치가 차츰 이루어질 것이오.” p. 101.






『만언봉사, 목숨을 건 직설의 미학』



4. 변법(變法)의 의미와 변법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


“이른바 ‘시기가 적절하다(時宜)’는 것은 시기를 따라 적절하게 일을 처리하고(變通) 법을 마련하여 백성을 구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정자가 …… 말하기를 “시기에 따라 알맞게 바꾸는 것이 정상적인 방법(常道)”이라 하였습니다. 대개 법은 시기를 따라 제정하고 시지가 바뀌면 법도 같지 않은 것입니다.“ p. 34.


“바로 신종에 이르러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여 분연히 개혁할 뜻을 갖고 있었으나, 믿고 맡긴 왕안석이 어짊과 의로움을 뒤로 하고 공명심과 이익을 앞세워 하늘의 뜻과 인사를 어긋나게 함으로써 멸망을 재촉하니, 도리어 개혁을 하지 않은 것이 좋았던 것이었습니다. 이에 점차 큰 화를 부르게 되어 중국을 오랑캐의 나라로 만들었으니 그 밖에 말할 나위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pp. 39-40.


 

H. L. A. Hart, “Are there Any Natural Rights?”, Theories of Rights, ed. by Jeremy Waldro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84), pp. 77-90.

(The Philosophical Review, Vol. LXIV, No. 2 (April, 1955), pp. 175-191)



Thesis


도덕적 권리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최소한 하나의 자연권, 즉, 모든 인간이 자유롭다는 평등한 권리가 존재한다는 것이 따라 나온다.


권리가 존재한다는 말의 의미

권리가 평등한 권리라는 것과 일관된(consistent) 일정한 특수한 조건이 부재하는 상황에서, 선택할 능력이 있는 어떤 성인도

i) 강제(coercion)나 제재(restraint)를 막기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강제나 제재를 모든 타인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할 권리를 갖는다.

ii) 타인에게 강제하거나 제제하거나 또는 그들을 해할 목적이 아닌 어떤 행위도 할 자유가 있다.


모든 인간이 자유롭다는 평등한 권리를 자연권(natural right)으로 기술하는 두 가지 이유

i) 이 권리는 모든 사람들이 선택할 능력이 있다면 갖는 권리이다. 모든 인간은 이 권리를 인간으로서(qua men) 갖는다.

ii) 이 권리는 사람들의 자발적 행위에 의해 창출되거나 부여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도덕적 권리들은 자발적 행위에 의해 창출되고 부여된다.)


부연: 이 thesis는 어떤 도덕적 권리가 존재한다고 한다면, 이러한 하나의 자연권이 존재함에 틀림없다는 조건적 주장이다.



I

(A) 도덕적 권리와 법적 권리의 밀접한 관계

  권리 개념은 한 사람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에 의해 제한될 수 있을 때를 결정하는 것에, 그래서 어떤 행위가 강제적 법 규칙들의 주제가 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에 관계되는 도덕의 영역에 속한다.

  정의, 공정성, 권리와 의무(obligation)와 같은 도덕 개념들의 특징은 정의로운 것, 공정한 것이 행해질 것을 보장하기 위한 강제력(force)의 사용에 특수한 일치(congruity)가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congruity의 상황에서만 타인의 강제력이 정당하다.


Kant:

officia juris - duty에 대한 존중이 그 자체로 의지의 규정적 원칙일 것을 요구하지 않는 도덕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의무

officia virtutis 도덕 원칙을 위해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면 도덕적 가치(worth)가 없는 의무

⇒ Hart의 해석: 인간의 자유의 적절한 분배를 규제하는 원칙들, 이것만이 인간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냐를 자신의 선택에 의해 결정할 수 있도록 자유의 분배를 도덕적으로 정당하게 만든다.


Hart가 제시하는 도덕적 권리의 중요한 특징

i) 도덕적 권리의 소유자는 타인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도덕적 정당화를 지니는 것으로 간주된다.

ii) 그러한 정당화를 가지는 것은 그가 타인에게 요구할 권리가 있는 그 행위가 어떤 도덕적 질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위할 것인지를 자신의 선택에 의해 결정하도록 허용된다면, 인간 자유의 일정한 분배가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B) 도덕적 권리가 ‘duties’와 상관적(correlative)인지의 문제를 검토하자.

‘X가 -에 대한 권리가 있다’는 주장은 ‘Y가 -할 (하지 말아야 할) duty가 있다’를 함축하고, 그것에 의해 함축된다.

        ‘X가 -에 대한 권리가 있다’ ⇔ ‘Y가 -할 (하지 말아야 할) duty가 있다’

그런데 X가 권리가 있다는 것으로부터 X나 다른 사람이 어떤 duty를 지닌다는 것이 따라나오지 않는 의미가 있다. 이런 종류의 권리를 법학자들은 ‘자유들’이라 부르며 상관자로 ‘duty'를 갖는 권리들과 구별했다.

  자유라 칭해지는 권리들은 사회적 삶의 영역, 즉 경쟁이 최소한 도덕적으로 반대할 만하지 않은 것으로 기능하는 영역을 기술하기 위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길에 떨어진 돈을 타자가 줍도록 허락하기 위해 어느 누구도 ‘duty’ 하에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경제적 경쟁의 도덕적 적절성(propriety)은 ‘X가 -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 단지 X가 -하지 않을 어떤 ‘의무’ 하에도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는 최소한의 의미에서의 ‘하나의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C) 모든 도덕적 ‘duties’에 대해 상광적인 도덕적 권리들이 있는지에 대한 문제

모든 duties에 상관적인 도덕적 권리들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권리를 가지고 있음이 ‘duty’의 수행으로 인한 이익을 얻을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가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권리를 가짐에 대한 충분조건도 필요조건도 아니다. (상관적이라 생각한다면) 따라서 우리가 잘못 대우하지 말아야 할 ‘duty’를 수행하여 이익을 얻는 동물이나 아기들은 적절한 대우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고 말해진다. 그러나 이런 추론은 따라 나오지 않는다.

약속으로부터 발생하는 도덕적 상황: 권리를 갖는다는 개념과 ‘duty’의 수행에 의해 이익을 얻는다는 개념은 동일하지 않다. X가 Y에게 그간의 호의에 대해 Y가 없을 때 Y의 어머니를 돌보겠다고 약속한다. 이런 거래에서 권리들이 발생하지만, 약속이 이루어진 것은 Y에게이지 권리를 갖고 있는 어머니에게가 아니다. 확실히 어머니는 X가 가진 obligation과 관련된 당사자이고, obligation의 수행으로 이익을 얻을 당사자이다. 그러나 Y의 어머니를 돌볼 X의 obligation은 Y에 대해서이다. 따라서 X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X가 무시하고 잘못을 범하게 되는 것은 Y이지 Y의 어머니가 아니다. X에 대한 도덕적 주장을 하는 사람도 Y이다. Y는 자신의 어머니를 돌보게 할 권리가 부여된(entitled) 것이고, 그 주장을 철회하고 그 obligation으로부터 X(본문에는 Y이나 X가 맞는 듯)를 해방시켜 주는 것은 Y이다. X가 어떻게 행위해야 할지를 선택에 의해 결정할, 그리고 X의 선택의 자유를 이런 방식으로 제한할 위치에 도덕적으로 놓인 것은 Y인 것이다. 그래서 Y가 하나의 권리를 갖는다고 말하는 것을 적절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이익을 얻을 것 같다는 사실이 아니라 위와 같은 사실이다. 약속 받은 사람과 이익을 얻는 사람이 동일하다고 해서 ‘권리를 가짐’과 ‘duty의 수행으로 인한 이익을 얻음’이 동일함을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권리를 갖는 사람은 ‘duty’가 발생하게 되는 거래, 이전 상황 또는 당사자들의 관계를 검토함으로서 발견된다.


(D) 권리를 부여하지는 않지만 무엇이 행해져야 할지를 명령하는 행동 codes

자연법 사상가들: 자연권이 아니라, 준수하면 인간을 이롭게 할 자연적 duties들이 있다고 생각(인간의 자연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행해져야 하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 이런 codes들이 권리들을 창출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이런 행동 codes를 권리들을 창출하는 게임 규칙들과 대조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도덕적 code조차도 권리들을 정립할 필요가 없다. 십계명이 가장 중요한 예이다. 십계명이 권리들을 부여하는 것으로 다루는 것은 놀라운 해석일 것이다. 이 해석에 따르면, 십계명에 대한 복종은 단지 신이 아니라 개인들에게 due 또는 owed된 것으로 간주되고, 불복종은 단지 잘못일 뿐만 아니라 개인들에 대한 하나의 잘못이기도 하다. 그러면 십계명은 일정한 행동 유형을 배제하기 위해서만 고안된 gudq법으로 읽히기를 그만두고 개인들이 타자들로부터 일정한 행동을 요구할 수 있는 정도를 규제하는 규칙으로 생각되어야 할 것이다. 권리들은 전형적으로 개인들에 의해 소유되거나 개인들에게 속하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런 표현들은 도덕 규칙들을 단지 행동을 명령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종의 개인들의 도덕적 적절성(propriety)을 형성한다는 이해를 반영한다. 규칙들이 이런 방식으로 생각될 때에만, 우리는 옳고 그른 행위들뿐만 아니라 권리들과 잘못들에 대해 말할 수 있다.




II

‘내가 -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표현이 사용되는 두 유형의 상황

(A) 권리 주장자가 다른 사람의 자유의 간섭에 대한 정당화 (다른 사람들은 이런 정당화를 갖지 못한다.) 예) ‘나는 내 서비스에 대해 당신이 약속한 것을 받을 권리가 있다.’

(B) 권리 주장자가 타인에 의한 어떤 간섭이 정당하지 않은 것이라고 반대하는 경우. 예)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을 말할 권리가 있다.’


(A) 특수한 권리들(Special rights)

  권리들이 개인들 사이에 특수한 거래로부터 발생할 때 권리를 가진 사람과 obligation을 가진 사람은 특수한 거래 당사자들에 제한된다. 이런 권리들을 특수한 권리들이라 부를 것이다. 이 권리들은 모두에게 obligation을 지우는 권리들로 생각되는 도덕적 권리들과 구별된다.

(i) 약속으로부터 발생하는 특수한 권리들

약속에 의해 우리는 자발적으로 obligations를 발생시키고 약속을 한 사람에게 권리를 창출하거나 부여한다. 이 경우 우리는 어떤 행위와 관련된 당사자의 선택의 자유의 도덕적 독립성을 변경시키고 새로운 도덕적 관계를 창출한다. 그래서 약속을 받은 사람이 약속해준 사람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을 도덕적으로 정당하게 만든다.


약속으로부터 파악되는 모든 특수한 권리들의 특징 두 가지

i) 권리와 obligation이 발생하는 이유는 약속된 행위가 그 자체로 특정한 도덕적 질을 갖기 때문이 아니라, 당사자들 간의 자발적 거래 때문이다.

ii) 당사자들의 동일성(identity)이 핵심적이다.


(ii) 동의에 의한 권리 부여: 권리의 양도

  당신이 내 이익을 돌보도록 동의한다면,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했지만, 당신이 간섭한다고 불평할 수 없는 그런 권리를 당신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이것이 권리의 양도이다. 이 경우에도 권리를 양도 받은 사람만이 이런 [간섭할 수 있는] 관계에 놓여 있다는 것이 특징으로 확인된다.


(iii) 제한의 상호성(mutuality of restrictions)

  제한의 상호성을 이해할 때에만 우리는 정치적 의무(political obligations)를 이해할 수 있고, 이것이 동의나 약속과 같은 권리-창출 거래와 어떻게 다른지를 이해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규칙에 따라 어떤 공동의 기획을 수행하고 따라서 그들의 자유를 제한할 때, 이러 재한에 복종해온 사람들은 그들의 복종에 의해 이익을 얻어온 사람들로부터 유사한 복종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규칙에 복종할 moral obligation은 사회의 협력적 구성원들 때문이고, 그들은 복종에 대한 상관적인 도덕적 권리를 갖는다.

  사회 계약론은 법에 대한 복종의 의무(obligations)가 benevolence의 특수한 사례일 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의 구성원들이 상호 관계로부터 발생하는 어떤 것이라는 사실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론의 실수는 약속과 같은 패러다임 사례를 권리를 창출하는 상호 제한의 상황과 동일시한다는 점이다.


(iv) 부모와 자식과 같이 특수한 자연적 관계의 경우 권리와 obligation이 창출된다.


(v)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속되어 있는 obligation에서 한 사람이 면제되지만, 상관적인 obligation이 있는 권리를 획득하는 것은 아닌 경우 특수한 자유들이 특수한 권리들과 구별된다. 타인에게 간섭할 자유가 아니라 권리가 주어진 경우들은 licence가 그 권리를 부여한 사람에 의해 마음대로 철회될 수 있지 않은 경우들이다.



(B) 일반적 권리들(General rights)

  일반적 권리들은 정당화되지 않은 간섭이 예견될 때 그 간섭이 정당화되지 않았음을 지적하기 위해 주장되는 권리들이다.

예)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을 말할 권리가 있다.’, ‘나는 os 마음대로 숭배할 권리가 있다.’


일반적 권리와 특수한 권리의 공통점

i) 이 권리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타인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즉, 그가 간섭해서는 안 됨을 결정하기 위한 도덕적 정당화를 갖는다.

ii) 권리 주장자가 행위의 수행에 대해 권리를 갖고 있는, 그 행위의 성격으로부터 도덕적 정당화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 권리 주장을 정당화하는 것은 자유로울 평등한 권리의 예시라는 점이다.


일반적 권리와 특수한 권리의 차이점

i) 일반적 권리는 특수한 관계나 거래로부터 발생하지 않는다.

ii) 일반적 권리는 특정한 사람이 갖는 권리가 아니라 선택할 능력이 있는 모든 인간이 갖는 권리이다. (특수한 권리를 발생시키는 특수한 조건들이 없는 상황에서)

iii) 일반적 권리는 간섭하지 말아야할 상관물로서 obligations를 갖는데, 모든 이들은 이 obligations에 종속된다.


일반적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모든 인간이 자유로울 평등한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특수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타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특수한 조건들에 의해 구성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일반적 권리의 주장은 직접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자유로울 권리를 평등하게 갖는다는 원칙에 호소하는(invoke) 것이다.

특수한 권리의 주장은 그 원칙에 간접적으로 호소하는 것이다.




III


타인의 자유에 대한 간섭이 도덕적 정당화를 요구한다는 것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권리 개념은 도덕에서 자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그런 정당화가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의 권리’를 사용하는 것이 타인의 자유에 대한 침해가 도덕적 정당화를 요구한다고 해서, 이것이 도덕적 권리들의 인정에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짐에 대한 인정이 함축됨을 정립하기에 충분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권리를 구성시킬 수 있는 간섭에 대한 도덕적 정당화의 유형과 관련하여 ‘하나의 권리’의 의미에 내재하는 일정한 제한이 없다면, 그 원칙은 전적으로 공허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간섭에 대한 도덕적 정당화는 일정한 특수한 조건들에 제한되어 있음이 분명하고, 이것은 ‘하나의 권리’의 의미에 내재해 있음이 분명하다.

어쨌든, 우리가 도덕적 권리가 있다고 주장할 때 우리가 제시하는 것과 같은 근거에 따라 간섭을 정당화한다면, 우리는 사실 간접적으로 모든 사람이 자유로울 평등한 권리가 있다는 원칙에 우리의 정당화로 호소하고 있다.


 

한비자(韓非子), 『이야기의 숲에서 한비자를 만나다』, 이상수 역 


1. 한비자의 인성론


“이익이 있으면, 사람들은 모두 맹분이나 전저와 같은 장사가 된다.” p. 94.


“오늘날 군주가 부유한 사람으로부터 거둬들여서 가난한 집안에 베푼다는 것은, 노력하고 절약하는 사람의 것을 빼앗아 낭비하고 게으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p. 99. [근검절약의 강조 및 복지국가에 대한 반대?]


“서로 상대방을 위해 무엇을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하면 결국 기대에 어긋나 서로 책망하게 되지만, 자신을 위해서 일한다고 생각하면 일이 되레 잘 진행된다.” p. 101 [자기이익 추구]


“이익이 있는 곳으로 백성들이 모여들고, 명성이 빛나는 곳에 선비들이 목숨을 바친다.” p. 101.


“사람에게는 털이나 깃이 없기 때문에 옷을 입지 않으면 추위를 견딜 수 없다. …… 장과 위를 뿌리 삼아 영양을 섭취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이로움을 추구하는 마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로움을 추구하는 마음을 제거할 수 없다는 것이 그 몸의 근심이다.” p. 106.


“법을 제정하는 것은 증삼이나 사어 같은 인격이 뛰어난 사람을 다스리기 위한 게 아니라, 보통의 군주가 능히 도척과 같은 간악한 무리를 방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부절을 사용하는 것은 미생처럼 신의를 지키는 이를 위한 예방책이 아니라 뭇사람들이 서로 속이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p. 117.




2. 국가의 존속 또는 권자의 보존을 위한 필수 조건


(1) 권력(勢): 미자하와 용의 역린 이야기(p. 268?)

(2) 법치(法治)

(3) 통치술(術)


“대저 몸소 권력의 손잡이를 쥐고 행사하려 하지 않고 신하들이 해야 할 일을 하고자 하니 졸린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p. 139.


“신하에 대한 통제력이 군주 자신에게 있을 때 군주가 ‘무게가 있다(重)’라고 하고, 군주가 자기 지위를 떠나지 않을 때 군주가 ‘안정적이다(靜)’라고 한다. 군주가 무게가 있으면 능히 가벼운 신하들을 부릴 수 있으며, 군주가 안정적일 때 능히 떠다니는 신하들을 부릴 수 있다. 그러므로 『노자』에서 말하기를 “무거움은 가벼움의 뿌리가 되며, 안정됨은 떠다님의 군주가 된다”라고 했다.” p. 153.


“권력이란 군주의 연못이다.” p. 153.


“권력에 의지해야지 신뢰 관계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 통치술에 의지해야지 신뢰 관계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p. 154.


“대저 재능이 있더라도 권세가 없다면 비록 현명한 자라 하더라도 어리석은 자를 통제할 수 없다. …… 짧은 목재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것은 위치 때문이고, 어리석은 자가 현명한 자를 통치할 수 있는 것은 권세 때문이다.” p. 157.


“신하는 군주에 대해 골육과 같은 친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에 매여서 어쩔 수 없이 복종하는 것이다.” p. 158.


“밝은 군주가 신하를 통제하는 수단에는 두 가지 손잡이가 있을 뿐이다. 두 가지 손잡이란 형벌과 덕(德)을 말한다. 형벌과 덕이란 무엇인가. 처벌하고 잡아 죽이는 것을 형벌이라 하고, 칭찬하여 상을 내리는 것을 덕이라고 한다. …… 오늘날 군주가 상과 벌의 위엄과 이로움이 자기로부터 나오도록 하지 않고 신하의 말을 들어 상벌을 내린다면, 그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다 그 신하를 두려워하고 군주는 우습게 여길 것이며, 그 신하만 따르고 군주는 버릴 것이다. …… 군주는 형벌과 덕으로서 신하를 제압하는데, 지금 군주가 형벌과 덕을 버리고 신하에게 그것을 사용하도록 한다면, 군주는 도리어 신하에게 제압당할 것이다.” p. 162.


“포상과 처벌은 나라를 다스리는 이로운 도구다. 군주가 이것을 장악하면 신하를 통제할 수 있지만, 신하가 이것을 장악하면 군주를 이기게 된다.” p. 164.


“군주가 통치술을 쓰면 대신들이 권력을 함부로 휘두를 수 없게 되며, 총신들이 권력을 빙자해 사리사욕을 채울 수 없게 된다. 관리들이 법을 집행하면 떠돌이 백성들이 서둘러 농경지로 돌아오고, 유세하던 선비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터의 진영에 나아간다. 그러므로 법과 술이라는 것은 뭇 신하들과 선비와 백성의 재앙인 셈이다.” p. 165.


“지금 신불해는 통치술을 말하고, 공손앙은 법치주의를 말한다. 통치술이란 능력에 따라 벼슬을 주고 신하가 말하는 것에 따라 그 실천 여부를 추궁하는 것이며,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칼자루를 쥐고서, 뭇 신하들의 능력을 시험하는 것이다. 이것은 군주가 장악해야 하는 일이다. 법치주의라는 것은, 관청의 문헌 보관소에 법률과 명령을 비치해두고, 백성들의 마음에 형벌이 새겨지도록 하여, 법령을 신중히 지킨 이에게 상이 주어지고 법령을 어긴 자에게 벌이 내려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신하가 따라야 하는 규범이다.” p. 169.




3. 한비자의 법치주의와 그 실현 조건


- 신도: “현명한 사람이 못난 사람에게 굽히는 것은 권력이 약하고 지위가 낮기 때문이며, 못난 사람이 능히 현명한 사람을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은 권력이 강하고 지위가 높기 때문이다. …… 나는 이로써 권력과 지위는 기댈 만한 것이지만, 현명함이나 지혜로움은 부러워할 것이 못 됨을 알았다. …… 이로써 본다면 현명하고 지혜로움은 뭇사람들을 복종시키기에 족하지 않지만, 권력과 지위는 현명한 사람조차 굴복시키기에 족한 것이다.” p. 118.

  반론: “현명한 사람이 그것[권력]을 사용하면 세상은 다스려지고, 못난 사람이 그것을 사용하면 세상은 어지러워진다. (……) 대저 권력이라는 것은 다스리는 데에도 편리하지만 어지럽히는 데에도 편리한 것이다.” p. 119. [재능이 중요하다. 권력은 객관적 조건일 뿐이다.]

  재반론: “내가 여기서 말하려고 하는 권력이라는 것은 사람이 만들어나갈 수 있는 권력이다. …… 세상의 보통 통치자는 중간치 수준의 존재들이 끊어지지 않고 나온다. 내가 여기서 권력에 대해 말하려는 것은 바로 이 중간치 수준 통치자들을 위한 것이다. …… (군주가) 법을 지키고 권력을 놓치지 않으면 잘 다스려지며, (군주가) 법을 어기고 권력을 놓치면 어지러워진다. …… 그러니 권력의 효용이 충분하다는 게 분명한데, ‘반드시 현명한 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려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또한 잘못이다. …… [위 논객이] 정치에 대해 말할 때는 요임금이나 순임금이 권력을 잡지 않으면 반드시 걸임금이나 주임금이 권력을 잡아 세상을 어지럽힐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이런 논법은 이 세상 요리는 엿이나 꿀처럼 달지 아니하면 나머지는 모두 씀바귀나 두루미 냉이처럼 쓴맛이 날 것이라는 주장과 같다.” pp. 121-124.


“법술을 버리고 마음에 따라 다스리도록 한다면 요임금이라도 한 나라를 바르게 할 수 없을 것이다.” pp. 126-127.


“법도를 집행한다는 것은 공을 드러내면 상을 주고 능력에 따라서 관작을 수여하는 것입니다.” p. 224.


“법치가 분명하고 명확하게 확립되면 똑똑한 자가 어리석은 자의 것을 빼앗을 수 없고, 힘이 센 자가 약한 자를 짓밟을 수 없으며, 다수가 소수에 대해 횡포를 부릴 수 없게 된다.” p. 228.


“작은 신의가 이뤄져야 큰 신의도 세워진다. 그러므로 밝은 군주는 신의를 쌓는 데 힘쓴다.” p. 228.


“다스리는 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을 쓰고, 적은 사람들에게만 한정되는 수단은 버린다. 그러므로 덕을 버리고 법에 힘을 쏟는다.” p. 229.


“밝은 군주는 눈먼 상을 아무렇게나 내리지 않으며, 처벌할 것을 느슨하게 풀어주지 않는다. …… 진실로 공이 있다면 비록 관계가 멀고 신분이 천한 사람이더라도 반드시 상을 내리고, 진실로 잘못이 있다면 비록 관계가 가깝고 아끼는 사람이더라도 반드시 처벌한다.” p. 230.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하의 사조직을 분쇄해야 한다. 사조직이 분쇄되지 않으면 신하는 점점 더 많은 세력을 규합해나갈 것이다.” p. 231.


“법령은 군주의 주요한 통치 수단이다. 반드시 공사의 구분을 밝혀서 법제를 분명하게 하고 사사로운 은혜를 제거해야 한다. …… 사사로운 의지가 행해지면 어지러워지고 공변된 대의가 행해지면 다스려진다. 그러므로 공과 사는 구분이 있다. …… 군주는 계산을 가지고 신하를 기르며, 신하 또한 계산을 가지고 군주를 섬긴다. 군주와 신하의 관계 맺음은 일종의 계산이다. …… 군주와 신하란 이처럼 계산을 바탕으로 결합한 사이다. 대저 어려운 사태에 임하여 필사적인 태도로 임하고 지혜와 힘을 다 짜내는 것은 법률이 그렇게 하도록 시키는 것이다. “공과 사는 분명하게 밝히지 않으면 안 되고 법률과 금지령은 엄격하게 밝히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했다.” pp. 233-235.


“대저 거울을 흔들면 밝게 비출 수 없고, 저울을 흔들면 바르게 달 수 없는 것은, 법치의 원리와 같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지도자는 거울과 저울처럼 객관적 기준이 될 수 있는 원리와 법규를 근본으로 삼는다.” p. 236.


“논변가들이나 능히 알 수 있는 내용은 법령으로 삼을 수 없다. 백성이 모두 그렇게 논변가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자들이나 능히 실천할 수 있는 내용은 법으로 삼을 수 없다. 백성이 모두 그렇게 현자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p. 239.


“현명한 군주는 법의 기준에 따라 사람을 고르지 스스로 멋대로 사람을 들어 쓰지 않으며, 법에 따라 사업의 실적을 판단하지 스스로 멋대로 판단하지 않는다.” pp. 239-240.


“법은 신분이 귀한 사람이라고 해서 그에게 아부하지 않으며, …… 잘못에 대한 처벌은 대신이라고 해서 피해가지 않으며, 공적에 대한 상은 평민이라 해도 아낌없이 주어진다. …… 백성들의 행동 규범을 하나로 통일하는 데 법만 한 것이 없다.” pp. 240-241.


“법치의 원칙을 지키는 길은 처음에는 괴롭지만 길이 이로울 것이요, 어짊을 베푸는 길은 잠깐 즐겁지만 나중에는 궁하게 된다.” p. 261.


“옛 군주의 어짊과 의로움을 말하는 것은 오늘날 다스리는 데 아무런 보탬도 되지 않는다.” p. 264.


“앞선 군주의 어짊과 의로움을 말하지만 그걸로 나라를 바로잡을 수는 없으니, 이 또한 이를 가지고 놀 수는 있어도 다스릴 수는 없는 것이다.” p. 265.


“대저 엄한 형벌과 무거운 처벌은 백성들이 싫어하는 것이지만 나라는 이 때문에 잘 다스려진다. 백성을 가련히 여기고 형벌과 처벌을 가볍게 하는 것은 백성들이 좋아하는 것이지만 나라는 이 때문에 위태로워진다.” p. 268.


“어질다는 것은 자비롭게 은혜를 베풀어 재물을 가볍게 여기는 것을 말한다. 난폭하다는 것은 마음이 잔인해 사람을 처형하는 것을 쉽게 행하는 것을 말한다. …… “어진 군주든 난폭한 군주든 모두 나라를 망치는 자들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p. 270.




4. 한비자의 통치술(術)


순명책실(循名責實): 신하로 하여금 계획을 진술하도록 하고, 나중에 그가 그 계획을 실행에 옮겨 얻은 실적인 신하가 처음에 말했던 계획과 대조하여 상벌을 내리는 통치술. p. 272.

이를 형명(刑名 또는 形名)이라 한다. 신하로 하여금 자기가 한 말(名) 또는 그 소명은 반드시 실천적 행위, 즉 ‘형(形)’을 통하여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군주는 신하들이 한 말이나 그 말의 명분(名)을 근거로 하여 그들이 실제로 행한 행위의 실질(實)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송영배, 『제자백가의 사상』, p. 470 주석.)


황로(黃老)학은 제(齊)의 직하(稷下)학궁을 중시므올 형성되어 나온 절대군주를 위한 통치술이다. 군주는 실제로 ‘무위(無爲)’하면서, 오직 ‘형명’의 술(術)로 모든 신하들로 하여금 각자 스스로 책임을 맡아 일하게 할 분, 그들의 일에 간여함이 없이 자유방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오직 행위결과에 대한 책임만을 법도대로 물어야 한다는 통치 이론이다. (송영배, 『제자백가의 사상』, p. 470 주석.)


“밝은 군주가 신하들을 거느릴 때는 신하가 자기 직분을 넘어서 공을 세울 수 없도록 하고, 자기가 한 말이 실적과 일치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한다. 직분을 넘어서면 사형에 처하고, 말과 실적이 일치하지 않으면 처벌한다.” p. 140.


- 진나라 대부 혼헌이 말하기를, “밝은 군주는 신하가 나를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지 않고, 자신이 신하들로 하여금 배신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통치술을 믿습니다. 밝은 군주는 또한 신하가 나를 속이지 않을 것이라고 믿지 않고, 자신이 신하들로 하여금 속임수를 쓰지 못하도록 하는 통치술을 믿습니다.” p. 142


“나라란 군주의 수레이며, 권력이란 군주의 말이다. 통치술이 없이 이를 다루려고 하면 몸을 비록 수고스럽게 하더라도 어지러워지는 것을 면할 수 없다. 통치술을 가지고 다스린다면 몸은 편안한 곳에 거하면서 제왕의 업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p. 150.


“옛말에 이렇게 말했다. “군주는 자기가 바라는 바를 드러내지 말라. 군주가 만약 그 바라는 것을 드러내어 보이면, 신하들은 장차 거기에 깎아 맞추려고 들 것이다. 군주는 자기 의지를 드러내지 말라. 군주가 만약 자기 의지를 드어내어 보이면, 신하들은 장차 자신이 남다르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할 것이다.”” p. 155.


“군주의 도는 신하에게 드러내어 보여주어서는 안 되며, 군주의 통치술은 변화무쌍하여 신하가 이해할 수 없어야 한다.” p. 156.


한비자의 칠술(七術)

(1) 중단참관(衆端參觀): 여러 가지 일의 단서를 견주어 보아야 한다.

(2) 필벌명위(必罰明威): 잘못은 반드시 처벌하여 군주의 권위를 밝혀라.

(3) 신상진능(信賞盡能): 잘한 일은 반드시 미덥게 포상하여 신하들이 자기 능력을 최대한 다 발휘하도록 하라.

(4) 일청책하(一聽責下): 신하를 무리로 다루지 말고 한 사람씩 평가해서 추궁해야 한다.

(5) 의조궤사(疑詔詭使): 의심스러운 명령을 내리거나 거짓으로 일을 시켜보라.

(6) 협지이문(挾知而問): 알면서 모르는 척하고 물어보라.

(7) 도언반사(倒言反事): 말을 거꾸로 해보거나 일을 반대로 처리해보기도 하라. p. 273, pp. 292-293.


“뭇 신하들이 말로써 사업 계획을 진술하면, 군주는 그 말에 따라 사업을 맡기고, 실적을 가지고 그 사업을 평가한다.” p. 289.


“군주의 길은 신하로 하여금 반드시 말을 한 책임을 지도록 하며, 또 말을 하지 않은 책임도 지도록 해야 한다. 말에 처음과 끝이 맞지 않고, 논리에 근거가 없는 자는 말을 한 책임을 져야 한다.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책임을 회피하면서 무거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는 말을 하지 않은 책임을 져야 한다.” p. 294.




5. 한비자에 대한 노자 사상의 영향


“사람들이 주관적으로 상상해낸 것을 말할 때 ‘상(象)’이라고 하는 것이다. 지금도 도(道)라는 것은 비록 듣거나 볼 수 없는 것이지만, 성인(聖人)은 도의 작용이 드러난 것을 미루어 도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노자』에서 말하기를 “도는 드러나는 형상이 없는 형상이며, 실체가 없는 형상이다”라고 한 것이다.” p. 47.


“억지로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 없이 마음을 비우고 고요하게 있는 것이 도(道)의 본래 모습이며, 온갖 것이 드러나 서로 견주어지는 것은 사물의 실제 정황이다.” p. 48.


“(군주는) 지혜를 버림으로써 도리어 총명해질 수 있고, 현명함을 버림으로써 도리어 공효가 있으며, 용기를 버림으로써 도리어 강해질 수 있다. 뭇 신하들로 하여금 직분을 지키게 하고 백관들로 하여금 일정한 법을 따르게 하여 각기 능력에 맞추어 부리는 것을 습상(習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너무나 조용하여 그가 어느 자리에 있는지 알 수 없으며, 텅 비어 있어 그 소재를 파악할 수 없다. 현명한 군주는 윗자리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며 신하들은 아래에서 부들부들 두려움에 떨고 있다”라고 한다.” p. 49.


“『노자』에서 말하기를 “만물의 스스로 그러함에 기대고 감히 작위하려 들지 않는다”라고 한 것이다.” p. 57


“『노자』에서 말하기를 “하늘 아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데서 비롯했으며, 하늘 아래 큰일은 반드시 미세한 데서 시작했다.”라고 한 것이다. ……이는 모두 쉬울 때 큰 어려움을 피하는 것이며, 미세할 때 조심하여 멀고 큰 화근을 없애는 것을 말한다.” pp. 58-59.

“도(道)는 쌓아갈 수 있으니, 도가 쌓이면 겉으로 드러나는 효과가 있다. 덕이란 도가 쌓여 겉으로 드러나는 효과다.” p. 103.


“대저 도(道)란 넓고 커서 모습이 없다. 덕(德)이란 분명한 이치가 있어서 곳곳에 두루 미친다.” pp. 103-104.




6. 한비자의 ‘이(理, 이치)’ 개념


“이치란 사물을 이루는 무늬다.” p. 79


“사물에는 각각 이치가 있어 서로 침범할 수 없다. 사물에 이치가 있어 서로 침범할 수 없으므로 이치는 사물을 결정하는 틀이다. 만물은 각각 그 이치가 다르다.” p. 79.


“사물의 결에 따라 일을 처리하면 힘을 들이지 않고서도 일을 잘 이뤄낼 수 있다.” p. 81


“대저 얼음과 숯불은 한그릇에 오래 함께 있을 수 없고, 추위와 더위는 한때 함께 닥칠수 없으며, 잡스럽고 모순된 학설이 양립해서는 다스려질 수 없다.” (氷炭不相容) p. 85


장자(莊子)의『장자』

2010. 5. 1. 13:43 | Posted by 지송리

 장자(莊子)의『장자』

 

1. 1장 「소요유(逍遙遊)」의 의미


 북녘 바다의 물고기 곤, 이 새가 변하면 붕.

- 붕이 남쪽 바다로 날아갈 때는 파도를 일으키기를 3천리, 회오리 바람을 타고 오르기를 9만 리, 6월의 대풍을 타고 남쪽으로 날아간다. p. 28.

  붕은 매미와 비둘기의 비웃음을 사지만, 이것들은 붕의 뜻을 모른다. 생과 사의 짧은 순간만을 사는 이것들은 대도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붕은 도를 깨친 존재이다.


- 만약 천지의 본연의 모습을 모르고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여 무한의 세계에 노니는 자가 되면 대체 무엇을 의존할 게 있으랴. 그래서 「지인에게는 사심(私心)이 없고, 신인(神人)이게는 공적이 없으며, 성인(聖人)에게는 명예가 없다.」고 한다. p. 34.


- 장님에겐 빛깔의 아름다움이 안 보이고 귀머거리에겐 음악의 황홀한 가락이 안 들리지만, 장님이나 귀머거리는 비단 육체에만 한하는 게 아닐세. 지식에도 장님과 귀머거리가 있네. 그게 바로 지금의 자네를 말함일세. 신인의 덕은 만물을 혼합해서 하나로 만들려는 거지. 세상 사람들은 그가 세상을 편안하게 만들기를 바라지만, 신인이 무엇 때문에 [보잘것 없는] 천하를 위해 애써 수고하려 하겠나.


소요한다는 것은 무궁한 경지에서 노닒을 뜻한다. 세상사에 집착하거나 얽매이지 않는다. 따라서 소요유는 ‘구속이 없는 절대의 자유로운 경지에서 노니는 것’을 뜻한다.

  현실 세계에서는 구별을 한다. 선악, 시비, 미추, 삶과 죽음, 귀천 등의 구별이 있다. 이것들은 마음을 혼란되게 하는 것일 뿐이다. 도의 세계, 그 경지에서는 이런 것들의 구별이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소요유의 경지란, 현실의 구별과 분별을 ‘초월한 완전히 자유로운 세계, 즉 대자연의 커다란 품에 안길 때 사람은 비로소 참된 행복을 얻게 된다’ (안동림, 해제, p. 25.)




2. 「제물론」의 구별 거부


  제물은 ‘만물(세상의 모든 사물)을 고르게’ 함을 이른다. 유일절대의 도의입장에서 현실 세계의 갖가지 현상, 시미, 선악, 미추, 정사(옳고 그름), 화복, 길흉, 각몽(깨어 있음과 꿈꿈), 생사 등을 명확히 부분하려는 상대적 가치 판단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의미한지를 밝힌다. 대붕은 절대자(자유인)의 조건은 만물이 하나임을 깨닫고 궁극적인 ‘하나’의 세계로 돌아가는 데에 있다고 주장한다. (안동림 해제, p. 45.)

  따라서 제물은 절대적인 명지(明智)의 경지이다. 여기에서는 인간에 의한 구별과 시비가 없어진다. 즉, 인간의 지식은 상대적 지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장자가 상대주의에 머무는 것은 아닌 듯하다. 왜냐하면 명지와 같이 절대적인 도를 파악하는 지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도의 경지는 인간의 상대성을 넘어선, 초월한 상태이다.


- (남곽자기가 말하기를) 지금 나는 스스로를 잊어 버렸다. 너는 그걸 알 수 있겠느냐. 너는 사람의 퉁소 소리는 들어도 땅의 퉁소 소리를 듣지 못했고, 또 땅의 퉁소 소리를 듣는다 해도 아직 하늘의 퉁소 소리를 듣지 못했겠지. p. 47.


스스로를 잊은 상태란, 망아의 상태, 즉, 만물과 하나가 된 경지. 일체의 구별이 없어진 상태. 근심과 걱정은 구별에서 온다. 자타의 구별로부터 자기의 이익을 생각하게 되고, 이로 인해 근심과 걱정이 생겨난다. 망아에 이르러 구별이 없어지면, 자기를 위해, 또는 타자를 위해 근심과 걱정을 할 필요도 없다. 평안과 안정의 상태에 이를 수 있다.

  위의 퉁소 소리 우화에서 ‘구멍은 인간이나 사물의 덧없음을, 소리는 시비를 일삼는 사고나 언설을, 바람은 좀처럼 포착하기 힘든 도를 나타내고 있다.’ 소리는 시끄럽게 주장을 펼치는 것이다. 하늘의 소리 입장에서 보면 그런 자잘한 소리는 덧없는 것이다. 하늘의 퉁소 소리는 다른 소리들이 날 수 있게 하는 존재의 근원인 셈이다.


- 훌륭한 지혜는 한가하고 너그러우나 하잘것없는 잔꾀는 사소한 일을 따지려 든다. 훌륭한 말은 담담하나 쓸데없는 잔말은 이러쿵저러쿵 시끄럽다. …… 탐욕에 빠져 버리면 본래의 [순수한 모습]으로 되돌아 갈 수는 없다. p. 51.


- 감정이 없으면 내가 있을 수 없고, 내가 없으면 감정이 나타날 데가 없다. 이것이야말로 진실에 가깝다고 하겠으나 무엇이 갖가지 감정을 생기게 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p. 53.


- 참된 주재자가 있는 모양이지만 그 모습은 볼 수가 없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용은 뚜렷한데 그 형태는 볼 수 없다. 실체는 있으나 모습이 없다. p. 54.


- (편자가 말하기를) “그대는 [덕이] 지극한 사람의 행동을 들은 일이 없는가? 간담을 잊고 눈귀[ 따위의 감각 기관]까지도 잊어버린 채 무심하게 세속밖에서 떠다니고 인위를 일삼지 않는 자연 속에 노닌다. p. 482.


- 무지 무심하여 의식을 작용시키지 않고 모든 생각을 버려 의심을 품지 않으며 온갖 것이 생기는 대로 따라, 가는 것은 전송하고 오는 것은 맞이하며 오는 것을 막지 않고 가는 것을 멈추지 않으며 배반하는 자를 그대로 버려두고 순순히 따르는 자를 그대로 두어 각기 힘을 다하도록 놓아둡니다. p. 493.




3. 도(道) 또는 도추(道樞)와 ‘제물론(齊物論)’의 의미


- 성인은 그런 방법에 의하지 않고 그것을 [절대적인] 자연의 조명에 비추어 본다. 그리고 커다란 긍정(긍정의 세계)에 의존한다. …… 저것과 이것이 그 대립을 없애 버린(대립을 초월한 절대적인) 경지, 이를 도추(道樞: 도의 지도리)라 고 한다. 지도리이기 때문에 원의 중심에 있으면서 무한한 변전에 대처할 수 있다. 옳다도 하나의 무한한 변전이며, 옳지 않다도 하나의 무한한 변전이다. 그러므로  [시비를 내세우는 짓은] ‘명지’의 처지에 서느니만 못하다. p. 59.


- 길이란 그 곳을 다니니까 생기게 마련이고, 사물은 이름을 붙이니까 그렇게 된다. p. 61.

도추의 경지는 절대적 자연의 이치에 이른 경지. 구별이 없고 자연과 만물이 하나가 된 경지. 여기에 구별을 붙이고 이름을 붙이는 것은 인간의 상대적 지식에 의한 것. 인간은 그러한 상대적 지식에 의해 구애되고 속박된다. 유가의 정명은 이름을 바르게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관점이지 절대적인 도의 관점은 아니다. 정명에 의하면 시비의 판단에 이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시비의 판단이 인간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


- 충분히 자기의 삶을 즐길 수 있으면 도에 가깝다고 한다. 모든 것을 자연에 맡길 뿐, 그러면서도 그런 따위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것을 도라 한다. p. 63.


- 애초 사물이란 없다고 생각하는 경지이다. (무의 경지), 지극하고 완전하여 더 이상 아무것도 덧붙일 수가 없다. 그 다음 경지는 사물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거기에 구별을 두지 않는 (사물과 자아가 하나라는) 경지이다. 그 다음은 구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거기에 시비를 고려하지 않는 입장이다. 시비가 나타나면 도가 파괴되는 원인이 되고, 도가 파괴되면 또한 편애(애증)가 이루어지는 원인이 된다. pp. 65-66.


→ 유가의 정명, 예악과 같은 것은 시비의 구별로부터 나옴. 인간을 구속하는 것.


- 자기의 판단을 가하지 않고 상시의 자연스러움에 맡기는 것, 이것을 참된 명지에 의거함이라 한다. p. 67. [만물제동의 경지]


- 도란 본래 한계가 없고, 말이란 애초 일정한 의미 내용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도를 말로 표현하려 하면] 구별이 생기게 된다. p. 72.


- 대체로 참된 도는 명칭으로 나타낼 수가 없고, 참된 변론은 말로 할지 못한다. …… 알지 못한다는 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최고의 지식이다. …… 이러한 경지를 보광(葆光: 속에 간직된 도)이라고 한다. p. 73.




4. 4장「인간세(人間世)」에서 나타나는 처세술로서의 ‘무용(無用)의 용(用)’


- 학문은 실용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 입장. 지난 시간에 살펴본 이이의 학문관은 그런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등용되어 나라에 쓰임이 있는 것이 사대부가 할 일이다. 글만 읽는 것은 무용하다고 했다. 그러나 장자는 처세에서 자연의 도에 맡긴다. 특히 지식은 경쟁심에서 생기고 지식이란 다투기 위한 도구(p. 105)라고 한다. 그래서 노자의 ‘절성기지 민리백배’라는 말을 따른다.


- 격언에 “군주의 명령을 고치지 말라. 성공하려고 무리하게 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 그저 사물의 움직임에 따라 마음을 유유히 자유롭게 풀어 놓고, 어쩔 수 없는 상태에 몸을 맡긴 채 중도를 지켜가는 것이 제일입니다. p. 126.


- 내가 선생을 생각해 보니 선생은 자기 지식을 꾸며서 어리석은 사람을 놀라게 만들고 스스로의 행실을 닦아 남의 잘못도니 행동을 돋보이게 하며 눈부시게 마치 해나 달을 들고 가기라도 하듯 했을 거요. 때문에 재난을 면하지 못하오. (대공임이 공자에게 한 말) p. 495.

  장자는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 순응의 사상, 즉 부득이한 데에 몸을 맡기고 소요자적하라는 장자 본래의 사상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 쓸모없는 상수리나무 이야기는 무용의 용. 처세술. 인간 세상에 쓸모가 없어야 천수를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나는 그 쓸모 있음과 없음의 중간에 머물고 싶다. 그러나 쓸모 있음과 없음의 중간이란 도와 비슷하면서도 실은 참된 도가 아니므로 화를 아주 면하지는 못한다. 만약 [쓸모 있음과 없음 따위를 초월한] 자연의 도에 의거하여 유유히 노닌다면 그렇지 않게 된다. p. 487.


- 모순되어 보이는 장자의 말: 무한한 자연의 도의 경지에 노니라 한다. 그러나 편자와 손휴의 이야기에서 편자가 말하기를 “만약 저 새를 키우는 방법으로 새를 보양하려면 깊은 숲에 살게 하고 강이나 호수에 떠 있게 하며 제멋대로 먹게 하여 새의 본성에 따라 유유히 노닐게 하는 것뿐이다. 지금 손휴는 소견이 좁은 사람인데 내가 지인의 덕을 말해 주었으니 이건 비유컨대 생쥐를 수레나 말에 태우고 메추라기를 종소리나 북소리로 즐겁게 해주려 한 짓과 같아.” p. 484.




5. 장자의 이상적 인간상인 진인(眞人) (「대종사(大宗師)」 참고)


- 진인이 있어야만 비로소 참된 지식이 있게 마련이다. …… 옛날의 진인은 역경을 [억지로] 거역하지 않았고 성공을 자랑하지 않았으며, 아무 일도 꾀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람은 잘못을 해도 결코 후회하지 않고, 잘 되어도 자랑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은 높은 곳에 올라가도 두려워하지 않고,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으며, 불에 들어가도 뜨겁지 않다. [그] 지식이 [세속을 초월하여 자연의] 도이에 도달할 수 있으므로 그런 것이다. p. 176


- 옛날의 진인은 삶을 기뻐할 줄 모르고, 죽음을 미워할 줄도 모른다. 태어남을 기뻐하지 않고, 죽음을 거역하지도 않는다. 무심(無心)히 자연을 따라가고, 무심히 자연을 따라올 뿐이다. 그 [태어난] 시초를 모르고, 그 [죽은 뒤]의 꿑을 알려 하지 않는다. 삶을 받으면 그것을 기뻐하고, 죽으면 그것을 [제자리로] 돌려보낸다. 이런 경지를 「분별심으로 도를 버리지 않고, 인위로 자연을 돕지 않음」이라 하고, 이런 [경지에 있는] 사람을 진인이라 한다. pp. 178-179.


- [외계의] 사물을 [그 자체에 맡겨 두지 않고] 뜻대로 하기를 바라는 자는 성인이 아니다. [특정한 것에 대한] 친밀감이 있는 자는 인자(仁者)가 아니다. 자연을 [인위적인] 시간으로 구분하는 자는 현자가 아니다. 이(利)와 해를 구별하는 자는 군자가 아니다. 명예를 좇아 자기를 잃는 자는 선비가 아니다. 몸을 망치며 참된 삶을 잃고 있는 자는 [남에게 부림을 받을 뿐] 남을 부리지 못하는 자이다. pp. 180-181.


- 그 하나의 입장으로 [절대적인] 하늘(자연)의 무리가 되고, 하나가 아닌 입장으로 [차별적인] 사람의 무리가 된다. 하늘과 사람이 서로 다투지 않고 [조화되어] 있다. 이런 사람을 진인이라 한다. p. 185.


- 자연은 우리에게 모습을 주었다. 또 우리에게 삶을 주어 수고하게 하고 우리에게 늙음을 주어 편안하게 하며, 우리에게 죽음을 주어 쉬게 한다. 그러므로 스스로의 삶을 좋다고 하면 곧 스스로의 죽음도 좋다고 하는 셈이 된다. p. 188.


- 성인(聖人)은 그 무엇도 빠져 나갈 수 없는 [만물을 포함한] 경지에서 노닐며 만물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려 한다. p. 190.




6. 장자의 자유주의 철학, 긍정적 함의와 한계


  긍정적 측면은, 구별의 철폐를 통해, 만민 평등을 넘어 만물평등에까지 이르는 평등주의를 추구한다. 이것은 신분적 질서의 철폐를 위한 혁명적 사상이라 할 만하다. 유교적 명분 논리를 비판하는 것은 명분에 의한 자유 억압을 비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상대주의적 지식을 폐하고, 절대적인 지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속에서 자연과 합일되고 만물제동이 된 상태가 된다. 이것은 육체를 잊는 망아, 자신의 존재도 잊는 망아이다. 곧 정신의 절대적 자유를 추구한다. 이것은 내면적인 관념적 해방에 지나지 않는다. 정신 밖의 현실 세계는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 독단의 비판, 구속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기도취적일 뿐이다.

  또한 인간세의 처세술은 현실 순응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단지 천수를 누리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굳이 물아의 경지, 절대적인 도의 경지에 이를 필요가 있겠는가. 물아가 육체의 욕망을 잊는 상태임에도 육신의 보존을 말하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 모순되어 보이는 장자의 말: 무한한 자연의 도의 경지에 노니라 한다. 그러나 편자와 손휴의 이야기에서 편자가 말하기를 “만약 저 새를 키우는 방법으로 새를 보양하려면 깊은 숲에 살게 하고 강이나 호수에 떠 있게 하며 제멋대로 먹게 하여 새의 본성에 따라 유유히 노닐게 하는 것뿐이다. 지금 손휴는 소견이 좁은 사람인데 내가 지인의 덕을 말해 주었으니 이건 비유컨대 생쥐를 수레나 말에 태우고 메추라기를 종소리나 북소리로 즐겁게 해주려 한 짓과 같아.” p. 484.

  즉, 절대적 자유의 경지에는 범인은 이르지 못한다. 그렇다면 장자의 주장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제6장 「대종사」


대종사의 앞부분은 진인에 대한 규정이 나와 있고, 후반부에는 도에 따르는 삶이 생과 사를 초월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와 있다.


- 도란 실제로 [겉에] 나타나는 작용이 있고, [그것이] 존재한다는 증가가 있으나 행동도 없고 형체도 없다. [그것을] 전할 수는 있으나 [물건처럼] 주고받을 수는 없다. 터득할 수는 있으나 볼 수는 없다. 스스로 [모든 존재의] 근본이 되어 있고, 천지가 아직 생기기 전의 옛날부터 본래 존재하며, 귀신이나 상제를 영묘하게 하고, 하늘과 땅을 낳고 있다. p. 191.


- [자여(子輿)는] 대답하기를, …… 대체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건 그런 때를 만났음이며, 삶을 잃는다는 것은 [죽음의] 도리(道理)를 따름이다. 태어난 때에 편안히 머물고 자연의 도리에 따르면, 슬픔이나 즐거움(감정)이 끼어들 수 없다네. 이것이 옛날에 말하던 현해(懸解: 속박으로부터의 해방)라는 걸세. 그런데 스스로 [그 속박에서] 풀려나지 못하는 건 [외계의] 사물이 얽혀 매듭져 있기 때문이지. 대체 사물이 자연의 도리에 이기지 못한다는 건 옛날부터 사실일세. 내 또한 어찌 [이 병을] 싫다 하겠나. p. 199.


- 자래가 대답했다. 「…… 자연은 내게 형체를 주었지. [그리고] 삶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고, 늙음으로 나를 편안하게 하며, 죽음으로 나를 쉬게 해주네. 그러므로 [삶과 죽음이란 이렇듯 하나로 이어진 것이니], 내 삶을 좋다 함은 바로 내 죽음도 좋다고 하는 게 된다네.」 p. 201.


안동림 해석: 장자는 인간의 변생(變生)과 생사의 초월이라는 문제를 말하고 있다. 생사를 초월한다 함은 자연에 순종한다는 뜻이다. p. 202.


- [공자가 말하기를] 자기가 말하는 이 「자기」라는 것이 과연 자기인지 어찌 알겠느냐. 그런데 또 자네는 꿈에 새가 되어 하늘에 이르기도 하고, 꿈에 물고기가 되어 연못 속으로 가라앉기도 하겠지. [그러면]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과연] 깨어 있으며 그러는 건지, 꿈꾸며 그러는 건지를 알 수가 없지 않느냐. 남의 결점을 고자질함은 웃는(포섭하는) 것만 못하고, 웃음을 즐김은 사물의 추이(推移)에 [그래도] 맡기는 일만 못하다. 추이에 편히 [몸을] 맡긴 채 변화를 따르면, 곧 고요한 하늘(자연)과 하나가 되는 [절대의] 경지에 들게 된다.


- [허유(許由)가 말하기를] 내 스승, 내 스승이란 [도는] 만물을 이뤄 놓으면서도 의롭게 여기지 않고, 만세에 미치는 혜택을 베풀면서도 어질다 생각하지 않는다. 아득한 옛날보다 더 오래 살면서도 늙었다 하지 않고, 천지를 싣고 감싸서 갖가지 모양을 조각해 내면서도 재주라고 여기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마음을 노닐게 하는 경지일세. p. 214.


- [안회(顔回)가 말하기를] 「저는 좌망(坐忘)하게 됐습니다.」 중니는 놀라서 물었다. 「무엇을 좌망이라고 하느냐?」 안회가 대답했다. 「손발이나 몸을 잊고, 귀와 눈의 작용을 물리쳐서, 형체를 떠나 지식을 버리고 저 위대한 도와 하나가 되는 것, 이것을 좌망이라 합니다.」 중니는 말했다. 「[도와] 하나가 되면 좋다 싫다 [하는 차별 따위]가 없어지고, [도와 하나가 되어] 변하면 한 군데 집착하지 않게 된다. 너는 정말 훌륭하구나. 나도 네 뒤를 따라야겠다.」 p. 216.



제 8장 변무: 인의에 대한 논박


- 물오리는 비록 다리가 짧지만 그것을 [길게] 이어 주면 괴로워하고, 두루미의 다리는 길지만 그것을 [짧게] 잘라 주면 슬퍼한다. p. 246.


- 세상에서 인덕이 있다는 사람들은 태어날 때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떨쳐 버리고 부귀를 탐하고 있다. 때문에 인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참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p. 247.


- 예악에 따라 몸을 굽히고, 인의에 순순히 좇아 천하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은 본래의 일정한 모습을 잃는 짓이다. p. 248.

안동림 주: 자연 그대로의 인간의 본성을 인의 따위 자로 규정해 버리려는 유가는 바로 그 어떤 구속도 배척하는 장자에게는 그야말로 강렬한 혐오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p. 249.


- 내가 말하는 선이란 인의가 아니라, 본성의 덕에 순순히 따른다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선이란 흔히 말하는 인의가 아니라, 본래 그대로의 모습에 맡긴다는 뜻이다. p. 252.



제9장 마제


- 대체 지극한 덕이 이루어진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새나 짐승과 함께 살고, 만물과 함께 나란히 모여 있었다. [그런데] 어찌 군자와 소인[이라는 차별]을 헤아리겠는가! …… 성인이 나타나게 되자, 애써 인을 행하고 허둥지둥 의를 행해서 온 천하가 비로소 의혹을 품게 되었다. 제멋대로 음악을 연주하고 번잡하게 예의를 반들어 천하에 비로소 구별이 생기게 되었다. p. 260.


- 성인이 나타나게 되자, 예의나 음악에 따라 몸을 굽혀서 그것으로 천하[사람]의 겉모습을 바로잡으려 하고, 인의를 내걸어 천하[사람]의 마음을 달래려고 했다. 그러자 백성은 애써 지식에 몰두하고 다투어 이득을 좇게 되었는데, [이제는] 막을 수가 없다. 이 역시 성인의 잘못이다. p. 262.



제10장 거협: 인간의 지혜 비판. 성을 끊고 지혜를 버려라.


-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지자(知者)란 큰도둑을 위해 [물건을] 모아두는 자가 아니라고 하겠는가. 소위 성인이란 큰도둑 때문에 [물건을] 지키는 자가 아니라고 하겠는가. p. 268.


- 전성자는 하루 아침에 제나라 군주를 죽이고 그 나라를 훔치고 말았다. 훔친 것이 그 나라뿐이었을까? 아울러 성인과 지자가 이룩한 법까지도 훔쳐 버렸다.


- (도척이 말하기를) 어디서나 도 없는 곳이 있겠느냐? 방안에 무엇이 있는지 잘 알아맞히면 성(聖)이고, 스며들 때 선두에 서는 게 용이다. 나올 때 맨 뒤에 있으면 의이고, 될지 안 될지를 아는 게 지이며, 분배를 공평하게 함이 인이다. p. 270

- 성인이 죽지 않으면 큰도둑이 없어지지 않는다. 비록 성인을 존중하고 천하를 다스린다 해도 결국 그것은 도척 같은 인간을 존중하고 이롭게 하는 셈이 된다. pp. 270-271.


- 인의로 [백성을] 바로잡으려 하면 그 인의도 아울러 훔쳐 버린다. p. 272.a


- 성인을 근절하고 지혜를 내버리면 큰도둑은 없어진다. p. 273.

[<노자> 제 19장: 절성기지 민리백배.]


- 증삼이나 사추의 행위를 떼어 내고, 양주나 묵적의 입을 막으며 인의를 물리치면 비로소 온 천하의 덕은 현묘한 도와 하나가 된다. p. 275.


- 지혜를 좋아한다는 것이 온 천하를 이렇듯 혼란하게 하다니 참으로 심한 짓이다. p. 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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